EP-5과거의 등불을 끄고
선단 내 갈등은 격화되었다. 비록 파스콸라가 능수능란한 입담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쏜즈의 연금술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한편, 마을로 향한 하비에르는 재판소의 추격에서 선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읍…… 으읍!
으읍……!
그만해, 이제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너희를 재판소로 넘긴다고 날 원망하지 말라고. 어차피 우리는 갈 길이 달랐어. 각자 갈 길이 있는 것뿐이야.
조용히 하겠다면 입을 막은 헝겊은 빼주지.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조용히 할게……
상황 판단이 빠르군.
하지만 루스, 우리와 나침반을 재판소에 넘긴다고 해도, 반드시 결말이 좋을 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아?
그러게……
아직도 너희 형제들의 시체가 마을 밖 깃대에 걸린 채 썩고 있다고. 재판소가 너희에게 아무 짓도 안 할 거라 확신할 수 있어……?
……
없어…… 여기에도 없어.
미치겠군…… 나침반은 대체 어디 있지? 녀석은 분명 매일 밤 작업을 마치면 이곳에 두었는데……
이걸 찾는 거야, 하비?
……
안 좋은 타이밍에 돌아왔군요, 후아나 씨.
난 제때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후아나 씨,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칼을 내려놔, 하비.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준 건 나야. 내게 맞서봤자 승산은 없어.
혹시 모르니 한번 겨뤄보려고요. 당신은 부상을 당했으니, 생각보다 쉽게 이길지도 모르죠.
……
하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대체 무슨 불만이 쌓였길래 우리가 여기까지……
서로에게 칼을 겨눌 지경까지 오게 된 거야?
당신에게 불만은 한 번도 품은 적 없어요. 전 당신의 모든 결정과 의견을 지지했고 동의했죠.
어머니가 절 떠났을 때, 당신은 제 손을 잡고 이제부터 당신이 제 가족이라고 말했었죠.
그때부터 전 당신에게 그 어떤 불만도 가질 수 없었어요, 후아나.
그럼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하비?
후아나 씨…… 당신을 위해서예요……
거짓말, 내 앞에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날 위한다면서, 나와 싸우려 드는 거야?
제가 아는 후아나 씨는, 사리사욕 때문에 선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보다 용감하고 현명한 캡틴이었고, 우린 안심하고 당신을 따랐죠.
당신은 이제 제가 알던 그 후아나 씨가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계속 말해 봐!
지난날의 열정을 좇느라,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불쌍한 여자일 뿐이에요.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바다는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야.
그건 당신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죠. 이 선단의 그 누구도 더 이상 믿지 않아요. 우리 선조들은 이 세상에 없고, 그들로부터 전해온 이야기 역시 함께 사라져야 해요.
나침반을 넘겨요, 후아나.
우물쭈물대지 말고 덤벼. 가져갈 수 있다면 시험해 보라고.
후아나…… 아직도 모르겠어요?
재판소에 나침반을 넘기자는 건 저 혼자만의 뜻이 아니에요.
반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정말 예상치 못했어.
전 나침반을 원하고 녀석들은 그저 안정된 미래를 바랄 뿐이에요.
모두가 원하는 대로 해요. 그러면 당신은 여전히 우리의 캡틴일 테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비?
자신을 더 이상 기만하지 마. 적어도 너에 대한 나의 신뢰는, 두 번 다시 예전 같지 않을 거야.
……
당신 말이 맞아요, 후아나.
캡틴, 우리를 원망하지 말라고. 바다는 결코 갈만한 곳이 아니야.
우리는 그저 소금 사막을 떠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약속할게, 지금 무기를 내려놓고 각자의 막사로 돌아간다면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하겠어.
다들, 시작해라.
누구도 스스로를 속일 수 없어.
……미안하군, 늦었다.
으읍……! 이거 놔!
린수 똥 덩어리 같은 자식, 감히 이 몸을 포박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하비에르…… 반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를 거라 했잖아?
……젠장!
돌아오던 도중에 루스가 소금 사막에서 '길을 잃었길래' 겸사겸사 데리고 왔지.
……
하비에르, 어떻게 된 거야?
크흠, 함부로 굴지 마. 네 동료가 우리 손에 있다고!
닥쳐! 외부인 주제에 우리 일에 참견하지 마!
어떻게 하고 싶어?
당연히 돌아가서 마을을 불살라버리고, 우리 것이었던 걸 되찾아야지!
재판소 놈들한테 무릎을 꿇겠다는 그 린수 똥 덩어리 같은 계획 때문에 누님에게 맞설 거야? 겁쟁이냐?!
하비에르, 우리의 많은 형제들이 놈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물자도 다 빼앗겼다. 그런데도 놈들에게 굴복하지 못해 안달이 난 거냐?
후아나 씨는 널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
우리는 이제 먹을 것도 없는 부상당한 패잔병일 뿐이야. 쳐들어가봤자 개죽음이라고.
그리고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나침반만 안 훔쳤어도, 재판소 놈들이 우릴 죽일 듯이 쫓아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윽, 후아나……
……
그럼 이 꼬맹이를 던져 주면 되지, 왜 항복하려는 건데?
티치……
그만, 그건 해결책이 아니야……
그렇네, 우리가 왜 아직도 이 계집애를 안 쫓아냈지?
어……!!
저기, 내 말 좀 들어줘……
여기서 네가 말할 자격은 없어!
윽……
해적들은 일제히 파스콸라를 향해 칼날을 겨눴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파스콸라는 침을 꿀꺽 삼켰고, 바지로 손바닥의 식은땀을 훔쳤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겨우 꼬마애한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빨간 털, 너……!
말도 안 돼. 다 큰 어른들이 머리를 짜낸 해결책이, 겨우 꼬마애를 넘기는 거라고?
그만해, 빨간 털!
네 편을 들어주고 있잖아!
알아, 내 입장은 내가 말할 거야!
잘 들어, 너희들이 날 넘긴다고 해도 난 괜찮아, 진짜로!
날 두들겨 패고 싶은 너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가 형편없는 물건으로 너희를 속이려 했단 것도 알고 있어.
폭력과 거짓, 그래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지…… 그 외엔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다만…… 너희들도 그 마을의 실상을 잘 알잖아. 나와 나침반을 넘겨주면, 너희들의 삶이 나아질까?
그렇다고 넘겨주지 않으면 그 재판소 놈들이 계속 우리를 쫓을 테니, 이것 역시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야. 그렇지?
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둘 방법 다 안 통한다면, 대체 뭘 어쩌라고!
일주일만 더 기다려줘.
일주일 뒤면 나침반 수리에 대한 결론이 날 거야!
……
그래, 시간을 조금 더 줘.
얘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나침반을 따라 바다로 가면 돼. 그럼 재판소 놈들도 더는 우릴 찾지 못할 거야!
실패한다면, 그때 가서 날 넘겨도 늦지 않잖아!
너희들이 감시할 텐데, 우리는 도망치지도 못해. 일주일 더 기다리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베리아에서 도망쳐 봤자 결국은 척박한 땅일 뿐이야.
무일푼으로 이베리아가 아닌 곳에 간다면, 목숨도 너희 것이 아니라 돈을 준 사람 것이 될 거라니까!
후아나도 당연히 너희랑 바다에서 죽으려는 건 아닐 거야…… 그럼 계획이 뭐겠어?
후아나가 얼마나 똑똑한지 다들 잘 알잖아? 마음만 먹으면 너희들 중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다고.
후아나는 보스가 되어서, 돈으로 너희들의 목숨을 손에 쥘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너희들이 자유롭게 살길 바랐으니까.
나침반이 있는데 왜 선조들처럼 대박을 노리지 않는 거야? 너희들은 자신을 해적이라 칭하지만, 바다를 본 적도 없잖아! 자신이 뭘 하는 사람인지 잊지 말라고!
말을 마치자 파스콸라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식은땀으로 옷도 흠뻑 젖었다.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후아나, 티치, 이시드로, 엘리시움까지 모두가 긍정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
꽤…… 일리 있지 않아……?
일주일이라면 나는 찬성이야. 교대로 너희를 감시하면 되니까.
우리도 찬성이야.
다른 사람은?
난 반대야.
……
난 반대라고!
고작 이런 궤변에 설득을 당한 거야? 열다섯 살짜리 애송이가 목숨 걸고 한 거짓말이라고. 이 녀석이 나침반이나 항해에 대해 뭘 알겠어?
내가 보장할게, 나침반을 빼앗고! 재판소로 넘기자! 그럼 우리는……
그……
미안, 하비에르……
한 선원이 무기를 내려놓자 다른 선원들도 차례로 내려놓았고, 하나둘씩 선장실을 떠났다.
하비에르와 후아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너와 루스에게 임무를 하나 주지. 임무가 끝나기 전에는 선단에 돌아올 수 없어. 알겠나, 하비에르?
……
짐을 챙겨 둬. 오늘 밤 출발해야 할 테니.
(작은 목소리로) 하비에르, 가자……
일주일 후
어떻게 됐어?
곧 약속한 일주일이 다가와……
……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실패한다면……
절대 실패하면 안 돼!
후아나는 널 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해준 일들을 생각해 봐……
가장 믿었던 부하인 하비에르와 루스를 쫓아냈고……
심지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
됐어, 파스콸라. 이제 그만.
뭘 해야 할지는 저 녀석도 잘 알고 있어……
하아……
한숨 좀 그만 쉬어.
오늘 결과가 나올 텐데, 너는 긴장도 안 돼?
긴장한다고 뭐가 달라져? 미래를 생각해 봐. 정말 나침반이 수리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실패한다면…… 우리는 또 어쩌지?
미치겠네. 선원들이 밖을 철저하게 차단했어.
뭐랄까…… 예감이 좋지 않아.
이럴 때일수록 그런 무슨 불길한 소릴 하면 안 되지.
하, 다만……
실험 막바지 며칠 동안, 녀석은 우리 도움을 거절했어. 틀어박힌 채 혼자서 실험하겠다고……
오늘도 우리를 끼워주지 않았어. 실험이 복잡해서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하니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서.
내가 아는 쏜즈는 보통…… 다른 사람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러거든.
그게 무슨 뜻이야……?
아마도, 이미 실패에 대비해놨을 거야.
하지만 나침반 수리 과정은 아직 안 끝났잖아?
쏜즈는 항상 그래. 뭘 하든 최악의 상황을 먼저 예상하고 미리 대비를 해 두거든.
뭐야!?
조형대에 겹겹이 쌓여 있던 아츠 역장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금속 물질은 이미 새까맣게 탄 진흙으로 변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시드로는 재빨리 탐침을 챙겨 도구가 파손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방금 간신히 조합한 나침반 부품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시드로는 검게 물든 진흙을 헤집으며 실패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다. 온 힘을 쏟았던, 정교하다 여겼던 구상들은 흔적도 없이 전부 사라졌다.
시간에 맞추지 못했어……
난 뭘 믿고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복제할 수 있다 생각했지?
스승님도 분명…… 아무리 아츠가 뛰어난 연금술사여도 코라소닉스를 완성하려면 최소 십여 년이 걸린다고 했어……
부식된 코라소닉스는 그의 주머니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마치 그의 무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슨 일……
부품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청년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상황은 뻔했다.
미안해, 후아나. 실패했어.
……
괜찮아, 이시드로. 이건 내 선택이었어.
내가 모든 책임을 질게.
그건 너무 위험해.
너도 소식을 들었잖아. 그 애송이가 다 망쳤고 나침반도 망가졌다고.
그럼 더더욱 가면 안 돼.
재판소의 조건은 나침반과 소금배의 설계도를 넘기는 거야. 빈손으로 가서 어떻게 협상하려고?
우리가 직접 놈들 손에 협상패를 갖다 바칠 필요는 없지.
놈들이 직접 가져가게 하면 돼.
자네는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인가 보군.
협상을 위해 보낸 형제가 너무 야만스러웠다 말하려는 거라면, 굳이 돌려 말할 필요 없어.
아니. 신뢰가 협력의 기본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는 말일세.
신뢰가 없었다면 내가 직접 만나러 오지 않았겠지.
빈손으로 날 만나러 온 것도 모자라, 소금 사막으로 직접 가서 자네가 약속했던 협상 조건을 가져오라는 건가?
그곳에 무장한 강도 수백 명이 날 함정에 빠뜨리려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만약 해적의 거점 위치, 나침반과 설계도뿐만 아니라 소금배를 조종할 수 있는 선원까지 넘긴다면?
잠깐, 하비에르. 우리 목표는 형제들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려는 거야. 녀석들을 재판소의 죄수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고.
나침반이 없는 후아나를 따라 모두 바다에서 죽는 것보단 나아.
게다가 너와 나뿐만 아니라 형제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형제들도 이해할 거야. 재판소에서 사람이 도착하면 형제들도 분명 협조하겠지.
……그럼 후아나는?
추가 협상 조건을 받아들였으니, 나도 조건이 하나 더 있다.
후아나는 풀어줘.
……당신이 직접 길을 안내해야 합니다.
잠시만, 집행관. 아직 협상이 끝나지 않았네.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무슨 생각인가?
저 자의 협상이 진짜일 리 없네. 거점도 그저 함정에 불과하겠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인력과 자원은 대규모 포위 작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하네.
제 부하들은 문제없습니다. 당신 쪽 사람들도…… 제가 준비시키죠.
자네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네만, 강도들을 처리한다 해도 우리는 더 이상 사상자들을 감당할 수 없네.
설령 설계도를 얻는다 한들, 배를 만들 인력도 없지. 아론 마을은 앞으로도 소금 사막에서 계속 갇혀 있게 될 것이네……
당신이 한 협상과 거래는 저와 무관한 일입니다. 강도의 거점을 알았으니, 저는 움직여야겠습니다.
저는 강도들의 악행에 사용되는 배와 그 설계도를 함께 불태워 버릴 겁니다.
그리고 강도들은…… 제가 제거하겠습니다.
자네에겐 그럴 권리가 없네! 자네가 이끄는 선교사들은 모두 아론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고, 나와 함께 고난을 겪었던 자들이야……
그럼에도 당신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군요…… 아니, 당신은 이미 그들을 배신했습니다.
아직도 그들이 당신을 따를 거라고 생각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