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퇴로가 타고 있다면
아나스타시오는 부하를 이끌고 선원들의 거점을 포위한다. 달빛 아래, 후아나에게서 풀려난 쏜즈는 등 뒤의 하늘을 치솟는 불길을 보고, 의연하게 발길을 돌려 거점으로 달려간다.
(작은 목소리로) 믿을 수 없어. 저 여자가 우리를 풀어주다니…… 수리에 실패하면 깡그리 묶여서 재판소에 넘길 줄 알았는데.
(작은 목소리로) 쉿……
아무리 사과해도, 네가 입은 피해를 만회할 수 없다는 건 알아.
여기까지인 것 같네, 이시드로.
걱정하지 마, 원망하지 않으니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난 결과를 각오하고 결정을 내렸어.
넌 우리를 위해 선원들의 분노를 감내했고, 파스콸라도 지켜줬지.
……우리와 함께 떠날 수도 있어.
후아나 씨, 이곳에 남는 건 매우 위험할 거야.
어서 가. 여태까지는 도망가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이제 기회가 왔는데, 왜 안 가는 거야?
……
나는 캡틴이야. 선원들을 버릴 수는 없어. 크루즈 앞에서 한 맹세고, 평생토록 지킬 거야.
후아나…… 돌려줄 게 있어.
옷과 검은 가져가. 네게 주는 보수라고 쳐.
그게 아니라……
그럼?
청년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 잠시 멈췄다. 그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나침반? 그럴 리가……
잠깐…… 이해가 안 돼. 나침반이 멀쩡하다면 연금 공방에서 본 잔해들은 뭐지……?
나침반을 수리하지 않고 그동안 도대체 뭘 한 거야?!
……
어서 말해 봐!
실험실에 부서진 나침반은…… 내가 복제를 시도한 거야. 진품은…… 건드리지 않았어.
후……
뭐?! 난 왜 몰랐지…… 대체 언제부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이해할 수 없어. 대체 왜 그랬지!?
나침반에 탑재된 코라소닉스의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어. 내가 그걸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다면,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그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코라소닉스 원본을 조작해 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어. 너의 기대, 선단 전체의 관심, 엘리시움과 파스콸라의 운명까지…… 전부 내 손에 달려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미 실패가 정해져 있다면, 적어도 손실은 최소화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래서 끊임없이 코라소닉스를 복제하려고 시도했어. 내가 코라소닉스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게 증명되면, 너희가 원본을 갖고 다른 연금술사를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자원이 전부 고갈되지 않도록, 일부 재료도 남겨뒀어.
나는, 나는……
미안하군. 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
이시드로…… 그게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해?
계산 상 실패 확률이 87%가 넘었어…… 이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지.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어. 설령 성공 확률이 10000분의 1이었다 해도, 나는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걸 걸었을 거야.
그건 실험이 아니라 도박이야.
훗…… 두 번째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성공할 확률보다는 훨씬 작아.
말해봐, 우리의 인생은 도박일까 아니면 실험에 가까울까?
……
위디 씨가 곧 날 데리러 올 텐데, 너도 같이 갈래?
……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계속할 거야.
파스콸라, 넌? 나랑 같이 갈래?
나는……
같이 가자. 적어도 너는 어떻게든 여기서 빼내 줄 테니까……
알겠어……이시드로, 몸조심해.
몸조심해.
그래, 너희도.
실버 님.
여기에 남기로 했군. 잘했네, 다행이야……
잊으셨습니까? 저는 다리가 불편해서 못 가는 겁니다.
……잊지 않았다. 두 번째 토벌 작전 중에 부상을 입었던가?
……잊으셨군요. 다리 부상은 처형 당일에 입은 겁니다. 당신이 상처를 치료해 주셨지만 결국 감염되고 말았죠.
……
만약, 정말 만약에…… 내 의술이 좋아서 자네 다리를 제대로 치료해 주었다면, 우리와 함께 했을 건가?
물론입니다.
……알겠다.
……
……
그와 무슨 얘기를 나누셨습니까?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아나스타시오……
네?
자네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네.
후아나 씨, 어딜 갔다 온 거죠?
……그 애들을 보내줬어.
말씀하신 건 전부 준비 끝났어요.
넌 며칠 동안…… 부하들과 네네를 데리고 소금 사막에 숨어 있어.
당신을 여기 혼자 두고 떠날 순 없죠.
이건 명령이야, 티치.
달빛 아래, 이시드로는 홀로 소금 사막을 걷고 있었고, 뒤에는 고독한 발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몰랐다. 아마 밤새도록 걸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문득 친구가 곁에 있길 바랐지만, 엘리시움에게 방금 작별을 고했으니 그럴 수 없었다.
이시드로는 짐작했다. 지금쯤 위디와 엘리시움이 만났을 것이고, 자신의 안전을 확인한 뒤 그들은 임무를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어쩌면 그들은 소금 사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다음 임무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홀로 자신의 여정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나쁠 것도, 연연할 필요도 없다.
하암……음……
저녁에 린수 액젓을 두 그릇이나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윽……!
경비를 처리했다. 집행관님께 정확한 정보라고 보고해라.
진입 준비.
꽤 빠르네, 하비에르.
……혼자시네요.
보다시피.
곁에 호위 하나 없다니……
날 지켰어야 할 호위는 여기서……
바로 여기서, 내가 직접 만들어 준 검으로 날 겨누고 있잖아.
바라던 대로 날 죽여. 그러면 선단 전체가 네 것이 될 거야.
……
후아나를 잡았다. 잘 감시해, 다치지 않게 하고.
……참 웃기지도 않는군.
너희가 어떻게 여길? ……어떤 린수 똥 덩어리 같은 놈이 우리를 배신한 거냐?
죽기 직전까지 복수를 생각하는구나, 이 악당아!
윽……!
어떤가요, 나침반의 행방은 찾았나요?
집행관님, 이들은 뭣도 모르는 피라미들에 불과합니다.
나침반을 찾기 위해선 강도의 거점에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멈추지 말고, 가는 길에 보이는 전부를 불태우세요.
죄악에 사용되는 더러운 물건들은 남겨둘 가치가 없으니까요.
예!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이시드로는 생각을 접고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어두운 밤하늘 위를 흐릿하게 비추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그것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꽃이었다.
아니……
불꽃은 선단 쪽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이시드로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성보다는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시드로는 오면서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 발자국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이제 그만 찾아. 넌 못 찾을 테니까.
그 녀석이 실험을 망친 탓에 나침반이 파괴되었다고 선원들이 그러더군. 찾는다 해도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하겠지.
나침반이 쓸모 있든 없든, 강도인 당신이 왈가왈부할 건 아니지요.
그래 그렇지…… 미안하군.
저는 그 나침반을 십 년 넘게 지켜왔습니다. 건드리려던 자들은 모두 죽였죠……
나침반이 가루가 되었대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들의 캡틴은 어디에 있죠?
후아나는 놓아주기로 협의했잖아?
그건 실버와 당신 사이의 합의지, 나와는 무관합니다.
그 여자가 나침반을 들고 도망쳤군요. 그렇죠? 연금술이 실패했다는 말은 핑계일 뿐, 아닌가요?
거짓말을 했군요…… 그 여자를 지키려는 당신 욕심 때문에? 역시 당신도 마땅히……
속이지 않았어. 애초에 나침반은 후아나에게 없었어. 파괴된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 봤자, 후아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네가 찾아야 할 건 연금술 애송이와 그놈의 공방이야.
어디에 있죠?
저기 뒷줄 두 번째 막사에 비밀 문이 숨겨져 있어. 그 밑에 연금 공방이 있지.
……거짓말이군요.
명을 재촉하지 마세요.
……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 너희가 한 말 진짜야? 나침반만 찾으면 우리 모두 사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지금 이렇게 바로 투항했으니까…… 사면 조건도 좀 더 느슨하게 해 주려나?
……
멍청한 소리.
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