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과거의 등불을 끄고
나침반의 수리는 순조롭지 않았고,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후아나의 인도로 쏜즈는 검을 든 시본을 죽이고, 마침내 풍랑에 맞설 수 있는 검술을 배우게 된다.
와, 이건 네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하던 실험보다 훨씬 위험한데.
그때는 실험실이 폭발이 하루에 많아야 3, 4번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15분마다 한 번씩 폭발하고 있잖아.
내가 필요한 데이터는 그런 게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전 실험들은 내가 전부 기록해 놨으니까. 꼬맹이, 와서 책상 좀 치워.
넵, 엘리시움 님!
쟤가 왜 여기 있어?
네 조수 노릇을 하려니 내게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마, 쟤 생각보다 영리하고 부지런하더라고. 할 줄 아는 게 많아.
(참나, 일을 몽땅 나한테 떠넘기고는……)
……
크흠. 꼬맹이, 창고에 가서 린수 기름이랑 이철 좀 가져다줄래?
알겠습니다, 엘리시움 님!
꼬맹이가 갔으니……
도대체 무슨 문제인지 말해 줄래?
전혀 진전이 없어…… 지금까지 만든 실험 샘플들도 기준 미달이야.
보기엔 훌륭한데 말이지, 반짝반짝거리고.
아니. 코라소닉스의 양이 이렇게 적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어. 코라소닉스는 고도화된 구조를 기반으로 엄청난 기능을 수행하거든.
내 접근 방식이 틀렸거나, 내가 애당초 코라소닉스 구조를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어.
지금 내 실력으로 코라소닉스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실험 샘플을 더 만들면?
자원이 부족해. 전부 써버릴 수도 없고. 실패를 대비해서…… 조금은 남겨둬야 하니까.
또 실패할 생각부터 하고 있네. 자신감을 가져, 쏜즈.
우린 여러 번 협력했잖아. 난 네가 성공할 거라 믿어, 후아나 씨랑 그리고 또……
으음…… 누구더라?
뭐, 누가 됐든 말이야……
나도 있어.
앗 꼬맹이, 엄청 빨리 왔네?
나도 진심으로 너희가 성공하길 바라거든.
내가 성공하면 넌 뭘 얻지, 파스콸라?
내가 이 나침반을 가져왔다는 걸 잊지 마. 너희가 망치면 나도 곤란해져.
그러니까 네가 난관에 부딪혀도 날 쫓아내진 마. 나도 도와줄 테니까.
……날 또다시 팔아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와주는 거야.
쳇, 믿든지 말든지……
크흠, 심부름 고마워, 꼬맹아. 나는 이제 금속 조형대 방향을 다시 조정해야 하니, 넌 계속 재료를 분류해 줘.
네, 네~
(흥, 또 재촉하네!)
들어와!
일을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상의할 일이 있어.
소금배의 전동 코어가 고장 났어. 쓸만한 고탄성 자재가 없어서 찾아왔어…… 캡틴이 나침반 수리용으로 네게 줬다는 건 알지만, 많이 필요한 건 아니라서……
얼마나 필요하지?
100g.
파스콸라한테 가져오라고 할게.
(작은 목소리로) 장난해? 우리도 그만큼 밖에 없잖아.
어서 가져와.
하지만……
괜찮으니 가져와, 꼬맹이. 우리 실험에는 당분간 필요 없으니까.
정말 고마워. 이렇게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 후아나 씨도 나침반 수리가 최우선이라고 모두에게 당부했고……
……넌 지금 선단 전체의 미래를 짊어졌어.
……
이시드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거야?
그건……
에이, 걱정하지 마. 실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잘 되고 말고 할 게 어딨어? 얘가 부담감이 커서 그래.
내 생각엔 긍정적이야. 어느 정도 부담감을 느껴야 동기부여가 되는 법이잖아?
……
이시드로, 내 말 잘 들어. 연금 공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좋든 나쁘든 절대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지 마.
최근 몇 년 동안 후아나 씨가 내린 너무 과감한 결정들 때문에 다들 불만이 많이 쌓였어. 너희와 후아나 씨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 작은 실수 하나라도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지.
그걸 빌미로 후아나 씨를 캡틴 자리에서 끌어내려 할 거야.
나침반 수리를 맡겠다고 했을 때, 이렇게까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는 어떻지, 티치?
너도 날 지켜보는 사람 중 한 명인가?
물론이지, 애송아. 하지만 내가 신경 쓰는 건 나침반이 아니라 후아나 씨야.
만약 네가 실패한다면 난 준비를 해야 해. 후아나 씨의 안전을, 그리고……
……그리고?
실망하고 분노한 해적들이 너희를 찢어발기지 않게 막아야겠지.
잊지 마. 너희는 해적선 안에 있다는 걸.
쏜즈……
이시드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밤하늘만큼이나 어두웠다.
희미한 등불 아래 몇몇 해적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탐구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이시드로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감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강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후회하는 거면 나한테 말해. 난 널 기꺼이 지지할 테니까.
(작은 목소리로) 둘이서라면…… 도망칠 방법은…… 분명 있다는 얘기야……
……끌어들여서 미안해, 엘리시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자처해서 온 거잖아.
처음엔 그냥 탈출구를 찾는 걸 돕고 싶었어. 개인적인 감정이 조금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상황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어. 나와 나침반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두가 모순된 기대를 하고 있지. 누구는 내가 성공하길 바라고, 누구는 내가 실패하기를 원해. 또 누구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길 바라고……
난 이런 상황이 정말 싫어.
브라더, 네 심정은 이해해.
하지만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지. 네가 무슨 행동을 하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어. 그렇다고 그 행동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신중할 필요는 있지.
머리가 아프군…… 역시 혼자 일하는 게 좋아.
너는 이미 혼자가 아니야, 브라더.
그 굵은 힘줄을 전부 티치에게 넘긴 거야?
……파스콸라에게 들었나?
걔가 연금 공방에서 일하는 건 내 지시가 아니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
방해받기 싫겠지만, 나는 그저 나침반 수리가 잘 되고 있나 궁금했을 뿐이야.
참, 이제는 굵은 힘줄은 더 필요 없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염린에겐 그 정도로 굵은 힘줄이 없어…… 그건 시본의 것이지.
그런데, 소금 사막에 있던 시본은 너희가 전부 처리하지 않았나?
잠깐…… 설마 그걸 죽일 셈이야? 하지만……
……날 따라와.
크루즈라면, 이 상황에서 똑같이 했을 거야.
내가 말했잖아. 후아나는 듣지도 않을 거라고.
나도 알아……
후아나 씨를 찾아간 건 네가 조선공이랑 소통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였어. 후아나 씨가 어제 조선공을 찾아가려 했거든.
내가 조선공이랑 일 얘기를 한 걸 뭐 하러 숨겨?
티치는 몰라도 난 알아, 루스. 전동 코어를 고치는데 굵은 힘줄이 그 정도나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앞으로 어쩔 셈이지?
재료가 부족해지면 수리는 곧 중단될 거야.
후아나 씨는 재료가 조금 부족하다고 계획을 멈추지 않아. 되려 그 애송이를 데리고 재료를 구하러 가겠지.
그건 크루즈 선장이 죽인 괴물에게서 얻은 거라고 들었어…… 하지만, 이 소금 사막에 바다 괴물이 존재할 리 없잖아?
있어…… 내가 봤어……
그렇다면……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루스. 중요한 건 후아나 씨가 없는 동안 우리가 뭘 할 수 있느냐지.
……꼬맹이, 혹시 쏜즈 봤어?
벌써 공방에 간 건가? 이렇게 일찍?
하암……
몰라, 어제부터 안 돌아온 것 같은데.
밤새 기다렸어?
나 말고 네네가. 밤새 문 앞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어.
(초초한 듯 꼬리를 흔든다)
이상하네, 내가 공방에 가볼게. 넌 계속 자고 있어.
잠을 푹 자야 힘내서 일하지. 넌 무리 안 해도 돼. 필요하면 부를게.
……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오겠냐고. 하여튼 이상한 녀석이야.
어, 다들 누구 찾아?
이봐, 파스콸라가 여기 있나?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이시드로의 검이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시본의 살갗을 깊숙이 벴다.
인간이 아닌 그 존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시본은 발광하며 촉수를 휘둘렀고, 몸에 박혀 있는 여러 칼날은 서늘한 빛을 발했다. 마치 별의 파도처럼.
검사의 레이피어, 캐스터의 검 형태 아츠 스태프, 기사의 대검, 자객의 비수, 무인의 장도까지…… 모든 게 이시드로를 향해 연달아 날아들어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해적의 곡도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갈랐다. 마치 풍랑에 맞설 수 있다는 그 소문과도 같았다.
……윽.
……크으.
예전에…… 나는 밤마다 자신에게 물었어. 그때 잡아먹힌 사람이 왜 내가 아니었을까?
이 무거운 짐은 원래 당신이 짊어져야 했는데…… 왜 나한테 남기고 떠난 거야?
당신이야말로 캡틴의 자리에 앉아, 선실에서 작전을 세워야 했는데. 그리고 나는 타륜을 잡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에 젖어 있어야 했어.
당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몰라, 크루즈.
소금 사막의 밤바람은 항상 짠 맛이 났고, 건조한 바닷물 내음을 풍겼다.
후아나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은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그동안 검술이 많이 늘었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미안하군……
왜 사과를 해? 내 상처가 깊지만 않았어도 같이 동굴에 들어가서 그를 죽였을 거야.
……울고 있는 건가?
말했잖아, 대답할 마음이 없는 레이디에게 캐묻는 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거라고.
……미안하군.
너무 부담 갖지 마…… 애초에 네가 검술을 익히고 나면, 그의 생명을 끝내달라 부탁하려 했으니까.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야. 네가 그를 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네가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의미니까.
크루즈의 이름이 새겨진 칼을 찾았어……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숨을 완전히 끊어놓진 않았으니……
원한다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 거야.
……
고마워.
동굴 안에서 시본은 촉수를 비틀며 몸부림쳤고, 몸에 있는 도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그 소리는 시본의 미약한 숨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후아나는 그것의 생명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시본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몸을 관통한 검에 기대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이 어두운 동굴에 가둬서 미안해.
몇 년간의 고통도 이젠 끝이야.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어서, 당신을 명예로운 결투로 죽게 할 수 있어서, 난 정말 기뻐.
괴물로서 처치당하지 않았잖아……
많은 이들이 실패했는데…… 그 아이는 해냈어……
그 아이가 우리와 함께 바다로 가길 원한다면, 분명 너만큼 훌륭한 선장이 될 거야.
후아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미끈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의 흐릿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후아나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그것은 몸을 비틀며 저항했으나, 한때 강력했던 촉수들에게 배신당해 쓰러지고 말았다.
후아나는 그것의 머리를 받쳐 자신의 무릎에 기대게 했다.
그것의 이마에 있는 발광 기관에서 나오던 빛이 서서히 사라졌고, 후아나는 몇 년 전의 밤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수면 밑에서, 작고 너덜너덜한 범선,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손에 등불을 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영혼이 소금 사막에서 해방되어, 구름과 비를 타고 바다로 돌아가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엔, 분명 저 끝없는 바다 위에 있을 거야.
잘 가, 내 사랑.
후아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고통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건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백 년이 넘는 긴 세월 속에서도 무뎌지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바닷속, 에기르인의 도시에서 수년 동안 변함없는 일상을 보냈다.
깊은 소금 사막, 이베리아의 마을에서는 맑은 물처럼 평탄하고 무미건조한 삶이 이어졌다.
오직 바다 위의 끝없는 살육과 목숨을 건 전쟁 속에서만, 그녀는 피가 끓어올랐고 심장이 고동쳤다.
그때에도 그녀는 굶주림을 느꼈다. 신랄한 내일을 깨물고 격하게 기침을 하고 싶었다.
쓰디쓴 바닷물을 한 입씩 물어뜯어 미래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 망할 자식, 날 놓아줘! 풀어달란 말이야!
후아나와 이시드로가 돌아왔을 때 너희가 날 이렇게 취급한 걸 본다면, 너흰 다 죽은 목숨이야!
쟤 좀 조용히 시켜라……
이런 린수 똥 덩어리 같은 게…… 읍! 으읍!
루스, 사람을 보냈으니 호송 부대가 곧 준비될 거야. 넌 이 녀석을 데리고 먼저 떠나. 난 캡틴의 방으로 가서 나침반을 찾을 테니.
나침반을 찾으면 바로 뒤따라가지.
크흠. 이봐, 혹시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내가 지금 상황 파악이 좀 안 돼서 말이지.
누구 나한테 설명해 줄 사람?
저놈도 같이 넘길까?
넘겨 버려.
쏜즈 생각은 다를 텐데……
난…… 읍! 으읍!
이 놈 입도 막아놨어. 그냥 뒀다간 계속 시끄럽게 굴 테니.
으읍……
(책상 밑에서 고개를 내민다)
(이리 와…… 제발……)
소녀는 상다리 뒤에 숨어 있는 염린에게 몰래 신호를 보냈지만, 하비에르와 루스의 위협적인 발걸음 소리에 네네는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소녀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본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네네에게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눈에 소금이라도 들어갔어?
음?
그냥 신경 꺼.
나도 그러고 싶다만, 눈을 깜빡이는 게 너무 흉해서 눈에 거슬리잖아.
으읍!?
으읍……!!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확인해 볼까?
루스가 다가오자 소녀는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녀는 엘리시움이 조심스럽게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밑에 있는 염린에게 접근하는 것을 확인하고선, 모든 행동을 멈추고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한순간이라도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을 필사적으로 응시했다.
네네…… 네가 왜 여기에?
크앙!
무슨 일이야? 지느러미에 뭔가 묶여 있어.
이건…… 엘리시움의 깃발이다. 선단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군.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