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5고철과 리벳
비나는 도시의 다양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고심했고, 글래스고 패거리는 곁에 남아 그녀를 도와주게 된다. 시어러 소위는 상처와 병으로 고통받았지만, 델핀이 나타나 그를 린카딘으로 데려가기로 약속한다.
역시 이해가 안 됩니다, 하이디 씨. 겨우 이 위대한 도시로 돌아왔는데 또 떠나려고 하시다니……
뭐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시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토룬으로요? ……음, 더 멀리 가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 인생의 길잡이는 아버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당신의 조언은 늘 깨달음을 줘요. 예를 들면 예전에 얘기하셨던, 마치 백작의 사절과 만찬을 한 경험에서도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었죠.
하핫, 당신처럼 정치와는 담쌓은 소설가가 역사적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신다는데, 기꺼이 자료를 제공해 드려야지요.
그리고 제 고향이자 제가 제일 잘 아는 토룬에 관해서도, 이 무시무시한 런디니움의 전쟁과 함께 이야기로 남겨야 한다고 아까 말씀하셨죠.
그렇습니다. 그 볼품없던 세월을 그대로 기억해 내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도시를 위해 했던 영웅적인 행적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해요.
영웅…… 말씀하신 대로 우린 모두 영웅일지도 모르겠네요.
아, 이런 사랑 얘기도 매력적이겠어요. 빅토리아 변방에 살던 한 소녀가 휴가차 그곳을 찾은 청년과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청년은 런디니움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요.
물론 소녀는 결국 그 소식이 거짓이었단 걸 알게 되고, 사랑하는 이는 영웅이 되어 곁으로 돌아오는 거죠.
훌륭한 아이디어네요, 하이디 씨. 잃은 줄 알았던 연인이 돌아온다…… 마치 외부인에게 짓밟혔다가 우리가 다시 찾아온 이 도시 같군요.
……연주가 시작됐군요. 들어보세요. 연회장엔 레드 와인도 디저트도 없고, 조명도 예전만큼 밝진 못합니다. 하지만 금관악기에서 흐르는 선율만큼은 여전히 갈라지지 않고 청아하군요.
무도회장으로 가시죠. 제게 주신 영감과 저는 이 창가에 남겨 두셔도 괜찮아요.
그럼 여기 계신 친구 두 분은……
어……
이 사절분은 다른 나라에서 오셔서 빅토리아의 예법이 아직 익숙하지 않으실 거예요.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겠어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
……하이디 씨, 맞죠?
……아. 제가 안내할 테니 주변을 둘러보실래요?
아니요, 더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전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여기는 어떤 손님도 거부하지 않아요. 혹시 두 분께서 더 관심이 있다면 다음엔 창문이 아니라 객실 문을 통해 들어오셔도 됩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귀족들 파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조사한 게 빅토리아의 귀족 정치입니다. 당신들의 예법이나 감염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로 댄스 스텝까지 배웠죠……
윽, 저 같은 삼류 소설가를 귀족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런데 이 병사분이 왜 당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는 물어보셨나요?
……아뇨. 이 분이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제가 멋대로 결정한 겁니다!
하아. 하이디 님,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런디니움에 남아서 감염자 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싶다길래, 여기저기 안내할 생각에…… 아주 가끔은 적절하지 못한 방법을 쓸 때도 있지만요.
비웃고 싶으시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보시다시피 거짓말도 안 하고 속마음을 숨기지도 않는 사람이니까요.
후훗, 실로 '적심'…… 신분답네요.
엘리시오 씨. 당신은 적심 의료의 대표, 맞죠?
우리 기관이 그 정도로 유명하진 않을 텐데요……
감염자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귀족들이 은밀하게 주고받는 거짓을 가려내는 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팔짱을 끼고 무도회장에 들어온 사람은 대부분 감염자죠.
……
이론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일이에요. 살카즈가 뿌린 오리지늄 분진은 신분 관계없이 모든 런디니움 시민에게 해를 입혔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아요. 자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감염자인지 아닌지 캐내려는 사람도 없어요. 이건 그들 자신을 위해 남겨둔 체면이자…… 일종의 꿈이기도 하죠.
……
엘리시오가 홀을 바라보았다. 기둥의 금장식에 남은 벗겨지고 패인 자국은 전쟁 중 폭도들이 이곳을 침범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연주가들의 진심을 담은 연주가 눈앞에 보이는 이 을씨년스러움을 대부분 가려주었다.
스스로를 소설가라 말하는 여성이 펜 뚜껑을 열고 무언가를 노트에 써 내려갔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에, 이런 무도회 같은 건 무의미한 자기 암시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니까요.
……이건?
방금 생각나는 대로 써 봤어요. 읽을 가치조차 없는 줄거리…… 그리고 약간의 추가 정보입니다. 받아 주세요.
이런 예감이 드네요, 엘리시오 씨. 우린 또 만날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하이디 씨에겐 눈앞의 환상으론 치유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가끔 어떤 친구가 그리워질 뿐이에요.
그 친구가 사라진 후,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줄어버렸죠.
“만국 정상회담”……?
라테라노는 빅토리아에서 일어난 일에 상당히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찌 됐던 이건 살카즈가 일으킨 재난이니까요.
하지만 살카즈 문제를 강단 있게 처리하는 당신과 의회가 이 도시를 재건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교황님께서도 사람들을 도탄에 빠뜨릴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테라 각국에 평화 교섭의 장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당신도 단순히 라테라노의 교황님 대신 내 답변을 들으러 온 것만은 아니겠지.
저는 일개 전달자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메시지를 당신과 의회에 전달할 책임이 있죠.
알겠다. 미안하지만 교황님께는 죄송하다고 전해 드려. 라테라노의 호의는 잘 알겠지만, 지금 의회는 런디니움 이외의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리고 널 초대한 대공작에게도 전해. 난 그 어떤 신분으로도 라테라노에 가지 않을 거라고. 대체 언제부터 대공작의 계획에 대해 의회나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거지?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전달자의 본분이니까요.
오렌 아르지올라스. 정보에 따르면 전쟁 중에 고도딘 공작의 고속 전함에 있었지만, 라테라노를 대표해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어.
대충 예상했던 대로군. 고도딘도 단 걸 좋아하나?
만약 그렇다면 지금 런디니움에는 대접할 만한 게 많지 않군.
하아…… 모처럼 의회가 쉬는 날인데.
……그리고 재미있는 가십거리가 하나 있어. 그 라테라노 전달자가 당시 난민들을 이끌고 함께 승선했는데, 공작이 난민을 받아들이게 설득하려고 총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달아오른 총신에 데서 손에 화상을 입었다는데.
하. 갑자기 그런 얘긴 왜 해? 중요한 거야?
쉬는 날이니까.
좋아. 이걸로 쉬었다고 치자. 다음은 어떤 정보를 봐야 하나…… 마법진 흔적 관련 조사?
응?
비나의 눈에 시어러 소위의 이름이 들어왔다. 또 한 통의 편지였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편지를 처리 대기 상자에 넣었다.
델핀, 여기……
야, 비나! 네가 말했던 멍청한 도둑놈들 우리가 붙잡아서 교육을 잘 시켜줬어!
몸이 약한 광석병 중기 말기 환자들만 골라 노리다니, 진짜 쓰레기지.
더 열받는 건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강한 자들한테는 굽신거리는 다른 놈들이, 그 녀석들 이름에 혹해서 가담하려 했다는 거야.
다행히 네 소식통이 빨라서 그놈들이 세력을 키울 기회를 못 얻었지만.
하아, 나도 밖에 나가서 몸 좀 풀고 싶었는데.
걱정 마, 네 몫까지 때려 줬으니까.
사례금 받아둔 거에서 네 몫은 따로 챙겨놨어.
잠깐, 이 일은 보호비를 받으려고 한 게 아니잖아……
빅토리아로 돌아온 후에 과자 안 먹은 지 얼마나 됐지?
인드라……
강도를 당했던 그 꼬마가 직접 만들었대. 다 제멋대로 이상한 맛인데, 마침 너도 평범하게 단 막대 사탕은 안 좋아했잖아.
근데 그거, 자기는 못 구하는 사카린 대신에 감자, 당근, 지하 통로에 있는 원석충 체액까지 써 봤다는 것 같아……
내가 전부 먹어 봤으니까 괜찮아!
잠이 싹 달아날 것 같네. 나도 먹어봐도 돼?
응, 잔뜩 있다고!
……비나,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뭘 먹든 다 익숙하니까.
그러면…… 의장 일은?
그래 그래. 뭐가 그렇게 걱정이실까나? 법률 초안? 공문서? 보고서?
우리가 도울 만한 일 있어? 특히 너한테 껄끄러운 놈들 줘 패는 일로!
이번에 조수도 하나 들였어! 이파리 줄기처럼 비실비실하지만 호신용 복싱 기술 정도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글래스고 패거리가 다시 커질 때라고, 비나. 우린 언제쯤 복싱장으로……
……
……
인드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동료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았다. 묻지 말았어야 했다.
비나의 시선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훑고 있었다.
델핀이 비나 옆으로 다가가더니,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녀의 손에서 편지 몇 장을 빼냈다.
많은 시민들이 주목하는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할 때가 된 것 같아. 대다수의 사람이 의회 토론을 보러 올 수는 없지만,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라디오를 듣는 건 흔한 일이지.
도시 상황은 서서히 안정되고 있어. 세 번째 공사팀을 노포트 구에 파견하라고 이미 의회에 신청해 뒀어. 곧 우리의 고향이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예전보다 더 좋아지는 거지!
남은 일들만 정리하면 델핀, 너도 곧 린카딘으로 돌아갈 수 있어.
어머? 다이앤 씨……
……소위님?!
난 이미 퇴역했다…… 사라.
어, 그러셨나요.
……
분명 지난번엔 요양원 초대를 거절하셨잖아요? 그러면 오늘은……
……아, 그저 너희 병문안을 왔을 뿐이야. 그리고 너한테도 고맙다 전하고 싶었어…… 기분 나쁘게 생각 마.
실은 이미 기억이 안 나요. 아시겠지만, 결정이 이미 제 머릿속을 침식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손을 떨고 계시네요.
제 앞에서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어요, 소위님. 저는 당신께 많은 지식을 배웠어요. 다행히 그것들은 전부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약물 중독 증상 같네요. 전쟁 중에 생긴 후유증인가요?
……진통제를 과다 복용했다. 그때 성벽 아래서 다쳤을 때부터.
……!
여기 남으셔야 해요. 요양원 의사를 찾아올게요.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소위님을 위해……
진통제를 더 찾아다 주려고? 훗, 그러면 고통은 좀 덜 수 있겠지.
그래서 오신 거죠? 도시에는 물자가 부족하지만, 원장님이라면 소위님께는 가능한 범위에서는 나눠주실지도 몰라요.
예전부터 델핀 님은 요양원과 저희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셨으니까요.
……
잠시 기다려주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
그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면 배급이 부족한 진통제를 정말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우……
어라…… 안 계시네?
어이, 앞에 보고 걸어!
……
그 녀석한테서 떨어져.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의장실이 이쪽…… 일 텐데…… 큭……
쓰러졌어! 또 불쌍한 광석병 말기 환자인가?
가까이 가지 마! 저 녀석이 폭발하면 우리 모두 다 끝장이야……
……나는…… 아니야…… 쳇,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사람 불러올게! 다들 멀리 떨어져, 떨어지라고!
시어러 소위가 길에 쓰러졌다. 저녁노을은 눈부시지 않았지만, 그의 눈을 자극했다……
어쩌면 그의 몸이 또다시 그에게 경고하는 걸지도 모른다…… 통증은 또 다른 생리적 욕구로 묻어야 한다고.
그는 자신이 전쟁 중에 고통에 굴복한 병사에게 가르쳤던 대로, 호흡을 가다듬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는 이미 고통에 짓눌려 있었다.
시어러는 불을 보았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타오르는 불을. 하늘 위의 불, 성벽의 불, 그의 몸에서 타오르는 불……
자신이 성벽 아래에 쓰러졌던 그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런디니움의 웅장한 성벽이 드라코의 화염 속에서 맹렬히 타올랐다. 화염은 점점 더 크고 거세지더니 결국 하늘을 집어삼켰다.
그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눈을 가리려 했다.
……소위……
시어러…… 소위…… 빨리…… 일어……
……?
그는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았다.
데…… 델핀 님?
찾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소위.
비나 씨에게 보낸 편지를 봤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부러 저를 피했죠. 제가 제공하는 의료 지원을 거부한다는 듯이.
……결국 그 사람은 내 편지를 읽지 않았군요…… 아닙니까, 델핀 님?
당신이 편지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미안하지만, 여기선 당신을 도울 수가 없어요. 런디니움의 약품 공급 상황은 누구나 아는 일이죠. 그러니 당신은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달리 어디로 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린카딘입니다.
……아니요! 저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소위. 이미 퇴역했다는 구실로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왜 주저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배반하고 버린 '갈라바에 철 방패'의 상관들과 마주하는 게 두려운 거죠……
나와 내 어머니께 충성을 다 하지 못한 것, 그리고 지금 이 꼴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요. 아닙니까?
모…… 모르겠습니다……
소위,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도 굳세지도 않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연약하지도 고상하지도 않죠.
우리는 린카딘 사람입니다…… 여긴 원래 우리 고향이 아니에요.
전쟁은 이미 끝났어요, 소위. 모든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소위. 나도 함께 돌아갈 거니까요.
가죠.
(흐느끼는 소리로) 하지만 이런 몸으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내가 대비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날 찾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그냥 둘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감사합니다, 델핀 님……
그렇다면 당신은 다시 런디니움으로 돌아오시는 겁니까?
네, 비나 씨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하지만 비나 씨는 당분간 기다려야 하겠죠.
우선 도시에서 요양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던 일이 끝나면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델핀 님.
린카딘…… 저도 돌아갈게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