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1증오의 잔재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 공작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비나는 스스로 의장직을 이어받아 런디니움 시민을 지키기로 한다. 시간은 현재로 돌아와, 비나를 고민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밀스카'였다.
성왕궁 서쪽 회당1098년 10월 8일 7:28 P.M.
전쟁 종식 직후
26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찬란한 곳이었습니다.
머리 위의 저 돔은 반짝반짝 빛났고, 두 달의 빛과 매혹적인 밤하늘은 밤새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였죠.
저는 여기서 폐하의 손등에 입맞춤을 올린 적도 있답니다. “알리스테어 폐하께 경의를”, 아주 귀한 영광이었죠.
빅토리아에는 이제 국왕이 없다. 당신……
아니, 마치 백작이라 불러야 하나?
그냥 엘레노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노르망디 공작님으로부터 마치 카운티 백작령을 하사받은 것은 백작 작위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업상의 필요 때문이라서요, 전하.
그때 국왕의 처형이라는 촌극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가까운 관계였을 겁니다, 비나 씨.
그녀는 보라색을 입힌, 금빛 부처꽃이 인쇄된 명함을 꺼냈다.
받아주세요. 형식을 중시하신다면 이쪽이 편하실 테니.
……너와의 인연은 깊지 않아서 말이지. 너희는 이 장소에서 런디니움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건가?
회의 장소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고려해 보면, 더 적합한 장소가 있을까요?
엘레노어는 과거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홀 깊숙하게 자리한 빛바랜 조각상과 먼지 쌓인 문을 바라보았다.
문 너머에는 빅토리아 국왕의 왕좌가 있다. 한때 국왕이 앉아 제국 전체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던 자리.
그러나 지금, 문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이곳에 미리 온 이유는 추억의 장소를 둘러보려는 것도 있지만,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이에는 얘기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당신도 저를 만나고 싶으셨던 건 아닌지?
……내가 네 약점을 잡고 있는 건 알고 있……
비나 씨, 로도스 아일랜드의 동료들은 이미 다른 공작님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을 겁니다.
다른 공작? 너나 노르망디 공작이 그 녀석들과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저를 노르망디 공작님과 혼동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존경할 만한 분이지만, 런디니움의 사소한 문제를 처리하는 일로 공작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지요.
다른 몇 분에 대해서도, 감히 저를 그분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요.
살카즈 군대의 철수가 런디니움 재난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감염자 수의 추이를 계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지만, 결과는 불 보듯 명확하죠.
빅토리아의 약품 생산 라인은 부족하고, 감염자들을 위해 귀중한 생산 라인을 개조하겠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저는 컬럼비아 군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많은 제약회사로부터 추천도 받았죠.
메울 수 없는 틈은 없답니다. 가격만 적절하다면요.
……협박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답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손에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 정리한 후에 다시 저를 찾아주세요, 비나 씨.
지금 이 순간이, 이후 긴밀한 협력 관계의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봐주세요. 당신의 일족은 한때 이 낡은 건물 안에서 빅토리아 전체의 향방을 결정했습니다.
알렉산드리나 전하, 런디니움은 당신에게 너무도 작습……
저는 오히려 이 도시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민망합니다만, 거리에 울리는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허둥대다 길을 잃고 말았군요.
후우. 도시의 참상은 정말이지……
많이 변했군요, 엘레노어. 내 뿔을 잡고 목마를 탔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만.
그 관대함에는 여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공작님께서는 좀 더 청결한 곳으로 휴양하러 가신다 하셨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하하, 저장고에 있는 술을 다 마시기 전까지는 아까워서라도 영지를 한 발짝도 떠나고 싶지 않군요.
노르망디라면 이 모임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상관없나.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바로 자네 때문이니까, 알렉산드리나.
크흠, 그렇게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캐스터 공작.
그 노장군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군요……. 역시 초대를 거절한 건지?
그 사람의 시선은 이미 런디니움을 벗어나 있어. 내일 아침쯤이면 당신의 첩자가 나와 그의 대화 내용을 아침 식사로 올려놓겠지.
그리고, 지금 그의 모습은 가울을 집어삼켰던 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그건 빅토리아에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군요.
타라와 '더블린'……. 빅토리아에서 이탈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현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죠.
애버콘과 파이프는 큰 손해를 입고, 더 큰 의사 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자발적으로 포기'했어요. 애시워스의 배후에 있던 이들도 동란에서 거리를 두기로 했지요.
노르망디 공작은……. 태도가 이미 확실하군요.
고도딘 공작은 미소 띤 얼굴로 '소공작'을 바라보았고, 엘레노어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아, 세상 일은 참으로 무상하지요.
예전에는 여기서 의회의 연회가 열리기도 했고, 알리스테어 폐하가 알현실에 앉아 계셨을 적엔 그분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없었죠.
훗.
먼지가 내려앉은 어두운 홀에 선 고도딘 공작은 마치 지난날과 같은 모습으로, 몸에 익은 리듬을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밟아나갔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햇살이 돔을 넘어 그의 몸에 쏟아졌다. 그 시절 고도딘 공작은 기개 있는 사람으로, 권력자나 귀부인들이 그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다투었으며, 폐하도 그에게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그리고 그 후, 그 역시 다른 공작들과 손을 잡고 폐하를 교수대로 보냈다.
공작님은 어째서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을 그리워하시는지요? 그분의 후대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나요?
하하, 그도 그렇군요. 빅토리아에 국왕이 없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
'시즈' 씨,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진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감염자, 난민, 그리고 골칫거리…… 살카즈들. 당신이라면 더 나은 방식으로 머릿속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의장님'.
그건 '제국의 의지'가 보내는 통보인가?
그저 시도일 뿐이야. 폐허가 되어 가는 이 도시를 처리할 방법은 그 외에도 많지.
그 자리는 종신직도 뭣도 아냐. 당신이 적합한지 여부는 우리가 판단하겠지.
과거와 똑같이……. 말인가?
너희가 말하는 그 '식탁 위의 의회'에 의지해, 몇몇 공작들이 왕의 곁에 모여 춤을 추며 나라의 미래를 결정했었지.
그런데 결과는? 밖을 봐. 살카즈의 피를 아직도 완전히 닦아내지 못했어.
자네가 본 것은 이 작은 도시뿐이지.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빅토리아 전체야.
만약 런디니움이 빅토리아를 약화시키는 고름이 된다면, 도려내는 것도 나는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야.
빅토리아가 피 흘리는 모습을 다른 나라들이 보는 것까지는 허용할 수 있지만, 그 그로테스크한 흉터를 남들이 비웃게 둘 수는 없어.
하수구에 서 있으면 이 오랜 제국의 전모는 볼 수 없어. 잊지 말도록. '빅토리아'라는 성은……. 내게도 그렇게 먼 것이 아니야, 알렉산드리나 전하.
강한 자와 영웅만이 제국의 진로를 거머쥘 힘을 가지는 법이야.
미래의 친구를 위협할 필요가 있나요, 캐스터 공작.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모인 게 아니겠습니까?
웰링턴은 중심지에서 떨어졌고, 윈더미어령은 소란이 끊이지가 않지요. 그 외에도 우리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건은 모처럼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네요. 하지만 비나 씨,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가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의장은 반드시 왕좌에 앉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엘레노어.
……할 말은 끝났나?
그녀가 검을 뽑자, 홀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
……
비나는 그 비밀회의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
그것은 런디니움의 미래를 결정짓는 회의였고, 런디니움의 시민들은 그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다. 하지만 비나가 허리에서 검을 뽑아 여유로이 떠드는 바보들에게 검 끝을 겨누었을 때……
그 바보들을 모조리 단칼에 베어버리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기만 한다면,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들이 변할 테니까.
선생님이 말했지. '왕의 숨결'은 한때 반란을 일으킨 권력자의 목을 벤 적도 있다고.
……아니, 이제는 '왕의 숨결'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내겐 이것에 이름을 붙일 자격조차 없어. 이건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니까.
원래라면 전장의 진흙 속에서 잊혔을 때, 사명은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모든 걸 잃은 영웅들은 여전히 이 검을 기억하고 있었어. 이건 그들 마음속 '빅토리아'이고……. 빅토리아를 다시는 먼지 속에 묻어두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
그들이 이 검을 내게 보낸 진짜 이유는 알고 있어. 자신들을 대신하여 이 검으로 심판해 주길 바라는 거야……. 진정으로 그들에게 재앙을 초래한 자들을.
하지만 너희 중에는 이 검을 두려워하는 자가 없지. 아닌가?
너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이 검이 아니야.
비나는 검 자루 양쪽에 새겨진 문양을 천천히 훑었다. 그 문양은 장인이 특별히 새긴 것이었다.
망치 하나, 그리고 칼 한 자루가 빛나고 있었다.
……“검 끝이 영원토록 빛나면, 빅토리아에도 영원한 영광 있으리.”
그들은 나에게, 이미 너덜너덜한 이 검을 다시 벼릴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 간청했다……. 내 망치를 주재료로 해서 말이지.
검을 다시 벼린 후,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이것을 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그 어떤 약속도 해줄 수 없었어. 국왕이니 의장이니, 그런 건 내게는…….
……쓰레기나 다를 게 없어. 나와 그들 사이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나 역시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일 뿐.
……
하지만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내가 본 것은 무엇이지?
그래. 내 눈에는 너희가 보는 그 '웅대한' 빅토리아가 보이지 않아.
하지만 난 볼 수 있어. 복싱장의 감염된 아이도 복싱을 배워 고향을 지키려 하고, 이가 다 빠진 주정뱅이조차 수술대 위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땅속에 숨겨둔 독한 술을 기꺼이 병원에 내놓지.
제국의 영광은 우리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추운 새해에 우리의 딱딱한 침대를 따뜻하게 데울 수조차 없을 만큼……
이 검은 그들이 내 손에 맡긴 책임이다. 의회나 왕권 따위 없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쥐고 있는 힘을 보게 하고, 자신의 영토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날까지, 어떤 신분이든 나는 그들 앞에 서야만 해.
하수구 속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적어도 이곳, 내 집에서는……
아직 네놈들에게 배울 처지는 아니다!
비나가 검을 바닥에 힘껏 내리꽂았다. 검 끝은 아무 저항 없이 돌바닥을 뚫고, 공작들 앞에 세워졌다.
모두의 시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검으로 쏠렸다. 그들은 이것이 비나의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검'과 '기적'은 그 전쟁 이후에 이미 굳게 이어져 있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선왕의 핏줄이 아닌, 비나의 또 다른 신분이었다.
하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지금 이 검이 우리 손에 들어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역시 직접 뽑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 멋진 검에 상처라도 나면 안 되니까 말입니다.
당신의 선생이 확실히 실용적인 것을 가르쳤군요. 아무래도 우리가 쓸데없이 걱정한 모양입니다, 캐스터 공작.
그렇군. 방식은 서투르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해. 의회를 통해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 거야.
*빅토리아 비속어* 잠깐……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어, 시즈. 찢어져 버린 빅토리아에는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역할을 자처한 건 너야.
하지만 나는 지금껏 자신의 검에 죽어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지. 그래서 그 검을 손에 쥘 것인지 신중했던 것이고.
그 검에 베이거나 다치지 않도록 말이야, 의장. 이건 내 충고야.
- 여러분, 비나는 당신들 생각보다 냉정한 사람이야.
- 아무래도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네, 비나.
박사?!
죄송합니다. 그……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루한 듯 으르렁거린다)
일단 물러나도록.
- 지금 런디니움은 모두를 지켜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해.
- 다른 자들은 신뢰할 수 없어.
박사……
- 물론 최종 결정권은 네게 있어.
- 로도스 아일랜드는 도시 내 감염자 대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어.
흥미롭군. 광석병 전문 의료 회사가 자신들과 무관한 일에 이렇게 손을 뻗다니.
당신들은 공작 연합군을 거치지 않고 살카즈와 휴전 협정을 맺었지.
- 각 공작의 함대는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어.
- 당신들은 묵인했어, 아닌가?
선물이라고 치지. 당신들이 전장에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하지만 적당히 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야.
시즈 씨, 우리는 당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도스 아일랜드, 그동안은 줄곧 조심스러운 태도이더니, 이제 와서 그렇게 급해질 필요가 있었는지?
- 시간은 때때로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법이지, 공작 나리.
……호오? 시간입니까……
비나 씨, 당신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시죠.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뒤에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하지 않도록 하세요.
- 우리와 노르망디 공작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제가 비나 씨에게 충고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 ……
……저 사람은 다른 공작들과 조금 다르군.
박사,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 마음속으로는 이미 답을 내렸잖아, 비나.
- 로도스 아일랜드가 이 이상 런디니움의 일에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 아미야는 이미 카즈델로 출발했어.
- 로도스 아일랜드는 곧……. 대부분 런디니움에서 철수할 거야.
시네셀드 의회실1098년 12월 8일 5:01 P.M.
바벨이 내 형제들을 데리고 떠난 지도 꽤 됐군…… 그동안은 우리에게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어.
쳇, 죽여라. 더 할 말은 없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벤치에 불편하게 앉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이 장소는 그에게 족쇄를 채웠고, 그의 운명을 결정지으려는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족쇄를 채웠다.
불과 얼마 전, 비나는 성왕궁 서쪽 회당을 의회 업무에 재사용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왕실이 과거에 빌려 썼던 이 건물을 선택했다.
비나는 이곳이 새로운 의회의 시작이 되기를 바랐다.
비나 씨, 조사가 끝났어.
롱샷, 용병 출신, 카즈델 '흉터의 상점'이라는 곳 출신이야. 전쟁 중에는 군사위원회의 도시 내 방위업무를 담당했고, 전선에 나간 적은 없어.
두 달 전에 바벨이 군을 철수했지만, 그는 떠나지 않고 현지 살카즈의 철수를 비밀리에 도우려다 인드라 씨와 다그다 씨에게 붙잡혔어. 당시엔 비나 씨가 그를 눈감아 줬고.
나는……. 기억나지 않아.
훗.
이번 범죄에 대해 단서를 추적하던 중에, 그가 숨기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어.
그의 딸은 지난 두 달 동안 살카즈가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돕고 있었어. 그리고 이번에는 그 딸도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 중 하나였지.
*살카즈 비속어*!
알고 지내던 상인을 다치게 한 것은, 그들에게 물자를 조달하고자 했던 것이겠죠. 아닙니까?
아아아악!!
제압해!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롱샷 씨. 당신이 신경 쓰는 그 사람들은 조금 전에 도주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빌려주는 자가 있더군요.
'밀스카'. 이 이름을 알고 있겠죠?
그들의 '사업'이 결국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하, 하하.
난 아무것도 모르겠는걸, 필라인. 이제 날 죽여도 좋다고.
……
내 피가 이 깨끗한 곳을 더럽히는 게 걱정되는가?
전쟁은 이제 막 끝났을 뿐인데, 네놈들은 벌써 피를 보는 게 두려워졌나?!
여기 앉아 있는 놈들 모두, 네놈들이 빅토리아 출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살카즈보다 더 비열한 놈들이다!
……나머지는 내게 맡겨줘.
알겠어.
최근 도시 일 관련해서 공작님으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있었나?
공작님께서는 살카즈와 '밀스카'와 관련된 문제를 일찍이 알고 계셨으며, 시민들의 안전을 무척 염려하고 계신다.
다만 지금 의회에는 모든 의원이 자리해 있고, 의장님께서도 시민들을 위해 문제 해결에 매진하고 있지. 때문에 공작님께서는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 믿고 계신다.
다만……
다만?
다만 런디니움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결코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계신다. 특히 '밀스카'에 대해서는.
그러니 모두들 의장님께 하루빨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재촉해 주길 바란다.
'밀스카' 은신처1098년 12월 8일 6:05 P.M.
보스, 그 마족은 의회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만, 의뢰한 물건은 되찾았습니다.
이 물건들은……
보내줘.
하지만 보스……. 지금은 너무 위험합니다. 의회 놈들이 우리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요.
물건은 잠깐 숨겨 둬. 이미 대금 지불은 끝났으니까, 우리는 물건을 보내는 일에만 집중하면 돼. 다른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이 물건의 존재를 아는 놈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용병이 손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하자, 턱 부근에서부터 돌연 날카로운 통증과 냉기가 느껴졌다.
보, 보스, 저를 죽여도 좋습니다만, 이게 최선의 처리 방법이라는 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마족 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형제를 잃었는지 아십니까?!
진짜로 그걸 신경 썼다면, 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파라곤 부대의 퇴역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겠지.
……하지만 신중히 움직여야 하는 건 맞아. 새 의장이 도시의 안전을 이렇게나 염려하고 있으니까, 그 화살 끝에 서게 될 것은 살카즈를 제외하면 우리 정도지.
흥, 하지만 그것도 그 마족 놈들의 자업자득 아니겠습니까.
두 달 전 대부대가 철수할 때 안 가고, 정세가 불안해지니까 이제 와서 떠나려고 하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
안심해. 이번 건만 잘 풀리면, 자연스럽게 새 일도 많이 들어올 테니까.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어떻게 됐어요? 구했어요?
요양소가 사람들로 꽉 찬 데다가 다들 앞다투어 억제제를 구하고 있어. 거기에 메이저 님 건도 있으니…
미안하다, 다이앤. 파라곤 부대라고 해도 그런 특권은 없어서 말이야.
우리와 계속 협력해 온 로도스 아일랜드도 억제제 공급에 힘쓰고는 있다만, 감염자가 너무 많이 늘었어……
네……. 알고 있어요.
으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전우에게서 뒷거래 루트가 있다고 들었어……
……불법적인 건가요?
며칠이라도 더 살 수만 있다면……
약을 구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었나요? 윽, 경쟁자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흥, 뭐 잘못 들은 거 아닌가?
이런, 실례했습니다. 컬럼비아에서 급히 오느라 피로가 쌓였나 보네요. 반갑습니다, 엘리시오라고 합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컬럼…… 비아? 적심 의료?
네, 제가 이번에 런디니움에 오게 된 건……
으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리스트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런디니움에 온 이래로 제가 보게 된 상황은, 대부분 사전에 받아본 자료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아, 여기 있네요. 런디니움 임시 공공위생 행정관……. 메이저 씨. 혹시 임시 물자 조달 사무실로 가는 길을 아시나요?
안심하세요. 저는 적심 의료를 대표해서 의약품 협력에 관해 논의하러 왔습니다. 여러분의 상황도 곧 호전될 거예요.
……
……
……에, 음, 제가 뭔가 잘못 말했나요?
소식 못 들으셨어요? 메이저 님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어요.
죄송합니다.
……?!
면목 없습니다. 실언을 부디 용서해 주시길…….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하든, 적심 의료의 진심과 약속은 변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저를 임시 물자 조달 사무실로 안내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