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1증오의 잔재
전쟁이 끝난 후, 의장 비나는 살카즈가 남긴 골칫거리들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의장의 책임을 떠안았을 때, 자신이 무엇과 마주하게 될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런디니움 폐공장1098년 12월 8일 4:43 P.M.
G12 구역…… 보아하니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나 보네. 번호도 안 보이고…… 여기가 맞긴 한가?
후우…… 저 끔찍한 마족들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니까……
거기 아줌마,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어이 신참, 이 여자 돌려보내고 와.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건지 '친절하게' 물어보고.)
(잊지 마라. 이번에는 뒤처리 똑바로 해둬. 또 보스 화나게 하지 말라고.)
하아. 당신도 들었지? 따라오라고……
이거 놔!
너희들은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도 없는 거야?
미키 로빈슨, 그러니까 파라곤 부대의 영웅…… 에, '중 한 명'이 내 남편이야. 약을 가져오라고 부탁받았어.
무, 무서운 검은 돌의 병을 완화해 주는 약이야. 남편은 이제 곧 걷지도 못하게 될 정도라서……
허, 또 재수 없는 놈이 한 명 더……
닥치고 있어 봐.
잘 들어라. 나는 그 미키라는 놈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댁이 여기서 건질 건 부랑자들이 쓰는 유통기한 지난 환각제나 죽은 마족의 뼈 정도지.
하지만……
그리고 광석병을 치료할 약이 필요하다면 새로 지어진 요양소에서 찾아봐라. 새로 부임한 의장님이 약속한 거니까.
……잠깐만,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거기 있는 약으로는 한참 부족하단 말이야.
여기서 약을 구할 수 있다는 거 다 알아. 남편은……
저기, 내가 안전한 곳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숨겨뒀어. 전부 컴버랜드 공작 저택의 귀한 물건들이야. 예전에 공작님께 포상으로 받은 것들이거든? 약만 구할 수 있다면……
바깥을 순찰 중인 도시 방위군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따라와, '부인'.
청구서에 서명시키고, 내일 약을 받으러 오게 하도록.
네, 보스! 그런데 혹시 돈이 없다면……
그때는 평소대로 처리해.
이상하네. 보스는 이런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데. 흐음, 그럼 이제부터……?
흥, 저 여자한테 계약서나 넘겨.
고마워, 정…… 잠깐, 이런 끔찍한 조건은 남편한테 들은 적 없어! 이런 계약서에 서명하면 우린……
멀쩡하게 살 수는 있겠지. 우리가 추심하러 갈 때까진 말이야.
그쪽 남편이라는 영웅 나으리는, 아무래도 아내에게 그리 정직하지는 않았나 본데.
자, 떨지 말고 펜 꽉 잡으라고. 정 힘들면 우리가 대신 서명해 줄 수도 있고.
……
펜을 쥔 그녀의 손을 용병이 단단히 붙잡았다. 손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졌고, 더 이상 아까처럼 침착을 가장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문 채 용병이 이끄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즐겨라. *빅토리아 비속어*같은 전쟁은 끝났으니.
'밀스카'에 도움을 청하는 게 당신과 당신 남편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거야, 부인.
오늘 아침, 런디니움의 임시 공중보건 행정관 겸 임시 물자 조달 부장 메이저 씨가 뉴 오슈테리그 구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알렉산드리나 의장은 의회를 대표하여 감염자를 지원해 온 메이저 씨의 공로를 기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메이저 씨의 생전 마지막 일정은 도시 내 의약품 부족 사태 해결에 관한 협의를 위한 노르망디 공작령 방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뢰성 높은 소식통에 따르면, 메이저 씨의 사인은 광석병으로 인한 급성 발작이었다고 합니다.
메이저 씨는 광석병 감염 사실을 숨겨온 것에 더해, 최근에는 의장과 언쟁을 벌이는 모습도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도시 내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작위 상속권을 상실한 메이저 씨의 죽음 뒤엔 조사해야 할 수많은 내막이 있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살카즈가 군대를 철수한 지도 이미 두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살카즈와 관련된 악질적인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전설적인 부대, 파라곤 부대의 처우에 대한 안건은 결정되었을까요?
대다수 공작의 지지를 받는 새 의장에게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의장의 측근인 케이트 모리건 씨와 연락을 취해, 심층 취재를……
의장실 안에 울리던 라디오 소리가 돌연 멈췄다.
헛소리도 작작 해야지!
그놈들, 요양소 식당에 잠입해 있다가, 내가 밥 먹을 때를 노려서 교묘하게 유도했었어……
그래서 때려눕혔다는 거군.
그렇게 하면…… 그놈들이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보도할 생각이 사라질 것 같아서……
미안. 사람들이 너를 보는 시선에 영향을 줄 줄은 몰랐어……
아냐. 나라도 그놈들을 전부 걷어차 버렸을 테니까.
응? 그래도……
자기 억측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걸 생업으로 하는 정보상들이 그 상대라면,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미리 정해둔 답을 바꿀 수 없어.
어차피 입을 못 막을 거라면, 직접적인 수단을 쓰는 게 덜 번거로울 수도 있지.
비나는 주먹을 맞대고, 이제는 본능적으로 나오는 스텝을 능숙하게 밟았다.
복싱장에서 지내던 그 시절처럼.
하핫! 이래야 역시 내가 아는 비나지! 알고 있었다니까. 한나 따위는……
윽……!
……정말 불편한 옷이군. 수선을 맡겨야 하나……
실력 있는 재단사를 알고 있어.
젊을 때 왕실 의복을 만들던 사람인데, 이번에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무도 일을 안 맡기려고 한대.
……그자도 감염됐나?
응.
크흠, 맞다, 저번에 통신으로 얘기했던 그 건은 좀 진전이 있어?
상황이 약간 복잡해.
그 살카즈는 이미 체포돼서, 현재 시네셀드 의회실에 구속되어 있어.
현 단계에서 보면, 이번 건은 지하 폐공장에서 활동하는 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
……'밀스카'.
배후에 그 노르망디 공작 후계자의 계략이 있는지는……
다시 한번 그 여자와……
협상해야겠군.
메이저 씨에게 일어난 일, 도시 시민들의 의약품 공급, 그리고 '밀스카'와 살카즈들.
요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두 달 전처럼 무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적응이 빠르네, 비나 씨. 지금의 의회라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안심해, 나도 도울게.
오래전부터 어머니께 훈련을 받아온 것은 이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였지…… 어머니께서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어.
……
모건 씨?
의회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
모건은 단지 지금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다들 그렇기도 하고.
시즈는 가능해도, 의장에겐 불가능한 일도 있지.
살카즈에게 부상을 입은 사람들 상태는 어떻지?
로도스 아일랜드 의료부의 동료가 돌보고 있어. 현재로서는 생명에 지장은 없고.
그리고 그 조악한 약의 출처를 추적한 결과, 대부분이 '밀스카'에서 온 것으로 확인됐어.
많은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떠돌이들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 처지가 되고 있지.
'밀스카' 본인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수하 관리가 허술한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알레데일은 알고 있어.
런디니움의 어두운 곳에서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조직, '밀스카'.
이미 세상을 떠난, 변치 않는 고결함을 간직하던 컴버랜드 가문의 마지막 빛, 알레데일.
그 두 이름 아래에 놓인 모습이 대체 언제부터 하나로 겹쳐지고 있었는지, 비나 본인조차 잊어가고 있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때였던가?
비나는 무의식중에 옷을 매만졌다. 파라곤 부대의 '영웅적인 리더'가 왕가의 오래된 갑옷을 걸치고, 성왕궁 서쪽 회당을 나설 때……
그녀는 이미 동이 틀 무렵에 카즈델 군사위원회의 깃발을 내렸고, 익숙한 실루엣과 증기 기사들이 하늘을 덮은 증기 속에서 조용히 몸을 감추는 것을 보았다.
그날, 알레데일은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고, 등을 돌린 채 황폐한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자, 의회실로 갈 시간이다.
시네셀드는 한때 왕가의 소유였으며, 연회장으로 귀족들에게 대관하는 장소였다. 새 의회실을 어디로 할지 모두가 고민하던 때, 비나는 런디니움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혼란은 이 도시의 너무나 많은 것들을 파괴했다.
포스터나 영화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방이었다. 지금까지는 이 장소가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갱단의 모든 멤버가 모여 각자 구역에 관해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질식할 것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실망스러운 장소일 뿐이다.
비나가 직접 인정한 적은 없지만,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모건 씨…… 모건 씨……)
왜?
글 쓰고 계신 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게……
(바나비가 또 늦어서 찾으러 가려고 합니다. 또 만취 상태로 어디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요.)
어차피 비나도 아직 안 왔고, 가고 싶으면 가. 굳이……
아니다, 잠깐!
생각났다. 너 전에도 그렇게 말해놓고, 결국 둘 다 회의 안 들어왔잖아.
그, 그건 밖으로 내쫓겨서……
모건 씨, 솔직히 말하면 저는 공장 도면을 들고 반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품질 검사 심사라면 어떤 부품의 데이터가 와도 알아낼 수 있고, 제 의견에 토를 달 공장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 앉아서…… 저 귀족 나리들과 대등하게 행동하고, 이 뭔지 모를 서류 더미를 뒤적거리면서 이 큰 도시를 관리하는 건……
(제 평생 관리해 본 가장 큰 장소는 제가 담당했던 그 작업장이 전부란 말입니다. 으으, 솔직히 기가 확 죽는다고요.)
우리도 있는데, 그 바보 귀족들이 뭐가 무섭다는 거야?
화려한 옷을 입은 의원이 모건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날씨가 참 좋군요. 다들 건강해 보이십니다.
크흠…… 그쪽도 그래 보이네.
거, 건강하고 말고요.
(으윽, 비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자고.)
(저 녀석들도 바보는, 으음, 전부 다 바보는 아니잖아. 하지만 여기 앉아서 런디니움을 관리할 권리는 우리가 목숨 걸고 되찾은 거니까.)
(설마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만약 그렇다면 저 바보들이 어처구니없는 짓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널 두들겨 팰 거니까.)
아, 알겠어요, 알겠다니까요. 인드라 씨와 다그다 씨는 안 오십니까?
아직 치안 문제를 처리하느라 바쁜 것 같아.
(하아, 저도 돌아가서 망치나 껴안고 자고 싶어요.)
오셨군요, 의장님…… 어, 이건?
비나! 너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거 그거……
바나비!
크, 클라이브……
델핀, 자리에 앉히는 것 좀 도와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시네셀드 입구에서 뻗어있었고, 그다음에도 비나 씨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지.
저는 의장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약품 부족 사태를 딱!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제안서를 제출하세요. 의회가 정한 규칙을 개혁한 건, 애초에 우리 자신을 제한하기 위해서니까요.
델핀 씨, 바나비는 땡땡이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제게도 그 아이디어를 여러 번 얘기했어요!
다만 바나비도 저처럼, 이곳에만 오면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뿐이라고요. 말도 똑바로 못 하고, 마족을 무찌르던 때처럼 죽음도 두렵지 않던 그 용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고요.
그래서 별수 없으니까 술이라도 한잔하고 오라고…… 그러면……
걱정 마. 비나는 그런 일로 화 안 내니까.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의 새 의회는 가뜩이나 복잡한 상태니까요. 모두들 탐색전에 여념이 없고, 우리 역시 적응하며 배우는 중입니다…… 의장님을 포함해서요.
우리에게 악의를 품은 이들을 전장이 아닌 곳에서 이기고 싶다면, 그들의 사고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결국 쟤들처럼 되어버리면?
저, 저는 그럴 일 절대 없어요, 모건 씨!
딱히 클라이브 네가 그럴 것 같다고는 안 했어.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어, 모건 씨. 그 누구도.
난 비나를 믿어. 한나와 다그다도 그렇고……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오늘 임시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의회가 재결성된 이후, 우리는 줄곧 도시 내에서 활동하는 살카즈가 일으키는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왔다.
런디니움 시민에게 의회는 '안전'을 약속했지.
그것이 위험한 살카즈든, 도시에 숨어있는 '밀스카'와 같은 용병이든, 의회는 항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회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악의적인 행위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날 재판에 넘기겠다는 건가?
재판은 없다, 살카즈. 의회에서 통과된 새로운 임시 법령에 의거해 네 처벌은 명확히 정해졌다. 그리고 임시 법정의 심리 역시 통과되었지.
……모두가 동의한 방식으로.
모두가 아니라, 너희들이겠지.
너는 선량한 상인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가 원래 네게 주려 했던 빵 때문에.
……그 자식이 아직 살아 있나?
살아 있다.
좋아. 그럼 난 언제 죽일 거지?
……너는 그때 동족들과 떠나야 했어.
날 기억하고 있나? 그럴 만도 하지. 그놈들이 군을 철수시켰을 때, 네놈이 나를 놓아줬으니.
그런 의미에서 넌 내 은인이야. 파라곤 부대의 리더 양반.
……너는……
'롱샷'. 내 딸아이가 날 그렇게 부르지. 그 당시 넌 내 이름을 묻지 않았고, 지금 여기 있는 놈들도 내 이름 따윈 상관도 안 하겠지만.
하지만 '롱샷'은 여기 일부 사람들을 대표해 앉아 있는 모두에게 묻겠다……
런디니움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살카즈는, 빅토리아인이라 할 수 있는가?
솔직히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칭 '롱샷'이라고 하는 살카즈의 목소리는 그다지 묵직하지는 않았지만, 소란스러웠던 의회실이 그 한 마디에 일순 고요해졌다.
나는 주변 사람, 특히 귀족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이미 답을 떠올린 사람은 선뜻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은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살피며, 그에 동조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생각하는 게 귀찮은 쪽이었다. 어차피 비나가 나 대신 생각해 줄 테니까.
그래서 그날, 나는 비나의 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성벽 위에서 도시를 떠나는 살카즈 부대를 바라보며, 비나가 답을 주기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그 광경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나는 비나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베어드를 죽인 살카즈들이 어째서 저렇게 당당하게 떠날 수 있냐고.
하지만 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런디니움 성벽 위1098년 10월 8일 8:48 P.M.
살카즈 부대가 떠났다.
비공정이 엄숙하고 질서 정연한 부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라이프 스파인'이 만들어낸 파문이 도시 바깥의 폐허에 드리운 먹구름을 갈랐다.
비나는 성벽 위에 서서, 멀어지는 군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그녀의 고향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대지는 온통 상처와 흉터로 가득했다.
'암나남'이 런디니움에 남긴 상처가 회복되려면, 과연 몇 년이 필요할까?
비나, 박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놈들을 전부 때려눕힐 수 있어!
우리 애들하고 공작 쪽에서 합류한 동료들이 아직 성벽 아래에서 대기 중이라고. 너만…….
한나 씨, 지금 이 순간 가장 침착해야 하는 건 우리야.
나도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놈들을 여기 붙잡아 두고 싶어. 하지만…… 우리로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
대공작들의 주력 함대는 그렇게 멀리 물러나지 않았어. 델핀.
다그다 말이 맞아! 귀족들이 뭘 꾸미고 있더라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체면 때문에라도 들어올 수밖에 없다니까?
그러면, 겨우 살아남은 이들에게 다시 목숨을 걸게 할 생각이야?
휴전 협정을 발표한 건 모두가 봤어. 화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
그놈의 참아 참아 참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이걸 참을 수 있겠냐!
(흐느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동료가…… 베어드가……
인드라는 단 1초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당장에라도 성벽을 미끄러져 뛰쳐나갈까 봐 무서웠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피 흘리는 동료들을 이끌고 뛰쳐나갈까 봐 무서웠다……
한나……
한나는 지금껏 계속 억눌러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비나. 내가 보러 갈게.
말은 저래도 바보짓 할 애는 아니잖아.
비나, 베어드를 죽인 살카즈들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떠날 수 있는 거야?
……
이건 박사와 위셔델 씨가 얻어낸 최선의 결과야.
런디니움은 더 이상 전쟁을 견뎌낼 수 없어. 희생된 사람은……. 이미 넘칠 정도로 많아.
비나 씨……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
후…… 파라곤 부대 전원에게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전해.
박사?
-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은 동시에 여러 공작의 초청을 받았어.
- 우리가 런디니움의 전후 처리 회의를 참관하길 바라나 봐.
처리…… 살카즈들이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에 말인가?
놈들이 그렇게나 급한 건가?
이제 와서 이 도시가 그놈들 손에서 놀아날 것 같지는 않은데.
- 그쪽도 그걸 잘 알고 있어.
- 그래서 그쪽도 너를 선택한 거야.
칫…….
- 거절해도 돼, 비나.
……
박사, 여기는 내 집이야.
비나 씨, 결정은 했어?
파라곤 부대의 전우들을 이끌고 도시로 돌입한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것 아니었나?
놈들은 잘 알고 있어. 나도 그렇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나는 당신의 결정을 지지해.
……
- 그럼 로도스 아일랜드가 회의에 '참석'하도록 하지.
- 우리가 네 곁에 서겠어.
고맙다, 박사.
결국, 내 입장에서 가장 큰 도전은 이제부터라는 거겠지.
하, 놈들이 그 대단하신 입으로 무슨 소리를 늘어놓을지 궁금하긴 하군.
- 곧 그쪽으로 합류할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 항상 편안하지만은 않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