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4결석자
술에 거나하게 취했을 때, 리온의 아들이 갑자기 데이비스 타운을 떠나겠다고 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고, 사람들은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진다.
등장 오퍼레이터: 제시카, 제시카 더 리버레이티드, 콜드샷
♪그녀는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었네♪
♪그때부터 그녀의 두 팔 사이엔 내 집과 꿈으로 가득하다네♪
그때도 당신들이 이렇게 모여서 노래를 부르던 것이 기억나, 정말 큰 소리로 불렀었어…… 그해 겨울의 안개가 당신들의 노랫소리에 걷히는 느낌이었거든.
헬레나 씨, 그때 저분들이 부른 노래가 바로 방금 그 노래인가요?
하하, 그 노래뿐만이 아니야. 다들 아는 노래가 아주 많지. 여러 지역에서 온 채굴 공장의 광부들은 다양한 언어로 각지의 노래를 불렀거든.
그럼…… 우드로 씨도 노래를 부를 줄 아세요?
우드로는 거의 안 불러. 다른 사람들이 노래할 땐 술을 마시거나, 지금처럼 먹는 데만 골몰했지.
쿨럭쿨럭…… 헬레나, 내가 가져온 샴페인 좀 따 봐.
어머, 내 정신 좀 봐, 깜빡할 뻔했네.
저기, 마일스 씨……
괜찮아, 마일스가 바람 쐬러 간다고 했으면, 바람 쐬러 가는 거야.
우리 먼저 샴페인을 터뜨리고 마일스한테 한 잔 따라놓자, 돌아와서 마시라고 하면 되잖아!
그럼, 딴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병마개가 튕겨 나가며 금빛 술과 은백색 거품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 뒤를 따라 달콤한 술 향기가 방 안에 퍼져 나갔고, 테이블 위 모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눈빛이 흐릿해졌다.
자, 제시카, 네가 오늘의 주인공이야, 첫 잔은 네가 받아.
고마워요……
그다음은 당신, 우디, 제시카를 도와 저 고집불통 버든비스트를 설득해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이 잔은 마일스 거고…… 이 잔은 내 거…… 리온, 당신은 제일 마지막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을 걱정시켰으니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솔직히 말해서, 사실……
무슨 할 말이 있으면 마일스가 돌아온 다음에 해. 마일스가 아직 밖에 있는데 방 안의 사람한테만 감사를 표해선 안 되지!
그래, 맞는 말이야……
밤새 떠들썩하던 식탁이 잠시 조용해졌고, 테이블 위엔 엎질러진 샴페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흘러내렸고,
그릇을 지나,
저기……
베니, 왜 그래?
잔과 접시를 지나,
실은……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너 이 녀석, 오늘 왜 이리 조용한가 했더니, 술자리에서 네 아버지보다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한참 동안 준비하고 있었던 거구나.
베니, 마일스가 돌아온 후에 말하면 안 될까?
빈 병을 지나,
아니…… 지금이 좋을 것 같아.
나……
테이블 가장자리까지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툭.
나, 떠날 거야.
이런, 우리 늙은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싫은가 보구나. 베니, 조금만 기다려. 마일스가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한 잔씩만 더 하고 자리를 파할……
그게 아니라, 데이비스 타운을 떠날 생각이야.
너 이 녀석,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취하다니……
아니, 난 지금 멀쩡해.
아까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지금 말할 수밖에 없었어.
……
……왜 그래? 당신들 왜 갑자기 그런 표정이야?
마일스, 나……
베니가 방금…… 데이비스 타운을 떠나겠다고 했어……
뭐, 뭐라고?
베니, 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1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지난달에, 옆집에 사는 셀레나 씨가 그러는데, 아이언포지 시티에 있는 따님이 이곳을 경유하는 카라반을 찾았대. 그래서, 셀레나 씨도 카라반을 따라 따님 곁으로 갈 거래.
나에게 자기랑 같이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냐고 물었어. 셀레나 씨는 내게 재능은 있지만 이곳에선 그 재능을 펼칠 수 없을 거고, 펼친다 해도 장래가 보이지 않을 거라 했지.
셀레나 씨는…… 내가 실비아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
생활비와 학비는 어떡하고? 지낼 곳은?
걱정할 필요 없어. 아이언포지 시티에 이미 기숙사를 제공하는 중학교가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 공부할 거고, 장학금도 제공해 준대.
베니,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리면서 왜 이제야 우리랑 상의하는 거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미안해, 마일스……
마일스, 베니는 우리랑 상의하는 게 아니야.
우리한테 자신의 결정을 말해주는 것뿐이지.
……베니,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정이야? 항행이 재개되면, 섹터의 상황이 호전될 텐데,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잖아.
난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아.
다들 기다리려 하고, 상황이 호전될 거라고 믿는 건 모두의 기억 속에 이곳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이곳은 이미 엉망진창이었어.
……양아빠는 이곳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삶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어. 형은 아빠 대신 가정을 지탱해 왔고, 성년이 되자마자 용병에 가입하여 돈을 벌어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있지.
몇 년 뒤에…… 그 사람들이 형의 유품을 부쳐왔는데, 동봉된 편지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말 한마디뿐이었어.
그때 형에겐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거야. 지금의 내게도…… 있다고 생각해……
……아니야?
그럼, 언제 떠나려고?
……내일.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금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테니까.
소년은 용기 내어 식탁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이 있기를 갈망했다.
그러면, 적어도 마음속 죄책감과 괴로움을 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소년의 아버지는 머리를 감싸 안고 침묵하고 있었으며, 눈 밑에는 망연자실만이 남아 있었다.
리온, 당신……
괜찮아…… 괜찮아……
좋은 일이야……
당연히 가야지…… 가야 하고말고……
헬레나가 리온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리온이 기계적으로 허락한다는 몇 마디만 되풀이하자, 헬레나는 리온을 더 세게 밀었다.
헬레나, 괜찮아, 난 괜찮아…… 이건 당연한 일이야……
그럼, 베니.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체르노보그의 이 빌어먹을 날씨는 왜 이리 추운 거야!
나무를 주워서 불을 지폈는데, 좀 괜찮아?
몸을 한껏 움츠리는 걸 보니, 전에 이런 날씨는 경험해 본 적이 없나 봐? 하아, 너희 가족이 어떻게 너를 용병으로 보냈는지 이해가 안 되는걸.
뭐라고?! 자진해서 왔다고? 이유는? 가족이랑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 거야?
아…… 사람들을 보호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음, 들어 보니, 꽤 숭고한 이상인걸. 솔직히 좀 부럽네.
이 전쟁터에, 이 폐허 속에 있는 대부분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등 떠밀려서 왔거든.
가난과 불의, 어둠과 폭력의 부추김에 무기를 들고, 노려야 하는 상대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무모하게 공격했어.
진흙을 밟고, 신발 자국을 내려다보고 나서야 거기 있는 게 탁한 흙탕물이 아니라…… 온통 핏빛이란 걸 알게 되었지.
이럴 때, 숭고한 생각이 있다면 네가 무너지지 않게 보호해 줄 거야. 안타깝게도, 나는 결국 찾지 못했어…… 그냥 돈 때문이었거든.
우리 집에는 빚이 많은데, 동생은 아주 똑똑한 놈이야. 그 녀석이 부잣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우등생이 됐을 텐데.
하지만, 우리 집에서 자랐으니…… 빚쟁이가 될 수밖에 없겠지.
……
제 생각에…… 그건 돈을 위한 게 아니에요. 가족을 위해서니까…… 그것 또한 존경할 만해요.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다들 살기 위해서지.
또 공격이 시작됐어요……
리온, 그만 마셔.
……오늘 저녁에 레스토랑에 남아 있어도 돼?
원한다면 그렇게 해.
(작은 목소리로) 리온의 이런 모습은…… 하아……
(작은 목소리로) 칠 년 전과 똑같아……
당신들…… 칼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날 피할 필요 없어, 정말이야.
이걸로 두 번째야…… 두 번째……
두 번째인데…… 뭘 피하고 그래? 내가 아직도…… 못 견딜 것 같아?
제시카 씨, 데려다 줘서 고마워. 이제 돌아가도 돼.
하지만…… 저는 여전히 걱정돼요.
계속 우리한테만 신경을 쓰면, 당신네 보스가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저는 그저…… 한 번 본 이상, 방관할 수가 없어서요……
어쨌든, 당신이 아빠를 도와 집을 지켜주었어. 고마워, 제시카 씨.
하지만, 리온 씨가 지분을 팔려고 결심한 이유는…… 사실 당신 때문이에요.
나도 알아, 제시카 씨. 나에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을 남겨주기 위해서 아빠가 채굴 공장의 지분을 팔았다는 걸. 하지만,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아빠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선택했을 거야.
아빠가 추구하는 것 앞에서는 집이 장애물이 아니야. 나와 형이야말로 장애물이지……
……우리 형 기억나?
칼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때 당신과 헬레나 씨가 얘기했던 것 같은데.
칼은 형의 이름이야.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만…… 너희 블랙스틸 동료들은, 코드네임인 블랙플레이트로 더 많이 부르겠지.
……블랙플레이트?!
리온, 다 지난 일인데 왜 옛일을 다시 꺼내고 그래……
마일스, 리온이 계속 말하게 놔둬. 전에는 리온이 생각하기 싫어하니까 우리가 말을 안 꺼낸 거잖아. 지금은 리온도 돌아보고 싶어 하니까, 우리도 같이 들어주자고.
……그래, 뭐.
맞아, 난 생각하기 싫었어…… 하지만, 조용한 밤이 되면 생각할지 말지, 내 스스로 통제가 되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고, 괴로울수록 그렇게 된 까닭이 이해가 안 됐어…… 하지만, 베니는 진즉에 깨달은 거야.
베니 말이 맞아, 칼은 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내가 너무 고집불통이고, 너무 자만해서, 돈과 삶, 그리고 칼의 선택을…… 모두 없애버린 거야.
어렸을 때 어떤 광부가 중년이 되면 쉬운 일이 하나도 없고,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에 몇 가지 안 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나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어.
그래서, 신중해야 하고, 절대 욕심을 부려선 안 되며, 가장 중요한 것만 바라봐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내가 그 나이가 되니, 나는 어떻게 해서든 세월을 거스르려 했고, 잘못된 끈을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용감한 투사가 되어 운명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내가 뭘 얻었지?
얻은 건 빚더미에, 곧 망해 없어질 데이비스 타운, 큰아들은 전장에서 죽었다는 사실이지. 모든 걸 파악한 둘째 아들은 내 곁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됐고!
리온, 우리 모두 채굴 공장이 네게 어떤 의미인지 다 알아……
뭘 의미하는데?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데? 난 모르겠어, 마일스, 지금은 더더욱 모르겠어……
지금은 그저 내가 그때 가장 잡아야 했던 게 한 손이었다는 것밖에 모르겠어…… 난 내 아이의 손을 잡았어야 했다고……
나는 정말 바보야, 그때 나는 왜…… 그 불평을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나는…… 그 말을 확실히, 깊이, 단단히 머리에 새겼어야 했어……
우리 아빠는 기억력이 매우 별로지만, 나는 아니야.
당신들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어, 당신들의 제복과 무기에 있는 로고가 칼의 유품 주머니에 있던 것과 똑같다는 걸.
그, 그 사람이 당신의 형이었다니…… 정말 몰랐어요……
형의 본명을 몰랐던 거야? 아니면…… 아예 기억조차 못 했던 거야?
기억해요…… 같이 일한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칼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고……?
체르노보그에서 저희는 폐허 속에 숨어 있는 적군을 정찰하기 위해 같이 남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다쳤을 때 그곳에 저도 있었어요. 매우 당황했고, 머리가 텅 비어서, 저, 저는……
칼이 죽을 때, 당신도 그곳에 있었구나.
네…… 맞아요.
그런데, 형의 본명은 몰랐던 거고.
사실……
사실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매우 짧았다.
사실 그때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실 용병들 끼리는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무언가를 숨기고,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사실…… '사실' 같은 건 원래 없다는 걸 제시카는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괜찮아, 원래 당신과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혹시 다이아몬드가 몇 개 박힌 은색 반지를 본 적 없어?
그건 형의 친어머니가 형에게 남겨준 거야. 형이 늘 몸에 지니고 다녔었는데, 당신네 회사에서 부쳐온 유품 주머니엔 그게 없더라고.
당신이 형이 죽는 모습을 봤다면……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지…… 당신들 중에 누가 가져간 거야? 그건 형의 물건이야, 돌려줘.
아니요…… 저, 전 몰라요. 아니, 그 사람 몸에 반지는 없었어요…… 전 본 적이 없거든요, 잃어버린 건 아닌지……
……칼이 그 반지를 잃어버릴 리가 없잖아?
드디어 마지막 사람 업무까지 다 처리했네…… 어디 보자…… 흠, 120번이라.
그저 종이와 펜을 놀렸을 뿐인데, 120명이나 개척지에 보냈네.
쳇, 종이와 펜을 놀리지 않으면, 개척지에 갈 다음 사람은 너와 내가 될 수도 있어.
실비아, 소등은 너한테 맡길게. 난 빨리 돌아가서 좀 누워야겠어.
120명……
……
걱정과 불안감에 습관적으로 옷깃을 만지던 실비아는 손이 가슴 앞의 익숙한 동그란 물건에 닿자 재빨리 그것을 움켜쥐었다.
동그란 물건의 단단한 질감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아팠지만, 오히려 그것이 실비아의 불안감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7년 전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지만, 그녀의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점차 멈추게 했던 그 포옹처럼.
칼…… 나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반지의 행방을 모른다면…… 이만 돌아가도 돼, 제시카 씨. 여기까지 데려다 준 걸로도 충분하니까.
사실 나는 아빠가 집을 선택해서 정말 기뻐, 이렇게 되면…… 내가 떠나도, 아빠한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니까.
그 지분들은 아빠를 기분 좋게 하는 것 외에는 정말 쓸모가 없었어, 전혀.
마, 만약…… 리온 씨가 결국 집을 지키지 못했다면. 다, 당신은 그래도 떠날 건가요?
……잘 모르겠어, 난 고집불통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아…… 철저한 망나니가 되고 싶지도 않고.
잘 가. 제시카 씨.
……
제시카 씨,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또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리고, 또 뭘 할 수 있는데?
저, 저도 몰라요…… 그저…… 이대로 떠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돌아가, 부탁할게, 제시카 씨.
당신한텐 매우 귀중한 황금 못이 있어, 하지만…… 더는 그 황금 못으로 이곳의 종이집을 수리하려 하지 마.
아무리 노력해봤자, 당신이 그 집에 남길 건 바람이 새는 구멍일 뿐일 테니까.
얇은 종이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금과 은으로 장식된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틈을 찾아 그 못을 박아. 그곳이야말로 그 못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이야.
……
그러니, 더는 따라오지 마. 알았어?
……
베니는 집에 간 건가?
아…… 우드로 씨군요. 집에 들어가는 걸 제가 봤어요.
그런데 넌 왜 안 돌아가는 거지?
돌아가도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서요.
그 녀석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음…… 아주 일리가 있는 말을 해서, 저에게 깨달음을 줬어요……
음?
몇 가지 사실들이요. 제가 진즉에 깨달아야 했던 사실이죠.
……어려서부터 저는 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게, 마치 욕조에서 작은 노란색 파울비스트 장난감을 건져내는 것만 같았어요. 손을 내밀기만 하면, 물에 잠기는 걸 막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단지 권세와 돈으로 나를 위해 만들어 낸 수도꼭지에서, 맑은 온수만 흘러나왔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이 맑고 투명하며 깨끗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가족'이라는 욕조를 벗어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현실을……
…… 현실은 탁한 진흙탕이고, 손을 내밀어도 무엇을 건져 올릴지, 무엇이 만져질지, 전혀 알 수 없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어.
뼈아픈 소리일 수도 있지만, 네가 한 일이 베니의 결정을 좌우지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왔어. 베니는 어렸을 때부터 주관이 뚜렷했고, 올곧았지. 그 아이는……
내가 아는 한 사람과 많이 닮았어. 그 사람은 심사숙고 끝에 나아갈 한 방향을 정한 후에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앞길만 주시하며 퇴로를 남기지 않았거든.
들어보니…… 단호하면서도 이성적이지는 않은 사람인 것 같네요.
아니, 그 녀석은 매우 이성적이었어. 모든 번뇌의 근원, 모든 문제의 답은 오로지 앞길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도리를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지.
전…… 그분이 좀 부러워요. 만약 그렇게 빨리 터득할 수 있었더라면, 많은 불필요한 고민을 피할 수 있었겠죠?
절대 그 녀석을 부러워하지 마, 제시카.
……왜요?
그런 녀석들은 결국 대머리가 돼서, 머리털이 한 올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지.
……위로해줘서 감사해요. 우드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