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5폭풍전야
지에윈은 여기저기 배회하며 나갈 시기를 기다리면서, 낯선 이동도시의 모습이 신기한 듯 관찰한다. 한편, 이 모든 일의 배후 주모자가 스스로 린 위시아 앞에 나타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사람과 성벽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가 길가의 점포 앞까지 덮어오자 점주는 파라솔을 접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얼마 안 남았으니 싸게 팔아버리고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지……
그래, 날도 없는 무기 모형이 팔리겠냐? 요즘은 그런 거 안 통해.
나한테 검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면, 분명 군영에 가서 큰일을 했을 거야.
그러고 보니 어제 한 여행객이 진홍색 검을 차고 다니는 걸 봤는데 보통이 아니더라고.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네……
소녀는 막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러다 발밑에서 어렴풋한 진동을 느꼈다. 아마 이동도시가 감속하려는 조짐일 것이다. 하지만 행인들은 이미 익숙한 듯 일사불란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밥 냄새가 코를 파고들어 왔다. 그제야 소녀는 이틀 꼬박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게 생각났다.
……
허기짐과 함께 온몸의 뻐근함이 몰려왔다.
두 다리도 말을 듣지 않고 맛있는 냄새를 따라 한 식당으로 향했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옆 테이블에서 먹는 거랑…… 같은 거로 줘.
알겠습니다. 3번 테이블에 불고기 냉국수 하나요!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착실한 사람에게는 바쁜 하루를 보낸 뒤의 든든한 저녁 식사가 최고의 위로였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검 빛이 번뜩이는 결투 장면이 반복 재생되었고, 손님들은 이따금 고개를 들어 익숙한 장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왠지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옆에 있는 여협객은 사부님이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은 또 무슨 뜻이지……)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 고마워.
100미터쯤 되는 긴 두루마리를 사서 성안의 모든 사람이 서명해야 한다니까. 이런 작별 선물이야말로 의미가 있는 거지!
답답하기는. 종사님은 여기를 떠날 건데 큰 걸 어떻게 가져가?
어차피 마음을 전하는 거니까 이곳의 별미를 챙겨드리는 게 더 실속 있겠네.
그런데…… 종사님은 대체 옥문을 몇 년이나 지켰던 거야?
자세히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가 태어날 때부터 종사님은 여길 지키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
그럼 100살이 넘은 거잖아? 그래서 이임하는 거네. 이제 체력이 달릴 법도 하겠지.
근데 강호인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얼마 전에 종사님을 만났는데 그냥 평범한 중년 남자처럼 보였대.
종사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듣기로는 아츠로 장수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던데, 종사님이 아마 그런 분이겠지.
종사님이 어떤 분이든 우리는 그분이 옥문을 지킨 영웅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그분의 좋은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다만 종사님이 혼인했거나 자식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봐서 안타깝네. 좌 장군네 공자는 벌써 훌쩍 자랐는데, 하아……
(그 사람이…… 영웅이라고?)
아가씨, 식사는 어떻게……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고마워, 아주 맛있어.
그럼 계산은……
그게……
내가 낼게요.
고, 고마워……
별거 아니에요…… 신기하네요, 여기서 또 만나다니.
지갑을 잃어버렸나요? 아니면 깜빡하고 두고 온 건가요?
그게…… 잃어버렸어……
엥? 참 운도 없네요.
당신도 온 지 얼마 안 돼서 여길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저랑 같이 관청에 신고하러 가요.
호의는 고맙지만, 괜찮아!
밥값은 다음에 꼭 갚아 줄게!
잠깐만요.
?!
당신이 가진 검…… 이게 전에 찾는다고 말한 그 검인가요?
너도 빼앗으려는 거야?!
제가 왜 아무 이유도 없이 남의 물건을 빼앗겠어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 최근에 옥문에서 아주 특별한 검을 도둑 맞았다던데, 설마 이게……
……이만 가 볼게.
음……?
나와라!
무도인한테는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된다던데.
게다가 세상의 모든 무도인 중에서 가장 열심히 수련하고 강한 사람한테는 말이지.
그 사람이 조건 반사로 눈을 감고 나한테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난 이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럼 난 그 사람을 체포해서 과실 치사로 판결 내릴 수밖에 없겠군.
……
양대인, 아까 내기는 내가 이긴 거 맞지?
……확실히.
아까 양현이랑 내기했거든. 네가 우릴 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양현은 네가 바로 돌아서서 가 버릴 거라고 했고, 난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한마디도 못 할 거라고 했지.
사람을 보는 재주로 따지면 자네를 이길 만한 자는 한 번도 못 봤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의형제니까.
……
안심해, 와이후는 네가 여기 있는지 모르니까.
내가 아무리 분위기 파악을 못 해도 부녀의 재회를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고.
옆에 있는 이 양대인과는 다르지. 십여 년 만에 처음 보는데 나를 엄청나게 성가신 일에 끌어들이고 말이야.
그건 내가 자네한테 빚진 게 맞네……
내가 계속 너한테 뭐라고 하면, 너무 돌려 까는 게 티 날까?
……
아무튼 여긴 우리 셋 말고 다른 사람은 없어……
술과 안주를 준비했는데 천천히 얘기나 나눠볼까?
아가씨가 주신 정보에 따라 수상한 창고의 주소를 모두 너희 단말기로 보냈다.
동쪽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서쪽까지 조사해. 시간 없으니까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뭔가 발견하면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선 모두한테 연락해. 그래야……
날 찾는 건가?
?!
남자는 빠르게 반응했다.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지내다 보니 싸워야 할 때와 도망쳐야 할 때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서자마자 어깨 위에 손이 걸쳐졌다. 단지 그것만으로 남자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날 찾았으면서 왜 도망치려고 하나?
당신……
젊은이치고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군. 하지만 배짱이 좀 부족해. 그것만 고치면 앞으로 뭐라도 해낼 거다.
노인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너희 린 특사한테 전해라. 오늘 신시 정각에 성남 5번가 7호 창고에서 내가 기다리겠다고.
……
……
……
안 마셔?
아직 퇴근 전이라서.
너도?
몸에 안 좋아.
술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셋이 멀뚱멀뚱 뭐 하자는 건지……
양대인, 아까는 물어볼 게 있다며?
자네도 마찬가지잖나.
우리 사이에 꼭 술 없이는 못 할 말이라도 있어?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자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지.
한 곳에 가면 싸울 상대가 없어질 때까지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고.
전에 양대인을 만났을 때는 그동안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해야 했는데, 와이 무치의 변화는 전부 얼굴에 쓰여 있네.
어디가 변했단 거지?
늙었어.
당연한 소릴.
나도 진심으로 걱정하긴 했어. 어느 날 네가 다른 사람과 겨루다가 죽었다는 부고를 들을까 봐.
내가?
흔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잖아……
그래서 결국 옥문에 왔군…… 얼마나 됐나?
3년.
여기에 나와 겨루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있다.
……짧게는 삼 년, 길게는 십여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지.
애당초 천하에 이름을 날리겠다던 와이틴푸이가…… 이런 쓸쓸함마저 참아내다니.
어차피 다른 상대는 못 찾겠는데, 여기서 몇 년 더 기다리면 어떤가.
그래서 이 의원에서 3년 동안 일했다는 건가?
술을 따랐지만, 향은 약 냄새에 뒤덮였다. 술은 근심을 타고 내려갔고 입에는 쓴맛만 남았다.
'할미꽃', '도상목', '우불박', '천리급'……
반 달 동안이나 옥문 무도인들에게 소식을 알아봤는데, 바로 객잔 맞은 편에 있는 의원에 네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니까.
그럼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많은 빚을 진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알겠네?
……
됐다, 내가 할 말은 다 했어. 양대인은 더 물어볼 말이 남았나?
옛 친구가 잘 지내는지 보러 왔을 뿐, 뭘 '물으러' 온 건 아니네.
와이틴푸이는 옥문에서 3년 동안 지냈고 너도 여기 온 지 좀 됐잖아. 근데 하필 이 시기에 보러 오다니……
이 도시에 풍파가 끊이질 않아 사적인 감정까지 돌볼 수 없었네.
양대인은 오직 나랏일만 생각하느라 우리 같은 백성들과의 사적인 친분은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그럴 리가……
다들 진솔하게 옛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면 잠시 더 앉아 있도록 하지.
하지만 말 한마디조차 솔직하게 할 수 없다니,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가?
와이틴푸이는 앞에 있는 술을 단번에 들이켜고는 자리를 떠났다.
양대인, 원하는 답을 얻었나?
그런 셈이지.
와이틴푸이의 의형제로서? 아니면 옥문의 참지로서?
……자네에게 간파당하는 것에 이제 좀 익숙해져야 할 텐데.
계속 성가신 일을 떠맡는 그 습관부터 고쳐 봐.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안 되잖아.
와이틴푸이에게 딱 어울리는 일이 하나 있는데……
저번에 네가 나한테 잔을 갖다주라고 한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진 않네……
와이틴푸이는 여전해.
가장 바뀌기 힘든 사람이지.
그럼 우리는?
……
배를 띄워 술 마시며 꽃을 감상하고 싶으나, 소년 시절의 감성이 아니로구나.
우리가 아직도 한데 앉아 얘기하고 술을 마신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꼭 과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게 도리어 어리석은 거지.
너도 날 막을 거야?
이틀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악의가 없다면 남아서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난 시간이 없어……
손에 든 걸 내놔라.
꿈 깨!
당신을 쫓아온 사람들인가요?
난 모르는 자들이야……
요 며칠 여기저기에서 소란을 피운 게 당신들인가요?
이게 어딜 겁대가리도 없……
(이 사람…… 전에 나와 겨룰 때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이 악당들은 실력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설치고 다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