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7생령의 불꽃
전장에서 빠져나온 백파이프는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며 리드에게 힐록 카운티 사건의 진상과 그와 관련된 더블린의 모든 것에 대해 묻는다.
잠깐만, 아르모니.
검문소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규모가 조금 이상하다.
눈치채셨습니까? 마침 제가 그들에게 귀띔해 줬습니다…… 여기서 공작들 간의 관계를 틀어지게 할 만한 큰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요.
……즉, 넌 저 사람들이 트렌트 카운티를 떠나기 전에 저들을 체포해야 한다는 거군. 그래야만 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니까.
이젠 놀랍지도 않군.
……웰링턴 공작의 부하나, 적철 근위대의 장관이라는 신분은 이제 곧 당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쫓아가면 두 대공작의 영토 분쟁으로 이어질 겁니다. 최근 빅토리아의 형세를 보면, 이런 충돌이 발생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어머, 어째서 넌 항상 나한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걸까?
그래도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겠어. 내 임무도 끝났으니까.
당신의 실수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겁니다. 정체가 밝혀진 스파이로서, 그렇게 허세를 부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그래? 그치만 난 정말 진심으로, 언젠간 우리가 다 함께 힘을 합쳐서 노력해 나가는 미래를……
아르모니.
이미 할 말은 충분히 하지 않았나?
크흠……
……
전원, 철수한다.
이건 애초부터 진 싸움이다. 우선은 저들을 놓아준다.
큭……
……내가 얘기했었잖아, 피셔. 광석병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되면, 이런 진통제로는 택도 없다고.
지금 이건 네가 오리지늄 아츠를 장시간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후유증이다.
그건 저도 압니다.
……
……그래, 내가 말이 심했군. 사과하지.
아닙니다, 전 다만……
존경하는 캐스터 공작께서 '회색 모자'를 보내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을 뿐입니다.
게다가…… 전 공작의 밀사가 제 사람을 대체하고 있었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거든요.
후우…… 하아…… 우, 우리 이제 빠져나온 거 맞지?
그래, 추격하는 녀석들도 안 보여.
일단 멈추고 부상자부터 처리하자.
우린…… 동료들을 여럿 잃었어.
여기서 기다리자. 연기 속에서 사람들이 흩어졌어, 어쩌면 아직 숲에 숨어있을지도 몰라.
네가 그 사람들한테 이동할 방향을 알려 줬었잖아. 그걸 기억하고 있다면 알아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그래, 여기에 오래 있을 순 없어. 날도 밝기 직전이니까, 너희들의 일을 방해할 순 없지.
다들 무기를 내려놓고 잠시 쉬도록 해……
……
……백파이프?
'리드'.
니가 힐록 카운티에 있던 그 캐스터였나.
그 불은 니가 조종했던 거였나. 난 니 아츠를 잘 안다니, 니가 거리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던 거 맞나.
아웃캐스트는 니를 구하기 위해서 죽었다니.
……니가 더블린의 '리더' 맞나?
……
모든 이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질문은, 그녀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싶다는 욕구를 필사적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건초 더미의 감촉과 밤공기의 냄새를 떠올렸다.
그녀는 텐트 앞에 일렁이는 모닥불을 떠올렸다. 그 불은, 창끝에 타오르던 불길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저 멀리 채 흩어지지 못한 연기들을 떠올렸다. 아직도 고함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번만큼은, 그녀도 고개를 가로젓고 싶지 않았다.
맞아.
힐록 카운티에 있을 때, 난 내가 죽어야만 지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오리지늄 폭탄이 떨어졌을 때에도 피하지 않았지.
난 로도스 아일랜드에 도움을 받은 뒤로 내가 쌓아 온 업보를 만회하려 했고, 더블린의 폭력이 남긴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기 위해서 이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지금, 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더블린의 '리더' 맞아.
목숨을 잃은 사람들…… 더블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타라인'.
더블린은…… 그 사람들을 속인 거나?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그 사람들의 생명은, 더블린이라는 불길을 타오르게 하기 위한 땔감에 불과하다고.
대의를 위해, 그리고 모든 타라인들을 일으켜 불공평에 맞서게 하기 위해, 이 불길은 반드시 맹렬하게 타올라야만 한다고.
하지만…… 아웃캐스트로부터 구원받고 다시 이 길을 걷고 난 뒤엔, 이런 말들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게 되었어.
사실 누군가가 희생될 필요가 없었던 경우도 있었어.
희생자들 모두가 더블린의 대업을 위해 희생되었다고는 할 수 없어…… 타라인들도 모두 각자의 생명을 지닌 사람들이니까.
난 더블린이 저지른 잘못들을 기억하고 있어…… 특히 내가 직접 저지른 잘못은 더더욱. 난 내 추악한 흉터들을 감출 생각은 없어.
또…… '적철 근위대'도 있아.
오늘 밤, 너를 데려가려고 했던 더블린 병사들은 웰링턴 공작 쪽의 사람이라니.
너희들은…… 공작의 사병이나?
아니, 더블린의 배후에는 그 어떤 세력이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 돼.
만약 배후 세력이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평화로운 고향을 원하는, 그리고 자신들의 땅 위에서 자유로이 걷고 싶은 타라인들일 거야.
하지만 니는 더블린을 두려워하고 있아.
더블린이 정말 니가 말한 대로라 한다면, 그리고 니가 정말 타라인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거라면, 지금 니가 두려워하는 건 대체 뭐이나?
……
내가…… 두려워하는 것?
네 상상 속의 더블린은 정말 괜찮은 곳이라고 할 수 있아. 하지만 실상은 전부 폭도들과 모략꾼들, 그리고 네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기야. 심지어 넌 그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쫓기까지 했다니. 아나?
부인하진 않을게. 많은 사람들이 더블린의 불길 속에서 타라인들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보았어.
난…… 빅토리아인들이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릴 때도, 본인들이 빅토리아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마음을 품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다만 빅토리아인들은 스스로의 보금자리와 땅을 가지고 있고, 또 평화롭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데다 농사까지 할 수 있어. 반면에 타라인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지.
난 더 이상 누군가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래, 난 무서워. 피를 흘리는 게 무섭고, 죽는 것도 무서워…… 그래서 난 계속 숨고 싶었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는, 마치…… 그림자처럼 말이야.
하지만 정말 그걸로 된 걸까? 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피는…… 여전히 흐르는 것일까?
리드……
……백파이프. 너희들은 내가 이 타라인들을 이끌고 어디로 향할 건지 물었지.
그럼 이번엔 내가 너한테 물을게. 더블린의 꿈은, 정말 실현될 수 없는 걸까?
……
백파이프는 실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보고서가 바른 사람에게 전해질 일은 애초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전우들도 피할 수 없는 싸움 속에서 헛되이 희생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더블린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그들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그들로부터 무고한 시민들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힐록 카운티 사건의 배후에 공작들 간의 탐색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리드의 등 뒤로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는, 타라인들의 막막하고 당혹스러운 눈빛을 발견했다.
이젠 그녀 자신조차, 스스로가 누구에게 실망하고 있는 건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리드의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된 것처럼, 리드에게 어떠한 답을 얻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가자, 첸 햇아.
응?
내 임무는 더블린의 진상을 조사하는 거라니. 지금 더블린의 '리더'가 직접 확실히 했다니.
그런 데다가, 오퍼레이터 리드도 잠시 동안은 우리랑 로도스 아일랜드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아.
……
아직 리드에겐 할 일이 남아 있아,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라니.
……그래.
배, 백파이프!
……핀?
이거…… 선물로 줄게.
라디오?
너희들은 앞으로도 황야에서 움직여야 하지? 이 라디오를 가져가. 어쩌면 여기서 쓸모 있는 소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넌 이제 라디오 필요 없나?
나는…… 하하. 타라인에 대한 정보라고 해 봤자, 다 거기서 거기지.
백파이프, 우린 진심으로 너희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그리고 그……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곳에도 말이야. 텐트를 제공해 준 것도 있고, 오면서 받았던 모든 도움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게.
그리고…… 잘 가.
……
또 보자, 핀.
낡은 라디오가 백파이프의 손에서 치직대는 소리를 냈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에서 힘을 뺐다.
몸조심하라니.
……캐리언, 퍼갤, 그리고 너랑 나. 우리도 이제 8명밖에 안 남았네.
사람이 적은 편이 도망가기 더 유리하긴 하지만…… 하하……
……
……가방 안에 깨끗한 거즈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줘.
아, 응……
자.
지금 내가 상처 주변의 천을 뜯어낼 건데, 굉장히 아플 거야……
으윽……
……후우, 핀. 넌 이제 피가 안 무서운 거야?
응? 그, 그렇게 됐네…… 피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봐.
하아, 리드…… 정말로 백파이프를 이렇게 보내도 괜찮은 거야? 너희 둘, 친구 아니었어?
……훗날에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 뭐.
난 네가 그 둘을 떠나보내기 전에, 작별 인사는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상대가 누구든…… 작별 인사는 해 줘야지.
……어, 모란!
……
그들은 모란이 새벽녘의 희미한 빛 아래, 먼 곳에서부터 절뚝이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부러진 검과 피로 물든 두건이 쥐어져 있었다.
그건…… 셀몬의 두건……?
……모란, 셀몬은…… 어떻게 됐어?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미안, 너도 보지 못했겠지.
저 멀리 숲에서 전쟁의 불길이 한 차례 타오르고, 남은 연기가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셀몬처럼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그 숲에 누워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최후를 맞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흩어져 가는 연기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그저…… 행방불명됐을 뿐이야……
스카타나 들판에서, 힐록 카운티에서, 그리고 오크 그로브 카운티에서……
그동안 그녀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많은 불길을 봐 왔다. 누군가는 전쟁과 재앙을 꾀했고, 누군가는 권력과 명성을 취하려 했다.
그녀는 그 안에서 평범한 이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았고, 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고하게 죽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드라코의 불길 속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불길을 움켜쥐는 감촉은 여전히 그녀를 오싹하게 했고, 그녀의 오장육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 진흙탕 속에서…… 일어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은 꽃 한 송이가 나부끼며 진흙탕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꽃송이는, 진흙탕 속에서 조용하게 시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