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9문명의 거짓
텍사스는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에 분노했고, 아버지의 최종 목적을 알게 된 레온투초는 자신의 길을 택했다.
레온투초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의 그는 너무 어렸다.
확실한 건 두 가지.
그날은 어머니의 기일이 아니라는 것.
그날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망연자실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날이라는 것.
그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었고, 아버지가 우산도 없이 성당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 드리려고 달려가던 도중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안아 일으켰다. 그날의 비는 평소보다 거셌던지라 아버지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난처함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아버지가 문득 던졌던 질문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패밀리가 없어지면 시라쿠사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레온, 레온!
정신 차려요!
허억……
드미트……
왜 여기 쓰러져 있는 겁니까? 보스는요? 습격당한 건가요?
아니…… 아버지는……
맞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도 보스의 행방을 모릅니다…… 게다가 방금 루비오가 방송에서 우리와 살루초의 협력 건을 폭로했어요.
우리 두 패밀리가 손을 잡아 도시를 강탈하고, 시칠리아 부인에게 맞서려 한다는 헛소리까지…… 지금 모든 패밀리가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패밀리가 없어지면 시라쿠사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그건 헛소리가 아닐 텐데, 그렇지 않나?
레온?
아버지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았어.
설마 루비오라는 사람이…… 그럴 줄은……
멍청한 거지.
무슨 말이야! 분명 좋은 사람인데!
난 그냥 그렇게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을 뿐이야.
힘들게 그 자리에 앉았는데, 그 말 몇 마디 하다가 죽었잖아.
그렇게 죽는 건 너무 아깝다고.
……너 설마 울어?
아니.
……휴지 줄까?
고마워.
……누구지?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데.
나는 벨로네 패밀리의 보스라네. 베르나르도라고 부르게.
엇, 벨로네 패밀리의…… 보스?!
……대단하신 열두 패밀리 중 한 보스님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곧 분리되어 새 이동도시의 2급 핵심구역 사령탑이 될 거라고 하던데.
……그래서요?
그래서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다…… 당신, 뭘 하시려는 겁니까?
2급 핵심구역 분리 프로세스를 시작해주게.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이래야만 다 설명이 돼.
아버지가 네게 말한 패밀리들끼리 싸우게 해서 시칠리아 부인을 물러나게 만드는 계획은 그저 구실일 뿐이야.
아버지는 처음부터 벨로네 패밀리까지 협상 카드로 삼았던 거야.
이 모든 게 다 아버지의 계획이었던 거다.
패밀리가 없는 시라쿠사를 얻기 위한.
이 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패밀리의 보스가 모든 패밀리를 파멸시키려 하다니……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믿을 수밖에 없어, 드미트리.
방금 다른 패밀리들이 우릴 노리고 있다고 했지?
네. 하지만 루비오의 말을 믿었다고 해도, 당장 움직일 패밀리는 얼마 없을 겁니다.
물론 다 시간문제겠지만요.
도화선에 불은 붙었어……
패밀리가 없어지면 시라쿠사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아버지, 이게 그동안 아버지가 진정으로 생각했던 건가.
그래서 처음부터 드미트리를 시켜 날 떠보게 한 건가.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레온.
응?
……전에 당신의 방식대로 대의를 이룰 거라 그랬죠?
그래.
그럼 정신 차리셔야죠.
어쨌든 지금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보스가 부재하시면, 당신이 이 패밀리의 보스인 거고요.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알고 있다.
……살루초에 전해, 당장 알베르토를 만나겠다고.
그리고 너는 로사티 왈라크를 만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카라치의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네가 정말 단순히 카라치의 죽음 때문에 패밀리들에게 복수할 결심을 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라.
마지막이 되어서야 네 진심을 조금 드러내는구나.
여태까지 참고 버텨오다니, 정말 대단하군, 루비오.
하지만 난 네가 카라치와 같은 류의 사람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너희는 이 나라가 패밀리의 지배를 받는 걸 못마땅해했어.
다만 카라치는 불나방처럼 불길로 달려들었지만, 그대는 자신을 아닌 척 잘 꾸며냈지.
어쨌든 30년 전의 그 숙청은 내가 주도했으니, 카라치도 너도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자네가 지금 이 시기에 움직인 것은 내게 의외이긴 했지만, 마침 이용할 가치가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군.
이보게 전문가, 분리 프로세스는 아직 멀었나?
곧 끝납니다.
시간 끌기나 같은 허튼수작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길 바라네.
……제 동료들의 목숨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데, 거짓말할 리가 없죠.
전 당신들 패밀리 간의 대립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약속을 지키길 바랄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네의 눈빛과 심장박동은 자네가 나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군.
……!
긴장할 것 없네. 그저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자네는 패밀리가 없어진 시라쿠사가 어떨지 상상해 본 적 있나?
단브론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수많은 시체를 봐왔다.
피비린내 같은 건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단브론, 아직도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보스가 벨로네와 로사티 패밀리의 보스와 만나실 거야. 얼른 가서 할 일을 해!
……보스가 뭘 한다고?
단브론, 귀먹었어?
벨로네 쪽 사람과 다시 만날 거라고 준비하라고 했어.
무슨 준비?
아직도 모르겠어?
보스는 벨로네와 진심으로 협력하려고 했어. 근데 아까 방송을 봐. 놈들은 우리를 끌어내리려는 거라고.
보스가 그런 걸 용서할 리가 없잖아.
벨로네가 먼저 뒤통수를 쳤으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보스의 생각은 아주 분명해. 오늘, 벨로네를 시라쿠사에서 지워버린다.
……
왜 그들은 폭력과 싸움이 아닌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거죠?
설마 오늘 여기서 저를 죽이는 것 역시 단지 폭력의 표출에 불과한 겁니까?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는 걸 제가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요?
단브론은 문득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이유를 깨닫는다.
텍사스는 자신이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텍사스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는 그녀가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전에 아주 깊이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텍사스는 이번 시라쿠사에서의 여정을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텍사스는 자신이 무기를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텍사스는 자신이 용문에서 하는 일이 과거 컬럼비아와 시라쿠사에서 했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텍사스는 용문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지도, 시라쿠사와 컬럼비아에 생활하던 자신이 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텍사스는 그저 여전히 삶과 죽음을 나르고 있을 뿐.
텍사스는 언젠가 시라쿠사라는 나라를 마주해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다.
과거 그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그 물음처럼.
“시라쿠사인이 말하는 도의라는 건, 일반인의 생활을 짓밟는 거랑 똑같지 않나요?”
텍사스는 조반나와의 재회 역시 예상하였다.
그녀는 정말 예상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며칠 동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텍사스가 유일하게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곳에서 이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레온투초는…… 패밀리의 도련님인 것치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미숙할 수 있으나, 조잡하거나 난폭하지는 않았다.
라비니아는…… 시칠리아 부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지만, 오히려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판사였다.
카라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각 방면에서 그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는 건설부 장관이었다.
그리고……
텍사스는 한때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없고, 자기 스스로는 시라쿠사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왔을 때, 텍사스는 이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차례차례 화를 입었다.
과연, 이번에도 도망칠 것인가?
찾았다. 첼리니아가 여기 있다!
텍사스의 망설임은 용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절실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처지 때문에 차오르는 분노 또한 진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선량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결을 택했다.
텍사스는 생전 처음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얘네 점점 많아지네.
몇은 안에 들어간 것 같고.
텍사스, 내 탓 하면 안 돼. 난 열심히 노력했어.
내가 왜 네 탓을 해.
오, 파트너. 푹 쉬었어?
그럭저럭.
뭔가 엄청 화난 것 같네?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그야 당연하지. 네가 오늘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냐에 따라 내 기분을 알아채는 거랑 똑같은 거야.
우리가 파트너만 몇 년짼데.
……엑시아, 방금 어떤 좋은 사람이 죽었어.
들었어.
난 그 사람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
나도 그래.
텍사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여기 남겠다고?
라플란드……
날 용문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그동안 '최선을 다해' 준 거 고마워.
하지만 이미 결정했어.
이 나라에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고, 도와줄 가치가 있어.
하지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단지 몇 사람이 그린 공상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답을 선택하겠다고?
단지 몇 사람이 그린 공상은, 내가 과거와 다른 답을 선택하기에 충분해.
라플란드, 어떤 건 말이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오히려 너야말로……
언제까지 묶여있을 거야?
……
뭐야, 설교야?
경험자의 조언이라고 생각해줘.
엑시아, 내가 포위를 뚫을 테니, 뒤를 부탁해.
오케이!
……
텍사스, 넌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하…… 하핫, 하하하.
발걸음 소리와 비명소리는 텍사스와 엑시아를 따라 점점 멀어졌고, 골목은 점점 조용해졌다.
무리에서 떨어진 화이트 울프의 공허한 웃음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한참 후에서야 그녀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녀는 어느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은 텍사스가 떠난 방향이 아닌 살루초 패밀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빠…… 아빠…… 흐흑……
좀 괜찮아졌나요?
……네.
판사님, 아빠가 왜 그랬을까요?
이럴 바에는 예전처럼…… 그냥 평범한 식품안전부 장관인 게 나았어요……
……아직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에요.
제가 당신을 보호할 사람을 보낼 테니, 우선은 돌아다니지 말고 방 안에만 있으세요. 알겠죠?
저, 저도 알아요. 아빠의 행동이 이 도시에 어떤 혼란을 가져올지요.
판사님도 저랑 같이 숨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라비니아는 방을 나섰다.
그 총성은 전 볼시니에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소리에 먹구름마저 겁을 먹고 물러간 듯, 볼시니에는 아주 오랜만에 몇 줄기의 햇빛이 쏟아졌다.
과거 라비니아는 베르나르도와의 약속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었다.
그 바람에 베르나르도가 약속을 어긴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라비니아에게 그녀가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려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은 라비니아가 해온 저항보다 백 배는 강렬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운이 좋은 거였다.
하지만 라비니아는 그런 행운에 안주할 생각이 없었다.
……
루비오 장관님, 당신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라비니아는 손에 든 법전을 어루만지며 머릿속으로는 루비오의 일기에서 언급한 이름들을 되새겼다.
만나봤거나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것은 루비오가 그녀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었다.
그리고……
누구시죠?
펭귄 로지스틱스다. 배달 서비스가 필요해?
알베르토 님.
벨로네가 나와 얘기하고 싶대서 왔는데……
뭐야, 베르나르도는 코빼기도 안 보이네?
아버지에겐 아버지의 판단이 있다.
나도 벨로네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오호?
그러니까, 네가 내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하겠다 그건가?
아니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브론? 아직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아니, 지금이 맞아, 보스.
단브론은 들고 있던 무기를 알베르토에게 겨누었다.
단브론, 무기를 겨눌 상대가 잘못된 것 같군.
잘못된 게 아니야.
보스, 그리고 그 외 다른 패밀리의 보스들, 지금 당신들 자신을 봐봐.
거들먹거리며 이곳에 앉아 겉만 번지르르하게 정치, 체계, 국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으쓱대지만……
실제로는 어떻지? 당신들이 생각하는 건 자신만의 이익뿐이지.
보스, 우린 폭력으로 이 시대를 손에 잡았어.
그런데 왜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지?
지금은 전과 다르다. 단브론, 왜 그걸 모르는 거냐.
우리가 하려는 건, 시대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그저 우리가 나약해지고 어리석어진다는 생각만 들 뿐이야.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일반인들처럼 평화로운 방식으로 평화를 추구하려고 하지도 않아.
이대로 가면 과연 우리는 뭐가 될까?
무엇도 되지 않아.
아니, 우린 이미 늑대가 아니야.
우리는 그저 인간 탈을 쓴 괴물일 뿐이지.
그리고 우리를 이끄는 사람.
당신.
그리고 너.
당신들은 문명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더 가식적으로 변했을 뿐이야.
……
단브론, 내가 아무래도 네게 너무 관대했던 것 같구나.
여긴 너의 무대가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눈 깜짝할 새 알베르토가 단브론의 뒤에 나타났고,
단브론의 목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내렸다.
그는 목을 움켜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쓰러졌다.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
……레온투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네 아버지의 말에 따라 우리 두 패밀리의 힘으로 시칠리아 부인에게 대항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너의 행동에서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군.
사람들은 내가 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지. 하지만 일단 내기를 시작하면 이길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건 몰라.
레온투초.
살루초에게 종속될 테냐, 여기서 죽을 테냐.
10초 고민할 시간 주지.
알베르토는 허리춤에서 고풍스러운 회중시계를 꺼냈고, 레온투초의 운명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십.
당신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양과 자제력으로 그걸 사용하지 않을 수 있죠. 그리고 저는 당신의 그런 인자함에 감사를 해야 할 입장이고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당신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레온.
당신이 비가 왜 이렇게 오래 내리는지 생각하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구.
너는 무의식적으로 너 자신을 라비니아 그리고 카라치와 같이 놓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잊지 말거라, 넌 그자들과 달라.
알고 있어.
만약 정말로 알고 있다면, 네가 여기 서 있지는 않았을 테지.
팔.
레온투초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라비니아의 진정한 동맹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일 테니까.
그의 태생이 그러했으며, 그것은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걸로도 부족했던 걸까?
하지만……
칠.
당신들은 문명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더 가식적으로 변했을 뿐이야.
그리고 이 순간에서야 그는 깨달았다.
충분하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다.
육.
우리는 문명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더 가식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우리는 문명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더 가식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오.
맞아. 그랬다.
왜 여기 앉아 있을까?
왜 아직도 패밀리가 이용하는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신분과 입장에 가로막혀 이 답을 알고도 못 본 척했던 것이다.
사.
그가 과거에 했던 모든 것은 잘 꾸며진 폭력에 불과했다.
그리고 폭력 속에선 절대 문명이 탄생하지 않는다.
삼.
레온투초, 시간이 얼마 없다.
……
……내 답은……
무슨 일이냐?!
보스, 2급 핵심구역, 누군가 2급 핵심구역의 분리 프로세스를 가동했습니다!
뭐라고?!
……!
아버지, 이게 아버지가 남겨둔 수인가.
그렇다면 난……
순진하군.
……!
쳇, 노친네 치고 반응이 빠르잖아.
로사티?
레온, 저 왔습니다.
여긴 저한테 맡기고 먼저 가시죠.
……알겠다.
그렇군. 이게 벨로네가 남겨둔 수인가……
하지만 잘 생각해. 설마 살루초와 이 알베르토를 적으로 돌릴 생각인가?
설마 진심으로 우리와 친구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셨겠죠?
이익이 우리 사이의 유대가 될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무언가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너희의 그 풋내가 싫지 않구나.
노친네는 늘 자신들이 모든 걸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자신이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거야.
덤벼라. 오랜만에 젊은이들 실력이나 좀 봐볼까.
……
레온투초는 알고 있었다. 한 패밀리의 보스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건, 패밀리로 돌아가 이 격동의 정세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라비니아의 이상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카라치가 생전에 했던 수많은 일들을 본 사람으로서, 줄곧 헤매 온 자로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어느 때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드미트리, 미안하다.
그는 패밀리의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
조금 있으면 자로가 알아차릴 테지.
……슬슬 때가 된 건가.
루나컵, 아녜제의 송곳니.
널 오래 기다렸다.
네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 난 한 번에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건 잘 못 하거든.
날 타깃으로 삼다니, 현명한 선택이 아니군.
아녜제가 그랬어. 너는 남은 송곳니 중에서 가장 먼저 죽어야 할 놈이라고.
너는 권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 시시한 것으로 이기려고 한다며.
매우 늑대 군주다운 견해군.
나머지 송곳니들의 행방은 알고 있나?
몰라.
한 마리는 지금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회사에 살고 있지.
얼마 전에 시라쿠사로 돌아왔고.
한 마리는 이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피신해서 일찌감치 제자 한 명을 배출해냈지.
밖을 떠돌던 이 두 마리의 늑대는 지금 시라쿠사로 돌아왔어.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황무지에 숨어 있지.
나는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동향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내 권력이 더 커진다면 난 내 의지로 그들을 찾아낸 뒤, 부하를 시켜 그들을 없앨 수도 있지.
이게 바로 자로가 발견한 권력의 힘이다.
그것도 승리라고 할 수 있어?
자로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이상하네.
이상한 건 너야. 아녜제의 송곳니, 넌 날 죽일 생각이 없어. 그렇지 않나?
……그냥 좀 궁금했을 뿐이야.
넌 사악한 사람 같지도, 네가 말한 것처럼 권력을 쥔 사람 같지도 않아.
넌 내가 어떻게 보이지?
사지에서 마음 놓고 몸을 뉘일 곳을 찾는 야수 같아.
……패밀리 사람들은 다 갔나?
갔겠…… 지?
다행이야. 싸움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했는데.
그런데…… 이 시체는 어쩌지?
나…… 난 건드리기 싫은데.
하지만…… 이 사람이 너무 불쌍한걸.
저한테 맡겨 주시죠.
누…… 누구세요?
이 이름 없는 분의 친구라고 해두죠.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은 중요한 걸 깨달은 것 같군요.
문명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는 실체를.
이것이 바로 패밀리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건……
문명이라는 건 그저 허울일 수도, 자아의 훈계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본능에서 진정으로 벗어난 적이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진심 어린 갈망은 문명으로 자신의 겉모습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나라, 이 도시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세차공 단브론.
당신은 루비오와 함께 패밀리의 변천이라는 이름의 거짓말을 폭로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