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6단꿈에서 깨어나
미스터리한 생물을 조종하는 게 사실 피실험자들의 집단의식이라는 걸 알아낸 사람들은 실험의 진짜 목적에 더 공포감을 느낀다. 사리아가 퍼디낸드의 야망을 추측해 내고, 박사 일행은 여러 차례 프틸롭시스와의 동기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거대한 기계가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뒤얽힌 케이블은 마치 무성한 식물의 줄기와 같았으며, 그 줄기 끝에는 속이 가득 찬 듯한 꽃봉오리가 달려 있다.
이 꽃봉오리들은 희미한 빛을 내는 전극으로 아래쪽의 생명체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실종된 개척자들의 머리에는 전극이 씌워져 있고, 모두가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그들의 호흡은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나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실험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모든 케이블을 타고 흐르며 중앙에 위치한 기계에 모여든 은색 액체였다.
기이한 모습을 한 수십 명의 피실험자보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헬렌?
도대체 왜……
더크, 게일, 소피아!
다들 여기 있었던 건가……
저들을 풀어줘.
……
목소리 좀 낮춰 줄래? 우리 때문에 놀라겠어.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지금 약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거든. 다들 무사할 거야. 이건 내가 약속할게.
……지금 저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거야? 듣지 못할 텐데.
이런 생명 징후는 조이스가 의식불명일 때 봤었어.
저 전극과 은색 액체는…… 사람의 중추신경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
도로시, 왜…… 헬렌도 여기 있는 거야?
퍼디낸드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길래 내가 제안 하나를 했어.
제안이라면…… 피실험자가 되라고 했다는 거야?
오늘 아침에만 해도 헬렌이랑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지금은 나무토막처럼 여기 누워 있다니……
난 헬렌을 구하고 싶어, 엘레나.
헬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느낄 수 있어…… 저들 모두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처럼.
헬렌은 대출금 때문에 집안 전체가 무너질 상황이었어.
그래서 매일 두려움 속에 살았지…… 퍼디낸드가 정말 헬렌을 해고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거야.
만약…… 내가 여기서 멈추면 저들은 가장 비참한 운명의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난 그런 잔인한 일은 할 수 없어.
……그만.
그 이기적인 말 그만해. 그렇지 않으면 이 화살로 네 머리를 뚫어버릴지도 몰라.
사니, 네가 나한테 분노하는 건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과 나에 대해 몰라서 그런 거야.
하지만 난 널 이해해.
헛소리하지 마!
우리를 그렇게 잘 알아서 새로운 기회를 '베풀어' 주기로 한 건가? 우리가 재앙이나 맹수에게 잡아먹혀 죽지 않는 다른 길은……
대기업의 실험실에서 겨우 숨만 붙어있는 송장이 되는 건가!
참 너그러운 제안이군!
사니 넌 생각해 본 적 없어? 도대체 왜…… 똑같이 광석병에 감염됐는데 누구는 계속 일할 수 있고 누구는 고향을 떠나야 할까?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난 병원 진단 결과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보험 계약서와 해고통지서를 동시에 받았어.
보험 계약서는 569페이지나 됐는데, 해고통지서는 한 장이 채 되질 않더군.
감염자를 고용하려는 회사도 거의 없지. 회사에서 거액의 보험료를 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그 감염자가 증명하지 않는 한 말이야……
……
휴……
그게……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지 생각해 본 적 없어?
……당연히 해봤지.
그럼 날 이해해 줘야지.
……사일런스랑 그레이와 연락이 안 돼.
기지가 완전히 봉쇄된 것 같아.
퍼디…… 낸드.
실험실을 봉쇄하는 건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닐 거다.
이제 퍼디낸드는 359호 기지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지.
박사, 사일런스 일행이 위험해.
기지 내부와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아…… 당장 지원하러 갈까?
- 프틸롭시스……
- ……9호 장치.
9호 장치의 데이터 전송 시스템은 확실히 일반 통신과는 다르지…… 잠깐이라도 신호가 회복되면 프틸롭시스가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박사, 내가 지금 프틸롭시스와 동기화를 시도해 볼게.
……프랭크스 씨, 정말 혼자 그 사람을 만나러 가실 겁니까?
응, 관리국의 허가는 이미 받았어.
그 로켄 윌리엄스라는 사람은 미치광이라던데요. 사람을 대상으로 잔혹한 실험을 해서 10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알고 있어. 전에 그 사람 강의를 들은 적이 있거든.
과학자들은 다 미친 거 아닌가요? 크흠, 죄송합니다. 프랭크스 씨도 과학자라는 걸 깜빡했네요…… 상냥하고 다정한 프랭크스 씨는 분명 그들과는 다르겠죠.
이해해. 날 걱정해서 그러는 거잖아. 고마워, 조심할게.
안에서 얼마나 계실 생각입니까?
1시간. 필요하면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또 올게.
그자와 할 말이 그렇게 많으세요? 다른 사람을 그다지 상대하지 않던데……
그건……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얻어내려 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난…… 도움을 청하러 온 거야.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고, 재능의 차이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어서는 안 돼.
재능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특권을 누리는 건,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고 공평함을 깨뜨린 거야.
내가 그 수혜자이긴 하지만, 난 내 '행운'이 부끄러워.
여기 있는 모든 사람…… 더크, 헬렌, 그리고 사니까지, 난 너희가 흙탕물에 삼켜지기 전에…… 끌어올리려는 거야.
나는 언젠가…… 행운이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도 찾아가길 바랄 뿐이야.
……
난 벌써 몇 년 동안 도전해 왔어.
개체를 개조해서 이들이 더 강해진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타고난 강한 사람도 개조하면 더 강해질 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들이 기회를 먼저 잡을 것이고, 새로운 경쟁에서 더 큰 격차만 만들겠지.
진정으로 평등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개체로서의 차이를 없애려는 건가?
의식을 잃은 피실험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오리지늄 아츠 피조물……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기계까지……
네…… 네가 하는 실험은……
나도 예전에 비슷한 실험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건 이미 실패로 끝난 광기의 실험인 줄만 알았는데……
……광기?
세상에 어떤 기술도 '광기'라는 게 없어. 기술은 그저 각기 다른 이상을 실현해 주는 수단일 뿐이지.
개체의 차이는 타고난 것이지만, 굳이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평생 그것에 휘둘릴 필요도 없고.
내 기술이라면 사람들은 더 평등하게 서로를 느낄 수 있고, 더 평등하게 땅과 공기, 그리고 빗물을 느낄 수 있어.
험난한 길에도 막히지 않을 거고, 폭풍이 시야를 가리는 일도 없을 거야.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고난을 겪지 않고도, 가족과 이별하지 않고도 사람들은 더 안전하게 미래를 구상할 수 있어.
이런 미래가…… 얼마나 멋진지 모르는 거야?
……나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무슨 실험이라는 거야……
엘레나, 우리는 계속 은색 물체의 배후에 있는 캐스터를 찾고 있었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개척자들 개개인이 술사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야.
저 사람들 모두가 한 명의 캐스터였어.
……관찰력이 아주 날카롭네, 사일런스 씨.
프랭크스 주임, 네가 묘사하는 미래는 그저…… 너의 상상에 불과해.
내게 보이는 건…… 다른 광경이야.
오리지늄 아츠가 탁월한 캐스터는 혼자서 건물 하나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어. 그런 캐스터가 세 명이면 섹터 하나를 감지하고 통제할 수도 있지.
그럼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힘을 합치면?
이 대지의 어느 곳이라도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거야. 아무리 견고한 성채라도 그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으스러뜨릴 수 있는 장난감이 되겠지.
그리고 네가 걱정하는 이 사람들…… 친구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은, 이 기술을 이용하려는 자의 눈에는 영원히 실험체일 뿐이지.
실패한다면…… 아니다, 실패한 게 오히려 더 낫겠네. 그 사람들은 실패작에 관심이 없으니까.
성공한 '행운아'가 가장 불행한 거지.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기업과 정부의 감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올리비아…… 네, 네가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봐.
사일런스도 자신의 분노가 느껴졌다. 분노 때문에 머리가 윙윙거렸고, 과거의 장면이 잇달아 떠오르며 이성과 교양이 완전히 날아갈 것만 같았다.
넌 그들의 운명을 바꿔주겠지. 하지만 대가는? 그들은 자유도 본인의 인생도 영영 잃게 될 거야!
……내가 지켜주면 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쩌면 여기서 널 죽이는 게 모두에게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겠어.
그게 너희의 최종 결정이라면……
난 저항하지 않을게.
사니, 흥분하면 안 돼!
하하…… 우르비카 박사, 난 흥분하지 않았어.
지금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냉정해.
도로시 프랭크스…… 네가 묘사한 미래는 정말 매력적이야, 인정하지.
하마터면 나도 네 실험실로 들어갈 뻔했으니까…… 내가 몇 번이나 네 손을 잡고 싶었는지 넌 모를 거야.
……왜 그러지 않았지?
왜냐하면 내 미래는…… 내 것이어야 하니까.
너의 말, 너의 태도…… 너랑 가깝게 지내고 싶을 때마다 점점 이런 확신이 들었지……
네가 우리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게.
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는 건…… 악몽에서 깨어나기보다 더 어려워.
프랭크스 주임, 어쩌면 너도 그 꿈속에 있는 거겠지. 하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건 진정한 현실이야.
사일런스 말이 맞아. 이런 실험은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해.
이 땅에 이미 수많은 미치광이가 나왔어. 그런 정신 나간 생각은 하루라도 빨리 묻어버리는 게 좋겠지.
비록 우리 모두가 여기서 죽게 되더라도……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이런 일은 여기서 끝내야 해.
올리비아, 얼른 사니를 설득해!
이유야 어떻든…… 도로시는 이들을 도우려고 그런 거잖아.
아무리…… 아무리 막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이렇게…… 도로시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에게 죽게 되는 건……
……
사니……
조이스?
너…… 깨어났구나.
프랭크스 주임님을 해치지 마.
박사, 동기화에 실패했어.
……359호 기지의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심각할지도 몰라.
윽……
- 괜찮아?
부축해 줘서 고마워, {@nickname} 박사.
이제야 다리 감각이 돌아왔어.
- 359호 기지 배후에는 라인 랩만 있는 게 아니야.
- 퍼디낸드는 더 큰 세력과 협력하고 있어.
퍼디낸드의 협력 대상이라면 사리아 씨도 잘 알고 있지 않나?
당신이 오랫동안 쫓아온 이 기동 갑옷…… 이 첨단 무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지.
네가 그 사람들을 만났다는 거군. 증거는?
……여기 있어.
아까 다정하게 대해준 건 역시 착각이었나? 당신이 원하는 증거를 얻으려고 난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는데.
……
지금까지의 예상이 모두 맞았다.
퍼디낸드는 이제 야심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군.
- 이 실험으로 지지를 얻으려는 거야.
……그리고 라인 랩을 빼앗겠지.
우리는 크리스틴을 찾아내야 해. 퍼디낸드의 첫 번째 목표는 그녀야.
사리아 씨, 내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 받았지?
……라인 랩 정보원에게 확인해봤지만, 사내는 모두 평소와 같다고 말했다.
그건 그들이 총괄이 얼굴을 비추지 않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야.
총괄을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퍼디낸드는 몇 년 동안 계획해 왔어…… 이 실험으로 맞바꿀 카드가 실험의 마지막 단계이고.
음, 어쩌면 마지막 단계가 아닐지도 몰라.
내가 잡히기 일주일도 전부터 크리스틴에게 연락이 안 됐거든.
그럼 기지 쪽은?
난 사일런스 씨의 능력을 믿어. 날 한 방 먹인 사람이잖아.
……
망설일 시간 없어, 사리아 씨.
반드시 선택해야 해.
……박사, 이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지 문제를 해결하는 전제 조건은 퍼디낸드를 해결하는 것이며, 퍼디낸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 가자, 라인 랩 총괄을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