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5월광
히비스커스는 애프터글로 구의 지난 일들을 알게 된다. 한편, 에벤홀츠가 그 수상한 자를 잡으려는 순간, 여황의 밀정이 나타난다. 소문을 퍼뜨린 그 수상한 자는 틈을 타 하수도로 도망쳤고, 두 사람은 그 뒤를 쫓아간다.
등장 오퍼레이터: 히비스커스, 에벤홀츠,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누구야?!
뒤돌아보지 말라 했잖습니까. 거봐요, 도망쳤잖아요.
너는 대체 누구야?!
진정하세요, 백작님.
저의 정식 신분은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니, 그냥 저를 일개 밀정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비글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거야? 너 때문에 저 녀석이 도망쳤잖아!
어차피 하수도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다른 출구로 나오려면 한참 걸릴 거예요.
게다가, 그가 들어가기 전에 당신이 불러 세웠잖아요. 당신들이 저를 눈치채고 일부러 쇼하는 게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쇼를 해? 그 녀석이랑?!
그런 게 아니라면, 저번에 게르트루트를 찾아갔던 건 협박이라도 받았다는 겁니까? 농담도 잘하시네요.
……
당신은 그자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우르티카 백작님.
너는 나를 막을 수 없어.
확실히 싸우면 제가 당신을 막을 수 없겠죠. 하지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건 여황 폐하의 위임장입니다. 한 번 보시죠.
……이딴 건 내가 여섯 살 때부터 이미 갖고 있었어.
저에게 한 말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래도 여황 폐하에 관련된 일인지라 그런 발언은 삼가는 게 좋습니다.
삼가? 너야말로 일개 밀정 주제에, 상대를 잘 못 골랐다는 걸 알게 되면 후회할 건데.
지금 당신의 처지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군요, 친애하는 우르티카 백작님.
여기서 시간 끌지 말고 저와 함께 가시죠.
어딜 간다는 거지?
당신이 가야 할 곳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각 계층의 용의자들을 위해 각자 신분에 맞는 구치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최상급이죠.
얘기 좀 하지, 미스터 비글러.
용서를 구할 생각입니까? 아니면 뇌물이라도 주실 건가요? 후자라면 저는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습니다.
돈을 준다고 과연 나를 놓아줄까? 돈을 주머니에 넣어도 그냥 나를 데려갈 거잖아?
역시 똑똑하시군요.
너와 함께 있는 게 유쾌하게 느껴지는군, 미스터 비글러. 덕분에 내게 아주 익숙한 우르티카가 생각났어. 거기 사람들은 다 너처럼 '숭고'하니까.
영광스럽기 짝이 없군요.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이 하수도에 내려가서 뭘 하려는지 정말 궁금했거든.
하지만 왜 제가 보는 앞에서 그자를 불러세운 거죠?
말하자면 부끄럽긴 하지만, 나는 지상에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 그랬어.
내가 아는 어떤 백작 대리인이 악취미로 비위 상하는 이야기를 수집하기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하수도 이야기가 가장 끔찍했지.
훗, 비위가 상했다면 커피라도 한 잔 드셔야 하겠네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겠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미스터 비글러.
들어가게만 한다면 뒤에서 아츠 유닛으로 나를 조준하고 있어도 돼. 나는 도망치지 않아.
……
미리 경고하는데, 그 어떤 이유에서든 제 통제를 함부로 이탈하면 반드시 처벌받게 될 겁니다.
어떤 처벌? 사형?
적어도 작위가 강등될 겁니다. 앞으로 우리티카의 고탑에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결백하다고 해도 말이죠.
오히려 좋은걸. 한번 도망쳐보고 싶어지는군.
(절레절레)
아무튼, 꼭 들어가야 한다면 들어가세요, 우르티카 백작님.
제가 당신을 잘 감시하겠습니다.
히비스커스…… 너를 나무라는 게 아니지만, 너 체르니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근데, 체르니 씨는……
선생님이 직접 하시기엔 불편한 이야기도 많아. 이 할머니가 대신 해줄게.
……말씀하세요.
애프터글로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아니?
몰라요.
체르니 선생님이 전에 이런 말을 했었어.
“하늘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저녁노을은 더 귀하게 비치지. 만약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따스한 해 질 녘의 빛보다 더 눈부시고 더 감동적인 게 과연 존재할까?”
그 말은 확실히 멋있는 것 같지만……
어, 저기 두 사람은…… 우르술라 씨, 그리고 히비스커스?
자자, 이쪽으로 와. 여기 앉아서 얘기 나눠!
그런데 히비스커스는 왜 눈살을 찌푸리고 그래? 무슨 일 있어?
내 요리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여기 탄산수도 있어. 자, 이것 봐!
아뇨, 딱히……
그럼, 미안하지만 좀 앉도록 할게.
우르술라 씨, 히비스커스가 왜 저래? 누구랑 싸우기라도 했나?
싸운 게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
히비스커스한테 애프터글로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려던 참이었지.
옛날이야기라고? 그건, 나도 잘 알지.
허풍을 떠는 건 아니지만, 우르술라 씨보다도 내가 아는 게 더 많을걸.
이 애프터글로는 원래 감염자 거주지가 아니라, 비세하임의 산업단지 중 하나였어.
내가 지금은 여기서 노점을 차리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수백 명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산업단지라면…… 혹시 여기가 감염자 거주지가 된 이유가 산업 오염으로 유발된 광석병 전파 때문인가요?
산업단지 때문에 많은 감염자가 생긴 건 사실이지만, 이전의 라이타니엔에는 감염자 거주지 같은 곳이 없었어…… 뭐, 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어느 해에 그 폐하의 명령으로 비세하임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음악 홀이 들어서게 됐지…… 그게 바로 지금의 붉은 노을 전당이야. 당시의 음악 홀은 지금의 이름도 아니었어.
폐하라니요…… 어느 폐하죠?
거참, 히비스커스, 그 정도는 네가 눈치껏 알아들어야지.
'그 폐하'라고 말할 정도니까……
……네, 알겠어요.
음악 홀이 완공되었을 때, 그 폐하가 아직 재위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했지.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폐하는 사라졌고, 비세하임을 물려받은 슈트롤로 백작은 이 음악 홀을 굉장히 싫어했어.
싫어한 게 아니라…… 충성심을 보이는 데 급급했겠죠.
쉿……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몇 년 뒤, 위에서 감염자 처우를 향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당시 백작은 자연스럽게 싫어하던 음악 홀을 산업단지와 함께 감염자 거주지로 편입해 버렸던 거야.
그전까진, 라이타니엔 어느 곳을 찾아봐도 '감염자 거주지'라는 곳은 없었거든.
당시의 백작이라면…… 지금의 게르트루트 씨인가요?
그녀의 아버지였나…… 오라버니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그녀는 아니었어.
당시의 백작은 이 구역을 감염자 거주지로 편입했지만, 우리의 생사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도 않고, 산업시설까지 다 철거해버렸어……
우리에게 자생 자멸하라는 거지.
그러고 나서 귀족들에겐 이 구역이 '애프터글로'가 된 거였어.
결국 '애프터글로'란 건, 우리 같은 감염자들은 저녁의 노을처럼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이야. 그 음악 홀의 이름인 '붉은 노을 전당'도 그렇게 지어진 거고.
그건…… 너무 심하잖아요.
확실히 심하긴 했지.
하지만, 당시 애프터글로에 있어선 이 단어가 틀린 것은 아니야.
그래서, 사람들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에서 다시 올라오기를 바라며 악착같이 살았지.
노점상에, 심부름꾼에, 심지어 다른 섹터의 부자들을 위해 싸움꾼을 자처하는 녀석도 있었어…… 하아, 그 몇 년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
그 이후에, 체르니 씨가 나서게 되었지.
나섰다고요?
체르니 씨는 처음엔 별로 유명하지 않았어.
여러 곡을 발표했지만, 감염자 신분 때문에 모두 익명으로 발표했던 거야.
곡들이 너무 훌륭해서 고탑에 있는 거물들의 주의를 끌었지만, 그들은 체르니 씨가 애프터글로 출신이란 알고 모두 고개를 돌려버렸어.
그러다가, 《아침 그리고 저녁》이란 곡을 만들게 됐지.
《아침 그리고 저녁》에 관한 건 우르술라 씨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직접 들어봐.
우르술라 할머니?
실은 아주 단순한 이야기란다.
체르니 선생님에게도 전에 피아노를 가르친 은사님이 계셨는데, 그 은사님께는 딸이 한 명 있었고, 체르니 선생님이랑 친구 사이였어.
두 사람은 사이가 아주 좋았고, 수준도 막상막하라 서로 경쟁하면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기려고 했거든.
그런데, 안타깝게도 체르니 선생님이 스무 살 되던 해에 그 아가씨가 세상을 떠나게 됐지.
……
크게 충격받은 체르니 선생님은 매일 말도 몇 마디 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갔어.
그러던 어느 날, 체르니 선생님이 갑자기 악보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곡을 썼다는 거야. 그리고 이번만큼은 무조건 실명으로 발표하겠다고 했지.
그 당시 백작은…… 바로 지금의 게르트루트 씨였어.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백작이 체르니 선생님을 직접 찾아왔어.
그녀는 체르니 선생님의 후원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윗선에 로비하면서까지 끝내 《아침 그리고 저녁》이란 곡을 체르니 선생님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했어. 그리고 그 곡이 애프터글로에 널리 알려지게 됐지.
그런 일도 있었군요.
이제 알 것 같아요. 체르니 씨가 말한 '의미'에 대해서요……
《아침 그리고 저녁》의 반응이 너무 좋았던 터라, 고탑의 거물들도 이번만큼은 무시하지 못하고, 체르니 선생님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그 뒤로, 체르니 씨가 애프터글로의 음악 인재들을 돕기 시작했나요?
그렇지. 여긴 라이타니엔이잖아, 널린 게 음악가들이지! 나야 그쪽으론 재능이 없지만……
주인장은 겸손하기까지 하네.
몇 년 전만 해도 자네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자네의 그 새콤 양배추 볶음을 팔지 않았나?
하하, 그거야 예전에 공장에서 사람들에게 밥 먹으라고 할 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게 소리 지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으니까.
어찌 됐든, 음악이 애프터글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부가 된 후로, 비로소 위기가 해소됐던 거야.
작곡, 연주, 교육, 악기 제작……
많은 사람의 곡이 여전히 익명으로 발표되었고, 대다수 음악가들은 애프터글로를 벗어날 수 없었어. 하지만, 어쨌든 이 산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애프터글로에 활기가 찾아오게 됐지.
하지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체르니 선생님과 백작이 한바탕 싸웠던 것 같아.
싸웠다고요?
그래, 무슨 이념이 다르다나 뭐라나…… 우리야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백작은 여전히 체르니 선생님을 후원하고 있지만,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왕래가 뜸해졌지.
네, 안단테 씨, 무슨 일이에요?
크라이데의 할아버지가…… 사라졌어요?
지금 돌아갈게요!
고마워요, 안녕히 계세요!
네, 네! 몸에 안 맞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세요, 언제든 고쳐드리겠습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버렸네…… 에벤홀츠 씨는 집에 돌아왔겠지?)
엇, 저건 뭐지……
원석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