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1트리치 트라치 폴카
에벤홀츠와 크라이데의 연주는 체르니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음악회 후원자인 게르트루트를 찾아간 에벤홀츠는 그녀가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을 알게 된다.
죄송합니다, 늦었네요……
이건 오디션이야. 20분만 더 늦었다면, 우린 손잡고 나란히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고!
죄송합니다……
변명은 안 하는 건가?
실은…… 아침에 할아버지가 사라지셔서……
사라졌다고?
별일은 없었어요. 할아버지를 골목에서 찾았어요. 아침에 너무 일찍 깨셔서 산책하러 나가셨던 거래요.
그래서 네가 여기 오기 전까지 산책했다고?
아니요, 아침에 로도스 아일랜드에 가서 입원 절차를 밟는 바람에……
너희 할아버지가?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에 입원했다고?
비세하임에 있는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는 너무 작아서 입원 환자를 받지 못할 텐데.
원래는 안 되는 거였지만, 히비스커스 씨가 자신의 침대를 내주셨어요. 그리고 꼭 할아버지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약속까지 해주셨거든요.
흥……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그래 놓고 돈을 잔뜩 뜯어내려는 거 아닌가?
아니에요, 어제 준 돈을 절반도 채 받지 않았는걸요.
흠, 그렇다면 너는 할아버지를 더 자주 보러 가야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용을 절감”할지도 모르니까.
비용을 절감하다니요?
어쨌든 그쪽도 돈을 벌어야 하는 영리 기업이잖아. 그러니까 돈은 당연히 환자로부터 뽑아야지. 이를테면 식비나 약품에서 아낀다든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네가 어떻게 알아?
어제 오후에 제가 돈을 내기도 전에 벌써 할아버지께 먹을 약을 줬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히비스커스 씨가 조식을 준비해 주셨는데, 시간이 빠듯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부러 연기한 거야. 네 할아버지도 그 뻔한 속셈을 알아채셔서 가지 않으려고 했을걸.
……알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할아버지를 보러 갈게요.
고마워요.
뭐가?
저랑 할아버지가 피해 볼까 봐 그런 거잖아요. 저도 알아요.
……
됐어,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제 악보를 받은 후에 좀 연습해 봤어?
음……
다음은 에벤홀츠 씨와 크라이데 씨입니다!
가자.
오늘 오디션은 체르니가 직접 심사하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
안녕, 미스터 체르니……
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시작하세요.
관중이 객석을 가득 메운 참가 신청회 때와는 달리, 오늘의 오디션에는 체르니와 참가자를 제외한 몇몇 스태프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 관중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짧은 합주에도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여운이 사라지고 체르니의 표정은 이내 굳어버렸다.
미스터 체르니?
당신들은 연습을 별로 하지 않으셨군요.
그렇긴 하지만……
뭔가 임시로 합주하는 느낌이 강해요. 게다가 제각기 연주하기 바쁘고, 조화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히 당신, 첼로의 감정 표현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속도에만 집착해, 오히려 첼로가 당신한테 끌려가는 느낌이었어요.
뒤늦게라도 알아채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 연주는 당신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됐을 겁니다.
나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된다고?
아니, 내가 볼 땐 당신이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계속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요? 설마 제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체르니 선생님, 에벤홀츠 씨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그저 뭔가요? 제가 보기엔 그저 칭찬에 길들여진 것 같은데.
뭐, 칭찬에 길들여져?! 당신이 내 처지를 알아? 당장 그 말 취소……
(작은 목소리로) 에벤홀츠 씨!
……
크라이데 씨는 좀 더 고민해 보겠지만, 당신은 안 되겠네요. 다음.
뭐라고?! 설마 내가 얘보다……
……체르니 선생님.
네?
에벤홀츠 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오디션에 참가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어째서 당신이 편을 들어주는 겁니까?
에벤홀츠 씨가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이번 음악회에서 첼리스트 한 명 빠진다고 지장이 될 게 전혀 없습니다. 하물며 성가시게 구는 귀족 도련님 한 명이 없어지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고요!
다음!
쳇, 저 녀석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피아노 좀 치고 곡이나 좀 만들 줄 아는 것뿐이잖아!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해? 저 녀석 태도를 못 봤어? “칭찬에 길들여져”? 내가? 여태 자라면서 누가 날 칭찬했지? 대체 누구한테 칭찬받았다는 거야?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체르니 선생님은 저희가 그렇게까지 엉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너는 당연히 아니겠지. 엉망은 이쪽이라고! 저 녀석이 뭐라 했는지 잊었어? “크라이데 씨는 좀 더 고민해 보겠는데, 당신은 안 되겠네요.”라고 했잖아!
역시 체르니 선생님에게 빨리 사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기회를 다시 줄지도 모르잖아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굳이 그 녀석한테 머리 숙일 필요까진 없어!
그렇지만, 사과하는 거 말고는 저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요……
(스읍…… 후우……)
아무튼, 너 먼저 돌아가. 나도 돌아가서 대책을 찾아볼 테니까.
만약 정말 방법이 없다면 그때 다시 체르니를 찾아가지.
네…… 알겠습니다.
“칭찬에 길들여져”……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함부로 헛소리만 지껄이고……
칫!
(으윽, 또 두통이……)
쓸모없는 짝퉁……
!
고약한 병에 걸린 평민들조차도 네 저속하기 짝이 없는 플루트 연주를 싫어할 거다……
닥쳐!
……
저기, 처음 뵙는 분이긴 합니다만, 뭔가 곤란하신 건 아닌지요?
……고맙긴 하지만, 괜찮아.
그렇습니까……
(설마 그 자의……)
……실례했습니다.
오히려, 나보다 그쪽이 더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저, 저는 괜찮은데요.
그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아닙니다. 하, 하, 하하하……
그, 그럼 전 이만……
또 두통인가요?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
죄송합니다.
왜 갑자기 사과를?
오늘 오디션에서 곤란하게 만들어 두통까지 앓을 줄은 몰랐네요. 모두 제 생각이 짧았던 탓입니다.
생각이 짧았다니? 무슨 얘기지……
설마, 알고 있었어?
아니지, 당신이라면 분명 알고도 남았을 테지.
그렇죠. 이래 봬도 이번 음악회의 후원자 중 한 명이잖아요. 음악회에 관련된 일이라면 금방 제 귀에 들어올 수 있어요, 에벤홀츠.
……
아, 걱정할 것 없어요. 별일 아니니까.
사실 두 사람에 대한 체르니의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는 두 사람을 《아침 그리고 저녁》의 후보 연주자로 삼으려고 일부러 그런 걸 거예요.
정말인가?
저도 다소 친분이 있는 터라,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죠.
그는 감염자지만, 저명한 예술가이기도 하니 기가 좀 센 것뿐입니다. 에벤홀츠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요.
……흥.
이번 음악회는 저에게도 다소 발언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은 안심하고 연습만 하면 됩니다. 체르니 쪽은 제게 맡기세요.
솔직히 당신의 발언권을 빌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디션을 다시 보고 싶어. 오전에는 그저 실력을 발휘를 제대로 못 한 것뿐이야.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게 집착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차라도 마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감귤 향을 가미한 홍차입니다. 두통에도 좋다고 하더군요.
신경 쓰게 했군.
맛은 어떤가요?
향이 좋네. 고마워.
그럼, 이제부터 제가 한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요?
당신도 이미 예상했겠지만, 제가 당신을 비세하임으로 초대해, 그것도 감염자 거주지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여시키려는 건…… 확실히 다른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
별로 놀랍지 않으신가 보군요.
뭐, 이젠 이용당하는 데 익숙해져서.
오히려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면, 내가 더 놀랐을걸.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제게 오래전부터 준비한 계획이 있어요.
이 계획대로 해주신다면, 당신을 '속세의 음'에서 벗어나게 해드릴 자신이 있어요.
……뭐?!
'속세의 음'은 에벤홀츠, 당신의 수많은 불행의 근원이자, 당신이 우르티카 백작에 책봉될 수 있었던 법적 근거 중 하나, 그분의……
굳이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그게 내 머릿속에서 계속 날 괴롭히고 있으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나 말해 봐.
아주 간단해요. 이제 막 알게 된 크라이데와 함께, 체르니의 음악회에서 합주하는 것…… 그뿐입니다.
……
최대의 친절을 발휘해 이렇게 말하도록 하지. 농담이 매우 서투르군, 미스 게르트루트.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크라이데의 몸에도 '속세의 음'이 들어있죠.
크라이데? 걔한테도?!
하지만, 쌍둥이 여황은 분명 '속세의 음'이 내 몸에만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은 그들도 모르는 일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드문 일도 아니고요.
……
물리적으로 충분히 가까워지면 두 '속세의 음'이 '공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공명은 동시에 양측의 아츠를 강화시키죠. 이게 제 계획의 기반이에요.
두 사람의 아츠를 강화하는 것 외에도, 공명은 그 자체만으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 힘은 두 사람이 합주할 때 대폭 증가하죠.
잘만 유도한다면 제가 공명의 힘을 이용해, 당신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크라이데의 몸으로 이전할 수 있어요.
그럼 크라이데는 어떻게 되는데?
걱정할 것 없어요. 제가 적당한 방법으로 처리할 테니까요.
그런데, 왜 꼭 체르니의 음악회여야만 하지?
크라이데의 집에서 합주해도, 당신이 공명을 유도해서 내 몸 안의 '속세의 음'을 크라이데에게 이전할 수 있지 않아?
공명을 유도하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붉은 노을 전당 없이 저 혼자로서는 불가능하니까요.
붉은 노을 전당?
설마 모르시나요? 붉은 노을 전당은 위치킹 폐하의 통치 시절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금시초문인데.
위치킹 폐하의 통치 말기에 지은 건물로써, 붉은 노을 전당에 사용된 자재와 구조는 폐하의 고탑과 많은 유사한 점들이 있죠.
그것은 원래 감염자 거주지와 이름이 같은 음악 홀이 아니라, 아츠의 요새로서 폐하의 적들을 공포에 빠뜨릴 악몽이 돼야 했습니다.
폐하에게는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당신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붉은 노을 전당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어요.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 다른 질문이라도 있으십니까?
……
일이 성사되면 크라이데와 기타 사소한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당신은 잠시 동안 몸을 숨기기만 하면 됩니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당신은 성가신 귀족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평민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이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자유를 원치 않는다면, 저 또한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이 저의 계획을 알았다고 해서, 당신이 불이익을 당할 일은 더욱 없고요.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비세하임에 남아 있든, 아니면 지금 당장 우르티카로 돌아가든 당신을 막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막지 않는다”……
내 몸 안에 있는 '속세의 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거해 주겠다고 말한 인간은 당신이 처음이야.
그래서, 도대체 나한테서 뭘 원하는 거지?
강력한 지원군이요.
지원군?
난 그저 꼭두각시 백작일 뿐, 내 영지조차도 직접 다스릴 수 없어.
당신이 말한 계획이라는 게 정말 성공한다면, 난 그저 일개 정체불명의 평민이 될 텐데, 어딜 봐서 강력한 지원군이라는 거지?
영지, 군대, 심지어 오리지늄 아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우르티카 백작이 실종됐다는 것, 심지어 사망이 공표된다는 것이죠……
상상해 보세요. 적당한 타이밍에 우르티카 백작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면, 과연 라이타니엔의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죽음에서 돌아왔다'는 게 바로 당신이 제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이에요.
……알았어.
일단…… 고민할 시간을 줘, 미스 게르트루트.
얼마든지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시종들에게 분부하시면 됩니다.
……그럼.
본인에게 가장 이로운 결정을 내리길 바랄게요.
네.
크라이데와 로도스 아일랜드의 접촉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필요하다면 로도스 아일랜드를 방해해도 좋습니다. 단, 경솔하게 움직이지 마시길. 무력 충돌은 더욱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우르티카 백작의 상황에 대해 보고드릴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이건 당신의 계획입니다. 이런 사소한 일마저 일일이 다 보고할 거라면, 차라리 수행 지도원이라도 붙여 드릴까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에벤홀츠 쪽은 문제없습니다만, 크라이데와 로도스 아일랜드는……
……
잊고 있었군요. 알맞은 인선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