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ST-2가까스로 탈출
대재판관 앞에서 최선을 다해 세 명의 헌터를 지켜낸 켈시는 그녀들을 살비엔토에서 내보내지만,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온 글래디아는 또 다른 이변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닥터 켈시, 해명을 해주겠나?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거지?
재판소는 이베리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
닥터 켈시, 이베리아는 유언비어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대재판관님, 당신은 그 비밀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겠지.
심해 교회는 이미 이베리아에 침투했고, 은밀하게 뿌리를 내렸어.
심해 교회는 당신들과 바다의 옛 관계를 이용해서, 이베리아의 버려진 도시를 육지로 향하는 발판으로 만들었지.
그들은 당신들의 경전을 멋대로 해석하고, 관점까지 왜곡하면서 깊숙이 숨어 있었어. 그래서 당신들이 잡을 수 없게 된 거고.
……도움을 청해. 나라와 신앙의 얄팍한 분쟁에 얽혀봤자,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거야.
헌터들과 재판관, 그리고 켈시는 묘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스카디는 어쩌면 켈시가 정말 그들의 편에 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재판관님, 이베리아인은 달라.
당신들이 매일 보는 지평선조차도 육지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달라.
당신들은 매일매일 살아가는 곳을 뭐라 부르지? ……해변이라 그러지?
다른 사람은 육지에서 생활하지만, 이베리아인은 해변에서 생활해.
대부분 사람은 황야에서 살건 도시에서 살건,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앞을 보면 끝없는 대지와 이어진 산맥밖에 보이지 않아.
구름층 위의 것들은 그들과는 상관이 없지.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이 대지'가 전부야.
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대지라고 불러. 그들은 이 세계에는 오직 육지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봉쇄된 도시국가, 폐쇄된 마을, 목숨을 잃기 쉬운 황야, 그들은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저들을 봐. 저들은 심해의 헌터고, 에기르인이야.
이 육지보다도 더 광활한 바다.
이베리아는 다른 나라와는 달라.
육지 사람들은 자신의 항로와 권력에 심취해 있느라,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탐색을 할 수 있었던 변경을 등한시했지.
당신들의 세계는 훨씬 더 완벽해. 당신들은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지. 이베리아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인지하고 있어.
이런 것들은 당신들이 과거에 한발 크게 앞설 수 있는……
거기까지.
다 지난 일이다. 도시의 영광은 사라졌고, 이베리아에는 폐허만 남았다.
놀랍군. 대재판관이라면 이런 건 언급조차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당신은 여기 서 있고, 눈도 멀지 않았으니, 고개를 들어 직접 봐라.
살비엔토와 같은 도시들은 이베리아 해안 곳곳에 분포되었다.
한때 휘황찬란했던 이베리아에, 지금은 이런 유적이 얼마나 있을까?
켈시는 알고 있었다. 대재판관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차가운 얼굴에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가면까지 쓰고 있었으니, 본인의 감정을 숨기기 더욱 용이했으리라.
울 수 있다면 이베리아인은 분명 울부짖었을 것이다. 웃을 수 있다면 이베리아인은 분명 큰소리로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이 풍부했던 이베리아인이라 해도, 지금은 눈앞의 이런 모습이 되어버렸다.
표정도, 감정도 없다. 이베리아의 황금시대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조용하게 사라져 버렸다.
너무 많아.
모두를 지원해줄 순 없어. 수많은 도시들이 자기 앞가림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 큰 고요함이 끝난 후, 이베리아는 더는 옛날같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다른 사람의 지원이 필요하겠군.
아무도 이베리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또한, 알아서도 안 된다.
이베리아가 파멸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인가?
지금이라 해도 이베리아는 멸망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이 있잖아. 이베리아 사람들도 있고.
나는 믿어. 이베리아 사람들은 비록 하나의 도시도 남지 않았지만……
켈시는 어비설 헌터스 쪽을 바라보았다. 스카디는 기척을 느끼고 건물 안에서 걸어 나오는 주민에게 다가가,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쉽게 죽지 않을 거다.
내 말을 들어봐.
오만과 편견은 이미 에기르인을 멸망시켰어. 그렇기에 이 땅은 심해 주민의 전철을 다시 밟아선 안 돼.
이베리아가 재앙의 여파로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면, 이곳에 바다의 진실과 그들의 무시무시한 위협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거야.
툰드라의 백 년에 한 번 있는 사냥처럼, 지금의 우리는 인간의 영토를 지키는 것이지, 한 나라의 명예를 지키는 게 아니야.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바닷속 괴물이든 아니든.
그리고, 이베리아가 지금처럼 겨우 연명이나 하는 정도라면……
켈시는 대재판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재판관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거절은 아닌 듯했지만, 그렇다고 허락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켈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베리아는 결국 파멸하게 될 거야.
지금의 당신들이라면 터전을 일구고 이베리아를 재건할 수 있어.
믿을 수 없다.
당신을 믿게 하려는 게 아니야, 대재판관님. 그저 알려주고 싶을 뿐이야.
이 대답, 이 결정을 당신이 내릴 필요는 없어. 당장 내릴 필요도 없고.
……
살비엔토의 일도 해결해야 한다.
대재판관은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이 중 최소한 한 명은 남아야 한다.
제가 남겠어요.
안돼.
여러분은 돌아가세요.
켈시. 약속한 대로, 제가 없으면 당신이 저들을 이끌어 주세요.
글래디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대재판관님,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내가 대신 심문을 받겠어.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당신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난 이베리아의 감옥을 견뎌낼 수 있어.
……
굳이 그렇게 하겠다면야.
켈시?
……켈시?
그래서, 내가 이 사람들을 나라에서 쫓아내길 바란다는 건가?
적어도 지금은 그래. 적어도 지금은.
너희들은……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 미저리가 이베리아 북동쪽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번에는 수로로 가지 마.
노선은 재판소에서 지정한다.
종점이 그곳이라면, 다른 건 다 상관없어.
돌아오시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오래는 못 기다려요.
그녀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이베리아의 새님께서는 멋대로 단정 짓지 마시죠. 감옥의 담벼락은 제게는 모래와 다를 게 없어요.
글래디아, 그만해.
저보고 당신이 붙잡혀가는 걸 보기만 하라는 건가요?
그래.
글래디아, 걱정 마.
헌터들, 이제 가. 스펙터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 스펙터가 정신을 차렸으니 많은 답을 해줄 수 있을 거야. 그녀가 직접.
저한테 할 말 없으신가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일걸요. 당신한테도 그렇고요.
음……
내 의견은 너 같은 헌터한테는 별로 적절하지 않아.
제 성격이 급해서요?
아니, 나보다도 너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잘 알 테니까.
어쨌든, 난 지금의 네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라…… 어쩌면 넌 아마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
어떻게 아셨죠?
추측이야, 너의 기분이 좋으니까. 지금의 너에겐 깨어났는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야. 너한테는 지금이 괜찮은 편이니까.
그건 당신이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린 언제쯤 다 좋아질까요?
지금 또 자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죠? 너무 김이 새잖아요. 제 기준은 당신보다 훨씬 낮아요.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살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제가 심해 교회의 허튼소리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것도 저인데 제가 왜 제 자신을 싫어하겠어요?
판단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고 하죠. 전 그들을 난감하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전에도 이런 성격이었던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켈시 선생님.
더군다나 제 곁에 드디어 옛 친구들이 생겼다고요. 말을 하려 해도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를, 그런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구요. 아시잖아요, 그들은 해초조차도 본 적이 없다는 걸……
네가 가르쳐주면 되지.
네가 지금 돌아갈 수 있는 그곳에는 수많은 새로운 친구들이 있어.
앞으로, 네 동료들은 널 필요로 할 거야. 나도 너희들이 필요하고.
우리에겐 네가 필요해.
그리고……
켈시가 뭔가를 말했다.
스펙터가 웃었다.
그럼 너무 늦게 오시면 안 돼요!
난 언제나 시간을 잘 지키지.
여러분, 가시죠. 여긴 켈시 선생님께 맡기고요. 그녀라면 괜찮을 거예요.
……
잠깐, 제2대대장. 아직 할 말이 좀 있어.
켈시.
또 무단으로 출동했네, 스카디.
뭐 다행히도, 이번엔 적어도 엔지니어 오퍼레이터한테 연락해서 이 가방을 전해달라고 말해놨었지. 아니나 다를까, 그쪽에서 바로 연락이 오더군.
그래도 전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당신이 정말 날 도와줄 줄은 몰랐어……
말했잖아. “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고, 네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 가서 휴가를 즐기라고.
켈시는 스카디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생기지. {@nickname} 박사조차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고.
우리가 가진 기술은 네 감염 문제를 해결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야…… 너도 불가능하고.
하지만 스펙터,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네가 감염을 이겨낼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야.
그림자는 지울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는 있다는 거지.
스카디……
너희들의 암담한 운명을 해결할 방법은 없지만…… 그에 맞서 싸울 순 있어.
어쩌면 마지막 날까지 맞서 싸울 수 있는 건 너희뿐일지도 몰라.
아, 가수님! 왜 또 돌아오신 거예요?
응.
앗, 새…… 색소폰은요?
……잊어버렸어.
아, 괜찮아요. 어딘가에 깜빡하고 두고 오셨겠죠. 제가 찾아 드릴게요.
그리고 하프요, 어제 두고 가셨더라고요. 제가 대신 챙겨 뒀어요.
너 줄게.
제게 주신다니…… 우리의 그 약속 때문인가요? 그렇다는 건, 정말 동료를 찾으신 거예요? 정말 다행이네요. 너무 기뻐요!
그런데…… 어제보다도 더 지쳐 보이세요. 다치신 건가요?
난…… 괜찮아. 그냥 좀 어지러울 뿐이야.
그럼 다행이에요. 안 계시길래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나 했어요.
방금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보셨어요?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쾅, 우르릉 쾅쾅하면서 저 앞의 산이 흔들리다가 갑자기 무너지더라고요!
우리 집도 같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너희는 괜찮아?
괜찮아요. 문제는 먹을 게 죄다 집 안에 있었는데, 다 뭉개져 버렸겠죠? 휴, 또 한동안 굶게 생겼어요.
다행히 재판관님이 오셔서는 우리더러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해안이나 산 위의 교회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고요.
그 여자가 너흴 도와줬구나.
그렇죠. 정말 좋은 분이에요. 항상 우릴 지켜주세요.
커헉.
목을 다친 건가?
크흠…… 너, 너 말이야! 됐어, 너랑 실랑이할 생각 없거든? 칫, 장관님께 붙잡혀가지 않은 게 다행인 줄 알아, 에기르인.
날 기다렸구나.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할 말이 있어.
아직도 포기 안 했어?
뭣…… 나랑 싸우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 짓지 말라고! 아직 검도 안 뽑았잖아!
저, 전에 널 쫓았던 거, 사과하고 싶었어. 미안해.
응?
날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도 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난 재판관이긴 하지만…… 재판관이 잘못을 저지르면 더더욱 반성이 필요한 거니까.
네가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바로 널 발견했어.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어도 네가 에기르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넌 너무 다르니까.
……
당시의 난…… 화가 났고 흥분하기도 했지. 드디어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거든. 사악한 이방인, 액운을 가져오는 원흉……
널 적발하고 죽이면…… 잘못을 바로잡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지.
하지만 난 너를 이길 수 없었어. 하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널 이겼다 한들 뭘 바꿀 수 있겠냐만.
이 도시를 위협하고, 이베리아를 위협하는 건 한두 명의 에기르인이 아니니깐.
……많이 변했네.
……네 덕분이야.
지금은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게 되었어.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어느 한 순간부터 날 헤매게 만들었지. 심지어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지조차 알 수 없었어.
나는 재판관이야. 이베리아의 위협을 제거하고 질서를 지키는 건 내겐 마땅한 일이야.
넌 위협이야…… 그렇다고 해서, 네가 과연 적일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내가 지켜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제거해야 하는 걸까?
그게 판단이 안 섰으니, 난 검을 휘두르는 의미를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이 사람들처럼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었지.
그 이후엔…… 너, 너와 여기 주민들을 보고 난 깨달았어.
그 사람들……난 그들을 구할 수 없었어. 말하자니 우습지만,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그들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어.
최소한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알 것 같아.
하지만 넌, 네가 한 건 좋은 일이야. 넌 이곳을 지켰어…… 잠시긴 하지만. 넌 나보다도 잘 해냈어.
……
네 행동은 옳았어.
뭐?
나는 너랑 같은 일을 했어.
나랑 같다니…… 됐어, 네 위로 방식은 네 변장술만큼이나 형편없거든.
위로가 필요한가?
뭐래…… 아니거든? 됐어.
응, 나도 그래.
……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찾으려던 답을 찾았나 봐?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질문은 충분히 했어. 정말로 답을 알게 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별것도 아니었어. 네가 말한 것처럼,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됐어.
음? 우린 모두 준비가 된 것 같네.
난 가봐야겠어. 너도 가야 한다는 거 알아. 네가 아직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분명 장관님과 너희 사이에 어떤 협의가 있었다는 거겠지.
그럼…… 이만.
우리가 여전히 같은 결과를 추구하는 한, 언젠가 또 마주치게 되겠지.
아, 재판관님은 가셨나요? 제가 만들고 있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이건?
가수님이 가르쳐주신 해초주잖아요! 윽, 제가 잘못 만든 걸까요? 더 잘게 다졌어야 했나요?
……
너무 잘아.
에에에? 그럼 다시 해볼게요. 괜찮아요. 먹을 건 없어졌지만, 해초는 아직 꽤 많이 남아 있거든요. 여차하면 벽난로 아저씨한테서 좀 받아와도 되고요.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다 만들면…… 음, 다 만들어졌을 즈음엔, 가수님은 이미 떠나셨겠죠? 혹시, 그거 알려주러 오신 건가요? 떠날 거란 걸요.
응, 난 떠나야 해.
(무의식적으로 해초를 몇 번인가 으깬다)
네, 당신은 떠돌이 가수시니까요.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그냥 가끔 머무시는 거겠죠.
이곳에 다시 오실 건가요? 저…… 그리고 페트라 할머니, 벽먼지는 가수님의 하프 연주와 노래를 또 듣고 싶어 해요.
……
그럴게.
그리고 내 동료도 함께.
와, 그럼 너무 좋죠!
약속했어요. 얼른 돌아오셔야 해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무틀.
응, 지금 갈게! 가수님, 사람들이 절 찾고 있어서 가봐야겠어요!
약속한 거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
저기…… 단지는.
빨간색 조개껍데기.
……
아니타!
약속했던 것처럼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스카디를 향해 웃었다.
네!
다음엔 밖에서 만나더라도 노래를 불러 줄게.
맞다! 그럼 가수님의 하프도 같이 상자에 넣어야겠네요.
가수님, 안녕히 가세요!
……
안녕.
젠장.
……빌어먹을!
글래디아는 손으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네 꼴 좀 봐. 결국 흉물스럽게 변해버렸어.
넌 해구에서 죽었어야 해. 이게 네가 원하던 건가? 넌 그들과 함께 거기서 죽었어야 해. 지금 넌 여기 숨어서 숨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럽지. 그들에게 노랫소리조차도 들려줄 수 없지.
함선의 화장실에서 자신의 처지에 불평이나 하고…… 해류조차도 못 타고, 여기서 또 하나의 괴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지.
봐, 그게 바로 너야.
너무 일러…… 너무 이르다고.
큰 함선…… 큰 함선을 찾아야 해.
시본이 스카디에게서 답을 얻으려 하다니…… 괴물들이 자신을 사냥하는 자들에게서 진실을 얻으려 하다니.
그 말인즉슨, 헌터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신에겐 신탁이 없다.”
파도가 하늘에 닿기 전에, 저 거대한 괴물들이 그들의 핏줄을 불러일으키기 전에, 우리는 바다를 침묵 속에서 죽여야 한다. 그의 자손들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근원을 파괴해야 한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재난이 온다 해도…… 에기르는 한숨 돌릴 기회를 얻을 것이다.
난 에기르가 들리지 않는다. 훗, 그 괴물들이 계시를 얻지 못한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
하지만 우리에겐 책임이 있다. 어비설 헌터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이베리아의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대적할 상대가 없지만, 하룻밤에 사라진 이베리아 함대의 마지막 거대 함선처럼……
글래디아는 더 이상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내게는 반드시 에기르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커다란 황금빛 함선을 손에 넣고, 열쇠를 얻어 보물 창고의 문을 열고, 화산을 풀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