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4바다
젊은 재판관을 따돌린 스카디는 이윽고 대재판관을 마주치게 된다. 접전 끝에 피를 흘리며 간신히 도주하게 된 스카디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의 괴물들이 그녀를 찾아오게 되는데……
……
장관님!
물러나거라. 너는 상대가 안 돼.
하지만 전……
물러나.
알겠습니다!
스카디와 눈앞의 사람은 십여 미터 떨어진 채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 많이 강하군.
넌 이 도시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어.
이미 들어왔는걸.
규칙을 어겼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넌 여기에 남게 될 거다.
……난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
쳇. 사악한 에기르, 슬슬 두려운 거겠지! 장관님께서 계신 이상 넌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거야.
그렇지만, 꼭 싸워야 한다면……
(에기르어) 내가 널 쓰러뜨려 주지.
준비, 가속, 돌진.
정말 빨라. 방금 나와 싸울 때보다 훨씬 빨라졌어!
저런 속도라면 난 저 여자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을 거야…… 도대체 실력을 얼마나 숨겼던 거지?!
대재판관과 충돌하려는 그때, 스카디는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파도에 떠밀려 공중으로 날아오른 물고기처럼 높이 뛰어올랐다가, 다시 부서진 지붕에 착지했다.
대재판관은 바짝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부딪쳤다 떨어져 나가고, 다시 또 부딪쳤다. 가뜩이나 만신창이였던 거리는 그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건물들이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공격과 회피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장관님도 마찬가지고. 내 눈이 겨우 따라갈 정도야.
내……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었다니?!
아니, 이러면 안 돼. 저건 에기르야. 에기르에게 질 순 없어.
그런데 저 에기르는 자신의 가방을 무기로 쓰고 있는 건가…… 저 가방은 뭘로 만든 거지! 왜 저렇게 딱딱한 거야?!
하지만 장관님도 핸드캐논을 쓰지 않고 계시네. 그걸 쓰게 되면…… 순식간에 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텐데? 이 거리까지 덩달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겠지.
그런데…… 정말 에기르가 맞을까? 저 여자의 모습은 그 괴물들과는 다르잖아.
저 여자가 사용한 건…… 일종의 아츠인가?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닌데. 우리의 불빛으로도…… 저 여자를 제압할 힘이 없어.
……저 에기르에게는 너무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어.
거리의 진동은 서서히 멈췄다. 날리는 먼지와 연기 속에서 나이 지긋한 대재판관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장관님! 역시 이기셨군요. 알고 있었습니다, 장관님에 필적할 자가 없다는 걸요.
그런데, 그 에기르는요?
도망쳤다.
네? 어…… 어떻게?
부상을 입었으니, 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거다.
제가 찾으러 가겠습니다……
넌 그 여자를 이길 수 없어.
콜록콜록…… 하지만 그녀 같은 사람이 여기 바닷가를 멋대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방향으로 보았을 때 주민 거주지로 갔을 것입니다. 아마도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을 것입니다. 주민 중에 분명 그녀에게 도움을 주는 자가 있습니다. 제가 한 집 한 집씩 찾아볼게요.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면, 가거라.
알겠습니다……
……
장관님, 이 도시의 이상한 현상은 그녀 때문인가요?
난 네게 가보라고 명했었다. 넌 무엇을 보았느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항상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의 행동은 아무런 목적이 없으며, 식사는 배를 채우기 위한 것조차 아닙니다.
그들은 바닷속에 들어가면서도 그걸 자살행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넌 그들을 막았느냐?
네.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니까요.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결과다. 너의 그 시정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렇게 해라.
올바른 결과……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넌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
재판관…… 너의 두 눈, 너의 검은 이베리아 최대의 위협을 감시해야 한다.
네, 장관님!
가장 큰 위협은…… 바닷가로 올라오고 있는 괴물들입니다.
혹시, 바다로 향하고 있는 이들이 괴물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분명……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장관님께선 이상 현상은 단일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들 사이에는 반드시 연관성이 있겠죠.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은밀한 곳에 숨어 이 모든 일을 계획하는 건 에기르입니다!
그들은 바닷가에 잠복해서, 우리 율법의 틈새를 노려 도시 자체를 타락시키고, 우리 동포의 마음을 흔들어 우리의 근골을 갉아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음모가 성공해서 이 도시가 절망의 늪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찾아내 몰살할 것입니다!
가수님…… 가수님? 여기 계신가요?
……
한참 동안 찾았어요. 재판관님은 이곳을 모를 거예요. 여긴 빈집이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찾기가 힘들어요.
알아요…… 당신은 우릴 피해 숨고 싶은 거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수록 좋다고 생각하신 거죠?
여긴 찾기 쉽지 않을 거예요…… 휴…… 여긴 바닷가랑 아주 가깝네요.
이건 파도 소리인가요? 이렇게 크다니. 그리고…… 숨소리를 들었어요.
가수님, 여기서 뭐 하세요? 숨소리가 좀 이상한데요.
너희들은 위험해질 거야.
무슨 소릴…… 윽, 왜 그러세요, 다치신 거예요?
난 피를 흘리고 있어, 어서 가!
도망치겠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재판관님?! 설마 저를 따라온 건가요…… 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내 실력이 일반인에게 발견될 정도는 아니지. 크흠, 물론 너를 미행하지 않더라도 찾아낼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또 너구나.
왜, 겁이라도 먹었나?
아까는, 콜록콜록, 그래 인정하지. 잠깐 방심하는 바람에 널 놓쳤어.
하지만 지금은, 에기르, 기필코 널 붙잡고 말겠어!
하, 하지만, 저분은 이미 부상을 입었는데……
응? 날 막으면서까지 이 위험한 에기르인을 보호하겠단 건가, 시민? 그럼 너도 그녀와 같은 범죄자가 될 거다!
저, 전……
넌 다른 사람이랑 다르군. 적어도, 네 눈엔 아직 공포가 남아 있어.
아직까지 넌 잘못한 게 없다. 그러니 비켜라! 난 검으로 널 상대하고 싶지 않아.
때가 아니야……
무슨 때가 아니라고? 너…… 너 날 무시하는 거야? 내가 널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흥, 내가 장관님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준비는 되어 있어.
최선을 다해 너를 상대해 주마!
검이 채 뽑히기도 전에, 스카디는 재판관의 팔을 꽉 눌러……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뭐, 뭐 하는 거야?
소리 내지 마.
놔, 이 에기르 놈아. 내 손만 누르면 내가 검을 못 쓸 거라 생각하지 마. 내겐 핸드캐논도 있다구……
조용히 해. 저놈들에게 들키겠어.
으윽…… 다른 손까지…… 움직일 수 없잖아……
저기, 무슨 소리 들리지 않나요?
전 들려요…… 끈적거리는 것들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 그것도 아주아주 많아요…… 밖에서 나는 것 같아요.
이게…… 뭐죠? 우리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에요.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예요……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수가 늘어나고 있어.
무엇이 끌어들인 거지? 여기 사람들인가, 아니면 저 녀석들인가?
열 마리……
스무 마리.
……계속 늘어나고 있어. 계속 앞으로 이동하고 있고. 무언가가 저것들을 해안으로 끌어올려 도시로 몰려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 몰려오는 방향이……
교회 쪽이다.
응? 그들이 매우 흥분해 있군요.
……정말 이런 식으로 저것들을 다룰 셈인가요?
단어 사용에 주의하세요. '저것'이라니, 그들은 엄연히 바다의 일부분이고, 이미 바다의 자식이 되었으니, 당신보다 훨씬 더 순수하답니다.
……
아…… 파도의 메시지가 도착했나. 오늘도 특별한 밤이 되겠군요.
그들은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습니다. 동포가 합류하는 날이면 그들은 늘 기뻐서 날뛰며 바다를 나와 육지에 마중이라도 나가고 싶을 정도니까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니까요.
당신은 정말 저것들을 형제로 여기시나요?
안될 게 있나요? 필요하다면 저도 육지에서 이족보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형제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피가 가장 더러운 잡종의 피가 아니었다면, 언젠간 당신에게도 그럴 기회가 올 겁니다.
그래요? 정말 아쉽네요.
(바닷물을 슬쩍 건드린다)
재미있군요. 오늘 밤…… 그들은 각별히 활기찬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옛 친구, 새 친구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궁금하지 않나요? 저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요.
……시끄러워.
너무 시끄럽다. 잠을 잘 수가 없어.
머리를 이불 속에 집어넣어.
안 들릴 거야.
안 보일 거야.
……
윽…… 배고파……
배고프다.
배고프다.
철판……
꺄악!
우와와악……
왔어.
이, 이것들은 뭐야?! 검은색…… 꽃? 아니면 물고기? 왜 움직이는 거지? 징그러워, 우웁……
설마…… 아니, 말도 안 돼!
저것들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혹시…… 들어오려는 걸까요?!
안 돼,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해!
창문을 꼭 닫아……
소용없어요. 여긴 창문이 원래 깨져 있어요. 위를 봐요, 군데군데 틈새가……
……녀석들이 비집고 들어왔어!
으악, 아직도 움직이고 있어! 이 작은 덩어리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계속 밀려오고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만만찮을 리 없는데!
너무 많아요…… 바깥에도 엄청 많이요.
아무리 베도 끝이 없어!
내 등불…… 안 돼. 저 녀석들에게 내 등불은 아무런 소용이 없네.
……탄약도 한 발밖에 안 남았어.
재, 재판관님?!
움직이지 마! 조금 있다가 내가 발포하면 너희 둘은 안으로 도망쳐. 폐허라도 이 깨진 창문보단 낫겠지.
손을 떨고 계시네요……
신성한 경전이…… 내게 힘을 줄 거야.
나, 난 저것들이 두렵지 않아!
죽일 수 있는 만큼 죽이고 금방 나갈게.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너흰 최대한 빨리 달리도록 해……
……
너, 저 아일 데리고 안에 들어가 숨어.
뭐? 무슨 소리야! 너 못 봤어? 난 저렇게 많이는…… 처리 못 해! 저 녀석들 모두 안으로 들어올 텐데, 집 안과 밖은 다를 게 없다고!
기억해, 최대한 문과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
너란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내가 나가서 저 녀석들을 유인할게.
뭐라고?!
가수님, 나가시면 안 돼요……
당신은 확실히 대단해요. 제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더요. 하지만 부상 입으셨잖아요! 게다가 저 괴상한 것들이 너, 너무 많아요!
재판관님도, 나가지 마세요……
우리 같이 숨는 게 어때요? 여, 여기 선반이 있는데, 문도 닫혀요. 바로 뒤에 있어요. 우리 셋이서 비집고 들어가면 아마……
난 나가야 해. 그래야만 너희들이 살 수 있어.
거기 에기르, 지금 영웅 행세라도 하려는가 본데, 지금은 네 차례가 아니라고!
잘 들어. 이건 너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왜냐면…… 저것들은 날 찾아온 거니까.
스카디가 문을 열었다.
오래간만에 맡는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뇌에 스며들었다. 육지의 것이 아닌 생물들이 거리를 빽빽이 메웠다.
그것들은 위아래로 꿈틀거리고, 숨 쉬고, 움츠리며, 부패와 성장을 표방하며 급속도로 확산해갔다. 그리고 문명이 존재했던 땅은 그것들의 거친 몸집 아래 결국 무너져내렸다.
……
……
!!!
스카디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