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7고향
암시장에 도착한 후 이신의 도움으로 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켈시와는 달리, 망설이던 엘리엇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겠다며 사르곤에 남기로 결심하게 된다.
현대
4:14 P.M. 날씨/맑음
사르곤 중부, 이버트 지역, 전쟁 구역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때면, 종종 그때를 떠올리곤 하죠.
작업이 지겹고, 싸구려 원료로 원하는 도구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면…… 그날 보고 들은 게 떠오르곤 합니다.
……너 혼자서 용병들을 전부……
아니에요, 저자가 미리…… 무기에 손을 썼어요. 그리고 무기 자체가 폭발한 거예요.
피도 눈물도 없구나…… 그거 다 네가 만든 거잖아?
어떤 장인이 자신이 만든 물건에 미련을 품죠? 감정을 쏟는 건 더 완벽한 도구를 만들기 위함이지, 그 감정에 얽매이려는 게 아닙니다.
이미 계획된 거군요.
모두에게 불리한 요소를 처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윽, 탄 냄새……
로도스 아일랜드를 평화주의자라 할 셈은 아니겠죠?
훗…… 적어도 당신들은 아니니까요.
……그날 보고 들었다는 건 또 뭐지?
아, 그녀가 싸우는 걸 직접 본 적 있습니까?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죠.
……다 왔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살카즈…… 마족, 그분이 이겼습니다, 이겼어요! 늙은 이신은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크흠, 계속 그렇게 따라다닐 건가요?
켈시 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까요. 켈시 님이 사르곤을 떠나기 전까지 늙은 이신에게는 그분의 말씀은 법과도 같습니다.
……윽, 저건……?
언덕을 넘자, 점점 익숙해지는 모래바람 속에 오리지늄 화약과 피비린내가 섞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이 먼지 안개를 밀어내자, 햇빛 아래에서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그곳엔 켈시가 서 있었다.
무척이나 평온한 모습으로……
……쿨럭, 쿨럭……
이름 없는 자여…… 넌 전사가 될 수 있었는데, 살카즈의 전사로.
……난 내 몫을 다 했다, 캐스터.
죽이지 않는 거냐?
난……
(분노한 듯) 그르르르르……
쳇, 망할 괴물 녀석…… 목숨 걸고 덤볐는데 상처 하나 내는 것도 안 된다는 거냐?
크르르르르!!!!!
Mon3tr, 그만해.
상처가 심해서 곧 죽게 될 테니까.
(불만스러운 듯) 크르르!
허억…… 허억…… 쳇, 우리가 파디샤의 수고를 덜어준 셈인 건가……
살카즈, 이름이 뭐지?
퉷, 어떤 걸 듣고 싶은 거냐?
캐스터…… 네가 말한 그 카즈델…… 지금은 어떤 모습이지?
여전히 엉망이야.
하지만 살카즈들은 터전을 짓고 있어.
터……전? 살카즈나 감염자가 가질 수 있는 건가, 쿨럭……
난 사르곤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살카즈는 '카즈델'을 셀 수 없이 지어왔지. 삶의 터전을 세우려 했지만 늘 실패했어.
'터전'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의 카즈델은 그 단어 본연의 뜻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
'티카즈'들에게는 집이 있어야 해.
쳇, 듣고 보니……
……꽤 그럴듯한걸……
……
아아, 불쌍도 하지! 불쌍한 마족이 죽고 말았군요!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기척이 심상치 않더군요.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혼자서 저 사람들을 전부……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젓는다)
아, 그래……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둘이서 용병 부대를 쓰러뜨린 건가요? 상대는 모두 몇 명이었죠?
쉽진 않았어. 놈들이 Mon3tr에 겁먹지 않았다면 나도 위험할 뻔했으니까.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레드혼을 떠난 뒤로 지금까지 모두 일곱 번의 소규모 충돌이 있었어.
지금까지는 살카즈 용병 부대였지만 다음에는 아미르의 부대, 파디샤의 정예 부대를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어쨌든 우리를 쫓고 있는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어.
저들을 죽일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이는군요.
부인하지는 않겠어.
살카즈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은데…… 앗, 묻지 말았어야 할 걸 물었군요. 늙은 이신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곧 해가 떨어질 겁니다. 켈시 님, 시신을 빨리 묻어야 할 것 같군요. 저들의 버기카라면 비용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둘러.
지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엘리엇은 그런 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지금까진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순진한 덕에 뛰어난 재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켈시의 몇 마디 말에 최선을 다하는 이신의 행동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득한 과거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르곤의 사막을 바라보며, 자신이 원하는 답을 가르쳐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과연 답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여기입니다…… 옛 시장의 입구, 여기가 바로 리프스팁 마을입니다.
사르곤의 또 다른 마을……
길은 알고 있습니다…… 옛 시장은 비밀이 아니죠. 이곳에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걸 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이신? 사막에서 죽은 거 아니었나?
늙은 이신은 운이 좋으니까요.
엇, 네 뒤에는…… 컬럼비아인? 도주 중인 컬럼비아인이라…… 그렇다면 들고 있는 상자도 분명 비싸겠군.
……!
겁먹을 것 없어. 금화 400닢을 줄 테니 그 상자를 내게 넘겨.
미안, 이건 파는 게 아냐.
……쩝, 아쉽게 됐군.
뭐 상관없어. 나중에 다시 거래할 기회가 있겠지. 안 그래, 이신? 후후후!
신경 쓰지 마십시오, 흔한 일입니다.
정말 관심 있던 게 아니니까요……
정말 상자를 갖고 싶었던 거라면, 오늘부터 눈도 못 붙이겠군.
금화 400닢이라는데요……?
리프스팁 암시장이라 그렇습니다…… 이버트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곳이죠.
……이곳에 얼마 동안 머물러야 하나요?
먼 길을 가야 하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름 정도면 될 것 같군요.
이신, 잘 부탁해.
으음, 뭘 하시는…… 돈? 돈은 필요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줘. 적들이 여전히 뒤쫓아오고 있으니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금화는 거두어 주십시오…… 대신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좋아. 언제든지 물어봐. 지금이라도 괜찮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늙어버려서…… 많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군요.
불행하게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이신은 단서를 찾고 싶습니다만……
켈시 님은 젊으니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당신은 그 도시, 그 바람 속에 사라진 비밀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뭘 기억하고 싶은 거지, 늙은 사브라?
늙은 이신은 한때 파디샤를 모셨습니다…… 리프스팁을 다스리는 파디샤께선 늙은 이신을 좋게 봐주셨죠.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여한이 없다 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평생 갚을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디샤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늙은 이신은 죽어 마땅하지만, 파디샤의 말씀을 떠올리기 전에는 감히 죽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도시를 무너뜨린 재앙을 겪은 후 길을 잃었나 보군.
한참 되었지요. 켈시 님은 그 끔찍한 사건마저 기억하고 계신데……
……리프스팁을 지배한 파디샤에 대해 역사적으로 기록된 건 많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역사와 노래에선 사브라의 점술사에 관한 흔적은 없더군.
자신이 누군지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아,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켈시 님이 이곳을 떠나셔도,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늙은 이신은 묵묵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부디 기억해내 주십시오, 그전까지 전 죽지도 못할 겁니다.
약속할게.
따라오십시오. 이곳에 집이 있습니다. 늙은 이신의 오래된 집……
엇?
그냥 평범한…… 잠깐, 이건 뭐죠?
……순금?
수, 순금이 이렇게 잔뜩?!
늙은 이신의 재산입니다…… 그동안 쓸 일이 없었는데 이젠 쓸 수 있어서 기쁘군요.
이 정도의 재산을 아무도 노리는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과거의 신하라 쓸모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래도 지켜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위해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뭘 알고 싶은 거지?
아주…… 많이 알고 싶습니다……
당신이 알고 계신 모든 것을요.
……그런데 바닥이 무척 차가워요.
이곳은 '암시장'이 되기 전까지 그냥 평범한 지하 시장이었어. 재앙에 시달리는 지역에는 흔한 일이야.
……밤이 되면 불빛은 지하로 이동했지.
……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당신을 따라 이렇게 한참, 이렇게 멀리 도망치다 보니 궁금한 게 많아요. 가령 기억을 잃은 사브라인이라든지……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도시가 존재했어. 광활한 이버트 대륙에서 유일한…… 이동도시가.
도시를 짓는 건 언제나 기적처럼 여겨졌어. 당시 리프스팁의 파디샤가 국정을 돌보면서 이버트 지역은 전례 없는 단결을 이루어냈지…… 그 단결의 상징이 바로 모래바람이 날리는 도시였던 거야.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지.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이라, 옛 영광에 취한 사람들도 여전히 많아.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어. 재앙이 들이닥치자, 파디샤는 사람들을 대피시킨 후 몰려든 재앙을 향해 절규했다고 해. 멸망할 때까지 말이야……
……절규했다고요? 재앙을 향해?
역사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 다소 부풀린 것 같지만……
리프스팁의 위대한 업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많은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난민으로 전락했어. 함께 터전을 세울 수 있었지만 도시를 따라…… 모래바람 속에서 모두 잊혔던 거야.
……
이신도 그중 한 명일 뿐이야. 아미르와 새로운 파디샤는 도시를 재건하는 데 돈을 쓸 생각이 없어. 그들의 후손들도 당연히 도시를 지을 방법을 더는 찾지 못할 거야.
그 때문에 울분에 휩싸인 그들은…… '리프스팁'을 존중하는 사람을 똑같이 존중해 주는 거야.
그러니까…… 동포를 돕듯 우리를 돕는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사르곤을 빨리 떠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죠?
모든 게 순조롭다면 이번 달 안에 사르곤의 국경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우르수스로 가나요?
응.
어째서죠?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컬럼비아에서 사르곤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우리의 연구 성과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걸 막기 위한 건가요? 전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연쇄 반응이 불러올 끔찍한 결과를 너흰 예측할 수 없으니까.
……당신은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굳이 답을 듣고 싶다면 '그래'.
날 죽인 뒤에 상자를 파괴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허락하셨죠.
내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아뇨.
처음에는…… 혼자 살아남은 사실에 괴로웠지만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켈시 씨, 만약 이 상자를 건네주면 저를…… 아니, 우리를 위해 복수해 줄 수 있나요?
이버트의 아미르도 연루됐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사르곤부터 컬럼비아까지 이번 음모의 공범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그래도 그들이 대가를 치렀으면 해요.
상자…… 이 상자가, 제 유일한 카드예요.
하지만 그걸 망가뜨리면 네겐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텐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요?
사실…… 사실 처음부터 이 상자는 필요 없었어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요. 저라면 지난 성과를 재현할 수 있을 거예요.
너……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더 까다로운 문제도 만날 테고요…… 하지만 전 제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말대로 오리지늄의 에너지를 무기로 바꾼다면……
……
……처음으로 절 똑바로 봐주네요. 어린아이나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과학자이자 컬럼비아인으로요.
어리다는 이유로 네 가능성을 너무 무시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걱정하지 마요. 선생님의 성과를 살인자들의 무기로 전락시키진 않을 거니까요. 절대로!
하지만 저는 이걸로 마지막 일을 할 생각이에요.
……쏜 교수가 연구를 시작한 이유를 넌 전혀 몰라.
이 기술의 프로토타입은 한 고고학 팀이 살카즈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이동도시를 위해 새롭고, 편리한 에너지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체적인 사용법에 따라서는 사르곤의 반을 모래 속에 파묻히게 할 수도 있어.
흐음……
……당신은 원래 용병의 리더였죠? 만일에 대비해 다른 대책을 생각해 놨을 것 같은데…… 그렇죠? '작전 고문님'?
이를테면…… 지금 바로 절 해치운다든가. 당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
(기분 좋은 듯 반응하며) 그르르그르르.
……
……
……방으로 돌아가자.
당신……!
잘난 체하기는. 지금의 넌 제대로 된 선택도 할 수 없어.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잘 생각해 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먼 곳으로 간다고?
늙은 이신은 가지 않아요……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겁니다.
뭐, 알아서 해. 돈을 내면 물건을 주지, 간단해!
포장해줄까?
괘, 괜찮습니다. 그분의 행방을 여러 사람한테 알려선 안 되거든요……
이신.
아,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약, 음식, 물, 그리고 소량의 정제된 오리지늄각뿔까지.
이 차량은 훔쳐 온 장물이야. 와이번인의 손을 거쳐 몇 차례 개조한 거지.
좀 낡은 거 빼곤 쓸 만해. 게다가 웬만한 기능은 다 탑재되어 있어서 쓰는 데 별문제는 없을 거야. 거기다 빌어먹을 다연발 유탄발사기마저 달렸어.
북쪽으로 간다지? 설마 사미에 가는 건가? 흐음, 정말 갈 수 있는 거야?
여기 수고비입니다……
……순금으로 내겠다고? 난 잔돈은 안 돌려줘. 엄청 귀찮거든.
늙은 이신은 보상을 언제나 섭섭지 않게 드리죠. 예전에 대접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후후, 들러줘서 고마워!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지.
알겠습니다…… 별문제가 없다면 사흘 안에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라이타니엔의 아츠 유닛 부품이 좋긴 한데, 거추장스럽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편이라…… 역시 컬럼비아에서 만든 게 좋아.
……미노스의 오리지늄으로 만든 무기를 구해왔어, 그놈들은……
……우린 애프터서비스 같은 거 안 해줘, 낙장불입 몰라?
호오, 활기 넘치는군요…… 마음에 듭니다.
이곳에서 부와 명예를 이뤘는데, 굳이 이버트의 다른 지역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사르곤인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 생각이 꺼져가는 늙은 이신의 생명을 붙들어 주고 있죠.
사브라인의 평균 수명을 생각해 보면 꽤 오래 산 것 같은데, 오리지늄 아츠 때문인가?
늙은 이신은…… 자신의 오리지늄 아츠가 뭔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오리지늄 수정구를 다루는 법이 어렴풋이 떠오르긴 하는데 가장 눈부셨던 시대에는 어떻게 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순한 생리적인 질병은 아니네. 대뇌와 몸이 어떤 아츠의 영향을 받고 있을 거야.
……켈시 님. 리프스팁이 비바람 속에 사라진 지금, 단서를 찾을 만한 곳이라면 사르곤의 중심일 겁니다.
전설 속 황금의 도시에 가보셨습니까?
사르곤의 왕도를 말하는 건가?
산업 기반이 점점 발달하는 지금의 사르곤 왕도는 여전히 이동도시로 천도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모래바람은 늘 사르곤의 벽을 두드리며, 아득한 세월을 뛰어넘지요……
재앙도 사르곤의 중심을 뒤흔들지는 못할 거야.
늙은 이신은 잊어버린 것을 떠올리게 해줄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 갈 수 없지만……
각지의 파디샤와 황은을 입은 몇몇 아미르만이 모래바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도시를 접견할 기회가 있을 거야.
답을 얻고 싶다고 했지?
늙은 이신은 단 하나의 꿈만 기억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뜨거운 땅 위에서 병사들이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
그들은 가는 곳마다 새빨갛게 물들이며 사르곤 최남단 지평선을 뚫고 들어갔죠……
하지만 이건 리프스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과연 이게 늙은 이신의 과거에 관한 단서일까요?
잠깐, 그, 그건……
기다려……
네가 그걸 알 턱이 없을 텐데? ……나이츠모라의 케식이 원정길에 오른 건 천 년도 더 됐는데…… 리프스팁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야?
케식…… 나이츠모라의 막사…… 알고 있습니다. 늙은 이신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
……나이츠모라의 후손을 모신 건가?
사르곤의 황제가 나이츠모라의 피가 흐르는 쿠란타를 파디샤로 임명한 건가?
……늙은 이신은 아마……
파디샤…… 리프스팁의 파디샤…… 늙은 이신의 주인님은 쿠란타입니까? 나이츠모라의 후손이었나요?
당신과 함께 파수꾼의 벽으로 가서,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핏줄이 이룬 위업을 들려줬을 테지.
……!!
벽…… 맞습니다. 하지만 성벽만 있는 게 아니라 남쪽…… 더 남쪽에 있는 사르곤인들이 넘보지 못하는 뜨거운 땅, 인간이 알지 못하는 대지의 입구……
……나이츠모라. 파디샤로 임명된 나이츠모라…… 이버트 지역은 그가 정치적 업적을 세운 중심이었어.
그는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정복에 대한 갈망으로……
……이 사막을 정복하려 했었죠…… 예, 파디샤는 사막을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이끌어 함께 새로운 도시…… 이동도시를 세우려 하셨죠……
역사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거의 성공할 뻔했다던데.
오히려 당신이 그의 삶 속에서 길을 잃은 거였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저는……
생각났습니다……
저는 수호자도 아니고…… 파디샤의 심복도 아닙니다…… 늙은 이신은 그저, 수많은 신하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
아…… 생각났습니다!…… 아니, 아니!…… 그해 여름밤이었나요?
쿨럭, 쿨럭!
진정해.
……
예…… 나이 탓에 많은 기억이 흐릿해졌습니다…… 맞습니다…… 파디샤는 별이 빛나는 밤마다 황궁에서 연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죠……
아, 아닙니다…… 흐으흑…… 늙은 이신은…… 그분의 영광을 나눌 자격이 없습니다…… 흐으흑……
파디샤의 오리지늄 아츠에 영향을 받은 데다 오랜 악몽에 기억이 왜곡된 것 같군…… 그렇다고 해서 파디샤가 일부러 이런 짓을 한 건 아닐 거야.
……저희들이 원한 겁니다. 모두 위대한 환상, 호기심, 동경과 지식에 대한 갈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디샤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자신의 꿈에서 길을 잃었군.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데…… 늙은 이신은 그래선 안 됐는데……
……
부,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발 늙은 이신을 혼자…… 혼자 있게 해 주십시오.
……!
내일 출발한다.
……이신은요?
진정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너무 오랜 시간을 악몽에 시달린 탓에 꿈에서 과거를 껴안고 있던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이제 그 상자는 필요 없어.
최후의 카드였지만 사르곤을 떠나게 될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이건 제 거예요.
내 마지막 카드라고요.
……그러니까 너에게 결정권을 주는 거야.
어떻게 할래?
……!
강요하지 말아요……
강요할 생각 없어. 그 기술을 네가 재현해 원래의…… 형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지금의 오리지늄 기술로는 위협이 될 수 없으니까.
……쳇.
젊은 연구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상자를 내려놨다.
목숨 걸고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이, 이건……
푸르스름한 오리지늄 결정에서 희미하지만 또렷한 빛이 쏟아졌다.
……아름다워.
이게……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가요?
……단순한 샘플로는 그 위험성을 설명할 순 없어. 하지만 핵심 원리를 파악한다면 마을을 밀어버릴 만큼 위력적인 유탄을 만드는 일이 훨씬 쉬워지겠지.
이버트의 아미르나 무라드 파디샤가 그 기술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기술은 발전하고 악심을 품은 사람은 언젠간 손에 넣겠죠.
……사실 이 오리지늄 결정은 특별해.
오리지늄으로서 지닌 기본 성질은 특별할 게 없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된 이유는 고대 탐사를 통해 찾아낸 거였어.
발굴팀은 언제나 많은 비밀을 발견하죠……
컬럼비아에서 이런 오리지늄 샘플을 3개밖에 발견하지 못했는데, 3개 모두 예외 없이…… 어떤 살카즈의 유적지 근처에서 발견한 거야.
그걸 부수면 어떻게 되나요?
샘플의 폭발 범위는 이미 실험에 투입된 전기에너지 장치보다 못하지만, 원래의 성질은 우리를 다른 위험…… 즉, 광석병에 노출시킬 거다.
될 대로 돼라죠.
이게 특별하다고 했죠? 잘됐네요. 제게 좋은 해결책이 있어요.
……자, 잠깐!
안돼…… Mon3tr, 엘리엇을 지켜!
(불만스러운 듯) 크르르르!!
소년은 아름다운 결정을 깨뜨렸다.
순식간에 전기에너지의 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큭…… 어, 어째서 막는 거죠!……
……내 말 못 알아들은 거야? 이건 오리지늄이야!
감염될 거라고.
하아…… 하아……
그래서요!?
……
감염자를 미워하나요? 그들을 증오하냐고요?
마침 잘됐네요. 이렇게 하면 더는 신세 질 필요 없으니까!
……나도 감염자야.
그, 그게 무슨……
윽! 악……! 머, 머리가…… 으으윽!!
급성 감염 증세야. 당장 치료해야 해.
시, 싫어…… 으윽, 필요 없……!
나는 단지 몇 시간 후에 네가 오리지늄 분진으로 변해 사라지는 걸 막으려는 것뿐이야.
넌 잘못된 길을 골랐어, 엘리엇.
자신의 운명을 부숴버리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거야.
허억…… 윽…… 으아아악!
……엘리엇 글로버.
넌 이제 감염자다. 네 스스로, 선택한 운명……
하악…… 하악…… 아아악!
그렇다면…… 저는 제 운명이 더 마음에 들어요……
구차하게 연명하고 싶지 않다면, 여러 방법을 제공해 줄 수 있어.
아뇨…… 전 그저…… 크흑……
이렇게……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미안해요…… 끌어들여서……
미안할 줄도 알아?
당신을 미워했으니까요, 켈시……
더는 날 컬럼비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켈시,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누구도 당신의 행동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겠지만……
크흑…… 하지만 이젠 모두 끝났어요. 그렇죠?
……
하악, 하악……
출발 시간은 그대로야. 넌 당장 휴식을 취해야 해.
……광석병은 이런 건가요?
사람마다 달라.
그럼 이제…… 아츠 유닛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츠 장치를 실험할 수 있나요?
넌 체계적인 오리지늄 아츠 교육을 받지 않아서 더 빨리 죽게 될 거야.
그러니까, 해도 된다는 거군요.
……
후…… 좋아요.
……앞으로 쭉 가면 암시장에서 나가는 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길은 늙은 이신만 압니다. 누구도 그곳에 발을 디딘 적 없죠.
제단……
무덤……
켈시 님……가시는 길을 방해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
……
엘리엇.
난 우르수스에 갈 거야.
……알고 있어요. 그걸 지금 말하는 건 무슨 뜻이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와 계속 동행할지를…… 묻는 거야……
넌 컬럼비아로 돌아가서 네 꿈을 계속 펼칠 수 있었잖아. 적어도 네가 그런 선택을 내리기 전까지.
……
아니면…… 여기 남도록 해.
……!!
이신의 말이 맞아. 누구도 타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어.
이신이 널 도와줄 거야.
……켈시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늙은 이신은 기꺼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와서……
내겐 너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없어.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걸 극단적인 방식으로 내게 입증했지만, 너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잖아.
……
쉽게 말해…… 전쟁, 살카즈 주술의 유산이 일으킬 사르곤의 내란, 내지 대규모 오리지늄 감염을 막는 것…… 이게 내 목적이야.
그러니까…… 지금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계획 때문에 죽게 된 사람들은 어쩔 건데요?
알아요, 당신은 날 구했고, 우리를 구하려 했다는 걸. 당신에게 은혜를 졌어요……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죄는 '전쟁을 일으키려던 음모'가 아니었잖아요……
왜냐면…… 전쟁은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켈시.
당신은 보셨잖아요.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전투에서 당신은 몇 명이나 죽였었나요? 또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파디샤, 아미르…… 내란은 이미 시작됐어요. 설마 이 소동이 끝난다고 그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잔치라도 열까요?
……사르곤 귀족과 아미르 사이 이익과 권력관계를 넌 아직 몰라. 그들의 부패와 오만은 오히려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어.
그래서…… 당신은 아무렇게나 결론 내리고, 여길 떠날 작정인가요?
전 못해요, 켈시. 미안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들을 모두 찾아낼 거예요.
……
사르곤부터 컬럼비아까지……
한 명, 한 명.
아아…… 이 집념은.
이 아이는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켈시 님.
……
자신이 선택한 거야, 이신.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늙은 이신은 오래 살았으니 불씨를 남겨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절 도와줄 건가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렇다면 켈시……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악몽에서 깨어난 노인의 눈가에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젊은 연구원은 깊은 생각에 잠겼고, 마음속의 분노는 감염의 고통마저 덮어버렸다.
켈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방랑자는 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켈시 님, 늙은 이신에 대한 사례금은 잊지 말아 주십시오.
20여 년 후, 켈시 님은 금화 한 닢을 가지고 돌아와 이 무력한 영혼을 데려가 주실 겁니다.
……
Mon3tr,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