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8그림자와 잿빛
“르무엔, 모스티마, 이반젤리스타 11세, 심지어 라테라노 전체가 널 용서한다고 해도…… 난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곳은 이베리아의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지도에서든 역사책에서든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을 때, 그 마을은 로카마레아라고 불렸다.
로카마레아의 주교가 한 어린 산크타를 키웠다. 그 산크타는…… 마을에서 자라고 공부하며 평생 가장 아름다운 세월을 보냈다.
마을은 소박하고 척박한 곳이긴 했지만, 경건한 삶은 원래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고요함 이후의 이베리아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렸다.
한 번의 역병, 한 번의 기근, 미리 계획된 단 한 번의 침공만으로도 모든 것이 붕괴하기에 충분했다.
고향이 아닌 고향을 구하기 위해, 그 산크타는 신성한 도시 라테라노에 찾아와 아주 사소한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너는 우리의 일원이지만, 그들은 아니다.
산크타가 이베리아로 돌아갔을 때,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평평해졌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사막에서 사라진 한 알의 모래처럼, 마치 파도에 스며든 한 방울의 물처럼.
그 후, 기나긴 여정 끝에 산크타는 라테라노에 다시 돌아왔다. 앙상한 몰골을 한 그의 모습은 마치 방황하는 망령 같았다.
산크타는 예배당에 가서 성현으로 봉해진 주교를 만나 해답을 구하고 인도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현이라 할지라도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산크타는 벤치에 앉았다. 그는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거기에 앉아 있었다.
내가 처음 안도아인을 만난 게 바로 그때야, 피아메타.
하아.
뭐, 어쩔 수 없지. 사비를 털어야겠군. 여기 수리 비용은 너무 비싸단 말이지.
앞으로 애프터눈 티의 디저트를 반으로 줄여야겠군.
교황님! 대성당에서 전투 소리가 들리던데, 괜찮으십니까?
이건……?! 이단자가 습격한 겁니까? ……저의 불찰입니다!
괜찮다, 파올라리오. 지난 대성당 팔씨름 대회의 우승자가 누군지 기억하나?
……교황님이십니다.
조금 팔을 움직이려다가 실수로 작은 사고가 발생했을 뿐이야.
도시의 소동은 이미 수습된 모양이군.
맞습니다. 놈들은 이미 철수했습니다. 제가 시원하게 공격을 퍼붓기도 전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크흠, 죄송합니다, 교황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찾으신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거라, 아이들아.
안녕하십니까. 교황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교황님, 안녕하세요. 저는 체첼리아라고 해요.
아, 어서 오렴. 그런데 여긴 좀 어수선한데 말이지.
너희는……
차를 마실 때 보통 어떤 디저트를 곁들이나?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음, 어디 보자……
자신의 찻잔에 각설탕 하나를 넣는 건 어떻니?
에젤, 너는 더 넣거라. 당분은 긴장을 풀어줄 테니 말이지.
앗! 네, 알겠습니다……
교황님, 만약 제가…… 라테라노를 떠나고 싶다면 허락해 주실 건가요?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말에 따를 건가?
아마 따르지 않을 거예요.
그럼 그냥 가면 된다.
……교황님?
난 그저 불쌍한 늙은이야. 가장 큰 소원은 폭신폭신한 흔들의자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는 건데, 어린 소녀의 여행 계획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체첼리아는……
그래서 뭐? 체첼리아가 설마 천사와 악마의 혼혈이고, 계시를 내린 성도라도 된다는 건가?
체첼리아는 그저 바깥세상이 궁금한 꼬마 아가씨일 뿐이야. 그렇지?
……
엄마의 수호총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니?
앗, 죄송해요! 역시 에젤 오빠한테 맡기는 게 좋을까요……
하지만……
괜찮단다, 아이야.
수호총을 받는 건 엄숙한 일이다. 성대한 의식을 치르고 보호자가 출석하고 멘토가 동의해야 하지. 게다가 여러 가지 귀찮은 서류 절차도 필요하고……
하지만, 넌 아직 수호총을 가질 나이가 안 됐잖니. 그러니까…… 모른 척하고 가져가렴.
정말 그래도 되나요?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는 못 하겠구나. 모든 수호총은 라테라노의 귀한 재산이니까.
다만 한 아이가 엄마가 남긴 것을 그리워하는 것뿐이라면,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가져가려무나, 아이야. 지금의 너로서는 방아쇠를 당기거나 나쁜 놈을 처치하진 못하겠지만…… 수호총과 함께라면 어딜 가든 네가 라테라노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줄 거란다.
……네, 감사합니다, 교황님.
에젤, 체첼리아와 함께 가거라. 장기 외근 임무라 생각하도록.
가끔씩 얼굴을 보이러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
제게…… 정말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물론 있고말고. 자네는 이미 선택했잖나. 아닌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체첼리아가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자, 그럼 가거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나이가 되면 온통 낮잠을 잘 생각밖에 없으니 말이야.
……교황 할아버지.
전 계속 나아갈 거예요.
……그렇구나.
너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마.
교황님,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그 아이들과 같이 디저트를 먹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교황님의 지시대로 그 남자는 이미 떠났습니다.
조금 더 붙잡아 둘걸 그랬나? 초콜릿이라도 하나 먹으면 더 힘이 나지 않았을까?
……교황님은 정에 너무 약하십니다.
아니다, 벨리브. 우린 절대 추운 밤의 화톳불이 될 수 없어.
하지만 장작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차 한잔 정도는…… 대접할 수 있지.
“이 땅에서 선함과 아름다움을 용납하긴 어렵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꼭 성공할 수 있기를.
우리도 슬슬 다음 일을 해야겠군. 소동이 수습됐으니 각국 사절들을 소집하도록 하지.
계시가 밝혀졌으니,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나는 그날 밤의 일을 자주 떠올린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소탕 작전이었고, 상대는 평범한 살카즈 약탈자 무리였다.
우리는 약탈자들의 흔적을 따라 그곳을 찾아냈다.
이상하게도 그들에겐 어떤 적의도 없었다.
그…… 자신의 시간 속에 멈춘 채 남겨진 흔적들.
나는 임시 지원 요청을 받고…… 너희들과 헤어졌다.
나는 너희들을 떠났다.
지원을 요청한 위치는 매우 가까워 다녀와도 반나절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나는 발밑 벽돌의 얼룩덜룩한 무늬와 차가운 빗물이 얼굴에 떨어지던 느낌을 기억한다.
나는 너의 검은 뿔과 꼭 감은 네 두 눈도 기억한다.
그리고 행방이 묘연해진 안도아인까지.
그냥…… 소탕 작전이었을 뿐인데.
그냥 소탕 작전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곳에 남아 너희와 함께 있었다면, 이 모든 게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적어도……
내가 돌아왔을 때,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모든 것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는 아니겠지.
이런 느낌 정말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나는 너희와 함께 짊어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 피아메타. 넌 아무것도 짊어질 필요 없어.
아니, 이건 내 결정이야.
그 녀석이 어떤 힘을 노리고 있었든, 어떤 비밀을 캐려고 했든, 어떤 답을 얻으려고 했든, 아무래도 좋아.
그 녀석의 숭고한 이상과 위대한 사업이 누굴 구원하고 누굴 이끌었는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하지만 난 용서하지 않는다.
신앙을, 라테라노를, 호위대를, 심지어 지나간 세월을 위해서도 아니야……
내가 용서하지 않는 이유는……
안도아인, 너를 믿는 사람을 배신했기 때문이야.
……너희구나.
……네가 어떻게 멀쩡한 모습으로 여기 나타날 수 있지?!
어째서 교황님까지도……
어째서라……
어째서…… 무엇이 어째서일까…… 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허무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게 너의 참회야?
참회? 아니, 난 참회하지 않아…… 내가 뭘 위해 참회할 수 있을까? 빛도 없고 미래도 없고, 수난자는 반드시 피해를 입고, 비애자는 반드시 슬픔에 빠질 건데……
구원도 없고, 낙원도 없어. 여긴 라테라노야, 여기는 우리만의 라테라노야……
빛 자체가 헛것이라면…… 아니, 헛것이 아니라…… 실재하지만…… 우리의 바람에 못 미칠 뿐……
빛은 존재한 적이 없는데…… 뭘 비춘다는 말인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거야, 안도아인?!
……내가 포기한 건가?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포기한 건가?
이렇게 두꺼운 장벽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난 거짓된 희망을 퍼뜨리는 사기꾼일지도 몰라…… 나조차도 내 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모르겠어, 난 모르겠어. 그것의 판단은 뭘까? 그것은 날 어디로 보내고 싶은 걸까? 그것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내 길을 막아버렸는데……
난 대체 어디를 향해 찾아야 할까?
안도아인! 정신 차려! 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똑바로 보라고!
누구…… 아…… 피아메타……
너 혹시 미친 거 아니야?! 당당하고 떳떳했던 네 모습은 어디 갔어? 누구한테 정신이라도 홀린 거야?!
난 미친놈한테 죄를 묻고 싶지 않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는지 똑바로 보라고!
……난 라테라노에 있어, 피아메타. 난 대성당 위에 있지.
너희와 다시 만나서 반가웠어…… 아니, 지금은 조금도 반갑지 않아.
……
……막을 줄은 아네?
너한테 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사과해, 안도아인.
지금, 무릎 꿇고, 모스티마한테, 그리고 르무엔이 있는 쪽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해!
……
네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셀 수도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
너 이 *라테라노 비속어*, 아직도 잘난 척하는 거야?!
그런 적 없어.
잘 들어, 안도아인. 네 신념이 뭐든 그 신념이 끝장나든 말든 난 관심 없어.
르무엔, 모스티마, 이반젤리스타 11세, 심지어 라테라노 전체가 널 용서한다고 해도…… 난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미안해, 피아메타.
네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때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난 또다시 그렇게 할 거야.
……너, 진심이야? 피아메타 앞에서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게다가 넌 지금……
좋아, 안도아인.
총을 꺼내.
이렇게는 결과를 낼 수 없을 거란 걸 너도 알잖아.
내가 *라테라노 비속어* 결과를 보려고 이러는 줄 알아?! 여기서 널 죽여버리면 르무엔의 지난 8년이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해?! 모스티마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아?!
그 *라테라노 비속어*의 결과!
내가 너랑 끝장을 내려는 건, 나는 *라테라노 비속어* 그저 너랑 끝장을 내고 싶기 때문이야! 알겠어? 안도아인!
……그게 네 집념인가, 피아메타?
그렇다면 어쩔 건데?
다시 한번 말한다, 안도아인…… 총을 꺼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