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1등잔 밑이 어둡다
파티아라는 리베리가 나타나 체첼리아의 보호자라고 자처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네가 만약 진심으로 체첼리아를 걱정한다면 그 아이를 공증소나 교황청에 넘기지 마”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휠체어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응, 회복이 잘 되어서.
작년에 여기서 휠체어 스피드 사격 대회를 치렀었는데 내가 우승했어…… 그 뒤로 의사한테 출전 금지당했고.
너보다 사격 실력이 더 나은 사람을 찾으려면 아마도 총기사 쪽에서 찾아봐야 할걸.
어머, 말을 참 이쁘게 하네.
누구는 우리 귀여운 피아메타처럼 환자인 나에게 듣기 좋은 말 몇 마디를 해주면 더 좋았을 텐데.
모스티마, 넌 또 거기서 커튼인 척할 거야?
내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르무엔.
글쎄, 어떤 캐릭터였을까? 넌 2, 3년 만에 한 번씩 돌아와서 기억이 잘 안 나네.
뭐, 됐다. 아무튼 르무엔의 사격 실력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최고지.
응응, 그거면 됐어.
엘은 용문에서 잘 지내?
얼마 전에 만났는데 잘 지내고 있더라고.
엘을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네 걱정이나 해.
그 말은, 그대로 너에게 돌려줄게.
너흰 이번에 얼마나 있을 예정이야?
글쎄. 적어도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있으니까, 아마 다다음주 수요일이었지?
화요일이야.
이런, 화요일이었구나. 나머지는 그 영감탱이의 기분에 달렸지. 내게 또 이상한 임무를 배정할지 누가 알아.
교황님에게 영감탱이라니……
본인도 개의치 않을걸, 피아메타.
너희들이 오래 있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정말?
넌 이미 알았지?
뭔 소리야? 너희 무슨 얘기 하는 건데?
피아메타, 너 정말 눈치 못 챘어?
지난 반년 동안, 우리 보고서가 누구의 손에 닿았을까?
그렇게 티 났어?
뭐, 뭐라고? ……그래서, 르무엔 너…… 설마 교황청에서 일하기 시작한 거야? 넌 아직 재활 중이잖아……?
걱정 마, 피아메타, 서류 작업뿐이니까.
넌 그 길로 계속 나아갈 거야?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럼 호위대로 돌아올 생각은?
거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훌륭한 사격 실력을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운데.
피아메타는 날 높이 평가해 주는구나. 분명 나 때문에 일을 망쳤는데.
……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르무엔.
그렇다고 네 책임도 아니잖아, 피아메타.
자신을 너무 옥죄이지 마.
……언젠가는 그 녀석을 찾아가 따질 거야.
……하아, 모스티마……
네 뿔을 좀 만져봐도 될까?
안 돼.
옹졸하게 굴긴.
르무엔은 창밖을 바라보았고, 모스티마는 창가에 기대어 손에 쥔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피아메타는 어렴풋이 그 시절을 떠올렸다.
라테라노의 이른 봄, 햇볕은 늘 화창하였으나 날은 아직 약간 쌀쌀했다.
창문 너머로 크고 작은 성당의 지붕이 보였고, 이따금 파울비스트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평소에 조용하던 르무엔이 가끔 한두 마디 내뱉으면, 공기조차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쿨한 척하던 모스티마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여느 때처럼.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이건 착각일 뿐이다.
그녀는 그때부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르무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르무엔.
이 병원에 자원봉사자가 많아?
응? 그냥 평범한 것 같은데.
들어오세요.
르무엔 씨, 보여드릴 게 있……
어, 손님이 계셨네요?
괜찮아요. 이분들은 모두 옛 전우들이에요.
전우요…… 그럼 혹시!
네, 맞아요.
그렇다면, 세분이 함께 이 검사 결과를 봐도 괜찮겠네요……
오렌,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건지 알고 있습니까?
네가 좀 알려주지 그래?
샤론 부인은 당신의 행동을 '개인 행위'라 간주하지 않을 겁니다.
그 여자는 우리가 일부러 '라테라노의 태도'를 보여줬다고 생각하겠지.
자칫하면 이게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어요.
그건 네가 바라던 일 아니야?
충돌이 문제를 일으키고, 문제에는 해결이 필요하고, 해결에는 방법이 필요하지.
마침 라테라노도 새로운 해결 방법을 제공하고 있잖아.
라테라노가 이런 해결 방법을 제공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발언에 충분히 무게가 있어야 하고, 우리의 발언이 충분히 '타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라테라노는 '타당한 태도'가 필요해. 만약 라테라노가 자연스러운 흐름의 결과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면, 라테라노의 존재 자체가 필요 없을걸?
……그렇죠? 교황님.
벨, 너는 오렌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나?
오렌은 잘난 척하는 겁니다.
라테라노가 이 땅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건, 만국 전달자가 각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라테라노에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지. 만국 전달자가 여러 나라를 오갈 수 있는 건 라테라노 자체의 능력 덕분이야, 존경하는 추기경 나리.
진정한 라테라노의 신앙이 산크타 외의 다른 종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 신앙에 의지해서 일 처리 하는 건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오렌, 혹시 죽고 싶은 거라면, 직접 신청해도 됩니다만.
난 너희 둘이 왜 맨날 티격태격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빅토리아에서 라테라노로 돌아올 때 고도딘 공작이 제게 질문을 하나 했는데,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라테라노에 나를 매료시킬 수 있는 점이 있을까?” 고도딘 공작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
교황님, 과연 우리 손에는 게임을 할 충분한 카드가 있을까요?
교황님, 모스티마가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보고할 내용은 극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실례하죠.
다 내려가게.
연결하도록.
네.
교황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구나, 아이야. 르무엔은 잘 있나?
역시 교황님은 속일 수 없군요.
여기 병원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얘기해 보렴.
신체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어떤 지표들은 매우 익숙해 보입니다.
……대성당에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자, 모스티마.
알겠습니다. 피아메타는 이 신체검사 보고서의 주인을 찾으러 갈 거예요.
르무엔이 휴양하고 있는 병원은…… 스테보누스 구역이었나.
스테보누스 구역이라.
모스티마가 전용회선을 사용할 정도라면……
……
날 방해하지 말아줘.
체첼리아, 괜찮아?
아까는 머리가 세게 아팠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
그럼, 내가 널 안고 갈게.
……가? ……언니는 누구야?
우린 네 동료야, 체첼리아.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날 기다리는 사람이, 엄마 말하는 거야?
……아쉽지만, 아니야.
네 어머닌 이제 돌아올 수 없어, 체첼리아.
어째서?
미안하지만 설명해 줄 수 없어.
……하지만, 네게 설명해 줄 사람이 있어. 내가 그 사람한테 데려다줄게.
……언니, 미안. 난 엄마부터 찾고 싶어.
……아이를 돌보는 건 정말 질색인데. 미안해, 체첼리아. 네가 지금 원하든 말든 반드시 널 데려갈 거야. 네가 여기에 있으면 위험해.
체첼리아!
칫, 왜 이렇게 빨리 왔지……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체첼리아를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당신이 알아야 할 일이 아니야, 산크타.
체첼리아는 원래 우리 동료였어. 너야말로 저 아이를 빼앗아 간 거지.
……그럼 저 아이의 부모님 성함, 주소, 신분 식별 코드, 그리고 당신과 저 아이의 혈연 또는 법적 관계를 얘기해 보세요.
……쳇, 꽉 막힌 공증소 놈 같으니.
체첼리아를 데려가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보세요. 제가 참작하여 판단하겠습니다.
네가 리베리였으면 생각해 보겠지만, 산크타는…… 어림도 없지.
몸에 있는 라테라노 마크를 보아 당신도 라테라노의 리베리 같은데, 왜 산크타를 그토록 싫어하는 거죠?
……네가 뭘 알겠어? 공증소의 쓰레기 따위가.
내가 살면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게 바로 너처럼, 라테라노에 사는 리베리라면 당연히 산크타와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인간들이야!
이유를 말할 생각이 없다면 체첼리아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내가 이 녀석을 막을 테니 너는 체첼리아를 데려가.
알았어.
미안해, 체첼리아, 조금만 참아.
……싫어요.
무슨 일이야?! 이 폭발과 연기는!
창문……! 그때……
……아까 바람이 세게 불던데, 창문 좀 닫고 올게요. 아이가 찬바람을 맞을까 봐 걱정돼서요.
……빌어먹을 집행자 놈!
충고 하나 할게! 네가 만약 진심으로 체첼리아를 걱정한다면 그 아이를 공증소나 교황청에 넘기지 마! 그랬다간, 후회할 거야!
……
체첼리아, 꽉 잡으세요.
……응.
체첼리아, 괜찮은가요?
괜찮아.
그럼, 우선 저들을 따돌립시다.
저 녀석이 우리 말을 들을까……
그럴 리 없지. 산크타가 낙천적인 바보들이라 한다면, 공증소의 산크타는 '낙천적'이란 세 글자마저 빼야 하니까.
녀석이 우리 충고를 듣든 말든, 체첼리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야 돼.
그렇다면 빨리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겠어……
이미 알렸어.
엥?
방금 그 산크타랑 얘기하는 사이에 연락했어.
아…… 메시지를 보내려고 일부러 시간 끌고 있었구나.
그 녀석은 도망 못 가.
……병실 문이 왜 열려 있지?
너 혹시…… 파티아?
……
여덟 살짜리 산크타 소녀가 여기 있지 않았어?
아니.
오는 길에 폭발음이 들리던데, 너희랑 관련이 있는 거야?
라테라노에서 폭발음 듣는 게 이상한 일인가?
……너, 내가 아는 그 파티아 맞아?
피아메타, 당신이 찾는 그 소녀는 이미 퇴원했어.
(확실히 없네……)
파티아, 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왜, 당신은 스테보누스 구역 센트럴 병원에 나타나도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호위대에서도 그 아이를 찾고 있는 거야? 너흰 어디서 소식을 들은 거야?
……난 호위대를 떠난 지 오래야. 당신이야말로 만국 전달자의 호위병으로 간 거 아니야? 그런데 왜 또 라테라노에 돌아와서 무슨 산크타 소녀를 찾는다고 그래?
산크타랑 같이 있는 게 재미있어, 피아메타?
당신 같은 리베리는 분명……
파티아, 내가 떠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걱정하는 척하지 마.
알았어, 파티아. 하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 여자 아이가 여기 없다면 나도 너랑 시간 낭비할 필요 없으니까.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 전에, 당신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 피아메타…… 선배.
쯧쯧, 파티아, 난 네가 피아메타 선배를 아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렵사리 만났는데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상관없잖아. 공증소 그 녀석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화내지 말고, 파티아. 내게 더 좋은 방법이 있어.
하지만 네가 조금 도와줬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