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화중인

WR-5보잘것없는 산

사이드 스토리작전 전2021-07-30

사가는 라바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전당포 주인 라이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라바에게 단서를 암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크루스와 우요우도 일행에 합류하게 되지만, 채 안심하기도 전에 하늘색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라바, 사가, 크루스, 우요우


소승은 어려서부터 극동의 한 절에서 자랐소이다. 사실 주지 스님께 입양되어 왔으니 진짜 승려라고는 할 수 없소.

사가라는 이 이름도 하산을 결심했을 때, 주지 스님께 부탁해 얻은 이름이오.

소승은 극동을 떠나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오. 염국의 아름다운 산과 강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어린 시절 주지 스님의 다락방에 잘못 들어섰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소.

그곳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고, 그 위는 먼지로 가득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장난감들은 소승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였소. 그중에서도 큰 폭의 그림이 무엇보다 소승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소승은 그 그림을 담은 상자가 소승보다 더 컸었단 것만 기억하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은, 그 그림은 주지 스님께서 소승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의 증거라는 점이었소. 그 그림은 길이가 100미터에 다다랐지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아니었다오.

당시에 소승이 주지 스님께 한참 동안 간청을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그 그림을 펼쳐 보여주셨다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소승은 그 일몰에 잎사귀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 당시엔 아직 건장하셨던 주지 스님께서 사찰 마당에 펼쳐 놓은 그림…… 소승은 그토록 아름답고 웅장한 산과 강을 본 적이 없었소.

소승이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그림이 절대 진짜처럼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예사로운 '명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깊어가는 늦가을에 여름 폭포의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었다오.

소승에게 '생동감'이란 표현은 더는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었다오. 그 순간은 마치 실제로 내가 그림 속에 있고 새가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소. 산이 겹겹이 이어져 있고, 조약돌이 잔뜩 널려 있고, 나무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곧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오!

하지만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소승은 그 그림에 홀딱 빠져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소. 그런데도 심지어 몸서리까지 치면서 한여름 산천에서 가을의 정원으로 돌아왔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오.

주지 스님께서는 그 그림을 염국의 고담강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라고 알려 주셨소. 당시 주지 스님은 지금의 소승보다 더 어린 사미승에 불과했는데, 마침 남방을 순시하던 절도사로 인해 관도가 통하지 않아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오.

강에 이르자 수많은 배가 앞다투어 내달리는 가운데, 저 멀리 한 척의 배가 외로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보였소. 생기발랄한 이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오. 주지 스님은 순간 호기심에 그 배를 따라나섰다 하오.

그 외로운 배는 급히 서두르지도 않았고, 너무 여유를 부리지도 않았소. 주지 스님께서는 천악산에 올라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듯 배를 사이에 두고 배에 탄 그녀를 바라봤다오. 순간 우왕좌왕하다가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고, 한 번 숨을 들이쉰 사이 그 사람에게 구조되었다 하오.

그녀의 인품과 재능은 당대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지 스님을 데리고 강을 따라 폐산도까지 노를 저어 간 뒤 배에서 내려 회제산을 향해 걸었소. 주지 스님께서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배낭을 지고 가시나무를 베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했소.

여자는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듯 보였고, 주지 스님은 매일 밤 잠을 자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꿈을 꾸었는데, 또 깨어나면 까맣게 잊어버려서 꿈을 정말 꾼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았소.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주지 스님은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소. 분명 두 사람은 함께 여행 중이었지만, 마치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외로움에 빠져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오.

어느 날, 두 사람은 산천이 아름다운 곳에 이르렀는데, 여자는 감명을 받았는지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소. 주지 스님께서 무얼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림을 그린다고 답하였고, 그녀는 《졸산진기도》를 그리고 있었다 하오.

주지 스님께서 도저히 졸음을 참지 못하고 졸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고담강의 편주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오. 그곳에는 폐산도도 없었고, 신선 같은 여자도 없었소. 유독 눈에 띄는 그림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 그림이라오.


라바

……그 여자분 이름이?

사가

모르오.

라바

안 물어본 거야?

사가

엄두도 못 냈다오.

라바

……

사가

게다가 그 일은 꿈같아서 진짜 같기도 하고 가짜 같기도 했소. 어쩌면 일 년이나 눈 깜짝할 사이 얼떨결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는데, 누구에게 묻겠소?

라바

……

사가

소승이 염국을 돌아다니다 무심코 이 이야기를 떠올린 적이 있소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주지 스님께서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사가

허나, 소승이 염국 여러 곳에서 수소문해 보니, 이 《졸산진기도》는 나름 명성이 있었소.

사가

약 100년 전의 무명 화가가 남긴 것으로, 황제의 친척이 거금을 들여 구하려 했지만 얻지 못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하오.

사가

때마침 회제산 부근에 다다랐을 때, 소승은 불현듯 과연 그 그림 속 진경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소이다……

사가

하하, 그러다 산속에서 경치가 맑고 수려한 곳을 찾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게 웬걸, 소승은 이곳에 있었던 게요.

라바

회제산의 그 초가집은 우리가 경험한 것과 똑같아……

라바

……여긴 꿈속인 걸까?

사가

만약 꿈이라면, 소승은 꿈속 환상에 불과할 테니 시주께서는 소승이 하는 말은 믿지 못하겠구려.

사가

만약 믿지 못한다 하면, 라바 시주께서는 눈앞의 이 풍경이 꿈인지 아닌지 또 어떻게 판단하실 생각이오?

라바

잠깐…… 너무 복잡하게 말하지 마……

라바

그럼 여기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는 알아?

사가

지금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소만, 어떻게 여길 떠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소.

라바

……지금까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데?

사가

아주아주 오래되었소. 자세히 세어보면……

라이

두 분 차 다 식겠어요. 이야기만 나누지 말고, 어서 좀 드세요.

라바

아…… 감사합니다.

라바

(후우……)

라바

……어? 그러고 보니, 라이 씨도……?

라이

전 그저 토박이 전당포 주인입니다.

라이

라바 씨…… 전 당신의 선량함이 좋고, 묵량으로부터 마을 주민을 보호해 주신 그 마음에 감복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라바 씨께서도 자신의 안위를 좀 더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라바

그 괴물들은 나 같은 로도스 아일랜드 정예 오퍼레이터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아.

사가

거짓이 아니오. 라바 시주께선 솜씨가 훌륭하니 걱정할 필요 없소!

라이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라이

라바 씨, 질문이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라바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는…… 뭐든 물어봐.

라이

라바 씨께서는 물속의 달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으신가요?

라이

물속의 달은 비록 물결에 어떤 모양으로든 부서지게 되지만, 풍랑이 일지 않고 고요해지면 다시 둥근 달로 돌아옵니다.

라이

만약 그때의 물속의 달을 불쌍히 여겨 신발을 적시고 감기까지 걸린다는 건 크게 불필요한 일일 것이겠죠.

라이

라바 씨, 당신은 물속 달을 건지기 위해…… 애를 쓰실 셈인가요?

라바

아니…… 당연히 그러지 않겠지? 그런 일은 별 의미가 없잖아?

라바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지?

라이

……전 라바 씨의 그 밝은 달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니, 라바 씨의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알려드릴 수 없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물속의 달은 결국 물속의 달일 뿐입니다.

라이

그러니 저흴 위해 그럴 필요까지 없습니다.

라바

그 말은……?

우요우

은인님! 은인님! 괜찮으세요?

크루스

……어머~ 차를 마시면서 날 부르지도 않은 거야~?

라이

이 두 분 역시 파산 마을의 손님이시군요? 제가 가서 차를 준비하는 김에 과자도 좀 챙겨올 테니 여러분은 천천히 이야기하고 계세요.

크루스

저분은?

라바

여기 전당포의 주인. 이름은 라이, 여명 할 때 여자를 쓴대.

우요우

은인님, 그 묵량들은요? 오오, 알았다! 분명히 은인님이 신과 같은 위력으로 그 녀석들을 모두 쫓아내셨군요!

라바

……그 여자아이는 이제 안전해?

크루스

응, 안전해. 이제 괜찮아.

우요우

크흐흡…… 은인님, 어찌 그리 저를 못 믿으십니까…… 아무리 난관에 부딪혀도 눈물 한 번 안 흘린 저인데, 지금은 마음이 너무나도 쓰리군요……!

라이

두 분, 차 여기 있습니다.

크루스

후와~ 냄새만 맡아도 알 거 같아, 이거 되게 고급 차구나~

우요우

은인님께선 역시 아는 것도 많으시군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 입에는 쓴맛만 느껴질 뿐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없는데 말이죠.

라이

그냥 평범한 찻잎입니다. 마을 시장에 파는 찻잎이 이것뿐이라서요. 혹시 입맛에 안 맞으셔도 이해해 주세요.

크루스

우아~ 홍차나 커피가 익숙하지만, 가끔 염국의 일품 차를 맛보는 것도 느낌이 색다르네~

사가

소승의 고향에도 맛이 색다른 찻잎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소승도 꼭 맛을 보게 해주고 싶소.

라바

하암……

크루스

어라? 라바, 졸려?

라바

아니야.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래……

라이

차를 마시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답니다. 여러분께서 골치 아파하시는 일은 바쁘게 뛰어다닌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라바

……아직은 아무런 단서도 없어.

사가

이 그림 속 세상에서는 천천히 할 수밖에 없다오.

라바

참! 사가, 혹시 이 물건 본 적 있어?

사가

소승도 잘 모르겠소……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물건 같소.

라바

정말이야?!

사가

소승, 생각 좀 해보겠소 …… 음…… 이 무늬…… 이 재질을……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라이

……!

크루스

……응?

크루스

찻물에 빛이 반사되는……

라바

왜 그래?

우요우

우오오?! 무슨 일입니까? 왜 다들 갑자기 일어나시고……

사가

……하늘이?

라이

날이 밝았……?


묵량

크아!

마을 사람

저, 저 녀석들이 어떻게 이리로 온 거지?! 여긴 낮 거리라고!

마을 사람

아, 아니, 하늘에…… 태양이, 왜 저쪽에 가 있는 거지? 홍동산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묵량

크아!!

마을 사람

으아악! 저 녀석들 지금, 사, 사람을 먹고 있어……! 어서 도망쳐, 어서!


이야기꾼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으니……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을.

이야기꾼

흠.

이야기꾼

……평온을 어지럽히는 건…… 그녀의 뜻인가?


라바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라바

왜 태양이……

크루스

……태양은 원래 저래, 라바.

라바

응? 아, 그야 당연히 알지. 난 그냥 왜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왔냔 말이지……

라바

잠깐. 맞아, 지금이 정상이지……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우요우

은인님들, 어째 제가 보기에 마을 저쪽이 매우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요?

마을 사람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

묵량

크아!

라바

괜찮아?

마을 사람

저, 전 괜찮아요. 여기들 계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요! 저 괴물들이 갑자기 태양을 겁내지 않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

저 녀석들은 지금 마을에서 사, 사, 사…… 사람을 먹고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