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9탄식
결승을 앞두고 감염자들은 앞으로의 길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상업연합회와 감정회는 서로 견제하기에 바쁘다. 한편, 마리아와 마가렛 자매는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온 카시미어가 다가올 결승전을 기다린다.
피의 기사가 결승 진출에 성공하여, 카시미어 토너먼트 사상 2회 연속 우승을 노리게 된 대기사가 되었습니다.
한편, 피의 기사가 감염자란 사실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회 측 대변인은 “피의 기사가 감염자라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으나……
일부 기사 가문들은 여전히 이 발언에 난색을 보이며, 정전 사태와 대격리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헤아릴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기사 협회 측 대표의……
……디카이오폴리스! 피의 기사!
하핫! 내가 뭐랬어, 이런 게 바로 감염자 기사다운 거지!
……만약 빛의 기사가 바람의 기사를 이긴다면……
……두 감염자.
이번 토너먼트의 우승은 두 감염자 사이에서 나오겠지……
하하! 좋은 일이잖아!
놈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시가 결코 완전무결한 게 아니란 걸 알려줄 수 있잖아. 그리고, 피의 기사와 빛의 기사가 놈들의 가면을 벗기면……
감염자의 대승이야!
……정말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좋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다음은 어떻게 하지?
……아하하…… 어쨌든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는 계속 있을 수 없겠지.
그래도 합법적인 증명서 같은 거 주지 않을까? 그리고 조용한 마을을 찾아, 조용한 곳을 찾아 편하게 살아가는 거야.
……이건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데.
아직 귀농할 땐 아니지 않아? 소나!
우리 목표는 더 많은 광석병 감염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게 만들어주는 거잖아!
상업연합회가 섹터 제로에서 한 짓거리를 감정회에 알리는 게, 더 많은 감염자를 구하는 거 아니었냐!?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야!
……
……반박할 수 없네, 소나.
우리가 지금 떠나면, 그냥 중간에서 포기하는 거밖에 안 돼.
……
소나?
……왜 대부분의 감염자들이 버림받는 걸까?
아니지, 질문이 틀렸어. 으음…… 왜 홀대를 받는 건…… 늘 감염자일까?
위험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 재앙을 피할 수 없었던 농민, 도시 밖에서 갈 곳 없이 떠도는 방랑자, 이런 사람들이 광석병에 걸리기 가장 쉬우니까.
……정밀 가공된 보석 제품.
어쩌면 부유한 기사 귀족이나 상류층이 평생 볼 수 있는 오리지늄은 저것밖에 없을걸.
그러니까 당연히 광석병과는 거리가 멀지.
……그런데 왜 그걸 물어봐?
……아니야, 그냥.
셰브치크도 우리랑 같이 가는 거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엇, 여기 있었네.
부인과 애들은 잘 있나?
그래. 그래서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다. 가족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어찌 되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난 감염자가 아니다. 겉으론 아직 합법적인 기사 신분도 가지고 있지.
그래도 난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머물 생각이 없다. 몇 년 동안 모아둔 돈으로 땅이라도 사서 다른 도시에서 생활할 거다.
이동도시 이외의 장소에 정착할 생각은 없어? 그게 더 눈에 띄지 않을 건데.
……그건 ‘생활’이 아니라, ‘생존’하는 거지.
작별 인사는 여기까지. 토너먼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드나드는 사람도 많을 거다. 지금이 조용하게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떠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새로운 도시로?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지.
감정회가 아머레스 유니온과 감염자 수용 치료 센터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연합회를 바로 끌어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심지어 상업연합회에 전혀 위협을 줄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
너도 뭔가 눈치챈 게 있겠지?
섭섭하게 생각하진 마, 이젠 나와 관계없는 일이니까.
잠시나마 함께 싸웠던 정을 봐서 하는 말인데…… 이쯤에서 그만둬, 도시에 맞서지 말고, 불꽃 꼬리.
……뭐야, 그깟 김새는 소리나 하려고 온 거야?
이래서 기사 가문이 질색이라니까.
도시에…… 맞선다라.
무슨 코미디 기사 소설 같네……
박사.
박사의 경비가 된 지도 꽤 됐는데, 박사는…… 날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지금 박사랑 같은 방에만 있어도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거든?
- 의사라도 불러줄까?
- ……
- 사적인 질문은 노코멘트할게.
정말…… 실망이야.
지금 모르는 척 하는 거지?
가끔 침묵할 때 더 매력적이란 말이지. 그래도, 너무 일에만 몰두하지 마. 몸이 망가져.
그래도 감정회와 로도스 아일랜드의 협력에 관련된 일이니…… 나에 대한 평가는 엄청 중요하단 말이야.
박사님! 니어 씨가 무사히 결승까지 올라갔대요!
“바람의 기사 시합 전 기권, 빛의 기사 부전승”, 오늘 신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바람의 기사는 어차피 곧 은퇴할 사람이었어. 아마 이런 타이밍에 빛의 기사에게 지기 싫었겠지.
정말이지, 빛의 기사한테 질투 나는데? 이렇게나 박사의 관심을 받다니.
그, 그라벨 씨?
아니야, 별다른 뜻은 없어.
……일단은.
네…… 하하……
(바, 박사님…… 그라벨 씨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왠지 점점…… 네? 이게 진짜 모습이라고요?)
(아, 알겠어요…… 박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윽.
……저기…… 잠깐……
나에게 몇 명이나 할당된 거야?
세 팀이다.
당신이랑…… 모니크는?
우린 다른 임무가 있어.
……그럼……
다크아이언은 생각도 하지 마.
……그쪽도 다른 임무가 있으니까.
……아머레스 유니온은 그럼……
눈치챘으면 그냥 잠자코 있어. 그래야 살기 더 편할걸?
……알았어.
다시 말하자면…… 아머레스 유니온 세 팀을 데리고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경비 업무를 맡으라는 거지?
맞아.
……빛의 기사와 피의 기사의 결전에?
맞아.
……그럼, 실버랜스 페가수스랑 부딪칠 수도 있겠네?
맞아.
……하아…… 이번 임무는 자살하라는 건가……
야, 그렇게 말하지 마. 손을 대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나를 얼마나 더 이용할 셈이야?
……네가 그런 자각을 하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
카시미어는 하나의 탑과도 같다.
토너먼트가 끝나면, 난 어떻게 되지?
네가 하는 걸 봐서…… 개인적으로, 적어도……
목숨은 살려두지 않을까?
……!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탑.
……
……삼촌.
……아무리 말려도 듣는 체도 안 하더니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구나.
네 유치한 행동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은 생각해 봤나?
마틴이랑 다른 사람들이 너 때문에 아머레스 유니온의 눈에 뜨일 거란 걸 생각 안 해봤느냐?
마리아랑 조피아가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더 이상 편히 지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네 이상은 허울뿐이다. 마가렛, 기억해라. 너의 가장 큰 실수는 남을 대신해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력은 없다.
너에게는 한없이 실망했다.
……
언니……
마리아, 솔직하게 말해줘.
내가 네 꿈을 빼앗았나?
너는 가문의 명의로 참가 자격을 내게 양도했다…… 너는
언니!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난 그저…… 확실히 기사의 길이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난……
……계속해, 마리아.
네 속마음을 들어본 지도…… 정말 오래됐다.
……언니가 한 일……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지금의 카시미어에서…… 기사가 된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어.
우리가 이겼을 때 관중들은 뭣 때문에 환호했을까? 우리가 얻은 게 또 뭘까?
비록…… 언니는 그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언니가 지길 바랐던 녀석들을 이기고 싶겠지만……
만약 그들이 언니를 그냥 이기게 해준다면?
아니면, 애초에 규칙 따위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더라면?
……그 말이 맞다.
그들은 애초부터 기사 따위는 아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어.
……엣?
우승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의미는…… 우릴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지.
마리아, 만약 이 도시에, 이 나라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원인이 뭘 것 같아?
감정회의 부패와 타락? 아니면, 상업연합회의 끝도 없는 확장과 착취 때문에?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지.
우린 늘 카시미어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었지만, 그러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명예와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줘야만 해.
……
영광을 되찾으러 가야 할 사람은 비단 기사뿐만이 아니야.
승리는 단지 적을 쓰러뜨리기 위함이 아니다, 마리아. “기사란 모든 세상을 비추는 숭고한 자이다.”
하지만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땅을 평평하게 고른 뒤……
시키는 대로만 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게, 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드디어 깨어났군.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길래 너희가 죽은 줄 알았다.
너……
너…… 너는 살카즈……?
의사소통이 되는 걸 보니, 너는 네 형제보다 나은 것 같네.
……!
……
안심해. 안 죽었으니까.
갑옷 복구에 쓰는 특수 용액을 사람한테 먹이면 이런 효과가 나오는 건가……
원리는 활성화인가? 카시미어의 기사 갑옷은 뭐로 만드는 거야? 사람도 갑옷도 다 활성화돼? 그럼 원석충은?
……너…… 뿔이 없는 살카즈……
넌…… 아머레스 유니온?
하핫, 과대평가야. 아머레스 유니온 연봉이 내 3천 배는 될걸?
난 바운티 헌터야.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는 볼일이 좀 있어서 왔어. 그중에는…… 살카즈에 대한 조사도 있고.
물론 일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취미일 뿐이야.
……뿔을 자른 살카즈라면,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을 본 적 있나?
……
누가 너희 뿔을 자른 거야?
누가…… 살카즈를…… 실험의 노예나 살인 기계로 만들었지?
……
오호, 아주 철저하게 길들여졌는데.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뭐?
너희 그 덩치를 보니 힘은 좀 쓰겠는데? 우린 황야에서 살고 있다 보니, 노동력이 늘 부족하거든……
너……
……나랑 가자, 살카즈.
나랑 같이 가야만 살 수 있어.
……!
……쯧.
바트바야르……?
너 이 애송이, 뭐 어떻게 된 게 병원으로 보내줬더니, 돈 대주는 가족도 없냐.
그건 그렇고, 몸이 확실히 튼실하긴 하네. 다른 사람이 피의 기사의 그 일격을 맞았더라면, 아마 죽진 않았어도 반 불구는 됐을 거야.
……
프리랜서 기사치고 4강까지 갔으면, 꽤 벌었을 거 아냐? 그 많은 돈은 다 어쨌어?
……
움직이지 마, 상처가 아주 깊으니까.
……어딜 또 가려고?
……
야, 인마, 거기 안 서? 어디 가냐고 묻잖아!
……떠난다.
금빛의 페가수스, 핏빛의 미노스인…… 수확은 충분하다.
……억울한가?
……아니, 난 실패했다.
그리고, 이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위축되지 않는다.
두 번 다시…… 나약함의 찬송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아직도 부족하다…… 나의 천도를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놈의 얼어 죽을 천도는 무슨…… 그래서 목적지가 어딘데?
고대에도 천도 하나를 몇 년이나 걷는 풍습은 없었잖아?
북쪽.
머나먼 북쪽…… 선조와 함께 사라진 땅이 부르고 있는 북쪽이다.
……그래, 거기까지 간다 쳐. 그 다음엔?
돌아올 생각은 없나?
……
너는…… 그저 네게 부족한 것을 찾는 줄로만 알았는데.
너…… 죽음을 원하는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