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차량의 고장으로 인해 변호사 데슈치의 일정이 크게 지연되었다. 자신에 의해 곧 헐값에 팔리게 될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은 그녀는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잊힌 별하늘을 보았다.
11월 28일 5:00 P.M.
카시미어 남부, 차량 통행이 어려운 시골 오솔길
무에나 씨, 다시 한 번만 잘 생각해 보세요.
게일 공업 시공 계약 건을 두고, 웨이스트란 컴퍼니의 대표와 경쟁하던 입찰회에서 분명 만난 적이 있어요!
아니, 기억나지 않아.
아마 삼 년 전이었을 거예요, 피의 기사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던 해! 입찰회 후의 파티에서 시상식이 나왔잖아요.
기사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생각나는 게 없군.
그렇다면 파티에서 게일 공업 담당자분들 접대하다가 와인 마시고 취해 버린 건 기억하세요?
대기업의 영업부도 계약 한 건에 저렇게 진땀을 빼는구나, 싶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게일 공업 쪽 분들이 나름대로 무에나 씨를 인상 깊게 기억하던 것 같던데. 비록 결국엔……
친한 척하지 말아 주겠나.
우린 그저 방향이 겹친 것뿐이니, 굳이 도움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이에 대해 대가를 요구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슨 섭섭한 말씀을! 무에나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전 아직 황야에서 헤매고 있었을 거라고요!
게다가 이건 친한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돌아가면 꼭 다시 제대로 감사드릴게요!
일찍 돌아가고 싶다면 걷는 일에나 집중해, 데……
죄송해요, 힐이 너무 높아서……
……데슈치 씨.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으으, 내 립밤이 어디 갔지……
다행이다. 그나마 서류들은 폴더에 넣어 둔 덕에 더러워지지 않았네요.
죄송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금방 주울게요……
……잠깐 쉬었다 가도록 하지.
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무에나 씨. 렌트한 차량만 멀쩡했어도 이렇게 폐를 끼칠 일은 없었을 텐데요.
어젯밤에 렌터카 회사에서 호텔까지 운전했을 뿐인데, 오늘 아침에 보니 시동이 안 걸리더라고요. 이런 심한 고장이라니, 돌아가면 꼭 고소해 버릴 거예요.
만약 무에나 씨도 이런 문제를 겪으시게 되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릴게요! 이쪽으로는 나름 자신이 있거든요.
……필요 없다.
맞다, 무에나 씨. 제가 이번에 해결하려는 안건을 아직 전달하지 못했네요.
이 마을은 레이스톤이라고 해요. 원래 소유자인 귀족 기사 마렉 씨가 칠 년 전에 마을의 모든 땅을 게일 공업에게 저당 잡혔죠.
하지만 그 뒤에 마렉 씨가 이 땅을 또 여기에 살던 마을 사람에게 팔아 버렸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 십 년 치의 세금으로 농지를 구매했어요.
그러다 반 년 전 마렉 씨가 병으로 죽으면서 게일 공업에서 레이스톤에 관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이 토지의 소유권이 뒤죽박죽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마을 사람들은 땅을 사기 위해 빌린 돈도 아직 다 못 갚은 상황에서, 이 토지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들어 버린 거죠. 정말 너무한 일 아닌가요?
……듣고 싶다고 한 적은 없다만.
아앗, 협력 업체의 약점에는 관심이 있으실 줄 알았는데.
정의를 위해 힘쓰는 변호사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정의를 위한다고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는데…… 그저 변호사로서의 일을 할 뿐이죠.
맞다, 무에나 씨. 그랜드 나이트 영지 바깥으로 나온 이유는 뭔가요? 역시 출장인가요?
그냥 휴가다.
와, 부러워요……
전 마지막 휴가가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어둠의 기사가 우승했던 때였나……?
우승 베팅이 적중한 덕에 실컷 즐겨보려고 기대했었는데……
정작 당첨금 자체는 얼마 안 됐었죠.
죄, 죄송합니다! 전화 좀 받을게요!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 아직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늦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반드시 오늘 내로 협상을 마치고 클라이언트 기업에 회신하겠습니다.
네, 물론 제 과실이기 때문에 모두 제가 책임을…… 아, 끊겨 버렸네.
에휴, 돌아가면 또 소장님 눈치 봐야겠네…… 이런 시골구석까지 보내진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매입된 마을 토지 관련 소송을 처리하러 왔다고 했나?
맞아요.
하지만 지금 통화 중엔 '클라이언트 기업에 회신하겠다'고 말한 것 같던데?
무에나 씨, 오해하신 것 같네요.
이번 토지 관련 소송 건을 담당하고 있는 건 맞지만 전 게일 공업 측 대리인이랍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
무에나 씨는 괜찮으세요? 우선 쉴 곳을 좀 찾아볼까요?
혹시, 데슈치 변호사님이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저번에 연락해 주셨던 햄 변호사님이시겠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사고가 일어나 버려서……
괜찮습니다, 이쪽은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니 사고 정도야 예상치 못 할 일은 아니죠.
그럼 무에나 씨, 이 일이 해결되면 제가 한잔 살게요. 이 마을의 전통 맥주가 괜찮다던데요.
필요 없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데슈치 씨, 그럼 슬슬 일을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무, 물론이죠! 바로 시작하시죠.
네, 이쪽으로 오세요.
(역시 대기업에서 고용한 변호사네, 출장에 수행원까지 따라오다니……)
사실 이번 건을 맡았을 땐 여기 주민들에게 법률 조항을 설명하느라 시간이 잔뜩 걸릴 줄 알았는데, 설마 그분들도 변호사를 선임하셨을 줄은 몰랐네요.
이곳 마을 사람들이 민간 조직에 도움을 요청했고, '카시미어 농촌 분쟁 조정 협회'라는 조직에서 제게 레이스톤 토지 매매 건을 맡아달라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다행이네요, 전문 변호사가 대리인이라면 많은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요.
햄 씨,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확인할게요.
이전에 주고받았던 것처럼, 햄 씨는 이미 주민들에게 레이스톤의 토지 소유권 관련 문제를 고지하였고, 모두가 이주를 받아들인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마렉 씨의 유일한 상속인인 아들분께도 연락해 보았습니다만.
아들분은 현재 출정 기사로, 이 땅의 소유권을 되찾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토지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으나, 우선 마을 주민분들이 앞으로의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게끔 하는 게 급선무겠지요.
또한 주민분들도 가능한 한 내부적인 교섭을 통해 평화롭게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국민원의 복잡한 심의 과정은 피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이죠. 시간만큼 소중한 건 없으니 간결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은 없을 거예요
레이스톤의 주민들은 게일 공업과의 협의 관련 업무를 저에게 위임했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과 합리적인 이주 보상안을 받아내겠다고 약속을 드렸고요.
그럼 우선 주민들이 제시한 배상액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측에서는 게일 공업이 각 가구가 소유한 농지 면적에 10대 1의 비율을 적용한 면적의 주택, 그리고 각 가구당 팔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이주 보조금을 청구합니다.
비율과 액수는 어떻게 산정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전문 시장 평가 및 레이스톤 주민들 전체의 논의를 거쳐 산정되었습니다.
단체 이주가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게일 공업의 재력을 고려했을 때, 이는 양측 모두에게 공정한 액수라고 생각합니다.
음, 물론 상호 간의 협의이니 여러분께서도 이상적인 액수를 제시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럼 저도 게일 공업이 제시하는 보상안을 말씀드릴게요.
저희 측에서는 각 가구의 주택 면적에 3대 1의 비율을 적용하여 도시 내 주택을 지급하고, 각 가구에게 팔백 마르크의 철거료를 보조해 드리고자 합니다.
……
앗, 못 들으셨나요? 다시 한번 말씀해 드릴……
데슈치 변호사님, 지금은 농담을 하기에 적절한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햄 변호사님, 저는 농담을 한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레이스톤 토지의 가격 설정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듣고 있습니다.
레이스톤과 가장 가까운 스트루미코보를 예로 들겠습니다.
그곳의 영주는 작년에 미에슈코 공업과 거래를 하여, 영지 내 모든 농지를 헥타르당 육십만 마르크의 가격으로 매각했습니다.
스트루미코보 농지의 질과 지리적 위치는 레이스톤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해당 액수가 레이스톤의 토지 가격 산정에 충분한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침 저도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루미코보의 상황을 레이스톤과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 경솔한 판단이 아닐까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먼저 비록 두 마을이 모두 그랜드 나이트 영지와의 직선거리가 같다고는 하지만, 스트루미코보는 그랜드 나이트 영지까지 간선 도로가 있는 반면 레이스톤은 길고 험한 산길을 넘어야 하죠.
두 마을은 교통편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마을 자체를 따져도 레이스톤은 산지가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요.
둘째로, 방금 말씀하신 '농지의 질'은 아주 애매한 개념입니다. 관례에 따라 보다 더 직관적인 방식으로 작물의 산출량에 따라 토지의 가치를 산정해야 합니다.
스트루미코보의 경우, 재배부터 식품으로의 가공까지 생산 라인이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토지가 산출해 내는 가치 역시 명료하게 계산할 수 있었죠.
하지만 레이스톤의 주요 농작물은 홉이고, 심지어 마을의 유일한 맥주 공장도 몇 달 전에 도산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심각한 환경 오염도 야기했다고 하던데요.
따라서 레이스톤의 토지를 평가하기 위해선 산출해 내는 작물의 시장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했던 교통 부분이 부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 두 마을의 토지는 결코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말씀하신 참고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말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으나, 저희가 원하는 보상은 단지 토지 자체가 지니는 가치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타의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이 또한 고려하여 게일 공업 측에서 합당한 보상안을 제공해야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햄 씨, 관련 통계 자료를 조사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십 년 전, 레이스톤에는 215 가구가 있었고 그중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85%였으며, 농지 이용률은 95%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해당 수치는 각각 137 가구, 15%와 21%로 줄어들었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경공업과 수공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이 농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게일 공업에게 모든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건……
그다지 이치에 맞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소수라 할지라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지요.
햄 씨,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랜드 나이트 영지의 거리 곳곳에서 신문 가판대를 볼 수 있었던 것을 알고 계시나요?
기사 스포츠의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판대 앞에서 경기의 결과를 담은 따끈따끈한 신문이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지요.
물론 기억합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신문 가판대를 자주 이용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도시 간 네트워크와 물류의 발달로 인해 이제 도시에서는 신문 가판대를 보기가 힘들어졌죠.
당시 신문 가판대를 생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된 것 같나요? 정부로부터 1헬러라도 보상받았나요? 이것이 방금 말씀하신 '공정한' 처사인가요?
그 비유가 완전히 들어맞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과거 일을 언급하셨으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데슈치 씨. 각국의 역사에서 무분별한 토지 매입은 언제나 불안정한 요소라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오늘 이루어진 레이스톤의 토지 거래가는 이후 다른 마을의 토지 가격 책정에 참고 가격으로서 쓰이겠죠.
만약 국민원이 판결을 맡게 된다면, 과연 게일 공업이 이토록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레이스톤의 땅을 매입하는 것을 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햄 씨, 근본적인 개념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게일 공업이 제공하려는 것은 '보상금'이지 토지 매입에 대한 '대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돌아가신 마렉 씨와 게일 공업 사이의 거래가 먼저고 마을 주민들과의 거래가 그 다음이니까요.
법적으로 말하면, 레이스톤의 토지 소유권은 이미 게일 공업의 것입니다.
게일 공업은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이곳 주민들에게 보상을 하려는 겁니다. 이를 토지 거래 금액과 비교하려는 햄 씨의 논리는 전혀 성립되지 않아요.
저, 저는……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데슈치 씨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물론 이는 저희 측의 초기 제안일 뿐입니다. 논의를 이어갈 여지도 있고요. 설사 일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더라도, 저희 양측은 여전히 국민원에게 중재를 요청할 권리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때 저희의 지금 이 대화를 그대로 법관께 들려드린다 가정했을 때, 이보다 더 높은 금액을 쟁취할 자신은 얼마나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네요?
그건…… 그……
그럼, 다시 함께 '공정한' 이주 보상안을 책정해 보도록 하죠.
순조로운 협의를 위해, 건배!
거…… 건배.
크으…… 이렇게 편안하게 술을 마시는 것도 꽤 오랜만이네. 이번 출장도 뭐,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고.
데슈치 씨와 만나게 된 건 저에겐 불행이었지만……
햄 변호사님, 그렇게 우울할 필요 없어요. 진 적 없는 변호사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내부 협상일 뿐인걸요. 기대한 금액을 미치지 못하는 건 다반사랍니다.
릴랙스 릴랙스, 변호사란 직업은 길게 갈 수 있으니까 앞으로 천천히 노력해 가보자고요. 적어도 지금 이 맥주 하나는 참 맛있을 거예요!
데슈치 씨, 사실 오래전부터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레드 와인》에서 데슈치 변호사님의 무패 기록에 관한 기사를 낸 적이 있었죠. 뛰어난 변호사들이 수없이 모여있다던 '롱 레인즈 로펌'에서도 최우수 변호사라고요.
그렇게까지 띄워주시니까 상당히 부끄럽네요, 하하……
게일 공업이 대리 변호사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저희 쪽에 유리하게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래도 협의를 위해 최대한 준비를 해 왔건만, 데슈치 씨는 확실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대단한 분이시네요……
데슈치 변호사님, 혹시 배움을 청해도 괜찮을지요.
변호사님께서 보시기엔, 이번 일에 있어서 제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 같으십니까?
음, 준비를 많이 하신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으신 게 아닐까 싶네요……
방향을 잘못 잡았다라고요?
어머, 쉬는 시간에 일 얘기는 그만하자고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다시 또 건배!
데슈치 씨, 계약에 서명도 끝낸 마당이니…… 혹시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토지 매매 건을 해결하시면 수입이 얼마나 들어오는지요?
꽤 민감한 질문이긴 하네요…… 음,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그랜드 나이트 영지의 법조계에서의 평판으로 보면, 순조롭게 해결할 시 적어도 오만 마르크일까요?
글쎄요?
십만 마르크?
(고개를 젓는다)
차마 더 생각할 엄두가 안 나는군요……
사실 게일 공업 측에서 이번 건 해결에 백만 마르크를 줬어요. 즉, 이 가격 안에서 협상할 수만 있다면 남은 돈은 전부 제 것이라는 말이죠.
아, 물론 세금은 제대로 내야겠지만요.
제가 평생을 벌어도 과연 그만큼 벌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여기 맥주 정말 맛있네요. 사장님! 한 잔 더 주세요!
그야 당연하죠. 여기 맥주는 저희만의 발효 방법을 쓰니까요, 다른 곳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맛입니다.
네? 다른 곳에선 절대 못 마신다고요?
아가씨, 얘기 좀 해요. 그 비법 레시피, 얼마면 되나요?
그건 안 되겠네요, 아버지께서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거라서.
그리고 비법을 알려 드려도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이건 레이스톤에서 자란 홉을 써야만 가능한 비법이거든요. 마음에 드시면 포장해 드릴 테니 많이 사 가세요!
……게다가 여기 땅이 이미 상업연합회에 팔려 버려서 말이죠. 어쩌면, 다음에 오실 때에는 홉이 없을 수도 있겠어요.
앗, 그것 참 아쉽네요……
데슈치 씨, 저도 롱 레인즈 로펌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푸흡! 켁, 콜록, 콜록…… 뭐라고요?
죄송합니다, 저도 제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저 인턴이라도 좋으니…… 어떻게 한번 추천해 주실 수 없을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골 마을의 법률 대리를 맡아 주는 마음씨 좋은 변호사시니, 대기업의 시중이나 드는 로펌 같은 건 경멸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뇨, 그렇게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변호사의 의무란, 의뢰인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오는 일인걸요. 절대로 비난할 일이 아니죠.
대기업을 도와 무고한 시민들에게서 이권을 빼앗아 오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요? 이런 건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고요.
제가 법조계에서 구른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습니다. '공정'이라는 말을 누가 믿겠어요?
산더미처럼 두꺼운 법전을 넘겨봐도, 그 속에서 '공정'이란 두 글자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법학 서적에 쓰여 있던 글귀가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뭐였더라? 규칙은 헛소리일 뿐, 공정을 가져다주지 않는다였나……
'인위적으로 정해진 법률에 따라 공정을 실현하려는 생각, 그 자체가 헛소리다.'
맞습니다! 바로 그 말이었어요.
하물며 저는 보잘것없는 일개 변호사일 뿐이니까요, 제가 무슨 수로 공정을…… 심지어,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멀쩡한 방에 세 들어 사는 것조차 벅찬데…… 데슈치 씨?
으음…… 미안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게 말이죠, 제가 그 이주 보상금을 후려친 악덕 변호사라는 걸 저 점원분이 알게 된다면, 저는 여기서 쫓겨나겠죠?
미안해요, 조금 과음했나 봐요.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야겠어요, 로펌 건은 다음에 얘기하시죠.
하아……
……
고개를 든 그녀는, 문득 자신이 내쉬는 긴 한숨조차도 어색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요한 밤의 장막이 그녀를 감쌌다. 언제나 밝게 빛나던 등불을 차단하기 위해 처음으로 커튼을 드리운 것만 같았다.
그랜드 나이트 영지 밖 밤하늘은 아직 별이 보이는구나.
이런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본 게 몇 년 만이더라?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입사하게 된 인턴 변호사 데슈치입니다.
첫 직장이지만 제 모든 지식과 능력을 다해 법률의 위엄과 공정을 지키겠습니다!
(어라, 다들 왜 웃는 거지…… 내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정말…… 옛날이야기네.
무에나 씨, 아직 계셨네요!
다행이네요! 낮에는 정신이 없어서 혹시 미처 감사 인사도 못 드리고 헤어지게 될 줄 알고 걱정했어요.
……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길이 봉쇄되었다.
그리고, 이거 네 것이겠지.
앗, 이건 작업복에 있던 ID 태그인데…… 줄이 언제 끊어진 거지? 전에 넘어졌을 때 끊어진 건가……
누군가가 노리고 있나 보군.
네?
아, 아하하……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거네요……
기분이 꽤 괜찮아 보이는 걸 보니, 게일 공업 측을 위해 만족할 만한 가격에 해결했나 보군?
뭐 나름대로요, 하하…… 음, 무에나 씨도 절 직업윤리가 없는 변호사라고 생각하시죠?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무에나 씨,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때 게일 공업의 입찰회가 끝난 다음, 경쟁사였던 웨이스트란 컴퍼니가 건축자재 품질 미달 문제로 고소당한 일 아시나요?
……신문은 가끔 본다.
건축자재 시장 부실이 아주 다반사인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기자가 그 사건을 위해 신문에 지면을 할애했었지.
거기에 국민원이 부과한 벌금 자체가 그들이 파산하기에 충분한 액수였기 때문에 인상에 남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니면, 사실 진작에 알고 계셨던 건가요?
……
당신은 웨이스트란 컴퍼니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병원 건설 프로젝트를 그쪽에 넘기고 싶지 않아서 그토록 전력을 다해 계약을 따낸 것이겠네요. 제 말이 맞나요?
……노련한 변호사가 그렇게 순진한 말을 할 줄은 몰랐군.
순진이요?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그저 모욕으로 여겨질 뿐이다.
죄송해요, 그냥 아무 얘기나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시간이 늦었군, 먼저 들어가겠다.
레이스톤의 특산품 맥주는 안 마셔보세요?
술을 싫어한다.
대화 상대가 필요했을 뿐인데, 또 말실수를 한 것 같네……
데슈치는 길옆의 그리 넓지 않은 농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을 수확이 끝난 밭, 지푸라기들이 가지런히 쓰러져 있는 모습은 마치 자연의 매트리스 같았다. 홉의 향기와 촉촉한 밤공기가 어우러져 시원하면서도 좋은 향이 났다.
데슈치는 그 위에 누워 손가락 하나를 뻗어 무언가를 찾듯 하늘을 뒤덮은 별들을 따라 긋기 시작했다.
연결하면 저울 모양이 되는 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안심하세요, 계약은 문제없이 체결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중으로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추가 출장 기간은 연차로 차감한다고요, 이견 없습니다.
앞으로 문제 생기는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속히 계약서를…… 또 끊어 버렸어……
정말, 조용히 별을 보는 것도 방해받다니……
좀 변해볼 시기가 온 건가.
데슈치 씨,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배웅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이번 협상으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다음에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만나면 또 한 잔 살게요!
아니요, 다음엔 제가 사는 게 맞죠......
저기 그…… 롱 레인즈 로펌 건은……
역시 아직도 생각 중이셨나 보네요…… 사실 추천해 줄 수 없는 건 아닌데요.
그럼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죠! 이걸 봐주세요.
이건…… 게일 공업과 돌아가신 마렉 씨가 맺은 토지 매매 계약?
잘 보세요, 뭐가 이상하지 않아요?
계약 조항에는 문제가 없고, 세부 사항도 완벽합니다…… 아니, 잠시만요. 여기 거래 주체가 마렉 씨가 아니라 아들분으로 되어있네요?!
당시 마렉 씨는 건강하셨고, 이 계약서에도 마렉 씨가 아들을 대리인으로 세운다는 증명이 누락되어 있군요.
그러니까 지금 아들분은 애초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 계약을 체결할 자격이 없다는 건데요.
게다가 그 밖에도...... 아들분은 출정 기사신데 어째서 게일 공업과 이렇게 많은 상업 거래가 있는 거죠?
어쨌든...... 이렇게 보면 레이스톤의 토지와 관련된 게일 공업 측의 계약은, 애초에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죠. 어쨌든 마렉 씨는 이미 사망했고, 게일 공업 측에선 계약의 합법성을 증명할 수단이 수만 가지는 더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건 분명 중요한 단서인데…… 데슈치 씨, 이런 기밀 자료를 고의로 누설하면, 변호사 자격의 취소 사유가 되는 것 아닌가요……?
고의로 누설했다뇨, 그냥 실수로 중요한 자료를 분실해 버렸을 뿐인데요?
그렇군요……
사실, 당신은 협상의 첫 단계에서 게일 공업에 이 자료들을 청구했어야 했어요.
게일 공업은 갖은 수를 써서 이 자료를 은폐하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을 협상에서 수동적으로 만들 수는 있죠.
이 부분에 대해 생각지 못한 건 당신의 실책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토지 가격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 토지에 대한 게일 공업 소유권의 합법성을 부인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이게 저번에 말씀하신, '방향을 잘못 잡았다'입니까?
금방 알아채다니, 역시 꽤 똑똑하네요.
적절한 증거란 변호사의 탄환과도 같죠, 하지만 이에 맞는 총이 있어야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답니다. 햄 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셨나요?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재 체결된 계약서는 게일 공업 측으로 발송될 거예요. 하지만 햄 씨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국민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보상금의 재논의도 좋고, 게일 공업의 토지 인수 자체를 완전히 거부해도 좋아요.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얻든 포트폴리오에 적기에는 충분하겠죠. 그 뒤에 롱 레인즈 로펌에 가서 얘기해 보세요.
그런데...... 왜?
어째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의 마을 주민들을 도우려는 거죠?
아뇨 아뇨, 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앞으로도 레이스톤의 맥주를 마시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 두죠.
그렇습니다. 이쪽이 어젯밤 사고 사망자분들입니다. 즈보넥으로 향하는 소형 차량이었죠.
이 노인분을 아십니까? 별일이네요, 십여 년간 편지를 배달해 왔는데 이분이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건 못 봤거든요.
신문조차도 안 사더라니까요, 누굴 가르치는 사람답지 않게.
아, 오늘 자 신문이 필요하십니까? 오십 헬러입니다. 사건에 대해 쓰여있습니다.
감염자들이 자기네들은 왜 도시 안에서 살 수 없냐고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폭도들 같으니라고, 누가 저놈들을 도시로 들이고 싶겠습니까?
무에나 씨!
제 차가 다 수리됐다는데, 혹시 다시 길 안내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는 즈보넥으로 간다. 그랜드 나이트 영지와는 방향이 다르지.
아뇨 아뇨, 당분간 저도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음, 즈보넥으로 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겠네요!
가서 뭘 하려는 거지?
아직은 딱히 구체적인 계획이랄 건 없는데……
새 직장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는 거라고 해 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