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추한 집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떠난 무에나는 옛 추억이 담긴 장소를 지나간다. 그곳에는 그가 찾고자 하는 이가 없었지만, 오랜 친구가 있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무에나
과거 어느 기사가 파도를 부수던 이야기가 아직 소설로 써지지 않았을 무렵, 수해를 빠져나온 바람에 아직 포화의 굉음과 활시위의 울림이 들리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대지에 몸을 던지고, 선혈로서 피의 대가를 치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지금, 늦가을의 햇살이 평원에서 천천히 펼쳐지고 있다. 다음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처마를 고치려는 농부들의 망치 소리가 들판에 울린다.
산기슭의 묘지에서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흐느끼며 땅을 한 삽 한 삽 퍼내어, 메마른 작물들을 땅속에 묻는다.
11월 27일 3:20 P.M.
카시미어 남부의 시골 마을
……그러니까, 지금 또 혼자서 도처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겁니까?
시종도, 수행원도, 심지어 검도 갑옷도 없이…… 하지만 당신을 적으로 둘 사람도 없을 것 같군요.
그때 사람들이 말하던 게 기억나는군요. 당신은 이 나라에서도 유명한 일족에 맞서면서, 항상 번거롭게 만들었다고요.
그렇게 말하던 자들도, 받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는 구호물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
……난 이제 권력자들의 싸움터에서 물러났으니, 놈들이 눈여겨볼 가치는 없을 테지.
그렇군요…… 당신은 딱히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마치 이 이국땅으로 도망쳐 왔던 저 같군요. 그때의 전 그 왕의 아츠가 영원히 저를 쫓아올 거라고 착각했었죠......
……하지만 보시죠. 저 같은 고리타분한 교사 나부랭이가, 비바람조차 막지 못하는 오두막에서 이렇게 칼 한 자루 없이도 평화롭게 산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자네는 라이타니엔에서 왔다고 했지…… 위치킹의 고탑은 오래전에 무너졌는데, 어째서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거지?
너무 오랫동안 숨어 지내다 보니, 이제 와서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그라들더군요.
이토록 외진 곳은 소식도 느린 법인데, 탑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보니, 어느새 저는 제 한 몸 건사하면서 밭을 가는 일에 익숙해져 있더군요.
게다가 전 위장을 위해 진작에 뿔도 잘랐고, 쿠란타처럼 살아가는 것에도 익숙해졌습니다. 라이타니엔에 제 옛 친구가 아직 살아 있다 해도 저를 알아볼 리가 없지요.
하지만 자네는 지금도 자신을 라이타니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아, 그저 인생의 절반을 잊지 못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일 뿐입니다.
열의를 가진 자들은 오래전에 죽었지요, 저처럼 숨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 겉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예전에 방문했던 곳들을 다시 돌고 있는 건가요? 비록 가진 건 없지만, 괜찮다면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 드릴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필요 없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까지도 당신의 은혜를 잊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카시미어 사투리로 서로를 부를 때, 당신은 제가 곤란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셨죠. 하지만 그런 제 사정을 들추기는커녕, 유랑민 사이에 섞여들 수 있도록 묵인해 주셨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군요.
제 이야기를 기억하지는 못하시더라도, 아까 제가 말을 걸었을 때 놀라지 않으셨다는 건…… 분명 많은 사람을 똑같이 구원해 왔다는 것이겠죠.
……벌써 오래전 일이다.
게시문을 쓰는 중인가?
방금 그 종이 말씀이십니까? 예, 경고문을 적고 있었습니다.
어제 기사가 마을에 왔는데, 이 근방에 강도 비슷한 이들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즈보넥 시내에서는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알지요. 이곳처럼 이동 도시의 항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정도야, 강도에게 약탈을 당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요.
사정이 그러한지라, 출정 기사가 그토록 심각하게 경고하는 걸 본 뒤로부터 계속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쫓아오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무기 한 자루 정도는 지니고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걸 출정 기사가 전해줬다고?
모르셨나요?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출정 기사가 평민의 안부를 걱정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몇 년 전 마을에 이사 온 몇몇 가족들도, 재앙으로부터 기사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웃 마을의 생존자도……
……의외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건 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깜짝 놀랐잖아, 츠시보르.
투구를 벗는 게 조금만 더 느렸으면, 겁먹은 마을 사람 중 하나가 활을 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만에 하나 너 같은 출정 기사님에게 상처라도 입혔다간…… 으음, 비록 이미 죄목이 잔뜩 걸린 몸이긴 하지만, 수배지에 몇 줄이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네.
'마을 사람'이라고? 하하하……
너희가 내 얼굴을 아직 기억해 줘서 다행이야.
……음, 다는 아니고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으려나.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선 너랑 면식이 있는 이들은 얼마 없어. 새로 온 애들이 오히려 많지.
……
우리 때문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 그래서 무슨 일이야? 황야의 작은 마을까지 순찰을 오다니 요즘 한가하기 때문은 아닐 테고?
요즘 이 근방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출정 기사들이 도시 외부의 질서 유지를 돕고 있다던데……
우리 쪽 몇몇 형제들 역시 '기사님'들께 붙잡혀 조사받고 있기도 해.
……그래서 내가 온 거다, 톨런드.
그 잡혀온 바운티 헌터들이 네 쪽 사람이라니 이야기가 쉽겠군.
알잖아, 내게도 일단 지켜야 할 규정이 있어.
'일단'이라, 저번처럼 '오로지' 규정만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닌 게 다행인걸. 그럼 둘이서만 얘기해 볼까?
저번에 만났을 땐 '리틀 마이너'가 너랑 옛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었어.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철수하느라 바빴고, 넌 규정대로 보고를 위해 복귀를 서두르고 있었지…… 그리고 그 녀석은 몇 년 전에 병으로 죽었어.
여기서 내려다보면…… 마침 계곡 너머의 공업 단지가 한눈에 들어오는군. 참 괜찮은 곳을 거점으로 잡았구나.
흠, 꽤 큰 기업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저곳은 원래 팔레니스코 가문의 저택이었어.
……옛날이 그립나?
조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바운티 헌터들이 내게 얼마나 큰 적의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그런 이유들 때문에 곤란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아.
그건 안심해도 좋아, 비록 여기에 전부 우리의 오랜 친구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신 무장한 기사단장을 죽이려 할 만큼 멍청한 놈들은 아니거든.
아니, 죽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음, 내가 승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었을 텐데?
그렇게 놀라지 말라고. 출정 기사의 내부 사정이 기밀이라고 해도, 기사단장이 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바운티 헌터들이 이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
예를 들자면 '별빛을 꿰뚫는 흑창'이나, '재앙에 돌격하는 기사' 같은 것들 말이야.
하하 그만해. 네 '정보'들은 영 감당하기가 힘드네. 게다가 배신한 동료를 쫓는 게 딱히 자랑할 일도 아니고.
내 실력이 별거 아닌 건 잘 알잖아. 자랑스레 내보일 만한 공적은 더더욱 없지.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하아, 넌 정말……
그래서. 최근의 습격 사건에 대해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거야? 아니면 상부에서 시켜서 그냥 뭔가 하는 시늉만 보이는 거야?
도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밖으로 동원된 출정 기사라니, 드문 일인데.
……둘 다라고 해 두지.
톨런드, 내가 보증하지. 바운티 헌터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풀려날 거야. 그들을 체포한 건 순찰 중인 출정 기사였어, 우리 사이에 이런 오해가 있으면 안 되지.
물론이지, 넌 무고한 사람한테 누명을 씌울 사람은 아니니까.
비록 우리의 행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습격 사건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확실해.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었으면 해. 조사가 끝나지 않으면 그들을 풀어줄 수가 없거든.
네가 말한 '조금'이 너무 길지는 않을 거라 믿겠어.
……근데 이런 일은 편지로 일러 줬어도 충분했잖아.
굳이 날 찾아온 건,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인가?
……자네의 바운티 헌터, 그 외눈의 자라크가 너희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해 줬어.
아하, 그 녀석이라면 감히 기사님께 거짓말을 할 용기가 없었겠지.
너희가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였다던데.
민간 조직 같은 명패야 정보 수집을 위한 허울뿐이지만, 충분한 액수를 불러 주는 고객이 있다면 가끔 즐거운 마음으로 도울 수도 있는 법이니까.
거짓말이 아냐, 정말 도움을 주러 온 거라고. 사용할 수단이 그리 고상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야.
……너희가 하려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건 알아. 그래서 더욱 마음에 걸리는 거지.
잘 들어, 톨런드…… 이번 조사에 말려들지 않도록, 적어도 당분간은 행동을 삼가줬으면 좋겠어.
즈보넥 시가지 개조나 건설을 맡은 기업들에는 될 수 있으면 접근하지 않기를 바랄게.
……꽤나 큰 사건인가 보네. 누군가가 너희들의 손을 빌려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건가?
……
후후, 충고 고마워.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약속하지.
음, 그럼 먼저 우리 형제들에게 얘기 좀 해주고 와도 되겠지? 안 그러면 놈들이 슬슬 어느 불쌍한 놈들을 납치해올 판이라서 말이야.
……그건 그렇고. 그 허리에 차고 있는 검 얘기나 해주지 그래?
기사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무기를 바꾸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내가 잘못 본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에나를 만난 건가?
……이 근방에서 최근에 일어난 혼란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당신은 황야의 길을 선택해 왔을 테니, 즈보넥 근처에는 들르지 않으셨겠죠.
도중에 전달자라도 만나서 신문이라도 사지 않는 한, 최근 소식을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소머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경고문은 붙여놨어요.
오오, 에바구나. 고생했다.
아뇨, 고생이라뇨. 모처럼 선생님께 도움이 됐는걸요!
……그나저나,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이분은……?
으음…… 대단한 기사님이란다.
앗! 그렇군요, 어서 오세요! 여기 한참 동안 서 계신 걸 봤는데, 혹시 땅을 보러 오신 건가요?
듣기론 최근 도시 밖에 휴가용으로 땅을 사려는 기사님들이 많아서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 같다고 들었어요.
저희 마을은 재앙을 겪은 적도 없고, 인근 마을에도 감염자가 없는 쾌적한 곳이랍니다.
아니면 혹시 기업 쪽 분이신가요? 아침에 신문에서 게일 공업의 모집 공고를 봤거든요. 즈보넥의 신시가지 건설을 위해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감염자라도 도시에 가서 생활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요.
음…… 게일 공업이 기사단의 스폰서였던가요?
……
……흠흠, 에바.
생각해 보니 촌장님께 보내야 할 편지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 심부름 좀 부탁해도 되겠니?
네? 물론이죠, 문제없어요.
지금 가보면 될까요?
하하,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 마을의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오는 분들에게 워낙 관심이 많은지라, 예의가 말이 아닙니다.
북쪽 길을 통해서 오신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계곡 쪽의 새 공장을 보셨겠군요.
도시 항로에 가까운 스트루미코보와 레이스톤도 최근 땅을 팔았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세금을 걷으러 온 사람이 들려준 이야깁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이 마을의 땅에 눈독을 들이면, 그 땅을 판 돈으로 도시에 가서 살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터무니없군.
그렇습니다, 터무니없는 기대지요.
저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지라 삶에 기대 같은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젊은 아이들은 허황된 꿈이라도 있는 편이 낫겠지요.
……저는 입을 잘못 놀려 고향에서 도망치게 된 사람입니다. 라이타니엔에 있었을 적엔, 저 또한 고탑 귀족들의 연회에서 장광설을 늘어놓곤 하던 학자 중 하나였지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입니다. 머릿속에 든 거라곤 당장의 삶에 대한 걱정밖에는 없죠.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일이니까요.
저 아이들 또한 저와 같은 처지입니다. 그러니, 비록 헛된 꿈일지라도 녀석들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볼 동기가 된다면야 그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설사 정말 비난할 사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 자리엔 없지.
옛 땅을 다시 둘러보러 오셨는데, 혹 실망을 안겨 드리진 않았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난 단지 사람을 찾으러 왔을 뿐이다.
혹시 금색 출정 기사를 본 적이 있나?
금색이라면? 최근 몇 년간 근방에 나타난 출정 기사들은 모두 은색 갑옷에 은 창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가 있었는지는…… 죄송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굳이 생각해 내려 애쓸 필요는 없다, 봤다면 잊지 못할 인상의 사람들이었으니.
그래도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찾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무슨 단서라도 제공해 주신다면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니면 길잡이라도 해 드리지요.
최근 몇 년간 작업 차량들이 온 적이 있나?
예? ……없었습니다.
그럼 길을 안내해 줄 필요는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똑똑히 기억해두마, 니어가의 녀석…… 네놈이 오늘 준 수모는, 네가 동정하는 그 천한 놈들에게 백배로 되돌려 주지!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은 문제없이 통과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법망은 저 먼 황야에까지 닿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만 없다면, 저들의 목소리가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닿을 일은 없겠죠.
됐어, 이제 그만하자고. 이미 충분히 멀리 왔잖아.
우리가 너와 계속 싸워나간다 해도, 카시미어엔 너 같은 귀족 나리와 우리가 대등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야.
사, 살려 주십시오……! 기사 나리를 예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텐트 속에서 죽을 순 없습니다! 제 아이가 내일 아침이면 돌아오는데…… 이렇게는……
미안해, 무에나. 대답해 줄 수 없어.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들렸고, 대화를 나누던 둘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상업연합회의 대형 수송차량이 지나가고, 컨테이너에 그려진 큼지막한 흰색 로고가 길가의 행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매연과 흙먼지를 내뿜으며, 울퉁불퉁한 흙길을 바퀴가 짓밟았다. 엔진의 굉음이 바람에 실려 늦가을의 평원에 울려 퍼졌다.
검이 없는 기사는 말이 없었다.
그는 거대한 강철과 눈을 마주했다. 그 자리에 홀로 남겨질 때까지.
그리고 그는 등을 돌려, 봐두었던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차량이 남기고 간 울퉁불퉁한 자국 옆, 기사의 걸음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기사님……?
……후우.
……카시미어의 기사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실망한 얼굴이신가?
무슨 연유로 검을 내려놓았고…… 무슨 연유로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것일까?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군. 어쩌면, 아이브와 같이 여기서 나가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저기 공장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어.
그것 참…… 그리워할 만하군.
왜 이런 곳에 있었던 거지?
글쎄, 길을 잃은 것 아니겠나? 마지막으로 온 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니까 말이야.
하, 본인 앞에서도 그렇게 말해 보지 그래?
정중히 사양하지.
난 무에나가 우르수스로 갈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떠난 이유부터가, 가족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때 그의 형님분의 편지에 그려져 있던 북풍과 설원은, 어쩌면 그저 상상 속의 풍경일 거라고 추측했었지 않나?
그 위대한 두 기사가 실제로 간 곳이 어디인지는, 감정회의 높은 분들만이 알고 있겠지.
아무래도 몇 년간 출정 기사들 사이에 있던 너조차도 별 소식은 못 들었나 보네?
아쉽게도.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하는 건 그 혼자만이 아니니까……
어렴풋하지만, 며칠 전에도 우리가 함께 모여 실종된 두 니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꿈을 꾸었지.
……그냥, 그 녀석은 단순히 휴가 나온 거라고 생각해 둘까.
이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소식 하나 없는 걸 보면, 무에나가 바보도 아니고.
맞다, 무에나한테 이 근처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고는 얘기했어? 어쩌면 무에나가 해결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했다. 그의 협조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렇기에 그의 무기를 기사단의 장인에게 맡겨 손질을 부탁하기도 했고.
훗, 무기에 신경을 쓰는 네 입장에선 확실히 눈에 거슬릴 만했겠어.
비록 그가 검을 쓰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지만,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니어 가문과 면식이 있는 장인이 있었을 텐데, 왜 손질을 맡기지 않았을까?
있기야 하지.
예를 들면 우리가 우르수스와의 충돌에 개입했던 그때, 내가 무에나의 지시에 따라 기사단 몇몇과 연락을 했던 일이 있었어.
그중 몇몇은 나중에 우리 바운티 헌터를 '살카즈 기사단'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니어 가문과 오래된 사이였지.
키릴 니어와도, 스니츠 니어와도 일했고 전장에서 의욕 넘치는 무에나도 봤었다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리고 장인 하나는 자기 조카인데, 아직 너무 어려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기사 스포츠의 수렁 속에 빠질 뻔한 녀석도 있었지.
근데 무에나 성격에, 그런 녀석들한테 도움을 요청할 것 같아?
하하.
난 오히려, 그래도 될 것 같은데.
……그가 아직도 자신의 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과연 그가 '성가신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줄까? 옛정 때문이 아니라, 그저 기사로서 도움의 손길을 건넬 것 같나?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십 년간, 난 전임 기사단장을 은사로 여겼었지. 그는 출신을 따지지도 않았고, 내가 어느 귀족에게 미움을 샀는지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존경하던 분이었지.
……내가 그의 자리와, 기사단의 문건 전부를 인계받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제야 알 수 있었어. 내가 지켜오던 기사의 맹세 뒤에도, 결국 탐욕과 부패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카시미어의 모든 출정 기사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야…… 그저, 내가 몸담고 있는 환경은, 이미 고결한 기사로서의 광휘와는 이미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됐다는 소리지.
일개 바운티 헌터한테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거야?
이야기를 들어줄 옛 친구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알잖아. 난 그저 착실하게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을 뿐이야.
기사의 수칙이 네가 보기엔 진부한 구석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게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적어도, 셀리나가 그렇게 원통하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셀리나가? 도대체 언제……?
몇 년 전 일이야.
미안하군,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지.
……하지만, 무에나는 알겠지. 그때 셀리나가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 끌려갔을 때, 그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쓴 적이 있으니까.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가게 됐다면…… 쉽지 않은 문제였겠군.
그래서 그가 셀리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 그가 셀리나를 죽인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에게…… 화풀이할 생각은 없어.
그저 그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렸고, 그래서 오늘 만났을 때 과거의 일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지.
……
만약, 그저 키릴 니어의 조문 편지 사이에 묻혔을 뿐이라면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는 내 편지를 받았고, 읽기까지 했다고 시인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그 모든 일들에 대해 입을 다물고, 내가 품은 원한을 알아주려 하지도 않더군.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일의 옳고 그름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어진 걸일까?
으음……
우선 질문 하나 하지.
바운티 헌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으면서, 무에나를 사적인 원한이 얽힌 계획에 포함시키는 건……
너는 무에나를, 아군으로 삼고 싶은 거냐…… 아니면, 복수하고 싶은 거냐?
……
오해하진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