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T-2휴식 시간
토미미의 부락에서 따분한 잡담을 나누는 조종사 딜런과 Lancet-2. 한편 폭포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재정비 중인 박사 일행은, 갑자기 나타난 케오베가 주마마의 부족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Lancet-2, 진지하게 뭐 하나 물어보자.
말씀하세요.
넌 배터리가 다 떨어지거나 하진 않아?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출발 전에 클로저 씨가 지속 시간이 긴 신형 배터리로 바꿔줬거든요.
이론상으로는 일주일 동안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아도 끄떡없어요.
비행체에 예비 배터리도 있으니 제 걱정은 마세요.
뭐 그럼 됐고.
케오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달아나버렸어.
확실히 케오베 씨의 지금 상태가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 왕성한 생명력을 생각하면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맞지.
아~ 심심하다.
비행체 수리도 끝났고, 가비알이 보낸 환자 상태도 안정세에 접어들었고, 할 일이 없네.
게다가 여기 사람들하고는 말도 안 통하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박사 따라 제전인가 뭔가 보러 갈 걸 그랬다.
비행체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중요한 자산이에요. 잘 지켜야지요.
말이 그렇단 거지. 내가 조종사인데 당연히 그런 것쯤은 알아.
넌 좋겠다, Lancet-2. 심심할 땐 슬립 모드로 전환하면 되니까. 난 어제 열두 시간이나 자서 지금 잠도 안 와.
정확히 말하면 제겐… '심심하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걸요.
하지만 딜런 씨의 지금 감정을 이해합니다. 클로저 씨도 늘 그런 말을 했고, 보통 그럴 땐 이상한 일을 하러 가곤 했으니까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Lancet-2, 너나 다른 로봇 안에 진짜로 사람이 타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럼요. 정밀 회로뿐이에요. 보시겠습니까?
다만, 제 성격을 설정한 분이 여성인 관계로, 남성에게 몸을 보일 경우엔 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헉… 됐어 그럼.
본다고 해도 이럴 땐 수영복 차림을 보고 싶으니까.
수영복, 말씀이신가요?
그래. 지금은 여름이니까 수영복 입고 물놀이하는 게 정상이잖아.
그렇다면, 제가 파도 소리를 들려 드릴게요.
됐다. 그럼 내가 더 비참해 보이잖아.
설마…… 딜런 씨는 제 수영복 차림을 보고 싶은 건가요?
아니거든!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어차피 전 기계일 뿐이니까요……
아 잠깐…… 미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딜런 씨는, 바다를 본 적 있나요?
뭐…… 그런 셈이지. 작년 여름이었나. 실버애쉬네 도련님 일정이 바뀌어서 로도스 아일랜드 비행체를 빌렸거든. 그때 내가 조종을 맡았었고.
도착하고 보니까, 무슨 휴양지 같더라고. 실버애쉬네 도련님이 나도 초대해줘서, 덕분에 VIP의 삶을 경험해봤지.
쳇…… 그때 알았어. 가난뱅이의 상상력으로 부자들의 삶을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말이야.
그때 사진을 난 아직도 갖고 다녀, 한 번 볼래?
딜런 씨는 그런 삶을 동경하나요?
응? 동경이라…… 그 며칠은 확실히 황홀했지만, 계속 그렇게 산다면 난 아마 적응 못 할 거야.
역시 나한텐 조종실에서 컵라면 먹고 매일 밤낮 바뀐 생활을 하는 게 어울려.
그건 안 되죠. 딜런 씨, 제가 합리적이고 건강한 생활 계획표를 만들어 드릴게요.
괜찮아, 됐어!
안타깝네요. 클로저 씨가 이 기능을 만들어줬지만, 정작 본인도 박사님도 이 기능을 쓴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하하, 그 두 사람이라면 확실히 그러고도 남겠네.
아, 그나저나 여기 부족 사람들 말이야. 생각보다 사는 게 괜찮은 거 같아. 있을 것도 다 있고.
네, 바깥세상과 비교하면 편의성이나 쾌적도는 훨씬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편한 점도 없죠.
제 기록에 따르면 지난 며칠간 딜런 씨의 건강 상태도 좋아졌어요.
진짜로?
네.
이게 바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건가? 후우…… 하긴. 원래 인류는 이런 삶부터 시작했으니.
참, 가비알이 저쪽 정글에 큰 폭포가 있다고 하던데. 다들 돌아오면 거기 가보는 것도 좋겠다.
그분들은 이미 가셨을지도 모르죠.
박사는 공평한 사람이야. 우리를 버려두고 물놀이하러 갔을 리 없어!
그러네요, 그때까지 일단 참고 기다리죠.
여기 딜런이라고 있어?
전데요!
어? 사르곤어를 할 줄 아네?
알지. 기계와 함께 있는 인간. 음, 네가 맞겠군.
박사라는 녀석이 너한테 이 편지를 전해 달라 했어.
음? 무슨 일로……
……Lancet-2, 우리한테 할 일이 생긴 거 같아.
와~ 멀리서도 물소리가 들리네. 폭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봐봐~ 내 말 맞지?
그러게! 이번엔 용서해줄게~
하하, 확실히 장관이네.
토미미는 아직 안 온 것 같으니까 일단 좀 쉬자.
얏호~! 수영복 입은 보람이 있었네~!
……
투지가 넘치네, 꼬마.
……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크마르는 말없이 자세만 잡았다.
헤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너랑 몇 판 더 붙어보지 뭐.
블레이즈 언니랑 저 여자애, 엄청 살벌하게 싸우는데.
그렇제.
싸우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우타게…… 니 전투할 때는 안 그라는 줄 아나.
아하하, 하긴.
근데 크루아상이 입은 건 수영복 아니지?
하하, 들키뿟네. 사실 이거 야외 활동복인데, 방수 기능이 마 끝내줘가꼬, 어찌저찌 수영복으로도 활용할 만도 하다 아이가.
정말 실용적인 물건을 좋아하는구나.
어쨌든 해변은 아니지만 폭포에서 노는 것도 꽤 재밌네! 자연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카메라 안 가져온 게 아쉽다~
누가 아이라나, 나도 이런 야외 활동은 첨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지네~
어라……
와 그라노?
내가 잘못 봤나?
잉?
저거 설마, 케오?
박사, 이 폭포 괜찮은데.
- 제법 훌륭해.
- ……
- 그저 그런걸.
하하, 예전엔 여기 와서 씻는 걸 좋아했는데.
박사, 지금 뭔가 생각하는 눈치네.
허세 부리긴.
여길 건너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주마마 부족이 있는 곳에 도착할 거야.
토미미의 편지를 받았을 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몰랐는데.
저기…… 박사. 요즘 골치 아픈 게 하나 있거든? 우리도 제법 친한 사이니까 박사한테 좀 물어보려고……
있잖아……
박~~사~~~!
뭐야? 나랑 박사랑 지금 얘기 중이잖아.
저기! 저기 좀 봐!
저건…… 케오?
찾았다, 버섯 바다야!
씻어야지!
아직 제정신이 안 돌아왔나 봐.
그래도 물장구치는 게 귀엽네.
어휴, 저 바보 같으니……
뭐…… 그냥 저렇게 좀 놀게 놔두는 게 낫겠다……
그보다… 박사, 방금 내가 하려던 말은…
박사가 보기엔 어때? 내 꼬리, 전보다 좀 굵어진 거 같지 않아?
- 굵어졌어.
- ……
- 글쎄, 신경 써본 적이 없어서.
뭐어?! 진짜?!! 망했다, 망했어… 이번에 돌아가면 진짜 식단 조절해야겠다.
뭐야, 박사……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꼬리는 아다크리스의 생명이라고!
쳇, 역시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어.
박사는 모르겠지만, 예전엔 토미미의 꼬리도 그렇게 굵지 않았어. 난 그렇게 큰 꼬리로 변하는 거 싫다고.
- 주마마에 관해서는 별다른 할 말 없고?
- ……
- 꼬리 이야기나 하자.
응? 할 말이라니?
꽤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거대한 기계를 만들 수 있잖아.
오! 역시 박사라면 관심 있어 할 줄 알았다니까!
가비알 씨!
왔구나, 토미미. 일은 잘 처리한 거야?
네!
헐… 대박!
왜, 왜 그러세요?
엄청 귀엽잖아! 가비알한테 이런 친구가 있었다니! 네 주변엔 다 너처럼 머리에 근육만 찬 녀석뿐인 줄 알았는데!
말이 너무 심하잖아!
매끄러운 피부, 섬세한 이목구비… 블랙 계열의 스타일링도 잘 어울려.
블랙 계열? 그게 트렌드야?
트렌드 까지는 아닐 텐데,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좋아해.
저, 전 잡지를 따라 한 것뿐이에요… 바깥세상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입는다길래…
아, 패션에 관한 오해가 있네. 어쩔 수 없지. 이런 곳이니까 그런 잘못된 인식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봐!
뭐 괜찮아. 이 우타게 언니가 정확한 패션 상식을 전수해주지!
가비알, 얘 잠깐 데려갈게!
어? 어, 흐에에에?
아… 뭐 알아서 해.
어쨌든 이제 올 사람은 다 왔네.
난 가서 케오 정신 좀 차리게 할게……
휴식 끝! 케오는 계속 싸울 거야!
가비알! 점마 또 째삐맀다!
뭐?
칫, 다들 빨리 옷 갈아입어! 빨리 쫓아가!
저 방향은 주마마의 부족이 있는 방향 같은데요…
잠깐만! 뭐 이리 빨리 갈아입어?!
우리랑 같이 가!
갈아입을 게 뭐 있어! 바로 출발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