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
리 탐정사무소에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그런데 의심병이 도진 의뢰인을 마주한 훔과 아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을 못 알아들으셨나 본데, 이대로 가다간……
저, 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응?
그럼 일단 근위국에 신고부터 하는 게 어때?
하아, 근위국에 갔었는데, 그냥 제가 과민반응 하는 거라고 하더라니까요.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이곳이 '탐정 사무소'라던데, 맞죠? 그러면 누가 절 죽이려는지 알아내고, 제 안전을 지켜주는 것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전 지금 근위국도 그놈들이랑 결탁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요……
쓰읍, 그러니까 제 신고를 무시한 거겠죠!
오호? 근위국이 연루된 음모라는 거야?
재미있네, 이 의뢰 우리가 맡을게.
비용은 보통 시간당 1천 용문폐인데, 특별히 할인해서 3만 용문폐에 해줄게, 어때?
일단 좀 진정해, 아.
(작은 목소리로) 난 더 이상 매일 컵라면만 먹고 살긴 싫단 말이야. 네가 요즘 받았던 일 중에 보수를 받은 게 있어? 이대로 가다간 리 선생님이 돌아오기도 전에 우리 둘 다 굶어 죽게 생겼다고.
그쪽도 일단 좀 진정하시고요, 음……
훔은 남자가 아까 건넸던 명함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명함의 회사는 용문의 유명 기업이었고,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직함을 보았을 때 남자의 직책은 꽤 높아 보였다.
훔은 '이 의뢰인은 매일 컵라면을 먹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류 씨.
방금 미행당하고 계신 것 같다고 하셨는데, 혹시 착각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저도 며칠 전,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선이 느껴져서 봤더니, 그냥 야생 클라우드비스트가 따라오는 거였어요.
그거랑은 달라요! 들어보세요……
류 씨는 경계 섞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집 문 쪽 벽에 매일 이상한 긁힌 자국이 생기고 있어요. 도시 간 네트워크에서 찾아봤더니, 사람들이…… 그건 표적이 됐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고 있어요! 출퇴근길에서, 심지어 회사 안에서도 누가 계속 절 지켜보는 것 같아요……
으으,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그러니까, 혹시 야생 클라우드비스트일 수도……
세상에 어느 고층 빌딩 사무실에 야생 클라우드비스트가 있겠어요!
게다가 가장 무서운 점은, 밤마다 자꾸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류 씨, 이 거리 끝에 아로마 오일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어요. 제가 거기서 정신을 안정시키는 아로마 오일을 하나 사본 적 있는데, 숙면에 아주 좋더라고요.
어쩌면 요즘 신경이 조금 예민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니, 오일을 좀 발라보시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하아, 어떻게 당신들마저도 내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건지……
근데 듣고 보니까 확실히 누군가의 표적이 된 것 같긴 한데.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계속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지는 않잖아.
적어도 내 경험상, 그게 느껴질 정도면 상대가 숨길 생각도 없이 노리고 있다는 뜻이거든. 혹여 네가 알아채든, 알아채고 나서 뭘 어떻게 하든, 전혀 겁나지 않다는 거니까.
바로 그거예요!
에이, 의뢰인 겁주지 마. 넌 좀 더 특수한 경우니까,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순 없지……
그러고 보니 류 씨, 문 앞의 긁힌 자국은 아직도 남아있나요?
있, 있어요! 전에 한 번 지워봤는데 곧바로 다시 생겨서 지금은 지울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게다가 며칠 간격으로 몇 줄씩 늘어나고 있다니까요.
그럼 지금 보러 가보자.
지금 바로?
당연하지. 내가 범인이라면, 분명 사람이 없는 한밤중에 긁으러 갈 테니까 말이야.
훔은 단말기의 시간을 확인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그런 '범인'이 정말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뭐, 좋아. 류 씨, 저희가 지금 현장에 가서 좀 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현장을 확인해 보면 마음이 좀 놓이실 수도 있으니까요.
조, 좋습니다!
잠깐만, 나 카메라 좀 챙길게!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지나다니는 차들도 점차 뜸해졌다. 류 씨는 앞장서 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왜, 또 누가 미행하는 것 같아?
지금은…… 없네요. 이상하다, 당신들을 찾아갈 때만 해도 절 보는 시선이 느껴졌었는데……
너무 긴장하셔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사무소 건물 아래 잡화점 할아버지는 심심할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아마 그분이 류 씨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쳐다보셨던 것일 수도 있죠.
그, 그런 걸까요……
아, 다 왔습니다. 이쪽 2층으로 올라가시면 바로 제 집이에요.
류 씨가 사는 단지는 오래된 상점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벽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고, 복도에는 습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벌벌 떨며 집 문 쪽의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확실히 몇 줄의 이상한 흔적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군데는 특히나 선명하게, 가늘고 긴 세 줄의 긁힌 자국이 문 쪽으로 교차하며 이어져 있었다.
보세요, 바로 이거예요! 제가 아무리 자국을 지워도, 이틀 뒤면 또 생긴다니까요. 게다가 매번 똑같은 모양이에요……
간격은 일정한데 깊이가 제각각이라…… 사람이 새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설마 귀신일까요?!
……그보다는 기계에 긁힌 자국 같아요.
류 씨, 범인은 당신을 겁주려고 일부러 기계까지 챙겨왔나 본데.
그, 그게 무슨……
훔은 쪼그리고 앉아 벽 모서리를 자세히 살피며 바닥에 떨어진 하얀 가루를 만져보았다. 가루를 조금 집어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자, 하얀 가루 속에서 희미한 푸른 반사광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가 벽 사진을 찍는 동안, 훔은 복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류 씨, 괜한 걱정이었네요. 이건 누군가 일부러 그린 게 아니에요. 벽의 긁힌 흔적 속에 남아있는 옅은 푸른색 가루는 그냥 말라붙은 세제예요.
그리고 이 규칙적인 간격을 고려하면…… 아마 복도 청소할 때 쓰는 청소 기계가 벽에 쓸리면서 생긴 거 같네요.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여기 복도 쪽에 바퀴 자국이 있거든. 자, 봐봐.
훔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벽의 긁힌 흔적 아래쪽 타일에 남아있는 희미한 바퀴 자국을 아랑 류 씨는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 겨우 이거 가지고? 어쩌면 범인이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을 타고 와서 생긴 것일 수도 있잖아.
무, 무슨……
류 씨, 괜찮습니다. 긁힌 자국은 단순한 오해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한밤중의 속삭임'이 어떻게 된 건지 함께 확인하러 가볼까요? 괜찮으시죠?
괜, 괜찮고말고요!
(작은 목소리로) 근데 어제 문을 열었을 때 분명 누가 도망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청소부였던 건가……
밤이 깊어 갔다. 류 씨의 집 안에는 작은 등 몇 개만 켜져 있었고, 방안에선 창밖 광고판의 붉은 네온사인이 블라인드 사이로 깜빡이는 게 보였다.
훔은 문 뒤에 붙어서 밖의 기척을 살폈고, 아는 창가에 기대어 손전등으로 건너편 건물을 비추어 보다가 이따금 카메라를 꺼내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류 씨는 담요를 두른 채, 손전등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섞인 미세한 바람 소리만이 방 안에 맴돌고 있었다.
문밖에는 누군가가 지나가는 기척도 없고, 희미하게 차 소리만 들리네요. 아, 너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여기 단지 사람들은 꽤 다정하군요. 이 시간에도 아래에 떠도는 클라우드비스트한테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던데요.
우리도 밤에 건물 아래 누워 있으면, 누군가 와서 밥이라도 주려나?
저 사람 먹이를 다 줬나 보네, 클라우드비스트가 이쪽으로 온다…… 오, 위로 뛰어 올라왔어, 진짜 활발하네.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이거 야생 클라우드비스트가 아닌 것 같네, 목줄을 차고 있어.
아, 야옹이네요. 아마 누가 잃어버린 거 같아요. 요즘 일층에서 이 녀석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자주 보이더라고요.
사람을 참 잘 따르는 게, 매일 밤 우리 집 창가에 와서 한 바퀴 돌고 가더라고요. 아니, 어쩌다 클라우드비스트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 거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면 아실 거예요. 매일 밤 이 시간이 되면, 이 벽 너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거든요……
지지직…… 지……
말이 끝나자마자 한순간 정적이 감돌더니, 정말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 바로 이 소리예요!
전기가 흐르는 소리 같은데……?
류 씨는 긴장해서 땀을 흘렸고, 아 또한 조금 의아해했다. 훔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나 벽에 귀를 대고 몇 초간 소리를 듣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몇 분 뒤, 소음이 갑자기 멎었다.
소리가 안 나네? 뭘 끈 거야?
공기 청정기야. 안에 뭐가 걸려 있길래 내가 빼냈어.
팬이 좀 헐거워져 있는 상태로 기계가 돌아가다 걸렸나 봐. 그래서 소음이 나다 말다 했던 거고, 벽 너머에선 그게 말소리처럼 들렸던 거지.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뭐가 끼어 있었는데?
뭔가 부품 같은 게 떨어져 들어간 것 같더라.
공기 청정기를 한동안 켜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요즘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집 안 공기를 정화하려고 계속 켜뒀는데, 안에 뭐가 걸렸을 줄이야.
아, 혹시 지난주에 수도관 고치러 온 기사님이 흘리고 가신 걸까요? 역시 도시 간 네트워크에서 싸다고 해서 부른 수리 기사님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이 부품……
하아, 그래도 두 분 덕에 이걸 알게 됐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전 정말로 이 집에서 더는 못 살았을 겁니다.
류 씨, 너무 긴장하셨어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우리 용문에 음모나 초자연 현상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몇 마디 더 드리려 하는데, 부디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생활 중에 이런 긁힌 자국이 생기거나 소리가 나게 되면 사람들은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류 씨는 정말 지나치게 긴장하신 것 같아서요. 혹시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 생각엔 류 씨 스스로 미행당하고 있다고 의심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걱정할 정도가 된 게, 단순히 벽에 긁힌 자국이나 공기 청정기 소리에서 비롯된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음……
……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지난주에 회사 동료 한 명을 밀수랑 공금 횡령으로 신고했거든요.
회사가 투명하지 못한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데다가, 그 동료는 승진도 빨라서 혹시나…… 아니, 제가 단순히 그 동료를 좀 질투했던 거 같아요……
실은 저도 홧김에 신고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러고 나니까, 보복당할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게다가 신고하고 나선 아예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그 동료를 보지도 못했죠. 어쩌면…… 어쩌면 제게 해코지하려고 준비 중일지도 몰라요……
그랬군요, 진작 말씀하셨어야죠!
사람 사이의 오해는 빨리 풀어야 해요. 안 그러면 오해가 점점 쌓여서 사소한 일이 큰 싸움이 되고, 결국엔 서로 손해만 보게 되거든요.
오늘은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다시 사무소로 와 주시면 전부 해결해 드릴 테니, 안심하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보수는……
서두르실 것 없어요, 그건 내일 다시 얘기하시죠. 그러면 이만, 류 씨도 얼른 쉬세요.
재미있네. 보복이라니……
내일 다 해결할 거라니, 자신 있는 거야?
단지 오해일 뿐이잖아. 오해 하나 푸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내일 보수를 받으면 드디어 신선한 식자재를 좀 사러 갈 수 있겠다. 옥수수 셸비스트전에 호박 갈비찜, 그리고 오이 목이버섯 무침도 좀 하고…… 아,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메뉴 생각하는 것뿐인데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
난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그 '야옹이'가 매일 류 씨 창가에 어슬렁거리는 것도 그렇고, 걔가 올라오기만 하면 류 씨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건데, 일이 하필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그 목줄에 달린 이름표에선, 빛도 나더라니까! 봐, 내가 다 찍어뒀어. 누가 클라우드비스트한테 빛나는 목줄을 채워줘? 수상해, 너무 수상하다고……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인가 보지. 목줄이 빛나면 밤에 먹이를 주기도 편할 테니까. 야옹이는 온몸이 새까매서, 자세히 안 보면 알아채기도 어렵잖아.
새까만 야생 클라우드비스트, 매일 밤 정해진 경로…… 빛나는 목줄, 먹이 주는 사람…… 긁힌 자국과 괴상한 소리, 그리고 공기 청정기에 끼어 있던 부품까지……
하! 류 씨를 미행하는 녀석이 누군지 알아냈어!
응?
이 사진 좀 봐. 밑에 있는 저 사람, 손에 뭔가를 들고 위를 쳐다보고 있잖아!
야옹이를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근데 야옹이는 류 씨네 창가에 있었잖아?
그 말은 즉…… 저 사람이 야옹이를 통해서 류 씨를 도청, 아니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그 빛나는 목줄 이름표가 바로 카메라일지도 모른다고!
아까 류 씨네 집에 있을 때 네가 이 추측을 내뱉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류 씨가 무서워서 쓰러졌을 테니까.
류 씨의 그 커다란 다크서클을 생각해 봐. 아마 일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계속 그 상태로 있었다간 분명 겁먹다 못해 신경쇠약까지 걸렸을 거야.
용문에서 살아가는 게 어려워 보여도, 사실 그리 어렵진 않잖아. 뭐, 리 선생님은 늘 어쩔 수 없는 일들에 휘말리곤 하지만…… 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확실히 있으니까.
하지만 난, 처음부터 모두가 서로를 솔직하게 대한다면, 일이 복잡해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오해였다면, 아직 대화의 여지가 있는 거니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사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잖아. 서로 못마땅해하고, 질투하다 보면 끝이 없을걸.
그러니까, 내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 나면, 류 씨의 걱정도 모두 사라질 거야.
웬일로 의견이 일치하네……
맞아, 근원부터 해결해야지. 후훗, 내가 내일 반드시 배후 세력의 아지트를 찾아내서,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고 말겠어.
아지트라니 그게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집에나 가자. 내일은 일찍 나가서 일을 해야 하잖아.
아는 아침 일찍부터 어딜 간 거야? 문제를 해결하러 가기로 했잖아?
됐다, 됐어. 혼자서도 괜찮겠지. 혼자여도 체면치레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여보세요? 아, 류 씨. 저는 이미 상점 쪽에 와 있어요.
정말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제 쪽에 있는 물건도 이제 거의 다 골랐습니다.
……아, 참. 저희 보수를 일부라도 선불 지급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자, 자, 야옹아. 이리 와봐.
이건 내가 컵라면에서 빼내서 아껴둔 고기 조각인데, 이걸 먹고 싶으면 네 몸에 있는 거랑 바꿔야 하거든……
……잡았다!
흥, 역시 내 예상대로야. 이 목줄 이름표 안에 카메라가 있었어.
요즘 조직들은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건가? 야생 동물을 이용하다니…… 그게 아니라면 기업?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
류 씨가 전에 어떤 사람한테 밉보였다고 했었는데…… 혹시 그 사람이……
잠깐만, 저 사람 어젯밤에 밑에서 야옹이에게 먹이를 주던 남자 같은데? 지금 류 씨네 문을 두드리고 있잖아?
아무도 안 열어주네. 음, 훔이 먼저 와서 류 씨를 데려간 모양이군. 다행이야.
누구랑 통화하는 거지…… 어라, 어딜 가려는 건가? 안 되겠어, 따라가야겠다. 아마 류 씨를 찾으러 가는 걸지도 몰라.
……에잇, 저리 가. 야옹아, 저리 가라니까! 이제 고기 조각은 없다고!
하아, 하아…… 저 사람 달리기 진짜 빠르네……
상업 거리? 젠장, 설마 내가 미행하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주말이라 사람도 많아서 놓치기 너무 쉽다고!
어…… 저건…… 훔이랑 류 씨잖아? 왜 둘이서 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거지? 설마 연장이라도 챙겨온 건가……
이거 어떡하지, 신고해야 하나? 신고했다가 근위국이 훔까지 잡아가면 어쩌지……
일단 모르겠고, 지금은 어쨌든 저 사람을 쫓아가자.
아잇, 밀지 마, 좀 지나갈게!
아파트? 아지트가 이렇게 초라하다니……
저 사람 상업 거리를 가로질러 오더니, 어느새 손에 커다란 가방이 하나 더 늘었잖아. 저건 십중팔구 공범이 준 걸 텐데, 안에 과연 뭐가 들었으려나…… 무기? 아니면 범죄 자금?
쓰읍, 훔한테 먼저 알려야 하나? 아니면 신고를? 근데 저 사람 꽤 말라 보이는데, 훔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지?
……잠깐, 이쪽을 보고 있는 건가? 망했다, 들켰어!
으아아, 이쪽으로 온다! 가방 안에 손을 넣었어……
……
……
어, 그…… 왕 씨.....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게, 하하…… 지난주에 실수로 넘어져서 입원했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음……
복도 안, 류 씨와 왕 씨는 서로 마주 보며, 마치 공기가 얼어붙을 듯한 어색함에 휩싸였다.
그 옆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훔이 과일이 든 비닐봉지 2개를 든 채,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류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제가 신고한 동료의 집이 어디냐고 물어본 게, 혹시 이것 때문이었던 거예요?!
(작은 목소리로) 네!
(작은 목소리로) 이봐요…… 진작 내게 말해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거 아니에요!
(작은 목소리로) 예? 제가 분명 어젯밤 류 씨네 집에서 사람 사이의 오해는 빨리 풀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작은 목소리로) 아니, 그 말이 이런 뜻일 줄 제가 어떻게 알았겠냐고요……
……
두 분, 오늘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전 이만 문을 닫겠습니다……
잠깐만요, 왕 씨! 류 씨가 당신한테 드릴 중요한 말이 있대요!
중요한 말이요……?
네! 아주, 아주 중요한 말이에요!
(작은 목소리로) 류 씨, 어서요!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미루지 말고요!
(작은 목소리로) 아, 알았어요……!
……
그게 말이죠, 음, 실은 지난주에 제가 홧김에 왕 씨를 신고해 버렸어요. 저는 지난 반년 동안 일이 통 안 풀렸는데, 왕 씨가 너무 쉽게 승진하는 걸 보니까, 제가, 제가 질투가 나서……
하지만 그러기 전에 당신이랑 제대로 대화를 나눠야 했어요! 회사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건 결국 저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제가 뭐 하러 굳이 나서서……
그래서 오늘은, 왕 씨한테 사과하러 왔어요! 이, 이 과일 좀 받아주세요!
류 씨는 말을 마치고서 바로 왕 씨에게 과일 봉지 2개를 건넸다.
마치 이번 세기에 가장 놀라운 소식을 들은 것처럼, 왕 씨는 입을 반쯤 벌리고 한 손으로는 목발을 짚은 채, 다른 한 손을 뻗어 이 과일 봉지 2개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훔이 왕 씨의 빈손을 잡아당겨 류 씨의 손을 맞잡게 했고, 자연스럽게 과일 봉지도 왕 씨에게 넘겨주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더라고요. 제 의뢰인께선 그때 행동이 너무 충동적이었다며 지난 일주일 동안 식사도 못 드실 정도로 후회하셨어요. 그래서 왕 선생님께 사죄드리려고 일부러 찾아온 겁니다.
다들 웃으면서 지내야 복이 따라온다잖아요!
왕 씨, 어떻게…… 괜찮으실까요?
……
휴우, 류 씨도 참 너무 친절하시네요…… 사실 저도 신고당하고 나서야 회사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 그냥 위에서 하는 일을 도왔던 거였고,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는 잘 몰랐거든요……
회사에선 저를 다른 부서로 옮겨 줬는데, 그때 솔직히 말해서 전 정말 한시름 놨다 생각했어요. 류 씨가 그때 신고해 주지 않았다면, 나중에 제가 다 뒤집어썼을지도 몰라요!
아? 그랬던 거군요……!
아이고, 다 제 탓이에요. 제가 그때 말이라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류 씨. 그런 말씀 마세요……
잘됐네요, 두 분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시니, 일이 잘 해결됐네요.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충분한 대화라니까요.
류 씨도 이제 미행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미행이요……?
아, 참. 두 분의 오해가 풀린 것도 축하할 겸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식사라도 하시는 건 어떠세요?
아, 잠깐만요……
두 사람이 대답하기도 전에, 훔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젓더니 손뼉을 쳤다.
그냥 외식하죠. 제가 마침 괜찮은 식당을 하나 알고 있거든요. 두 분 생각은 어떠세요? 아직 식사 시간 전이라, 지금 가면 줄을 오래 서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아, 그리고 류 씨. 보수는 역시 선불로 지급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요! 마침 저도 배가 고프니, 아예 택시를 불러서 가시죠. 오늘 식사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쳇, 결국 그냥 오해였을 뿐이라니, 너무 시시하잖아!
믿어져? 내가 반나절 넘게 쫓아다닌 용의자가, 고작 수영장 피트니스 영업하는 알바생이었다고?!
대체 왜 류 씨네 집 문을 두드렸냐고 물어봤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흠흠, “류 씨가 토요일에 수영 수업을 받기로 저랑 약속했거든요. 근데 전화도 안 받고,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하더라고.
진짜…… 나야말로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다고!
벌써 밤인데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냥 오해였다니까 잘된 거지 뭐.
류 씨가 갈 때 나한테 말하더라고, 왕 씨와 이야기하고 나니 더는 미행당하는 느낌이 없는 것 같다고 말이야. 게다가 내가 추천해 줬던 아로마 오일도 사러 갔다니까, 오늘 저녁엔 분명 푹 주무실 수 있을 거야.
그다지 한 것도 없는데, 의뢰인한테 그렇게나 많은 돈을 받아버렸으니, 한편으론 좀 미안한 마음이 드네.
난 일 많이 했거든! 근데 난 내가 조사한 방향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이상하단 말이야. 만약에 단순한 오해였다면, 내가 길에서 봤던 그 알바생이랑 비밀스럽게 속닥거리던 그 사람들은 다 뭐였던 건데?
그 사람들은 그냥 자기들 할 일 했던 걸 수도 있지.
어쨌든 이 도시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다들 그냥 평범한 나날을 살아가는 것뿐이야.
자, 고기만 골라 먹지 말고, 채소랑 버섯도 좀 먹어. 죽순조림은 이번에도 잘 됐으니까, 한 입 어때?
넌, 사람을 너무 좋게만 본다니까! 이번에야 별일 없었지만, 다음에 또 멋대로 의뢰인을 데리고 직접 찾아갔을 때, 문이 열리자마자 조직의 킬러 100명이 튀어나오면 어떡할 건데?
리 선생님은 뱃속에 구렁이가 몇백 마리는 있는 사람이니, 그분을 걱정할 바에는 리 선생님한테 속을 사람을 걱정하는 게 낫지. 근데 넌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
내 말 잘 들어봐. 이 의뢰인, 아니, 그 미행하는 사람이랑 그 회사까지 분명 다 문제가 있을 거야!
하아, 도대체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더 잘 지켜봐야겠다, 이제 이 사무소의 운명은 나한테 달린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래그래, 너만 믿을게. 자, 이 채소 좀 먹어봐.
아무튼, 협조해 줘서 고마워.
굳이 야식을 먹으면서까지 일 이야기를 해야겠어?
……너랑은 사적으로 얘기할 게 없거든!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위험했어. 그 테러범들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던 참에, 그 '열혈 시민'이 사과하러 가지 않았다면 정말 인명 피해가 났을지도 몰라.
두 명의 인명 피해가 났겠지.
어?
걔네가 사죄하러 갔던 사람, 내 정보원이야. 그 바보 같은 녀석, 자기가 타겟이 된 줄도 모르고 퇴원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었지.
어…… 그런 우연이.
우연일까? 그 탐정 사무소의 덩치 큰 남자…… 무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영리한 것 같던데. 일부러 사람 많은 곳으로 의뢰인을 데려갔잖아……
누구의 실력이 아직 모자란가 봐. 테러범들이 아파트에 잠복하는 지경까지 되다니 말이야.
제보자 명단이 유출되게 한 누군가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
신경 끄시지! 안 그래도 그 사건을 조사하려고 준비 중이거든!
빈틈 발견.
(냠냠)
어?! 내 마지막 어묵! 이 쥐새끼가, 너 반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