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등불
수도로 이동해서 처분을 기다리던 마지막 날 자유 시간을 받게 된 에벤홀츠. 사람들을 만나고 옛일들을 떠올리던 그는 음악이 금지된 애프터글로에서 첼로를 켜기로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에벤홀츠, 히비스커스, 체르니,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우르티카 백작님. 내일 오전에 비세하임이 이동을 멈출 예정입니다. 그때 비세하임의 시의회를 대표하여 제가 당신과 함께 수도로 이동할 겁니다.
제가 이번 일에 대한 조사 보조를 맡았습니다.
또한 규정에 따른 백작님의 신변 정리 및 친지에 대한 작별 인사를 위해,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는 비세하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셔도 됩니다.
물론 당신의 특수한 신분과 이번 일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비세하임에서 다니는 동안은 제가 항상 수행하게 됩니다.
수행이라고? 조금 더 솔직하게 '감시'라는 단어를 사용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깨를 으쓱인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가능하다면 미리 알려주시면……
알려줄 필요가 있나?
이 말을 해드려야겠군요. 당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기록되며, 당신에 대한 처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됐어, 차라리 스파이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 편이 낫겠군. 당신보다는 훨씬 인간미 있을 테니까.
붉은 노을 전당은 여전했지만, 더욱 고요해졌다.
광장은 텅 비어 있었고, 주위로 복색은 자유로웠지만 눈에는 경계가 가득한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안 돼. 평민은 지나갈 수 없다.
젤레가 이곳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냥 그가 좋아하던 노래만 한 곡 불러주고 싶을 뿐이에요. 《내일의 멜로디》라는 곡인데……
안 돼. 썩 꺼져! 지금은 음악 연주를 금지하고 있다. 명령을 위반할 생각인가?!
하지만 정말 그냥 노래 한 곡만 부르고 싶어요. 저는 오리지늄 아츠 같은 건 전혀 못 합니다……
즉시 이곳을 떠나라. 아니면 꽤 곤란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어디 가려는 겁니까?
저 사복 경찰이 평민은 못 들어간다잖아? 나는 귀족이니 저 사람 대신 들어가겠어.
뭐지, 방해라도 할 셈인가?
잊으셨나요? 당신은 이미 평민을 데리고 악기점에 난입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일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추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 번은 젊은이의 치기로 이해할 수 있어도, 두 번은 다릅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당신은 이미 귀족과 평민의 경계를 잊은 것 같군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
이제 진정하셨나 보군요.
이것도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평민과 너무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르티카 백작님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요……
백작님?!
……안녕.
에벤홀츠?
아니, 우르티카 백작님. 죄송합니다, 너무 슬픈 나머지……
그렇게…… 날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줘.
젤레의 일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다 알고 있습니다. 애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말아 주세요. 놈들이…… 감시하고, 귀를 곤두세우고 있으니까요.
……
……
참, 체르니 씨가 내일 애프터글로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를 만나러 갈까요?
녀석이? 선셋 구역을 떠난다고?
모르셨나요? 상태가 안 좋다고 합니다. 치료를 위해 히비스커스 씨가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려간다고 하더군요.
알려줘서 고마워. 바로 찾아가 볼게.
그리고…… 명복을 빌게.
당신의 자비심에 감사드립니다……
(한숨 소리)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어서 가시죠.
당신들을 곤란하게 하는 건 오히려 바라던 바지만.
그 감염자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진심으로 그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서 멀어져야 할 겁니다.
……
에벤홀츠 씨?!
그동안 대체 어디 갔던 거예요, 저랑 체르니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히비스커스 씨, 물어봐도 소용없어요.
체르니는 에벤홀츠의 뒤를 향해 입을 비쭉였고, 그의 뒤에 서 있는 귀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체르니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간다고 들었어.
맞아요.
그건 내가 아는 체르니의 모습과…… 조금 다르네.
역시 우르티카 백작님이시네요. 오자마자 그런 가시 돋친 말씀을 하시다니 말이죠.
언짢아하지 마.
아니에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야말로 물어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갇혀있던 동안의 얘기를요……
무엄한 평민 녀석. 언행을 조심해라.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계속 얘기해도 될까요, 고귀한 귀족 나리?
아무튼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애프터글로를 떠나게 됐어요.
첫 번째로 확실히 몸 상태가 나빠졌어요. 히비스커스의 말이 맞습니다. 제 삶은 연장될 수 있어요. 그러니 미래의 가능성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겠죠.
그 말은 정말 녹음해두고 싶네, 정말 피를 토하면서 곡을 쓰던 체르니가 한 말이 맞는 건지?
저도 저랑 어울리는 말 같지는 않군요. 이건 히비스커스 씨의 책임입니다. 제게 이런 얘기를 끊임없이 주입했으니까요.
두 번째로 지금의 애프터글로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시의회가 애프터글로 전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크흠…… 흠흠!
그분들은, 우리를 아주 많이 생각해 주시죠.
그 일이 있던 다음 날, 공공장소에서의 모든 연주를 금지시켰습니다. '아츠로 인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훗.
애프터글로의 악기점도 자주 조사받고 있어요. 많은 가게가 무기한 영업 정지 중이죠.
시의회로 가서 얘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제가 집에서 연주하는 데도…… '예의' 있게 쳐들어오더군요. 저번에는 우르술라에게 손까지 댈 뻔했고요.
녀석들, 정신이라도 나간 건가?!
제가 보기에 그들은 그저 두려움에……
억측은 삼가라.
우르티카 백작님, 평민 앞에서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아무도 없을 때 제대로 설명하라고, 존경하는 귀족 씨.
……
이쪽은 신경 쓰지 마, 체르니. 그래서 세 번째 이유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 창작에 이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 일 이후로 가슴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어요.
뭔가 다른…… 새로운 게 필요합니다. 제 음악의 어휘를 넓혀주는 그런 것 말이죠. 그래야만 이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 듣는 좋은 소식이네.
힘내.
에벤홀츠 씨, 이젠 어떻게 하실 건가요?
거기 아가씨, 화제를 바꾸시길 권합니다만.
그럼……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이 어디가 있겠어. 내일이면 이동도시가 멈추고……
기밀 누설은 엄중한 범죄 행위입니다.
보시는 대로.
저도 방법을 생각해볼게요.
방법? 불가능해.
기밀 누설은 엄중한 범죄 행위이고, 라이타니엔의 법률은 수도 없이 많지. 그리고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는 기밀 누설을 하지 않은 것밖에 없어.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마지막 경고입니다, 우르티카 백작님.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된 거야.
……방법이 있을 거예요. 분명 있을 거예요.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바로 박사님을 찾아갈게요. 박사님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엄청나게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나를 위해 방법을 생각해 주겠어?
자신을 낮추지 말아요.
이 음모에 휘말린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비세하임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당신은 깨어있었고, 싸웠어요.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도 포함해서, 아무도 살아날 수 없었을 거라는 거예요.
고마워. 네 마음은 정말 고마워, 히비스커스. 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당신도 로도스 아일랜드로 오세요.
내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잊지 말아요. 지금은 당신도 감염자예요. 저와 체르니 씨처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죠.
로도스 아일랜드는 육지를 돌아다니는 함선이에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정해진 루트도 없어요. 많은 나라를 지나갈 거예요. 어쩌면 이 대륙의 끝까지 가게 될지도 몰라요.
게다가 로도스 아일랜드는 아주 커요. 아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
제 동생 라바 기억하세요? 그 아이도 제 건강식을 싫어해요. 당신과 잘 통할 거예요.
그러니…… 모든 게 끝나면 로도스 아일랜드로 오세요, 에벤홀츠 씨.
……가능하다면 말이지.
힘내세요, 에벤홀츠 씨. 그렇게 기죽어 있지 마시고요……
……크라이데 씨의 말을 잊지 마세요.
?!
그 사람이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던……
그 부탁을 잊어서는 안 돼요.
아냐. 잊지 않아……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럼…… 그 사람 말대로 해봐요. 알겠죠?
크라이데는 비틀거리며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걸음걸음마다 오리지늄 결정이 그의 몸속을 뚫고 나왔다. 그의 피와 살이 들끓기 시작했다.
기이한 선율이 광장을 수놓기 시작했다.
결정은 빠르게 크라이데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것은 갑옷이 되었고, 악기가 되었다.
그 순간, 크라이데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사라졌고, 그것을 대신한 것은……
(다급한 숨소리)
나는…… 또 기절한 건가?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체르니, 우르술라? 다들 어디에 있는 거야?
우르티카 백작님. 깨어나셨군요.
히비스커스는? 체르니는?
그 평민과 그의 하인은 이미 이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살카즈 여자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여기는 체르니의 집이야! !
'여왕 폐하의 은혜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된 집'이죠.
……
모두 여러분을 위한 겁니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다간 그 사람들이 내일 무사히 비세하임을 떠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요.
비열한 녀석!
그 외에 또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십니까?
하고 싶은 말 따위……
아니지. 방금 약속을 했잖아. 잊을 뻔했어.
어째서 시의회는 애프터글로의 음악을 금지시킨 거지?
그건 시의회에서 내린 명령입니다. 단지 그뿐이죠.
이런 명령을 알아서 내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애프터글로도 비세하임에 세금을 내고 있어.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돈줄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거지?
당연히 모방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런 거였다면 방금 체르니가 이유를 얘기할 때 당신이 만족스러운 듯 콧소리를 내진 않았겠지.
그가 당신들의 바람대로 속아 넘어갔기에 만족한 것일 테니까.
쳇.
어디보자…… '여황의 목소리', 맞지?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그건 아닌가 보네.
그렇다면 어느 선제후이신가? 예를 들어서 그 게르트루트 영주님이라든지……
다…… 당신…… 말이 지나치시군요!
당신도 마음을 잘 숨기는 편은 아닌 것 같군, 귀족 나으리?
……
아무래도 그 인간이 꽤 압박을 준 모양이야. 자, 말해 봐. 그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애프터글로의 감염자들은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데 여황의 세력은 건드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 이런 비열한 수단을 떠올린 거 아닌가?
적당히 하세요!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뭐, 그래. 일개 시의회가 시키는 거나 하겠지, 어떻게 선제후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있겠어?
말 다 했습니까?
다 했어.
그럼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즉시 클리피파티오의 거주지로 돌아가세요.
당신은 봉쇄 구역에 난입하려고 했으며 평민을 데리고 물을 흐리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기밀 정보를 털어놨어요…… 이 모든 게 보고서에 작성되면 분명 보기 좋지는 않을 겁니다.
나를 위해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 보자…… 설마 나에 대한 보고가 엉망이면, 그쪽도 곤란해지는 건가?
……
모르는 척하지 마. 이런 수법은 너무 익숙하니까.
우르티카에 있을 때 내가 말썽이라도 피우면 제일 무서워했던 건 늘 그 '대리인'과 '시종'들이었거든.
자, 말해봐. 그래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할 예정이지?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확실하게 말해두자고, 그게 서로 편하잖아.
(한숨)
돌아가세요. 그게 제 유일한 요구니까요.
하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고 한 건, 네가 한 얘기야.
규정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 말대로 할 겁니다. 처분과 관리에 따르면서 자신한테 진정 회개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죠……
다만 당신은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면서 아니꼽게 굴더군요. 마치 머릿속이 망상으로 가득 찬 평민처럼…… 아니, 순종을 거부하는 야수처럼 말입니다.
이제 정신 차리시지요, 우르티카 백작님.
제 말대로 얌전히 돌아가면 좋은 말이라도 몇 자 써 드리죠.
싫다면?
아니면 나에 대한 험담만 잔뜩 적어서 제대로 감독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던가, 어때?
(분노에 찬 신음)
너와 그자는 혈연관계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너희 가문의 광기는 유전인 것 같군.
드디어 '너'라고 부르는군. 이거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
꼬맹이, 너무 기고만장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널 두려워하는 것 같나? 꼭두각시 백작 주제에. 너 따위가 기록의 예술을 이해하기나 해?
네 녀석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리면서 내 책임은 회피하는 방법이 백 가지는 있다. 알아들었으면 네 편안한 감옥으로 썩 꺼지라고!
……
미안하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말이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야겠어.
계속 따라오기나 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화낼 줄 아는 겁쟁이 녀석.
에벤홀츠는 골목을 달렸다.
그는 상대를 따돌리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를 따돌린다 해도, 분명 또 다른 '미행자'가 따라붙을 테니까.
모든 사람을 따돌린다 해도, 갈 곳이 없었으니까……
갈 곳이 전혀 없을까?
자기도 모르게 에벤홀츠의 두 발은 그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익숙한 문손잡이와 낯선 봉쇄선을 본 에벤홀츠는 잠깐 망설였다.
'미행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에벤홀츠는 봉쇄선을 넘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가 집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미행자'는 급히 그를 따라왔다.
그날의 연주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컵, 그릇, 주전자.
지저분한 부뚜막과 낡아빠진 가구, 초라한 침대와…… 이부자리.
에벤홀츠는 갑자기 그곳에서 잔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 위에 누웠다.
통증. 온몸이 아프다.
딱딱한 바닥은 그를 거절하는 듯, 그의 등뼈 하나하나에 압력을 가해왔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척추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미행자'는 마치 동물을 보는 것처럼 경멸을 담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똑같은 악의로 갚아줬다.
녀석의 말대로다. 자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다.
하지만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젠 궁금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미 운명의 안배에 대해 무관심했다.
다른 아이들이 햇빛 아래에서 뛰어다닐 때, 그와 크라이데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평정을 가장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발버둥 치며 미친 듯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그들 중 하나는 우리 속의 야수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하수구의 원석충만큼도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공포 속에서 자유를 갈망했지만, 크라이데는 심지어 의식주 이상의 것을 갈구할 힘조차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들은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함께 음악회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야 하지 않을까?
일이 끝난 뒤에 그는 다시 돌아가서 꼭두각시 백작 노릇을 계속할 예정이었고, 크라이데는 돈과 명성을 얻어서 할아버지의 병을 고쳐줄 예정이었다.
그들은 이 대륙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무대에 섰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로 결말을 맞이하고는 한다.
혹은 운명이 그들을 아무리 괴롭힌다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운명은 크라이데가 그를 위해 죽을 것을 강요했다. 스스로 목숨을 바치리라 정한 남자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을……
운명은 크라이데를 죽였다. 그리고 운명은 그 죽음을 아무런 가치도 없게 만들었다.
체르니는 치료를 위해 애프터글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곧 수도로 가서 처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애프터글로 사람들은 목이 졸렸고, 심지어 떠나간 이들을 위해 노래 한 곡 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돼버렸다.
크라이데 씨의 말을 잊지 마세요.
그 부탁을 잊어서는 안 돼요.
크라이데의 말……
나는…… 잊어버린 건가?
에벤홀츠 씨, 살아남으세요. 기나긴 밤을 지나가야만 해요.
불공평한 운명에 저항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세요.
그래야만 당신이 자리에 앉았을 때 제가 떠오를 테니까요.
그럼 전 물어볼 거예요. 에벤홀츠 씨, 오늘은 어땠나요?
그럼 당신이 가슴을 펴며 말할 거예요. 오늘도 충실한 하루를 보냈어……라고 말이죠.
당신은 제게 선행을 하던 중에 부딪힌 장애물에 대해 털어놓을 거고, 운명이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불평하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다 들어드릴 테니까요.
당신은 노력하고 있으니까, 불평할 자격이 있어요.
그래야만 이 땅 위에서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 삶 속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기억해 주세요, 에벤홀츠 씨. 우리는 함께 불공평한 운명에 대항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승리했어요!
그러니 제가 떠오를 때면, 당신은 울지 말고 웃어주세요.
그럼 안녕……
아, 안돼……
안돼! !!
시끄럽다.
응? 울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드디어 자신의 처치를 자각한 모양이군.
에벤홀츠는 방에 있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첼로 하나가 외로이 놓여 있었다. 크라이데의 선생님이 크라이데에게 기념으로 남겨준 것이었다.
에벤홀츠는 첼로를 소중하게 감싸서 들고나왔다.
존경하는 귀족 나으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어땠는지 기억해? 내가 들고 있던 첼로를 압수했었잖아. 그건 지금 어디에 있지?
그건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잘 보관해 뒀지……
그런데 어째서 난 당신이 첼로를 들고 붉은 노을 전당에 들어가서는 한참 있다가 빈손으로 나오던 게 기억날까?
헛소리, 너……
돌아가! 곧 날이 저문다. 또 어디에 가려는 거냐?!
그 감염자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는 붉은 노을 전당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망연자실하게 광장 밖에 서 있는 모습이, 바람이라도 불면 스러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그는 에벤홀츠가 다가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감히 저지선을 넘어갈 생각인가?! 이건 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이랑은 차원이 달라! 지금 이건 '여황의 목소리'……
정말 시끄럽네, '미행자' 씨.
아츠 유닛?! 감히……
정말 유감이야. 입을 다물게 만드는 아츠는 쓸 줄 모르거든. 이건 당신들보다 못하군.
하지만 가만히 서 있게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어, 사복 경찰도 왔나 봐?
이러면 이제 방해할 사람도 없겠지.
그러니까, '미행자' 씨. 첼로를 붉은 노을 전당에 두지는 않았겠지?
그 안쪽은 금지 구역이야. 감히 들어갔다간……
와, 붉은 노을 전당 문 뒤에 첼로 하나가 놓여 있잖아. 내가 크라이데에게 선물한 거랑 비슷하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미행자 씨. 꽤 똑똑하네.
첼로를 내려놔!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활을 어디에 가져다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여기 적당한 게 있네.
좋아. 이 《내일의 멜로디》는 저기……
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바칠 거야.
(작은 소리로) 그리고 크라이데…… 널 위해서.
(작은 소리로)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오늘 밤에 네게 푸념할 테니까.
(작은 소리로) 아주 제대로 투덜거려 줄 거야. 내가 시끄럽다고 느낄 때까지…… 내가 입만 열어도 지겨울 때까지 말이야.
이건…… 《내일의 멜로디》?!
우르티카 백작! 넌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거다!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해서 비세하임에 더 많은 재앙을 불러올 생각인 건가?!
미행자 씨, 그 반대야. 이건 그냥 노래 한 곡일 뿐이잖아. 여기에는 어떤 오리지늄 아츠도 담겨있지 않아.
이 뒤를 이어서 너희가 싫어하는 감염자들의 노래를 한 곡, 또 한 곡 연주할 거야.
듣기 싫으면 귀를 막으면 되잖아. 왜 다른 사람의 현을 멈추려는 거지?
저건…… 우르티카 백작님? 연주하는 거야?!
백작님…… 아니, 에벤홀츠 씨!
에벤홀츠 씨, 연주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힘내요, 에벤홀츠 씨! 우리 모두 듣고 있어요, 계속 들을 거예요! 저도 함께할게요……
거기, 잠깐만! 악기를 집어넣어!
저 말인가요?
시의회에서 허가하지 않은 악기는 사용을 금지했으니 함께 연주하지 않는 편이 좋아.
하지만……
이건 내 일이야. 너희까지 말려들 필요는 없어.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돼. 알겠지?
에벤홀츠 씨?!
애프터글로에서 다시 음악을 연주한다는 사람이…… 당신이었나요?!
애프터글로를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죠. 하지만 멈추는 게 좋겠어요. 이미 입장이 너무 위태로운 상태잖아요!
관심은 고마워. 하지만 멈추지 않을 거야.
오늘은 나만의 특별 공연이야. 그러니 나를 막지 마!
에벤홀츠 씨,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
히비스커스, 오해야.
크라이데의 말을 잊지 말라고 했잖아? 알려줘서 고마워. 생각났거든.
운명은 정말 불공평해. 그리고 난 지금까지 슬픔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어. 저항조차 잊어버리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 생각났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침묵시킨다면, 난 그들을 대신해서 소리를 내겠어.
누군가가 추모를 막는다면, 내가 꽃 한 송이를 바칠 거야.
누군가가 귀족이라는 이름의 탑에 나를 가둔다면, 온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고 해도, 난 이 저주받을 탑을 때려 부수겠어!
너…… 그건 대역죄다!
잘됐네, 미행자 씨. 이것도 당신 보고에 작성하도록 해!
당신들의 처리 결과가 내 목숨을 앗아가는 게 아니라면, 나는 반드시 라이타니엔을 벗어나겠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내가 귀족이기를 거부한다는 거다!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건 치욕이야!
미쳤군! 이런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는……
미쳤다고 생각하던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나머지 가장 미친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라고!
하지만 이제 《내일의 멜로디》는 곧 끝날 거야…… 자, 친애하는 감염자 형제자매들이여!
당신들의 얼굴을 보여 줘. 당신들이 좋아하는 곡은……
《황금 술잔과 은 식기》. 거기 뒤에 수염 형씨, 당신은 이 곡을 좋아했었지? 다음 곡은 이거야.
그리고 세 번째는…… 《겨울 여행》으로 하자. 거기 강인한 재봉사 아가씨를 위한 곡이지.
네 번째는 《F장조 81번 피아노 소나타 '자유의 찬가'》, 당신에게 선물하는 거야.
비글……?!
좋아. 첼로로 그 곡을 연주할만한 실력만 된다면…… 그게 네 번째 곡이 될 거야!
자, 다음으로 《황금 술잔과 은 식기》! 다들 잘 들으라고!
............
익숙하지 않은 첼로로 그는 한 곡, 또 한 곡을 연주했다.
감염자들은 미친 것처럼 광장에서 울고 웃고 애도했다. 시의회에서 보낸 사람이 달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