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8-2실언, 많은 말이 낳은
체르노보그의 코어 반대편에서 석관으로 진입을 시도하던 켈시와 박사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가축화된 살카즈 용병들이었다.
중앙 구역
얼마 전
- 아미야 일행이 사령탑 앞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근거가 뭐지?
- 탈룰라의 정예 부대와 마주치지 않을까?
이게 바로 음모술수를 부리는 자들의 고충이지.
군벌 또는 포악하고 교활한 군왕으로서 놈들의 요새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자신들의 행동이 핏빛 복수를 일으킬 거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막강한 병력과 최첨단 무기를 앞세워 견고한 방어선을 세우려 하겠지.
하지만 탈룰라의 행동이 관객을 의식한 쇼였다는 게 밝혀진 이상, 상황은 달라질 거다.
- 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지?
- ……
- 이유를 듣고 싶군.
경험, 이론, 그리고 현재 상황.
자신감 같은 건 없다, 사실을 추론할 뿐이지.
……솔직히 말해서 네 의견을 듣고 싶다.
아니면 침묵도 하나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해해 줘서 고맙군.
내 생각에 동의해 준다면……
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존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내 관점을 존중하고 유익한 결론을 내려준다면, 나도 네 관점을 고려해 보지.
탈룰라는 이미지를 관리하는 중이다. 평범한 감염자들이 자신을 존중해 주고, 살카즈 용병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바라지. 또 유격대가 자신을 신뢰하고, 광신도들이 자신을 숭배하기를……
탈룰라는 그들과 분명한 거리를 유지해야 해, 서로를 살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리유니온의 행동을 보면 탈룰라에 대해 리유니온의 다른 지휘관들도 잘 모른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지.
탈룰라의 음모를 꿰뚫어 본 패트리어트도 급변하는 상황에서 흐름을 되돌릴 순 없었다. 그가 탈룰라를 죽였다고 해도 리유니온의 붕괴를 막진 못했겠지.
감염자를 이용하려던 탈룰라의 음모는 더더욱…… 탈룰라에겐 시간이 필요할 거다, 지금의 리유니온이 존재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이……
지금까지 리유니온의 모든 행동은 하나의 전제로 설계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리유니온은, 일이 끝나면 소멸될 것이라고.
탈룰라는 날카롭고 은밀한 힘을 대륙 곳곳에 분산 시켜 놨다가 필요할 때, 그것도 가장 적절한 순간에 소집할 거다.
박사, 우르수스 제국의 제3군단이 감염자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다고 생각해.
리유니온의 행동은 그저 그들의 허용 범위에 있었던 것뿐이야.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 기강이 무너진 무질서는 제3군단으로서는 환영일 테니까.
자세히 생각해 봐. 그들이 그저 지켜만 볼까?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건, 탈룰라가 도시, 나아가 나라 전체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 역시 탈룰라의 계략일까? 우르수스군을 속이기 위한 힘으로…… 그들을 어딘가에 잠복시킨 채 상황이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날 정도로 악화되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때가 되면 탈룰라는…… 자신이 올려다 볼 수도 없던 힘을 정정당당히 쥘 수 있을 거다. 바라던 그대로.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해.
- 그렇게까지 말하면서 아직도 탈룰라가 폭군이 아니라는 건가?
지금의 리유니온에는 이런 리더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리더를 진심으로 원하는 건 아니거든.
폭군은 자신의 날개를 소중히 여기지. 얄팍한 안목과 제멋대로 구는 성격 탓에 날개를 부러뜨리곤, 진심으로 슬퍼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해.
하지만 권모술수를 부리는 자들은 그렇지 않아. 체스말은 이들 모두에게 쥐어져 있지만 한 가지는 달라. 폭군이 체스말을 쥔 채 체스판 안에 서 있다면 권모술수를 부리는 자들은 그 밖에서 구경하지.
탈룰라에게 인간다움이 남았다면 분명 실수를 저지르겠지. 하지만 권모술수를 제대로 부릴 줄 안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한 번 궤도에 오른 음모는 멈추지 않을 거다.
- 우리가 쓸데없는 짓을 한 건가?
아마 그랬다면 로도스 아일랜드의 용병들을 데리고 사지에 뛰어들진 않았을 거다.
그저 해치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여러 상황, 여러 곳에서 탈룰라의 음모를 와해하고, 탈룰라의 명령에 맞서 그 음모를 무력화시켜야 해.
앞으로 나아가는 함선을 멈춰 세울 수 없다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빈 껍데기만 남도록 산산이 조각내야 해.
아…… 이렇게 말하면 오해할 수도 있겠군. 우린 체르노보그 코어를 멈춰야 해.
박사, 아미야 일행이 돌발사태에 휘말릴까 걱정했었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야말로 진짜 돌발사태라고 생각한다.
W, W. W는 어디 있지? W가 더 강해.
들어, 가지 마……
- 저들과 교류할 수 있겠나?
(살카즈 어느 부족의 언어)
땅 밑에 어둠이 가득하니, 어둠은 악을 불러오고, 악은 고통을 가져온다.
고통…… 너무 고통스럽다.
(살카즈 어느 부족의 언어)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눠줄 텐가?
소용없어. 카즈델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모국어나 비슷한 말에는 반응해야 하는데, 사고 능력이 망가진 모양이야.
- 네 말이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원래대로라면 그랬겠지.
잠깐…… 이건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니까 궁금해할 것 없어.
이 방법으로도 그들의 의식을 깨울 수 없다면 그들은 단순히 표현력을 잃은 게 아니라 사고할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 걸 거다.
놈들의 뇌 활동이 멈춰버린 걸까, 아니면 신경계가 감염 기관 때문에 교란을 일으킨 걸까?…… 그 답을 알아내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사실에 근거해 판단한 것뿐이다, 십중팔구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 같진 않은데……
놈들은 우리의 진입을 막고 있어. 이 구역에서 고도로 감염된 살카즈 용병들은 대략 여섯 명인데 무의식적으로 돌아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지.
놈들의 활동 반경은 여기까지야. 지금 여기에 몰려든 건 우리의 행동을 의식한 거겠지.
그리고, 우리가 경계선만 넘지 않는다면 녀석들도 더 이상 행동하지 않을 거다.
정찰 오퍼레이터, 우리와 석관 사이의 선형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겠나? 내가 보낸 파형으로 위치를 판단해봐.
……1.4킬로미터. 정확한 숫자는?
1453미터.
……내 계산이 맞다면 리유니온과 살카즈 특수 감염자가 충돌한 위치에서 시청까지의 거리도 마침 1.4킬로미터였어.
시청 아래 피난 통로에서 석관 구역으로 진입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그 출구는 살카즈 특수 감염자에게 점거되었을 거다.
박사, 내게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있는데……
- 자세히 말해 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카즈 특수 감염자들은 다른 사람이 석관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어. 통제 구역의 크기 역시 1.4킬로미터이기도 하고.
- 일리가 있는 지적이야. 하지만 목적은?
(고개를 젓는다)
적어도 살카즈들의 본래 목적은 아닐거다.
……
카즈델 출신의 가엾은 살카즈인들은 어디서든 도구 취급을 받게 될 거다.
지금 감염자들의 처지도 살카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카즈들은 증오에 잠식된 삶과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원래대로라면 상황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우린 바꿀 수 있을 거야.
터전을 잃은 티카즈는 뿌리 없는 자, 뿌리 없는 살카즈로 변해 버렸지.
이제 우리 앞에 있는 살카즈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되었어.
-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오퍼레이터들은 자신의 방화 장비를 점검해라.
우린 지금 2급 긴급 감염 사태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박사,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특수 감염자의 움직임을 최대한 막아야 해.
긴급 감염 사태를 해결하는 데 투입된 것도 무척 오랜만이로군…… 이러니까 꼭 우르수스의 감염자 감시팀 같네.
- 감염자 감시팀?
우리가 장착한 방화 장비와 감염자에 대한 우르수스의 잔혹한 통치를 상징하는 게……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나도 부정할 수 없어.
우리의 행동은 감염자 감시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그런 차이를 계속해서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저런 외력에 의해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바뀌는 게 아니라……
많은 일에 대한 우리의 기대 또한 이러하다. 얼마 전에 네게 이야기한 것처럼…… 너도 그러길 바란다.
…………!
……이건, 첸 팀장님?
어느 방향으로 갔지?
서쪽입니다, 글로잉훕 시티의 봉쇄 구역에 곧 도착합니다.
……모든 게 놈의 계획대로군. 협약 체결 구역의 보안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라이타니엔은 우리의 봉쇄 구역과 겹치게 충돌 금지 구역을 확장한 거다.
저희라면 은밀히 잠입해서 카셰이를 죽이고 아가씨를 구해올 수 있습니다.
아니, 놈은 미리 대비했을 거다.
……이번 만남엔 쌍둥이 여황이 '여황의 목소리'를 직접 보냈다. 수행하는 무장 세력도 적지 않았고.
여황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카셰이가 의도적으로 외교 갈등을 일으킨다면, 우리가 저지른 모든 불법 행위는 여황이 권위를 과시할 좋은 핑계가 될 뿐이다.
카셰이가 용문에, 아니… 더 나아가 염국에까지 더 큰 피해를 입힐 기회를 줘서는 안 돼.
외삼촌!
……
훼이지에……
외삼촌…… 탈루 탓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날 혼내줘.
잘못한 것도 없이 말이냐?
같이 가기로 탈루랑 약속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내가…… 내가 손을 놔버렸어. 그래서 같이 가지 못한 건데……
탈루는 무서운 눈을 하고 있었어. 나도 무서웠고, 탈루도 무서웠던 거야. 다…… 내 잘못이야.
……훼이지에, 이건 탈룰라의 잘못이지 네 잘못이 아니다.
어? 그, 그치만 외삼촌은 탈루 탓 안 하겠다 했잖아!
그래, 탓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탈루…… 탈루는 잘못을 저질렀잖아? 잘못했는데…… 혼나지 않아도 되는 걸까?
……
탈룰라는 진실을 모른다. 그 진실은 누구도 알아서 안 돼, 그러니까 저지를 게 분명해.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분명……
……잘못을 저질러도 혼나지 않는 경우도 많지. 우리는 잘못, 그것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곤 하는데 어떤 잘못은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어.
탈룰라는 자신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뿐이야.
그런 것도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 그것도 잘못이지. 이 세상은 무슨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그걸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거든.
무자비한 땅, 무자비한 사람들과 무자비한 통치…… 그들이 신경 쓰는 건 옳고 그름뿐이야. 숨 쉬고 삼키는 게 생명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 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 외삼촌.
그래서…… 탈루는 다시 돌아올 수 있어?
글쎄다…… 훼이지에, 나도 잘 모르겠구나.
……흐흑…… 그럼 탈루는 나 때문에…… 못 돌아오는 거야? 내 탓이야…… 나 때문에…… 탈루가……
훼이지에!
흐윽……!
눈물을 닦아라.
흐흑, 하지만……
아니면, 울어라. 5분 주마. 다 울어서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그때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마.
흐흑……
……으아아앙……! 탈루……!
웨이 옌우는 하늘을 올려다보곤, 다시 몸을 숙여 왜소한 여자아이를 위로할까 하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울지 않는구나.
응…… 난 탈루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어떻게 해야 돼?
내가 가르쳐주마. 도시를 어떻게 경영하고 악당에게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그리고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모두 알려주마.
내 말대로 하면, 탈룰라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는데? 탈루 정말 돌아와? 외삼촌 거짓말 아니지?
……엄마…… 엄마가, 외삼촌은 거짓말만 한다고 했는걸. 나…… 정말 믿어도 돼?
아마도.
나도 큰 실수를 저질렀지.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날 원망한 만큼 네 엄마는 날 미워했단다. 그럴 만도 해.
하지만 잘못은 되돌릴 수 있어.
잘 들어라, 훼이지에. 올바르게 행동하는 건 네가 평생 노력할 만한 일이지,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는 건 네 목숨을 걸 만한 일이란다.
탈룰라가 떠난 건 잘못이다. 잘못이 가져올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지마.
그러니 훼이지에…… 어서 크거라.
다 크면 어떻게 되는데?
너라면, 다 큰 너라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다.
정말?!
아마도. 아니…… 네가 믿는 한은 정말로 그렇게 될 거다.
내가 검술을 가르쳐주마, 훼이지에.
적소의 검술을.
"발도의 기술, 부숴야 할 땐 부숴야 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