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4불씨, 한순간에 사라질
탈룰라가 사지에 몰린 민간인 감염자를 찾아갔을 때, 감염자 감시팀도 모습을 드러내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진다.
훼이지에에게
흐릿한 기억 속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반 이자슬라프……
흔한 이름만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농부였지.
그런 그는 자신을 희생했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내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한 존재인지 가끔 생각하곤 해.
알리나와 함께 있어. 평소에는 상냥한 편이지만 가끔 예민하게 굴어서 대하는 게 쉽진 않아.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야.
내 생각대로라면 이제 곧 일부 감염자들끼리 힘을 합칠 수 있을 거야.
부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 부디 편히 잠드세요. 할머니 말고, 제게 소중한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에요.
2월 7일
검은 뱀으로부터 벗어난 지 3년째 되는 해
저기……
여긴 왜 왔지? 이 옷은…… 이건 또 어느 대단하신 분인가?
돌아가! 여긴 아무것도 없어, 너희가 몽땅 뺏어갔잖아! 빼앗아 가지 못한 건 다 불타버렸어!
제길, 날 죽이러 온 거냐? 죽일 테면 죽여봐라, 이 악마 같은 놈들!
그런 게 아니다. 감염자 감시팀이 오늘 이곳에 올 거라고 알려주러 온 거다.
흥, 올 테면 오라고 해! 우릴 몽땅 죽이라고 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을 하나 못 봐주겠다면 와서 마음대로 하라고 해!
잘 숨어 있어. 내가 저들과 이야기해 보지, 아니면 내가 숨어 있다가……
넌 대체 뭐지? 너희 같은 귀족들은 아무리 고상한 척 굴어도 결국 원하는 건 우리 목숨이잖아……
흥, 그래도 넌 그들과는 좀 다른 것 같군. 우리와 적어도 대화라는 걸 하잖아, 녀석들은 우리한테 채찍질하는 것조차 귀찮아하거든!
응? 어디 갔지?
사라진 건가……?
이건 또 무슨 꿍꿍이야? 허억……
우리 목숨도 여기까지인 건가.
제 팔자를 잘 아는 건 좋은 일이지.
헉……
……가난하고 비쩍 곯았군. 체격도 왜소한 게 군대 광산에 보내봤자 별 쓸모도 없겠어.
어떻게 죽여줄까? 한 번에? 아니면 천천히?
……살려 주십시오! 저 하나 살려주셔도 손해 볼 건 없지 않습니까?
손에 무기를 들고 그따위 말을 해?
……죄, 죄송합니다! 이건 방금 어떤 녀석 때문에,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감염자는 짐승보다 못한 족속이지. 짐승은 짐이라도 나르지만 너희는 폐하의 소중한 땅을 갉아먹을 뿐이야!
왜 그렇게 말하지?
……
누구냐?
머나먼 동쪽에서 왔다.
뭐라는 거야?…… 너도 감염자냐?
그래.
난 스스로 생각할 수도 있고, 말도 할 수 있지.
우리의 생사는 우리가 결정한다. 그걸 네가 왜 결정한다는 거지?
뭐라고!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죽게 해줬다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거기 감염자 형제여, 고개를 들고 똑똑히 봐라! 저자의 눈빛과 입, 그리고 저 웃음을!
저들은 우리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하고 우리를 조종하려 하지. 우리더러 싸구려 목숨이라고 하지만, 그러는 저놈들은 또 뭐가 그리 대단한가?
닥쳐!
감염자 형제여, 저자들의 행동을 떠올려 봐라!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훌륭한 태도를 지녔다고 누굴 봐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저들은 감염자들이 쓸모 있다고 여길 때만 살려뒀다.
그런데 이제 돈도, 땅도 없으니 뒤도 안 돌아보고 형제들을 버린 것이다. 이제 감염자는 도시 안에서 살 수 없게 되었지!
우리의 생사는 우리가 직접 정해야 한다!
……!
넌…… 대체 누구냐?
빌어먹을 녀석, 이름을 대라!
폐하의 이름을 도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려 하다니,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
내겐 이름이 없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이름을 꼭 부르고 싶다면, 탈룰라라고 부르면 된다.
네놈들에겐 내 이름을 알 자격 따윈 없어.
대신, 내 불꽃으로 너희들을 몽땅 태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