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겨울이 지다
영원히 두 눈을 감은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부서졌…나.
그 영감이 어떤 주술사한테서 얻은 물건이다… 이게 내 생명을 유지시켜 줄 수 있을 거라 했었지.
어떻게 된 게 한 번의 전투도 버티지 못하는군. 하하… 결국, 가짜였던 거야.
마치 우리 부녀 같지 않나? 지금의 허황된 리유니온…… 처럼 말이야.
으윽!
큭……
콜록, 콜록…… 블레이즈 씨!
한기가… 사라졌어.
난 괜찮아! 아미야, 저기 흰 토끼부터 봐줘!
멋지게 이겼구나, 로도스 아일랜드.
내가… 형제자매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었어.
우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거야.
나의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는 거지.
- 그들은 너의 이념 때문에 널 따른 거다.
……
나의 죽음에… 누군가 끝까지 함께 할 가치 따윈 없다.
너희는 가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라. 어서.
서둘러.
그 검은 삿갓 쓴 녀석들을 저지하든, 메피스토를 쫓아가 죽이든, 오갈 데 없는 감염자를 받아들이든……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러 가라.
……
박사님……
- 내가 남겠다.
- 그만 가 봐.
알겠어요.
박사님, 프로스트노바 씨에게 그 말을 전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정말이지…… 순진한 토끼라니까.
정말 닮았어. 그때의 탈룰라와…… 똑같아.
의연하게 이상을 실현하러 가는 아이를 죽기 전에 볼 수 있다니……
- 약속했었잖아!
- ……
-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오고 싶다 말하지 않았나!
너 정도의 머리라면 이런 결말은 예측했을 텐데?
악인에게는 악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있는 법이다. 내가 맞아야 할 최후일 뿐이니 불만 따윈 없어.
나는 너희를 다치게 했다. 나와 리유니온은 아무 잘못 없는 용문인을 목표로 삼았고, 우르수스 감염자들의 어두운 미래를 앞당겼지. 나 같은 인간에게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갈 자격 따윈 없어.
나의 형제자매들…… 그 바보들은 분명 내가 살아남길 바랐겠지?
진작에 내가 죽었더라면, 그 바보들도 어딘가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 그들은 없지. 그들은 죽었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 같은 녀석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분하다. 다른 자가 우리의 생명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너무 분해…… 내 마지막 순간마저 나의 피가 아니라, 그들 모두의 피로 바꿔 얻은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생명은…… 적어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넘겨줘야겠지.
고마워.
후…… 살아남는다 해도,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원래부터 없었어.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오직 그 설원뿐이었지.
용문은 우르수스가 아니야. 동포와 감염자를 구하고 싶어서 따뜻하고 식량이 있는 곳을 찾아온 거지만…
용문을 선택해선 안 됐어. 처음부터 용문으로 오면 안 됐던 거야. 용문 사람들도 힘겹게 겨우 살아가고 있었는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우르수스뿐이야… 우리의 조국…
눈과… 조용한 강물… 흔들리는 소나무 숲… 푸르른 이끼…
그 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 그래서, 탈룰라가 모든 사람들을 조종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불드록카스티 그 영감이 잠깐 시간을 끌어줄 수 있다곤 하지만, 탈룰라가 아무런 대비도 안하진 않았을 거야.
용문에겐 나설 기회가 없어… 우르수스는 수수방관하겠지.
하지만 너희라면 가능해. 비록 미약하지만…… 감염자에겐 아직 기회가 있어.
……가서 지금의 탈룰라를 없애고 그녀의 광기를 막아야 해. 리유니온이 더 많은 감염자를 삼키게 해선 안 돼. 리유니온에겐 탈룰라가 필요 없어, 그 어떤 탈룰라도……
아니면……
……이건 내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그녀를 구해줬으면 해. 아니, 그녀를 도와줘. 우리의 무수한 감염자 동포와 함께……
진흙탕 길을 걷던…… 진짜…… 탈룰라를……
- 프로스트노바?
얘기해……
- 난 너의 아버지, 불드록카스티가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다 생각한다.
- 네 친부모가 널 위해 죽은 사실을 네가 기억하는 것처럼……
- ……네 아버지가 널 위해 한 모든 것을, 네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
그런 거,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이젠 그냥…… 아버지 곁에서 죽고 싶을 뿐이야.
만약 그 영감이 나를 거둬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몰라. 그러면 영감도 나 때문에 아파하진 않았겠지.
아버지는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어……
- 많은 고통을 받았기에 널 소중히 여긴 거다.
후후……
……박사.
이렇게 불러도 되지?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이 세상에서 어쩌면, 선택이란 건 아무런 의미 없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난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선택할 거야.
내 손으로 직접…… 내가 심은 열매의 결실을 따낼 거야.
프로스트노바의 손가락이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 ……네 손가락, 따뜻하네?
이상해…… 네 얼굴이…… 차가워……
나의 체온이…… 그렇게 차갑지 않다는 걸까?
- 그래. 네 병은 사라졌어.
- ……
- 정말 따뜻한 손이구나, 프로스트노바.
죽을 때가 되니까…… 이제야 만나게 되었네.
- 프로스트노바, 아미야와 나는 네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오길 바란다.
내게 정말 그럴 자격이 있을까?
- 평범하게 죽는다면 잘못을 고칠 기회도 없을 테니까.
……대답을 안 해주는 건 실례겠지.
아미야에게 말해줘, {@nickname} 박사……
이 세상에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아이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고.
이제부터 난…… 네 곁에 있을 거야. 나는 너희 곁에 있을 거야.
난……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가고 싶어.
- 고마워.
아니야.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너의 눈빛… 오래전에 알던 친구와 정말 닮았어.
한 남자아이를 만났었지. 그 아이의 형은 적을 용서할 바엔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겠다고 했었어……
그래서 그는 설원으로 가야 했고, 우르수스를 돌아다녀야 했지…… 결국 그는 우리와 함께 가지 않았어.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너와 아미야는… 내게 이상도 신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
- 로도스 아일랜드는 모두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거야.
원래는 리유니온도… 마찬가지였어.
정말 닮았네.
너의 눈빛, 그 아이와 정말 닮았어.
다만 너는 그 아이만큼 의연하지 않아. 오히려 그 아이보다… 훨씬 상냥해.
이제 놓아줘. 형제자매들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아버지…… 전 정말 바보였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 얼굴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