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검은 토끼와 흰 토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천 마디의 말도, 강철과도 같은 의지 앞에선 그저 덧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교섭의 끝엔, 전투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프로스트노바의 모습이 이상해……
몸 주변에 오리지늄 결정이 떠다니고 있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 수 있지?
저건 괴리현상이에요……!
피부를 뚫고 나온 오리지늄 결정이, 공기 중의 수분과 결합하여 검은 얼음 결정이 된 건가?
뚫고 나와? ……뚫고 나왔다고?!
……** ……**!
블레이즈 씨!
안 아픈가!? 아프지도 않은 거야!?
설마 넌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거냐, 흰 토끼!
그만해…… 그만하라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대체 왜! 이제 그만해!
……으 ……으윽!
아미야? 왜 그런 표정을…… 잠깐!
아미야, 멈춰! 더 이상 저 여자의 의식을 들여다보면 안 돼!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프로스트노바 씨의 감정이…… 제 의식 속으로 역류한 거예요…!
……
너희를 기다렸다.
리유니온의 지휘관을 죽일 생각이겠지?
그 지휘관은 지금 바로 네 앞에 서 있다.
네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열을 내며 들끓고 있지.
열을 낸다고…?
감정을… 말하는 거예요!
전원, 경계 태세로!
프로스트노바,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용문은 도시에서 추방된 감염자의 행방 따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놈들은 이제 오지 않아.
도시 안에 아직 수천수만의 감염자가 있지만…… 용문은 이미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지.
이 싸움을 방해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우리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너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난 이 정도도 부족한 것 같은데. 눈사태에 정면으로 맞설 바보는 없잖아.
아니 잠깐, 나라면 눈사태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너는 마치… 온 세상의 모든 한기를 한 데 모아놓은 것 같군.
나는 여태까지 눈의 악마 소대가 너의 아츠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줄 알았어.
근데 그 반대였네.
네 아츠가…… 네 소대원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던 거였을 줄이야.
형제자매들이 내 곁에 있었다면 나도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 거다. 그들이 다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이제 그들은 모두 죽었어.
이제 내 곁엔 아무도 없다.
윽!!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어, 이미……
…큰일이다! 온도가 너무 낮아서 측정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더 이상 내 몸속에 있는 겨울을 억누를 이유 따윈 없다.
이게 무슨…… 리유니온엔 이런 걸어 다니는 재앙 같은 녀석들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오리지늄 아츠로 만들어낸 최저 기온 기록이 얼마였지? 이 여자가 손짓 한번 하면 바로 깨지겠는걸……
프로스트노바, 다시 한 번 묻겠다! 진심으로 이러는 거야?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나?
어.
이제…… 그만둬. 어이 흰 토끼…… 계속하면 진짜로 죽게 될 거야.
흥.
이러다 진짜 죽는다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넌 충분히 강하다고!
더는 무리하지 마! 싸우고 싶다면 나중에 실컷 싸우라고!
감염자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건…… 그런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어!
지금의 우린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이유가 없잖아!
아니.
블레이즈!
안개여! 휘몰아쳐라!
쳇!
손톱이 얼어서 갈라지려고 하네……
정말 우릴 죽일 생각이야?
이유는, 있다.
지휘관으로서 난 이미 졌지만……
전사로서의 난 아직 지지 않았다.
……아미야-1, 블레이즈-4, 모든 팀에게 명령합니다.
이 구역에서 후퇴하세요, 지금 당장.
가비알 씨도 나가세요!
지금 가비알 씨가 나가야만 나중에 우릴 구하러 올 수 있어요!
우리 팀에서 가장 뛰어난 스나이퍼가 누구지?
……나다.
죽을 수도 있어. 정말 나설 거야?
상관없어. 지금 가장 뛰어난 건 나밖에 없으니까.
좋아 그레이스롯, 넌 남아있어. 나머진 즉시 퇴각한다.
어서!
- 전투를 앞두고 왜 팀을 내보내는 거지?
프로스트노바와 싸우려면, 몇 개 팀으로 싸우나 몇 사람이나 별 차이 없어. 유효한 방어 수단이 없으면 순식간에 죽을 테니까.
지금 이 상황은 레인저 영감님 같은 베테랑이 와도 못 당해내. 활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장비의 문제니까.
그렇다면 내 화살은 쓸모없겠군.
곧 쓸모 있어질 거야. 지금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 굳이 얘기하자면……
함포로 몇 방 갈기는 게 그나마 먹히지 않을까 싶네.
아니면 열 개 팀 이상이 전력으로 탄약과 오리지늄 아츠를 쏟아붓는 거야, 그러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
프로스트노바는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근데 이러다 우리가 먼저 골로 가게 생겼네.
지혈제는 가져왔나요?
그런 쓸데없는 것 말고 항응고제를 가져왔냐고 물어봐야지.
블레이즈 씨……
아까…… 프로스트노바 씨가 피부에서 오리지늄 결정을 뽑아내는 아픔을 어떻게 참을 수 있는지 물어봤었죠?
……
이유를 알겠어요. 제게 느껴졌어요……
프로스트노바 씨가 견딜 수 있는 건, 마음의 고통이 오리지늄 결정을 뽑아내는 고통보다 더 크기 때문이에요… 몇 배나 더요……
……
이제 박사님도 나가주세요.
- 아니.
- 아니.
- 아니.
박사님!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 끝까지 지켜볼 거다.
……아미야.
전…… {@nickname} 박사님은…… 진심이시군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너의 선택은 저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 말했잖아,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와도 된다고.
- 그리고 난…… 오퍼레이터들과 함께 싸울 거다.
알겠어요.
블레이즈 씨, 그레이스롯 씨, {@nickname} 박사님.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훗……
어떠냐 흰 토끼! 이게 바로 우리 {@nickname} 박사와 아미야다!
그런가……
굳이 그렇게……
아니, 됐다.
준비는 다 끝났나?
이제 시작해볼까!
추력, 폭발!
나쁘지 않은 기습이군.
……얼음 칼?
쳇!
꼬마 고양이, 내가 캐스터니까 혹시 힘으로 밀어붙이면 될 거라 생각했나?
진심이야?
네 톱날을 휘감은 열기는 내 냉기를 당해내지 못한다. 너는 내 서리를 잘라낼 수 없어.
딱히 널 과소평가한 적 없어, 하지만……
이 톱날은 성벽조차 잘라내는데, 과연 받아낼 수 있을까?
내 눈에 비친 너의 힘과 움직임은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은 목이다.
공기! 압축! 폭파!
쿨럭! 하하하… 콜록… 퉤! 위험하잖아! 하마터면 목에 구멍날 뻔했네!
하아, 그렇네. 너도 나와 같은 전사였어.
아미야, 어떡하지? 나도 이제 방법이 없는데.
이제는 네게 기대야겠는걸.
아미야…… 나도 이제 더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것 같다.
빨리 끝내야 해.
……
(프로스트노바 씨의 이번 오리지늄 아츠는 예전에 폐허에서 쓴 것보다 백배는 더 강력해요…!)
(게다가 아직 지치지도 않은 거 같아!)
(너무 많은 걸 신경 쓸 수 없어요… 이번에 반지를 해방시키지 않는다면, 모두 얼어 죽고 말 거예요!)
프로스트노바 씨……
어림도 없다.
앗?!
반지가?!
으… 윽!
네가 탈룰라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반지로 제어를 풀어 아츠를 강화시키더군.
반지 10개가 전부… 얼어붙었어?
전사로서 너는 너무 미숙하다.
그저 반지 몇 개 얼렸을 뿐이잖아. 잘난 척하기는!
(응? 뭐지… 이렇게나 온도를 올렸는데 왜 조금도 녹지 않는 거야?)
블레이즈 씨… 그만… 피를 낭비하지 마세요. 이건 굉장히 강력하고 정교한 오리지늄 아츠예요…!
우리가 이 구역에 들어오기 전에, 냉기를 품은 오리지늄을 우리 쪽에 숨겨놓은 거 같아요.
그리고 미처 열기로 차단하지 못한 오리지늄을 몰래 우리에게 사용한 거죠!
으윽… 이건 제 아츠로도 자를 수 없어요!
너희가 이 층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다.
이 열 개의 서리 고리가 너의 체온을 빨아들이고, 너의 오리지늄 아츠를 압착한다. 네가 가하는 힘이 클수록 얼음 결정은 더욱 견고하고 차가워지지.
……
가엾구나.
폭발? 에너지의 저장? 비축?
……그런 얄팍한 수단을 믿고 나와 싸워 이기려 하다니…… 누굴 상대하는지 모르고 덤빈 거냐?
그레이스롯, 관통 화살!
알았어! 6연사한다!
만약 탈룰라였다면, 이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너의 죽음을 계획해 두었을 거다.
공기 압축! 사격!
받아라!
지금의 로도스 아일랜드는 이 화살과도 같다.
뭣……
어…… 어떻게? 화살이 공중에서…… 멈춘 거지?
정말로 가엾구나.
(냉기로 화살을 막은 다음, 저온 상태에서 바로 부숴버린 건가?!)
(그레이스롯, 네 화살 재질이 뭐지?)
(……로도스 아일랜드 표준 규격. 탄소섬유와 알루미늄 합금을 혼합한 재질이다.)
(젠장. 이거 진짜 큰일 났네…)
심지어 수치스러울 정도군.
(본인은 아마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저 여자의 오리지늄 아츠는 이미 현대 이론에서 가장 **게 난해한 수준이다.)
가볍게 비틀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난 너희를 찢어버릴 수 있다.
생각해 봐라.
나는 그저 눈의 악마 소대의 대장일뿐이다. 그리고 체르노보그에서 너희를 막아선 리유니온은, 너희의 전우를 죽였던 탈룰라라는 여자가 지휘하고 있었지.
너는 탈룰라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리유니온의 리더? 감염자의 구세주?
- 그녀는 구세주 같은 게 아니다!
- ……
-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흥.
너는 그녀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녀가 '구세주'같은 존재였다면 애초에 나와 그 영감이 부대를 이끌고 '리유니온'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거다.
탈룰라는 리더이기 전에 전사고, 전사이기 전에 군사 전략가다.
하지만 탈룰라는 우리를 배신했다.
내가 인정한 가장 굳건하며 집요한 전사의 모습이, 그저 연기일 뿐이었다니…
거기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적이라는 녀석들이, 아무런 결의도 없고, 죽음을 마주한 적도 없는 너희일 줄이야.
말조심해, 흰 토끼.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은 너 혼자만 겪은 게 아니야.
네 눈빛에도 후회가 보이는군.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닐 텐데!
넌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만!
콜록… 하아… 하아… 쿨럭……
나는 준비가 된 걸까?
콜록… 커헉!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토록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너도 마찬가지야, 꼬마 고양이. 난 알 수 있어.
……
"나의 환상은 그렇게 참혹했건만, 쓸쓸히 죽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
너한테 형제자매가 있는 것처럼, 나한테도 동료들이 있어.
체르노보그에서 탈룰라와 싸운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은 다들 정말 용감했지.
에이스라던 자는, 지금까지도 얼마 보지 못한 강한 전사였다. 그는 다른 전사들에게선 보기 드문 감정을 품고 전투에 나섰지.
…그건 '우수'라는 감정이었다.
내 전우 얘길 멋대로 할 만큼 우리 사이가 좋았던가?
끊임없이 자신의 전투를 되새겨온 전사만이, 그런 우수에 찬 눈빛을 할 수 있지. 그는 훌륭한 전사였다.
너 역시 그렇고.
쳇.
그는 고독하게 죽었다.
그를 잃어서 안타까운가?
물론이지.
그를 구할 기회가 없었다는 게 후회스러운가?
당연하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지 않은가?
물어봐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그리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는 그 질문을 해 봐라.
너……
"어째서?"
……
(정말 강렬한 감정이네요…… 프로스트노바 씨……!)
어째서?
"어째서 내가 그곳에 없었던 거지? 어째서 난 더 강해질 수 없었을까? 어째서 난 막지 못한 거지?"
윽… 온도가 계속 내려가고 있어!
내 옆으로 와! 나도 한기 때문에 내 주변밖에 못 덥히니까!
……
…어째서?
어째서 형제자매들이 가장 나를 필요로 한 때에 나는 쓰러져있던 걸까?
그들은 모두 바보였다. 다들 서로를 도울 줄만 알았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만을 생각하던 바보였다.
……어째서 난 그 바보들의 소망마저 이뤄주지 못한 걸까?
어째서 우르수스는 우리 동포에게 이렇게 잔인하고, 비감염자인 우르수스인에게도 그렇게 냉혹한 걸까.
어째서 세상마저 불태울 수 있는 불꽃이, 이국 타향에서는 오히려 꺼지려는 걸까?
어째서 더 많은 죄악을 멈추기 위해 시작한 전쟁 속에서, 오히려 나는 무의미한 희생을 불러온 걸까.
콜록, 콜록… 윽, 콜록, 콜록…!
으… 윽…
어째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큭! 콜록! 한낱 망상 따위를 이루는데 도움을 준 걸까?
어째서… 어째서 이 세상은 내게 시간을 좀 더 주지 않는 걸까?
"감염자들은 자신의 신분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세상의 공정함을 되찾아야 한다"……
내가 처음 리유니온의 이념으로 삼은 문구의 일부분이다.
그래, 리유니온은 감염자가 더 이상 약해지지 않게 하고, 자신을 제국의 폐기물로 자학하지 않게 만들었지.
하지만 우리가 탈룰라와 즐겁게 이야기했던 신념이, 세상에 깊이 뿌리내려야 할 사상이, 그리고 추구해야 할 방향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직 선동과 방임만이 있었다. 우리는 가장 힘든 전투에 배치되었고, 부대 창설에는 간섭할 수 없었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다…
만약 이 모든 게 탈룰라가 꾸민 짓이라면, 그녀는 처음부터 모두를 속여왔다는 거겠지.
- 아무래도 그녀에게 속은 것 같군.
- ……
- 일이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지.
만약 그녀가 감염자들을 데리고 가장 어두운 미래로 향한다면…… 그녀의 가장 악랄한 계획을 완성시키려 한다면……
그렇다면 반드시 그녀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나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이미 죽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어.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으윽… 흑…!
이래선 안 돼, 이래선 안 되는 거였다!
나의 동포와…… 나의 형제자매들을!
……
아미야.
들리나, 아미야?
프로스트노바 씨…!
엄청난 냉기다… 게다가 냉기를 응집시켜 형상을 만들었어!
내 열기도 곧 흩어질 거야!
냉기가 너의 체온을 낮출 수 있다 한들, 죽음이 널 두렵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아미야, 네가 그럴 리 없지!
넌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안 그런가, 꼬마 토끼?
그러면 이제 읽어봐라, 나의 분노를 읽고, 고통받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며 십여 년을 불태운, 그럼에도 아직까지 뛰고 있는 이 심장을!
어서! 읽어 보라고 아미야!
억울하게 죽은 가족 때문에, 부패한 우르수스 때문에, 감염자 동포 때문에, 우르수스의 사람들 때문에! 아직까지 뛰고 있는, 아직까지 죽지 않은 이 심장 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분노가 쌓여있는지를!
……
프로스트노바 씨, 당신은 그녀를 원망하고 있는 거죠?
…콜록.
훗.
……
난 그녀를 원망한 적 없다.
설령 그녀가 오늘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지라도, 난 그녀를 원망하지 않을 거다.
원한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지?
내가 가진 것은 이 추악한 세상에 대한 끝없는 분노뿐이다.
……
너는?
설마 네 마음속엔 그런 분노가 없나?
설마 광석병으로 죽은 가족이 없다는 건 아니겠지? 이 세상의 냉담함 때문에 죽은 친구가 없다는 건 아니겠지?
널 살게 해 주고, 네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사람을 잃은 적은 없었나?
……
겨우 어떤 이념을 주장하고, 겨우 어떤 아츠를 손에 넣고, 고작 몇몇 팀을 조직했다고 해서……
그런다고 탈룰라를 이길 수 있을까?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
알았어요, 프로스트노바 씨.
아까 제 머릿속에 밀려온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무엇이 로도스 아일랜드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 무엇이 너희들을 끝없이 싸우게 만들지?
정면을 봐! 거대한 한기야! 저건 아마…… 가시의 형태일 거야!
이제 등 뒤는 포기해야 해! 열기를 앞에 집중시켜 방패로 삼을 수밖에 없어……
저 여자의 냉기가 공기 중에 있는 분자의 진동을 빼앗고 있어, 기껏해야 잠깐밖에 못 막아!
박사, 서둘러! 무슨 방법을 생각해 봐!
- 저걸 부술 수 없다면, 버틸 수밖에!
쓸데없는 소리를!
아니… 박사 말이 맞아.
프로스트노바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버티기만 한다면 우리의 승리야.
뭐라고? 그러면 저 여잔 죽게 되는데?!
- 저 여자가 선택한 거야, 그리고 이건, 저 여자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일한 기회이기도 해!
그러면 너희의 선택은?
반드시 없애야 할 사악함을 마주했을 때, 감염자의 이념과 내일을 찬탈한 배신자의 앞에서, 너희의 심장은 대체 무얼 위해 뛴다는 거지!
콜록, 콜록… 나조차 이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녀를 마주하고, 어떻게 수많은 감염자를 이끌고, 어떻게 이 악독한 세상에 맞서겠다는 거냐!
프로스트노바 씨…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린 당신에게 화낼 수 없어요.
너……
내가 시간 낭비를 했군.
아니요, 프로스트노바 씨… 제가 뭘 해야 할지 알겠어요.
제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저는 거부할 수 없었어요…… 당신에게서 밀려오는 감정을 잘라낼 수 없었어요.
당신의 마음에서 제 기억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아프면서도 초조한……
그 분노를.
당신의 정신은 매우 맑고 냉정해요. 그렇지만 제가 손을 떼고 싶을 정도로 당신의 분노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어요.
하지만 전 할 수 없었어요. 프로스트노바 씨, 전 제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을 거부할 수 없어요.
……
프로스트노바 씨, 전 확실히 느꼈어요.
어째서 눈물을 흘리는 거지?
전……
프로스트노바 씨… 당신은…
안 된다. 눈물을 닦아라. 적 앞에선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
아미야, 너의 대답을 들려줘.
……
- ……말해줘, 아미야.
{@nickname} 박사님…
……예.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끝까지 싸워라."
박사님. 프로스트노바 씨와 싸우도록 하죠.
끝을 봐야겠어요.
그래. 이제 너희는… 나와 싸워야 한다.
끝을 보는 거다.
만약 너희가 날 이긴다면, 그리고 내가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나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가, 너희의 신조에 따라 감염자의 적과 싸울 것이다.
이건 나의 약속이다.
-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약속한 이상, 반드시 지킨다.
그리고… 프로스트노바 씨.
감염자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같은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일 뿐, 어느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언제나 그래 왔어요.
……그래, 그 말이 맞다. 썩은 부위는 잘라내야지. 나를 쓰러뜨리고, 탈룰라를 쓰러뜨려라.
넌 누구지?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어요.
넌 누구를 위해 싸우지?
모든 사람을 위해서요.
좋다. 아미야……
쿨럭…… 고맙다.
"이곳에서는 시간마저 얼어붙으리라……♪"
냉기가 밀려온다! 그레이스롯!
난 준비됐어!
박사님, 제 곁을 떠나지 말아 주세요. 전력을 다해 지켜 드릴게요.
- 프로스트노바!
너희는 여기서 죽는다. 내가 너희의 헛된 망상을 깨트려주마.
어쩌면 너희가 날 이길 수도 있겠지.
……아니, 날 이겨봐라. 내게 희망을 보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