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평범한 자의 구제
마지막 유로지비는 오만한 자기 변호 속에서 멸망해갔다. 수년 전, 만트라는 근위병과 얽힌적이 있었다. 지금, 실종된 라이디언 소대를 찾기 위해 그녀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금 근위병이 남긴 흔적을 직면하고 있다.
우르수스 제국 의회1099년 가을
폐하께서 이 촌극을 얼마나 더 두고 보시려는 건지. 하루? 한 달? 아니면 1년?
더는 못 참겠군. 빅토리아는 오래전에 재앙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했고, 그 미개한 마족조차도 하늘을 나는 전함을 만들어 냈어.
그런데 우리는 저 광대 같은 신하 하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느라 시간이나 허비하고 있으니 원.
이건 폐하께서 베푸신 자비입니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저 미치광이가 고상한 품성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 폐하께서도 이 심판을 대중에 공개하기로 한 것입니다.
기한은 7일, 그리고 이미……. 엿새하고도 21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리석군…… 정말 어리석어! 정말이지, 마지막 밤의 종소리가 저 광대를 깨우치기 전까지 우리가 이 불경스러운 말을 계속 참고 들어야 하나?
송구합니다만, 그래야 할듯합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종이 울리면 제국 의회가 투표를 시작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어르신께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도.
흥……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
됐으니까 이만 꺼져. 설령 저 광대의 죽음이 정해진 운명이라 할지라도, 녀석이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 재가 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우르수스의 유일한 유로지비일 테니.
……
음? 내가 잘못 봤나? 근위군의 제복 같은데……
벌써 돌아왔어? 겨우 5분 쉬었는데…… 아까 연설에서도 물 한 모금 안 마시더니!
마지막 연설은……
모든 사람이 남루한 옷차림의 그자를 향해 있었다.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사람은, 홀 중앙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허리는 곧게 펴고 있었지만, 팔다리에는 힘이 없었다.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고뇌 같은 것도 없었다.
바로 5분 전, 그는 이곳에서 사랑과 용서에 관한, 자신을 죽이기로 한 모든 이를 어떻게 용서했는지에 관한 연설을 했다.
엿새나 이어진 설득에 청중들의 피로는 극에 달했지만, 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태연하게 손을 올렸다. 그러자 사방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 심지어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 그리고 저를 적대시하는 여러분, 다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저는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이 제게 행할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미래에 관해, 글을 모르는 맹인이 본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군……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숭고한 권력이며, 이러한 권력은 사람들의 눈을 쉽게 가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0년 동안, 폐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만백성과 나누셨지만, 폐하의 백성들은 그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폐하의 자비를 의심한 적이 없지만, 때아닌 자비는 독약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란을 일으킨 군단과 북툰드라의 감염자들이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비열한 자는 반역의 고개를 들어 더러워진 그 피를 신성한 땅에 뿌렸고, 교만한 학자는 진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해로운 연설이 독충처럼 무고한 영혼들을 갉아먹게 했습니다.
미칠 듯이 부풀어 오른 무지의 오만으로 인해 백성들은 겸손이란 것을 잊었고, 제국은 자애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위대한 제국과 그 백성의 마음이 괴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과거와 미래를 본 것은…… 예지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일 뿐, 미래의 행방은 이미 과거의 전철 속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본 미래를 널리 전한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것이 저를 심판대에 오르게 한 이유가 됐을지라도, 저는 그 예언을 계속 전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우르수스의 종말을 보았으며, 위대한 제국의 함락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서 폐하께 그 모든 것을 막아달라고 간청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그것을 위해 저의 하찮은 목숨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습니다.
만약 우르수스의 불결함을 씻어내기 위해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시기를 폐하께 간청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또 다른 위업과 우르수스의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이니까요.
이 심판 이후…… 그 어떤 결말을 맞이한다 해도, 저는 저의 거룩한 길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겸손의 미덕을 계속 설파함으로써, 민심을 다시 모으고 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제가 불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군대를 이끌지도, 율법을 제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대들은 제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환자도, 미치광이도 아닙니다.
제 두 손은 방랑자보다 더 비어 있고, 제 옷차림은 감염자보다 더 남루합니다. 제가 했던 모든 것, 제가 저지른 잘못은 단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역사를 보여주고,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줬던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가리려 하지 않고, 땅속 깊숙이 묻혀 있던 전통을 다시 발굴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잔혹함을 희석하려 하지 않고, 오랫동안 침묵했던 외침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게 했을 뿐입니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어쩌면 우리의 위대한 조국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분노가 가라앉고, 모든 죄가 용서받고, 모든 고통이……
순결한 인내로 해소될 것입니다.
우르수스 북툰드라 황야■■■■년
……도망쳐! 빨리!
다른 사람들처럼, 계속 가! 뒤돌아보지 마!
아니, 우린 도망칠 수 없어…… 절대 도망치지 못해! 설령 우르수스를 벗어난다 해도, 우리는 죽음뿐이야……
쿨럭…… 쿨럭쿨럭!
숨을 너무 거칠게 쉬어서 그래. 눈이 목구멍에……
그렇다.
피가 목구멍에 파고들 거다.
커헉……
……?!
빠져나왔다고? 이렇게 빨리? 말…… 말도 안 돼……
너는 머리가 좋지만, 아직은 부족해. 네가 보여준 환상은, 네가 어느 정도 직접 겪었던 경험이기도 하지.
다만, 그 환상의 고통이 우리에겐 그저 깃털로 바위를 움직이려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몰랐을 뿐.
하지만 적어도 너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의 대체품이 될 자격은 있어.
말했잖아. 나는 너희들이 사악한 힘을 부리려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이건 권유가 아니라, 최후통첩이다. 내가 질리기 전까지 너는 얼마든지 내 손에서 놈들을 구해낼 수 있다. 한 번, 두 번…… 심지어 세 번까지도.
하지만 난 이미 질렸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 내 시체를 거둘 생각이 아니라면.
너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유로지비가 아닌데, 유로지비의 힘을 사용했군.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너도 곧 끝에 가까워질 테지.
그 끝에서 우리가 함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우리 둘만.
그렇군, 너는 듣지 못했군. 아니면 더 많은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건가?
너는 저 눈 위를 걷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고, 나와 공멸을 각오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놈들이…… 한낱 버러지라는 것도 모르는군.
……
사실, 저놈들은 한 번도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다. 입으로는 조국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엄청난 행운 때문에 도망치는 일이 생긴다 해도, 일부러 더디게 걷거나, 아예 죽음을 향해 되돌아가곤 하지.
왜냐하면, 이곳을 떠나면 저놈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가져다주는 게 절망뿐일지라도 말이지.
안타깝지만, 너의 충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뭐라고……
네가 놈들에게 했던 말처럼.
“뒤돌아보지 마”.
윽……!
콜록, 콜록! 크…… 윽……
나는 신체 구조조차 완전히 파괴된 유로지비를 우르수스에 데려가고 싶진 않아. 그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고, 설령 네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해도 수지에 맞지 않지.
그러니까, 그만 저항하고 나를 따라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유로지비'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딴 게 될 생각도 전혀 없어!
게다가, 너랑 같이 가면 저 감염자들은? 너희에게 쫓겨…… 갈 곳을 잃은 저 사람들은……
놈들에겐 놈들의 운명이 있다.
……아니.
너는 더 명확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라고 말했잖아.
나는 반드시……
정적, 긴장. 사방이 그러했다. 완전한 '말'이 뇌리에 떠오를 때까지 그랬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그 검은 몸이 발을 내딛는 동작은 멈춰 있었다.
새로 내린 눈이 땅에 닿기도 전에 시커먼 얇은 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남을 거야.”
……
그는 갑자기 앞으로 나아갈 의욕을 잃었다. 이성을 이탈한 반쪽짜리 인지가 조금 전의 광경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은 수작을……
하지만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이유 없는 정체만이, 오직 칠흑만이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옅은 안개에서 두툼한 잿더미로 변해갔다.
마치 검은 눈이 내린 것처럼.
이건…… 하지만 나는……
……아.
내 몸 안의 데몬이 살짝 새어 나왔군. 설마 내 힘을 이용해 나를 통제할 줄은!
나는 그저, 네 몸속의 더러움이 품고 있는…… 환영 속에 너를 가둬, 너 자신을 직시하게 했을 뿐이야.
쓸데없는 몸부림은 그만둬, 그렇지 않으면……
콜록콜록.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어.
너의 '국가' 안에서……
콜록…… 콜록콜록!!
잘 자……
세상에나, 이, 이건……
자…… 자네! 괜찮나? 그 시커먼 괴물이 아직도 우리를 쫓아오고……
……으악!
……콜록, 콜록.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거야.
뭐라고?
가, 여기를 떠나서 남쪽으로 가. 그놈이 '깨어나기' 전에. 이번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마.
여기를 떠나야만 살 수 있어……
뭐, 뭐라고? 더 이상 우릴 쫓아오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콜록……
그러니까, 그 말이 안 통하는 데몬을 설득했다는 거야?
됐어, 빨리 가!
어…… 어디로?
전도사님께서 “고향을 저버린 자는 결코 인간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어. 우리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우리는 폐하와 우르수스, 그리고 자네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자네는 그자가 쫓아오지 못하게 했고…… 우리를 구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냈는데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작정인가? 자네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아니면, 사실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 유로지비인가?
……뭐라고……
하지만 유로지비는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의 웅장한 궁전에 있을 텐데. 폐하의 곁에 말이야.
아니……
맞아, 틀림없어! 자네는 본디 이곳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 은혜는 우리가 훔친 것에 불과해. 그렇다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지.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침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는 우리의 죄지은 영혼을 지켜주었어.
그렇다면 자네는 유로지비인 것이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자네는 감염자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는 한결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자네의 이름은 단 하나일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나?
모두에게 칭송받기를 거부하는 이름, 모든 유로지비가 공동으로 가진 그 이름……
'가브리일'.
가브리일, 가브리일……
유로지비다, 유로지비가 돌아왔어!
유로지비라면, 그 이야기책에 나오는 그분인가?
엄마가 말한, 우리 곁에 없어도, 우리가 돌멩이병에 걸려도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람?
맞아, 그분이야! 그분이 돌아왔어! 악당을 물리치고, 평범한 사람을 구했어. 이런 건 유로지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유로지비가 우리를 구했어. 유로지비가……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수많은 손이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자신이 숭배하는 이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기 위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설령 그 옷이 모두가 입고 있는 거친 옷과 다름이 없을지라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할 힘도, 생각할 힘도 없었다. 무릎이 경련하며 바닥에 쌓인 눈에 닿으려던 순간, 그녀는 거의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근위병이 아직 여기 있고, 자신을 이용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는 살인자가 아직 여기 있다. 그녀는 눈을 감을 수 없었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쿨럭…… 크윽……
으악……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이미 버린 줄로만 알았던 혀뿌리가 다시 구강과 공명하며 정말로 소리를 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그저 조용히 웅크릴 뿐, 점점 작아지고, 더 작아졌다.
그녀는 그저 이 고통이 사라지기를 참고 기다렸다.
유로지비……
유로지비가 아니라 해도, 대가는 따랐다.
하지만 오해받은 사람인 본인도 그 터무니없는 행위의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순 없었다. 때로는 '불명한 대가' 자체가 일종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만트라 씨, 왜 그러세요?
……
선두에 있는 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갑자기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다들, 멈춰.
- 이건……
반복한다, 즉시 멈춰.
전방에 데몬의 오염이 보인다.
'데몬의 오염?' 이곳에?
하지만 여기는 사미에서 우르수스 크기의 3분의 1 정도 거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박사님?
- 이건 통상적인 데몬의 오염은 아니야……
- '국가'.
우르수스 크라이니 세베르 중앙 광산지구1101년 가을
- 라이디언 소대의 마지막 좌표가 이 근처에 있어.
도시 내 거점으로 보내온 신호 표기에 따르면, 라이디언 씨 소대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낸 시점은 열흘 전이에요.
라이디언 씨가 언급했던 연구소는 전방 약 3킬로미터 지점에 있습니다.
- Mon3tr, 넌 근위병을 마주친 적이 있지?
- Mon3tr, 여기서 뭔가 분석해낼 게 있을까?
지금 보고 있어.
오염의 규모와 형태를 보면 '국가'가 남긴 오염 같아.
여기에서 근위병과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이 아주 커.
그런데 좀 이상해.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도 근처에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한 흔적이 없어.
당신의 우려는 이해해, 박사.
라이디언이라면, 분명 우리가 해독할 만한 흔적을 남겼을 거야.
- 적어도 근위병을 출동시킬 만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지.
- 그 여대공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 라이디언 소대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수 있어.
- 라이디언 소대가 여기서 일어난 일의 영향을 받았을 거야.
바로 그거야.
상대가 라이디언을 쫓아왔든 연구소를 목표로 하고 있든,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