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깊이 매장
'오카'로 이루어진 폭포 앞에서 Mon3tr는 해당 유체의 본질을 밝혀낸다. 박사는 광산 동굴에서 자신과 '변론'하려는 프리스티스의 의도를 알아챈다. 한편, 동굴 깊은 곳에서 변이한 맹글러비스트가 울부짖는다.
이 앞이 '오카'가 처음 발견된 갱도예요.
원래라면, 그 후에 철저하게 통제됐을 텐데…… 지금 보니 완전히 버려진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갱도 안의 활성 오리지늄 분진 농도가 작업 중단 이후 급격히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비활성화된 오리지늄 결정을 직접 만지지만 않으면 큰 감염 위험은 없을 거예요.
박사, 다른 생체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어…… 싸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 우린 아직 이곳 상황을 잘 몰라.
- 감시팀과 호위병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어.
- 서둘러야 해.
- 빠르게 다녀오자.
크세니야, 이쪽이 확실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죄송해요. 저도 이곳에 온 건 한 번이 전부라……
우선 비상 에너지 스위치를 찾아볼게요.
아, 여기 있네요.
후우, 됐어요. 이제부터는 광차의 운행 반대 방향으로 계속 가면 돼요.
반대 방향으로? 난 더 깊숙이 내려가는 줄 알았는데.
앞쪽은 갱도가 아닌 다른 곳과 연결돼 있습니다. 정확히 뭘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다니는 데는 아니고 화물만 오가더라고요.
광차는? 아직 쓸만해?
광차 자체는 멀쩡한데, 너무 오래 방치돼서 비상 에너지로는 조명밖에 못 켤 것 같아요. 그냥 안 쓰는 게 낫겠어요.
- 동의해.
- 걸어가면 돼.
음……
너희 둘, 광차에 타.
네?
- 광차에는 안전벨트도 없잖아!
-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얼른 타, 박사. 시간을 아껴야지.
작동이 안 될 텐데……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게.
박사, 내가 태워줄까?
- ……내가 알아서 할게!
준비됐어?
그런데 Mon3tr,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어?!
- 이대로는 무조건 튕겨 나가.
- 광차가 산산조각 날 거야.
그럴 일 없으니 꽉 잡아.
출발한다!
다행히 갱도가 아직 멀쩡하네요. 무너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내려오기 전에 불이라도 좀 쬐고 올 걸 그랬어요. 갱도 아래는 외부보다 습기가 훨씬 높아요. 거의 이베리아 해안이랑 우르수스 내륙만큼 차이가 나요.
물론 갱도 안팎의 온도차도 크고…… 두 분은 괜찮아요?
난 당연히 괜찮지. 박사는?
- 뭔가…… 머릿속이 계속 흔들리는 거 같아.
- Mon3tr, 너 아주 신났지!
속도는 조절하고 있는데?
Mon3tr는 훌륭한 운전자, 수레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훗, 아무래도 내 문제는 아닌 것 같네.
- 크세니야, 궁금한 게 있어.
- 광산에서 처음으로 '오카'를 발견했을 때가 언제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첫 '오카' 샘플이 연구소에 도착한 게 겨우 1달 전이었어요.
오리지늄 광산에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물질이 나타났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죠.
- 이상하네……
- 광산에 나타난 물질을……
- 연구소는 어떻게 '인체 실험'이랑 연결시켰지?
그 '오카'가 발견된 갱도에서 감염자들에게 특이한 변이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감염자의 감염 정도가 믿기 어려울 만큼 높았는데도, 생명 징후는 오히려 정상이었어요. 심지어 '건강'할 정도로요……
뭔가 익숙한 증상인데.
설마 다른 곳에서도 그런 감염자를 본 적이 있나요? 그 감염자들도 '오카'에 노출됐나요?
-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 아직 확실하진 않아……
아무튼…… 우르수스 당국은 그 '기적'을 복제하고 싶어 했어요.
제 생각엔, 정부가 원했던 건 질병이나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는 노동력, 또는…… 특별한 군대를 바랐던 거일 수도 있습니다.
- 우르수스 정부의 그런 반응, 전혀 놀랍지 않아……
- 그들은 아직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했어.
박사, 크세니야, 거의 다 온 것 같아.
광차의 선로는 여기가 끝이야. 이제부터는 걸어가야 해.
세 사람은 어둠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빛보다 먼저 감지된 건 소리였다. 물소리, 무거운 물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들은 동굴 안의 빛이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빛은 눈앞의 바닥에 고인 액체와 시선 끝에서 쏟아지는…… 폭포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흑요석 같은 광택을 띤 액체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높은 곳의 틈새를 뚫고 들어온 빛을 반사해, 동굴의 험준한 내부를 비 온 뒤의 아침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 ……역류하는 강.
눈치챘어요?
맞아요, 역류하는 강과 비슷한 거예요. '오카'가 넘쳐흘러야 할 부분이 경사면을 따라 밖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다시 거슬러 올라오다가 이렇게 '고여'버린 거예요.
하지만, 사실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전혀 없는데도 흐름이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어요. 그래서 강의 이름을 따서 '오카'라는 이름을 붙인 걸 거예요.
여기는 온통 이런 액체투성이네.
이건 갱도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같아.
더 신기한 건, '오카' 자체가 물 같다는 거예요.
- 그게 무슨 뜻이야?
- 그게 가능해?
아니요…… 그냥 비유입니다.
일정 시간 침전되면 '오카'는 매우 안정적인 상태가 돼요. 범용 용제로 쓸 수 있을 만큼.
잠깐만요! 그래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건……
아……
Mon3tr가 허리를 굽혀 시험관에 액체를 담았다. 장갑을 끼지도, 아무런 방호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그러나 젖은 두 손으로 시험관 속 액체를 흔드는 Mon3tr의 표정이 굳어졌다.
- Mon3tr?
그렇게 직접 접촉하면 안 돼요! 제가 방호장비를 챙겨 왔으니까 샘플이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제가 채취할게요.
(작은 목소리로) ……박사, 나 이게 뭔지 알겠어.
네?
- ……
- 크세니야, 샘플 채취는……
- 폭포 쪽에 있는 걸로 부탁해도 될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조심하시고.
이 '오카'라고 불리는 유체…… 사실은 '오리지늄'이야.
- 오리지늄……
- 그런데 왜 이런 모양이지?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해.
박사, 라인 랩의 '전달물질'이나 이베리아 연금술에서 자주 언급되는 '코라소닉스' 기억나?
- 기억나.
- 그것들 사이에 무슨 관련이?
이게 아마도 그것들의 원형이거나, 원재료일 거야.
- 그리고, '전달물질'과 '코라소닉스'의 공통점이라면……
- 전부 '매개체'라는 점인데.
맞아, 인체와 직접 반응하거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매개체'지.
- 그래서 둘 다 유체 형태였나?
그런 것 같아……
박사, 너도 알겠지만 오리지늄은 '정보'의 매개체이자 '에너지'의 매개체이기도 해.
게다가, '전달물질'과 '코라소닉스' 모두 특정 수단으로 오리지늄 에너지를 다시 각인하고, 다양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산물이지.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이 '오카'라는 물질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오리지늄 속 에너지를 추출하고 난 뒤 남은 공백의 물질이야……
그러니까, 정말로 '범용 용제'가 된 셈이야. 어쩌면 이게 '오카'에 노출된 감염자들이 '변이'를 일으킨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지도 몰라.
쉽게 말해, '오카'는 에너지가 빠져나간 오리지늄이고, 감염자 체내의 활성 오리지늄을 중화시키는 동시에, 오리지늄이 지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전례 없는 우수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거야.
물론, 감염자의 생명 징후를 일시적으로 유지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죽을 운명을 바꾸지는 못해.
그리고 '오카'를 주입한 일반인들의 경우, 체내에 활성 오리지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강한 거부 반응이 나타난 거야, 그래서 1명도 살아남지 못한 거지……
- 그게 여기 대량으로 나타났어……
- 그렇다는 건……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할 일이지……
박사, 콜로살 거대 광맥이 고갈되고 있어.
- ……
- ……
- ……
우리가 들은 소문 있잖아, 우르수스가 오리지늄 채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문…… 실은 광맥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야.
여기서부터, 이 우르수스 최북단의 광산에서부터 고갈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거야.
대충 계산해 봤는데, 4개월 안에 우르수스 국경 내 오리지늄 매장량이 기존의 30%까지 떨어질 수 있어……
- 여대공이 광산을 봉쇄한 진짜 이유가 바로 이거였네.
- 이건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야.
굳이 말로 꺼낼 필요 없이, 당신과 Mon3tr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 프리스티스.
프리스티스 말고는 없어.
-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광맥의 고갈은 간섭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야.
우르수스가 붕괴의 길로 향하고 있어.
- 우르수스뿐만이 아니겠지.
- 이 정도 자원 고갈이라면 테라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
- 설마 이게 프리스티스가 바라는 건가?
박사, 박사! 나 생각났어.
'오카'도 전 문명의 유산이야…… 너희가 한 과거 실험의 부산물.
만약, 프리스티스 때문에 광맥이 고갈된 거라면, 그 안에 뭔가 유용한 정보가 있을지도 몰라.
박사, 정보를 한 번 읽어 볼래?
- 어떻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냥 손을 집어넣어. 방금 내가 샘플을 채취했을 때처럼.
걱정하지 마. 너한테 해가 되진 않을 거야.
당신은 Mon3tr의 지시대로 몸을 굽히고 두 손을 '오카'라는 액체 속에 담갔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
-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당신은 변화 혹은 반응을 계속 기다렸다. 전에 여러 번 일어났던 '기적'처럼.
그러나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 문명의 산물은 마치 당신들과의 연결을 거절하고 부정하는 것 같았다.
- 우리 발밑의 이 액체가 이미 정보 저장 기능을 상실한 거 아닐까?
- 아니면, 애초에 아무런 정보도 남기지 않았거나.
……음,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아.
Mon3tr! 박사님!
이쪽으로 와보세요. 제가 새로운 걸 발견했어요!
폭포 뒤에 동굴이 있는데, 그쪽으로 올라와 보세요……
제가 갱도 안에서 특이한 주파수의 소리를 발견했어요. 너무 부자연스러운…… 아니, 이건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뭐랄까…… 마치 음파로 어떤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 같아요!
뭐……?
- 가서 확인해 보자.
이건……
폭포 가운데 이런 곳이 있었네?
- 정말…… 장관이야.
잘 들어봐요! 액체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중에, 유독 주파수가 특별한 소리가 있어요. 마치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것처럼. 아주 특이해서 분명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방금 제가 들은 걸 해석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어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소리를 전부 기록해야 했거든요……
이거예요! 들려요?
물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네가 하는 말도 잘 안 들려……
박사?
당신은 두 눈을 감고 모든 소리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당신은 끊임없이 변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 나……
- 들었어.
……들었다고?
의식 속에 갑자기 파고든 그 소리는, 고주파수로 구성된 것 같기도 했고, 짧고 날카로운 파동 같기도 했다. 마치 특이한 리듬의 악보 같았다.
하지만 당신은 곧 확신했다. 이것은 분명 어떤 암호, 또는 언어다.
당신은 기억 속에 떠오르는 모든 언어를 최대한 포착했고, 분류해서 하나씩 대조했다. 그 결과 그것은 같은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변형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 제가 다 기록했어요……
그냥 직감이긴 하지만, 만약 서로 다른 이동도시 간에 사용되는 공통 인코딩 규칙을 적용해 이 소리를 식별한다면……
이건 하나의 단어, 여러 언어로 쓰인 같은 단어일 거예요. 저는 우르수스어와 가울어를 알아볼 수 있어요!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미지의 언어”
……
“спорить”
“dibattito”
……
“débat”
“debate”
……
그랬다. 갱도 속 유체는 바위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한 단어를 전하고 있었다……
'변론'.
'변론'.
그래, {@nickname}.
당신이 아직도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아직도 자신이 그린 미래를 굳게 믿는다면.
현실을 통해 나에게 반박해. 나에게 증명해 봐……
당신이 굳게 믿고 있는……
그 '희망'을.
- ……이건 초대야.
뭐라고?
- 이건, 초대라고.
- 내가 반드시 응해야 할 초대.
(작은 목소리로) 프리스티스가 네게 남긴 정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 맞아.
- 그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어……
- 얼른 여길 떠나자.
크세니야가 샘플 채취를 끝내면 연구소로 돌아가자.
어떻게든 아미야랑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 아미야 쪽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 아미야가 라이디언이랑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는데.
- ……무슨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 묵직한 뭔가가 물을 밟고 이동하는 소리.
아까부터 폭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어.
박사, 진짜 이명 증상이 있는 거 아냐? 방금 박사의 뇌가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해서, 감각이 지체된 걸 수도 있어……
……잠깐.
크세니야? 너야?
- 이건 크세니야의 발걸음이 아니야. 무게도, 리듬도 다 달라.
저건…… 뭐지……
광기에 찬 울부짖음, 거친 숨소리, 송곳니 사이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점액.
검붉은 오리지늄이 녀석의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녀석은 마치 그 단단한 구속 때문에 반드시 사람처럼 서 있어야만 하는 듯했다.
그리고, 당신은 녀석이 거대한 앞발을 드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앞발이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아무리 봐도 말라붙은, 인간의 두 손이었다.
- ……오리지늄에 감염된 맹글러비스트.
샘플 채취 완료!
두 분, 거기 서서…… 뭐 해요?
상식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기괴한 맹글러비스트가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 크세니야, 빨리 와!
뛰어, 크세니야! 앞으로 달려, 뒤돌아보지 말고!
내가 데리고 올게. 박사, 넌 광차 쪽으로 가. 거기서 만나자!
박사, 얼른 가!
이게 무슨……
연구원은 달리는 와중에 도저히 못 참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간신히 비명을 삼켰다.
……황제 폐하시여……
저게 대체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