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잦아든 울음소리
화재 진압 후, 렌킨이 범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자 했으나, 살아남은 마을 주민들에게 거부당한다. 결국 진범은 심판 및 처형을 받고, 그 일로 인해 광부 무리는 분열된다. 남기를 선택한 베토치키는 슬퍼하며 자기 자신을 책망한다.
눈, 눈, 눈.
머리 위로 눈이 내렸다.
눈은 뜨거운 물이 되었고, 끊임없는 외침이 되었으며, 죽은 자의 무게가 되어 내렸다.
하지만 그것을 털어낼 손은 없었다. 그것은 축축해졌고, 무거워졌고,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짓누를 때까지.
(가볍게 흥얼거린다)
할머니, 기분, 어때요……?
(가볍게 흥얼거린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가볍게 흥얼거린다)
시계, 똑딱, 소리, 내요.
시계, 누구도, 안 기다려요.
……그런데 우리, 노래하면 안 돼요?
가요…… 이, 이제, 가요.
여긴 생존자가 없어.
윽, 못 일어나겠어. 리트, 거기 있어? 누가 나 좀 일으켜 줘……
리트?
저기 봐.
누가 왔어.
렌킨……
불은 꺼졌어.
그래, 불은 진작 꺼졌어. 생존한 마을 사람들도 우릴 발견했어. 뭐라도 해야겠는데.
게다가 호리를 언제까지 무릎 꿇게 할 거야? 호리가 미쳐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해도, 이런 식으로 처벌할 필요는 없잖아.
불이 꺼지고 주변 온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어. 저렇게 내버려두면 죽는다고.
맞아, 호리는 죽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렌킨이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원래 울타리가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었다. 식량을 노리는 터스크비스트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악의를 품었든, 선의를 품었든.
울타리 잔해 너머로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살펴보다가 겁이라도 먹은 듯 이내 자리를 떴다.
렌킨은 혼잣말을 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닉토, 내 잘못이야.
뭐라고?
내 잘못이라고.
구체적으로 뭐가……?
호리는 미치지 않았어. 호리가 불길 속에서 외친 그 말은 베토치키의 할머니에게 한 말도, 자기 아들에게 한 말도 아니야. 그건 나에게 한 말이었어.
“……이것으로, 나는 살육의 죄를 범했다. 식량을 위한 것도, 깨끗한 물을 위한 것도, 따뜻한 집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설령 말했다 해도, 그건 베토치키나 나댜 부인이 늘 하던 기도문이나 다를 게 없어.
그들이 유로지비가 어쩌니, 황제가 어쩌니 했던 게 하루이틀도 아니잖아.
유로지비? 황제? 그깟 허황된 것들은 없어. 단지, 자신의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나의 영혼을, 호리가 구하려고 했다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 영혼이란 게 대체 뭐지? 영혼의 존재를 누가 증명할 수 있어? 게다가, 영혼이 살아있는 목숨보다 더 귀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호리를 몰아붙이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이미 최악의 결과를 낳아버렸어. 전에 호리가 그렇게 한 이유가 내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 불을 지른 목적도 아마 같을 거야.
아니야, 내 말 들어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니까, 이번 불은 내가 지른 거야.
나는 반드시 이 빚을 갚아야 해.
렌킨, 무모한 짓 하지 마!
……
……!
최대한 짧게 말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더 있다는 거냐?
우리는 너희에게 먹을 것과 깨끗한 물을 나눠줬어.
그런데 이게 너희의 보답인가?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우리를 쫓아내려고? 아니면 해코지를 계속할 셈인가?
저는 여러분이 살인자가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합니다.
허…… 허허……
하하하하하……
살인자? 죗값? 설마 방화범, 살인자, 약탈자들을 전부 잡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너는 못 해. 할 수 있었다면 무기 들고 대화하러 오지도 않았겠지.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하지. 우리를 몰살하러 온 게 아니라면, 당장 떠나.
다신 나타나지 마.
렌킨은 들고 있던 곡괭이를 내려놓고, 몸에 지닌 무기를 다 벗어 던진 다음, 눈앞의 주민을 향해 두 손을 높게 들어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렌킨!
비켜, 닉토.
그래도, 오리지늄 아츠가 있잖아……
여기서 범인을 바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처분하세요.
……뭐?
저는 이미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오리지늄 아츠 역시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알아서 하세요.
알겠다. 너는 너 자신으로 모두를 감싸겠다는 거군.
내가 셈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득이 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절대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여기 있겠습니다.
나는 네가 필요 없어. 우리에겐 네가 필요 없어! 불이 났을 때, 넌 이곳에 있지도 않았잖아!
내가 원하는 건 불을 지른 놈, 불이 난 틈에 약탈한 놈, 우리 터전을 완전히 망가뜨린 놈이야……
내 아내를 죽인 녀석을 넘겨!
설령 그 폭력의 근원이 저한테 있다고 해도요?
저의 오만함이 그들을 이런 궁지에 몰아넣었고, 제가 몰아붙였기에 그가 이런 잔혹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저를 죽여야 합니다.
아니.
제 말을 좀……
그놈 말고, 다른 놈은 필요 없어.
폐허 속에 공터가 마련되었다. 그곳에서 곧 처형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추운 밤 불가에 몰려들었지만, 그 뜨거움에 데일까 두려워하며 서 있었다.
난 아직도 모르겠어. 호리는 왜 불을 질렀을까?
우릴 도와준 마을에 그런 짓을 하다니……
진작에 미쳐버린 거야.
아들이 죽고 나서부터 이상해졌어.
……
그런데, 불을 지른 게…… 사실은 호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렌킨은 단지 그들에게 해명이 필요했고, 마침 호리가 심하게 앓고 있었고.
내가 아는 호리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렌킨을 믿어. 아직도 모르겠어? 렌킨은 호리를 위해 충분히 노력했어. 심지어 호리 대신 자신을 희생하려 하잖아.
그래도 마을 주민들이 끝까지 진짜 범인을 요구해서 다행이야. 진짜 범인을 대신할 선량한 누군가가 아니라.
……어쨌든, 나는 보고 싶지 않아.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나, 나 이만 갈래. 가서 좀 쉬어야겠다.
잠깐, 렌킨이 뭔가 말하려고 해.
거의 다 모였군.
(작은 목소리로) ……고통을……
(작은 목소리로) ……짊어……
호리를 죽이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범인을 변호하기 위해서도, 그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
맞아, 호리는 죽어 마땅해.
호리는 선의와 신뢰를 짓밟았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지. 호리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쓰는 우리의 의지를 저버렸고, 무고한 사람을 해쳤어.
나도 알아, 우리가 선택한 이 길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어.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이러한 이유로 죽어서는 안 돼.
자, 이제 똑똑히 봐. 호리의 교훈을 기억해, 그리고 호리의 목숨을 앗아갈 자야말로 가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것을 명심해.
내가 그를 죽이기로 한 것은, 피해자의 요구도 있었지만, 나 자신의 판단이기도 해.
그리고 이건 내가 리더로서 내리는 마지막 결정이 될 거야. 동료를 죽인 죄명은 그 누구도 짊어져서는 안 돼. 그러니까……
죄를……
회개……
호리의 어깨 위로 눈이 두텁게 쌓였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처형자를 향해 목을 드러냈다.
……그래, 난 원래부터 내 죄를 회개하려 했어. 그러니까, 내가 하겠어.
(작은 목소리로) 곧 보자, 호리.
윽!
빌어먹을…… 적어도 이 거울만큼은 고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산산조각이 났네.
뭔가 불길하군.
렌킨, 우리 호리의 시신도 못 가져가는 거야?
못 가져가.
시신을 가져가 봐야 쓸모도 없을 텐데. 설마 호리를 황야에 버리지는 않겠지?
문제는 우리에게 협상할 자격조차 없다는 거야.
게다가 너희들이 계속 나를 따를 생각이라면,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라.
그게 무슨 뜻이야?
너를 안 따르면 누굴 따르게? 지금 농담할 때 아니야, 렌킨.
이건 농담이 아니라, 결단이야.
내가 아까 말했던 결단.
렌킨이 돌아서자, 초췌하고 지친 얼굴의 사람들이 마치 표식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즉시 그의 주위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가 거기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그저 리더를 바라보며 망연히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렌킨, 계속 남쪽으로 가는 거야?
난 벌써 지쳤어. 난 그저 바람과 눈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을 원할 뿐인데, 여긴 그런 것조차 없겠지?
계속 가도 죽고……
여기 남아도 죽고.
렌킨, 못 찾았어.
파벨과 보기나를…… 못 찾았어. 시신조차도. 미안해.
마을 주민들이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했어. 곡괭이를 내려놨는데도,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난 그 사람들을 위협하고 싶지 않아. 가자, 렌킨.
우릴 데리고 가줘.
렌킨은 모두의 얼굴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을 했든 하지 않았든.
……
다들, 미안해.
렌킨?
앞으로의 길은 내가 결정하지 않아.
아까도 말했지만,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호리가 아니라 나야.
내가 호리의 잔혹함과 광기를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정이 그를 그런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어.
이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나는 심지어 모두가 죽음을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했어.
사실이 증명하듯, 내겐 독단적으로 일을 결정할 능력이 없어. 그래서 내가 내리는 마지막 결정이자 가장 현명한 결정은 바로, 이 결정권자의 자리를 포기하는 거야……
선택권을 너희에게 돌려줄게.
침묵.
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다.
결정을 들은 모두가 침묵했다. 어느 떨리는 목소리가 사람들 속에서 울려 퍼질 때까지.
우리를…… 버리는…… 건가요?
베토치키,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요? 방금, 선생님, 말…… 어떻게…… 이해, 해요?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 아이를 위해 자연스레 길을 터 주었다.
그러나 베토치키는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결정하지 않는다”? 이미 이만큼, 멀리…… 왔는데, 이제 와서?
선생님은, 버리려는, 거예요. 포기하려는 거예요, 우리, 모두를.
아니야! 난 이렇게 해야만 해. 모두에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내 멋대로 내린 결정 때문에 무의미한 희생이 나오는 걸 받아들일 순 없어. 우리가 광산에서, 그 죽음의 경계에서 도망쳐 나온 건 이런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야.
주, 죽음의…… 경계? 하지만, 거긴, 저의 집이었어요.
뭐?
광산, 갱도, 는 저의…… 집이에요.
모두의, 집, 이었어요.
……'집'? 난 너희들도 나처럼 도망치고 싶은 줄만 알았는데.
그건, 믿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을, 렌킨을.
몰랐…… 나요?
너희가 떠나기로 선택한 건, 원래부터 그럴 마음이 있어서라고 생각했어.
선생님은, 검은 벌레를, 죽이고, 말했어요. “여기를…… 떠나자!”라고요. 그래서…… 떠났어요.
선생님은, 호리 아저씨를, 죽이고, 또 말했어요. “너희를, 데리고, 나온 건, 잘못이야.” 그리고, 그것이, '선택'이라고.
저,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선생님에게, 우리는, 대체…… 무엇이죠?
소중한 친구, 가족.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내게 소중한 거야……
그리고 이곳, 이곳은, 마을 주민들, 집이에요.
마을은, 다시, 복구, 하겠죠.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어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선생님은, 우리를…… 이렇게, 멀리까지,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다시…… 도, 돌아갈 수, 있나요?
……
선생님, 말해 주세요……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요?
베토치키.
싫어요. 그런, 말투로, 부르지 마요. 또 저를, 달래려는, 거잖아요. 저, 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에요.
……
바, 반박, 안 하시네요.
네 말이 내 추측을 확인시켜 주는구나.
네?
그동안 나는 내 생각을 모두에게 강요하며 내 고집대로 해왔어. 그래서 너희는 내 계획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작전의 의미도 알지 못했던 거야.
너희는 나를 믿었지만, 이건 너희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야. 그런데 내가 없으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날 믿어줘서 고맙지만, 이건 옳지 않아.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분명하게 설명할 테니까, 결정은 너희들이 해.
렌킨은 다시 한번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카 접경지에 가서, 감염자들의 농장을 찾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인 건 맞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 여정을 우르수스가 우리를 직시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해.
문제는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건 우르수스를 뒤흔들려는 시도니까.
예전에도 이런 시도를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표식이랑 이름만 남긴 채, 이 더러운 눈과 늪에 뒤덮인 툰드라에 전해지고 있을 뿐이지.
만약, 계속 날 따라오다가 그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거라고 한다면? 계속 살고 싶은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그 길을 가라고는 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 나는 호리에게 이런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어. 그래서, 호리는 죽었지.
호리 덕분에 나도 알게 됐어. 너희에게 반드시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시 웅성거린 후,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몇몇은 렌킨의 옆이나 뒤에 섰고, 다른 몇몇은 그의 맞은편에 섰다.
렌킨, 우리 언제 출발해?
모두의 결정이 끝나면, 바로 출발할 거야.
더 많은 사람들이 렌킨쪽으로 옮겨오면서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베토치키의 귀에 들린 그들의 걸음 소리는, 마치 늦게 울린 퇴근 종소리 같았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잘못 셀 때마다, 누군가가 또 갱도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사, 살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왜, 굳이, 골라야, 해요?
저, 저는……
베토치키는 사람들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디딘 베토치키는 누군가에게 붙잡혀 멈춰 섰다.
……베토치키.
어, 언니?
언니도, 넘어가요? 방금…… 어디, 있었어요? 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다들…… 다들, 떠나려, 해요! 우릴 떠나서, 죽으러!
괜찮아, 괜찮아. 방금 닉토의 상처를 치료해 주러 갔었어. 거울 파편에 베여서……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무튼, 대화의 후반부는 나도 들었어. 넌 그저 살고 싶은 거잖아, 아무 잘못 없어.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길을 억지로 갈 필요는 없어. 나도 가지 않을 거야.
떠나지…… 않아요? 안, 떠나요?
그래. 우리 팀은 계속 부상자들을 돌볼 거야. 그리고 닉토도 안 떠날 거야, 그렇지?
……닉토?
사람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고, 계속 웅성거렸다. 닉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디언은 오리지늄 아츠로 전기 신호 주파수를 탐색해 금세 그의 위치를 알아냈다.
닉토가 우리 뒤에 있네. 닉토도 안 떠날……
……미안해, 세라피나 씨.
닉토 아저씨……
미안해, 베토치키.
난 돌아갈 수 없어. 내가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 출신인 건 알지? 광산은 처음부터 내 집이 아니었어.
게다가, 계속 앞으로 간다고 꼭 죽음뿐이라는 법은 없잖아. 내가 저 녀석을 잘 지켜보고 있을게. 어쩌면 저 녀석이 말한 것처럼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쨌든……
기회는 사람이 만드는 거야. 안 그래?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왜…… 왜?
왜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왜…… 언제나……
……이별해야, 하나요?
얼른 돌아가, 베토치키. 그러다 감기 걸려.
자고 일어나면, 아빠 엄마가 집에 돌아와 있을 거야.
떼쓰지 말고. 말을 잘 들으면 할머니도 칭찬할 거야…… 일어나 보면 베개 위에 초콜릿이 있을걸!
……파업……
권리 쟁취…… 아무도…… 대답이……
……사형……
“엄마”.
“아빠”.
“아이”.
……“할머니”?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한 마디! 한 마디면 됩니다!
한 마디만 해주면, 제 영혼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저…… 저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당신의 아이를 죽인 죄를……
“나는……”
“나는 묵상하며, 그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리라.”
“그대를 위해, 그를 위해,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그분의 은혜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할머니?
아가야, 아가♪
이제 눈을 감으렴♪
누군가가 창밖에서♪
문을 두드리네♪
아가야, 아가♪
숨을 죽이렴♪
누군가 인간의 탈을 쓰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구나♪
왔구나♪
왔어♪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할머니……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할머니, 밖에…… 누가 있어요?
남은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단다.
모두…… 가버렸네요.
다들 울면서, 할머니, 손에, 입 맞추고, “헤어지기, 싫어요”라고 마, 말했지만…… 가버렸네요.
모두에겐 가야 할 길이 있단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요? 왜, 왜……
고통받은 영혼아, 넌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거다.
렌킨 선생님이…… 그 스톱, 스톱워치 쓰는 법, 아직…… 안 가르쳐, 줬어요.
스톱워치, 시계……? 종소리, 들려요.
여느 때와 같구나.
할머니, 할머니, 소,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불이 뜨거워서 그래.
제 몸도, 추워요, 그리고, 너무 아파요……
……하지만, 불 때문이…… 아니에요.
이해가 안 돼요.
괜찮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혼돈의 삶을 사는 법이란다.
죽을 때…… 까지요?
그래, 죽을 때까지.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할머니, 도대체, 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요?
사랑.
그렇지만, 저는…… 괴로운데요?
그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사랑은 사람에게 고통을, 인내를, 복종을 강요하는 법이지.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강하고, 부유하고, 고귀하게 만들기도 한단다.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고,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는 게야.
……
베토치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몸을 더욱 웅크렸지만, 예전처럼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던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그때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굳이 그 말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을 필요가 없었지만, 소녀는 그 말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순박하게, 멍청하게 살아갈 뿐인데, 어떻게 왕실 귀족보다 더 부유하고, 고귀할 수 있다는 걸까?
분명 아무런 힘도 없는데, 어떻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권력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걸까?
눈앞에 모닥불이 있고, 불은 사람을 따스하게 해야 하지만, 베토치키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를 느꼈다……
그 차갑고 메마른 손을 타고.
“나는 묵상하며, 그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리라.”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그 목소리는 그저 반복되고,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 메아리는…… 파멸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