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미치광이의 변론
미쳐버린 광부는 마을 주민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마치 차량을 빼앗을 때 자신의 아들을 죽였던 것처럼. 마을을 휩쓴 화재 속에서, 렌킨은 자신의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고 여긴다.
등장 오퍼레이터: 베토치키
우르수스의 늦가을, 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가지 위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공터의 인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멀리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작은 집들에서도 불빛 하나 볼 수 없었다.
공터 중앙의 모닥불 속, 타다 남은 장작에 아직 한 줄기의 불씨가 남아 있었고, 불씨는 북풍에 하염없이 찢기며 간신히 마지막 숨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굵은 장작 하나가 불 속에 던져지자, 불꽃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놈들이……
우리 행방을 알아냈어.
마른 장작이 숯 더미 속에서 서서히 그을리며 형태가 바뀌더니, 갑자기 피어오른 불길에 완전히 휩싸였다.
불빛은 힘없는 감염자의 얼굴을 비췄지만, 그는 한 줌의 따스함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놈들. 여기 있는…… 모두.
놈들을 모두 죽여야 해…… 가니아를 죽인 것처럼……
그래야만 해, 그래야만 그놈들이……
도덕을 잃는 일도, 순수함을 잃는 일도……
영혼을 더럽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돼.
그는 너무 아팠다. 마치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다.
그는 너무 추웠다. 마치 얼어붙은 호수에 빠진 듯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어떻게든 몸을 따뜻하게 해야 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한 묶음, 두 묶음, 세 묶음.
본래 미약했던 불꽃은 나무 틈새를 비집고 나왔고, 뜨거운 화마가 되어 불을 지핀 이의 몸에 닿을 듯 사납게 뻗쳤다.
깡마른 광부는 타오르는 나무를 집어 들고 고요해진 집 쪽으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저벅, 저벅.
가볍기도, 무겁기도, 강하기도, 약하기도 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자고 있어라…… 잠들어 있어라!
모두 잠들어 버려.
너희는 앞으로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될지,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를 거다.
감염자를 도와주고, 숨겨주고, 결국엔 팔아버렸지. 무지한 놈들, 순종적인 버든비스트 같은 놈들!
하지만,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내가 너희를 도와줄 수 있어.
……나는 묵상하며……
그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리라.
미치광이는 무시무시한 횃불을 손에 쥐었지만, 희미한 불꽃으로 그의 추위를 떨쳐버리기엔 부족했다.
그는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그 추위는 광석병으로부터, 찬바람으로부터, 우르수스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에게는 더 많은 온기가 필요했다.
그 순간, 커다란 건초더미가 미치광이의 눈에 들어왔다.
불.
그는 횃불을 내던졌다.
정화……
불길은 시들어 있던 모든 것을 깨웠다.
구원!
그는 자신의 살아있음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머릿속은 계속 윙윙 울렸고, 렌킨은 악몽 속에서 감각과 이성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오감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지만, 절규는 멀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비틀거리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그의 얼굴을 덮쳤고, 온몸의 식은땀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순간, 모든 감각이 몸으로 돌아와 렌킨의 전신을 자극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악몽 속 광경이 현실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한 상태였고, 한때 피난처가 되었던 가옥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 속에서, 타들어 가는 절망과 고통의 숨결은 마치 마귀의 손아귀처럼 모두의 목을 옥죄었다. 그 위압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미미한 존재가 되었다.
렌킨!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어. 우리가 끌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지금 할 수 있는 건 모두를 대피시키는 것뿐이야!
렌킨, 아직 우리의 식량이 안에 있어. 내가 들어가서……
그럴 시간 없어!
가서 사람들 깨워! 모두 마을 밖으로 대피시켜야 해! 어서, 서둘러!
렌킨의 말에도 화재 속 인파는 질서를 되찾지 못했다.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그는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아니, 아니야…… 내가 이겼어, 내가 죽였다고!
난 모두를 구할 수 있어……!
선생님!
베토치키, 네가 왜 여기 있어? 얼른 안전한 곳으로 가!
선생님, 저, 저……!
내 말 못 들었어?
렌킨은 베토치키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하,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여요!
뭐……? 할머니랑 계속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말을 더듬는 소녀는 손짓을 해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 했으나, 공포에 질린 소녀의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닉토!
넌 계속 사람들을 대피시켜. 나랑 베토치키는 나댜 부인을 찾아볼게!
아, 알겠어!
렌킨과 베토치키는 불길 속으로 달려갔다. 양옆에 있는 집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옷에까지 옮겨붙을 수 있었다.
할머니…… 흑, 흐윽, 할머니!
렌킨도 크게 소리쳐 부르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 쌓여가는 무력감이 그의 목구멍을 막아, 목소리를 내기도 숨을 쉬기도 어렵게 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이렇게 거대한 불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 선생님. 저…… 선생님…… 읍…… 으읍!
검은 연기가 자욱한 갈림길에서, 베토치키는 입을 막은 채 자신을 가리키고, 다시 렌킨을 가리킨 뒤, 마지막으로 갈림길을 가리켰다.
안 돼…… 베토치키, 나랑 떨어져서 움직이는 건 안 돼…… 내 말 들어……
선생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소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기이하면서도 경건한 기도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도하는 대상은 황제도, 유로지비도 아니었다. 그녀는 렌킨의 도움을 바랐다.
나는……
어리석군.
으윽……!
갑자기 한 검은 그림자가 두 사람 앞을 가로 지났다. 그는 절뚝거렸지만, 이상할 정도로 힘차게 걸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호리? 어디가?!
구부정한 뒷모습은 렌킨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막다른 곳의 불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빛은 그의 그림자를 몰아냈다. 그는 마치 전설 속 처형장으로 향하는 유로지비처럼, 불길의 세례를 맞이하려는 듯했다.
베토치키, 기다려!
이것으로, 나는 살육의 죄를 범했다.
식량을 위한 것도, 깨끗한 물을 위한 것도, 따뜻한 집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중얼거리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가옥의 문을 열어젖혔다.
렌킨의 시선이 호리를 지나쳤다. 설령 불꽃이 그의 눈을 태워버린다 해도, 그가 집안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사납게 치솟는 불길, 불에 타 흔들거리는 기둥, 죽어가는 자의 신음을 방불케 하는 타닥거리는 소리.
하지만, 한 노파가 불길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에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
……
그녀는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의자에 앉아, 무표정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불길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다가가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았고, 머리카락 역시 흐트러지지 않았다. 눈을 살짝 감고 있었지만,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것으로, 나는 그들의 영혼을 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