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흉조의 소용돌이 · 에피소드 13

13-21진홍의 군주

메인 스토리작전 후2024-04-16

아미야와 로고스가 뱀파이어 생귀나르에게 맞선다. 뱀파이어 생귀나르는 왕관이 선택하는 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약해진다며 분노하고, 마왕의 왕관을 문명 밖의 공간에 내버리기로 결정한다. 힘든 전투 끝에 뱀파이어 생귀나르는 베헤모스의 해골 위에서 추락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미야, 로고스, 외드레르, W, 이네스


핏빛 비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쏟아진다.


로고스와 아미야의 어깨는 이미 핏물에 젖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백발의 뱀파이어는 마치 빗속을 산책하듯, 티끌만큼도 물들지 않았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보세요, 그대들의 비참한 모습을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무도 그대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이 무대를, 마지막 고별의 기회를 낭비하지 말아 주시길.

로고스

“내가 묘사하는 것이 곧 나의 규정일지니.”

로고스

“비바람은 멎고, 더 흐를 권리는 없을지어다.”

말이 내뱉어지는 그 순간, 핏빛 비가 공중에 멈추었다.


마치 장막처럼, 마치 별무리처럼. 바다의 연민과 달의 광휘를 비추어 담는다.


뱀파이어 생귀나르는 눈을 깜빡였다. 마치 밴시의 주인이 내뱉은 주문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듯, 그저 천지를 가로지르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들끓음 그 자체를 멈춰 세운 건가요? 대단하군요, 피의 흐름을 멈출 줄이야.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피의 주인은 저랍니다.

공중에 멈춰 있던 핏방울들이 갑작스레 터지면서, 주위의 달라붙을 수 있는 모든 물체에 튀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종은 썩고, 규정은 피폐해질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만약 그대가 이토록 자신의 고귀한 혈통을 경시한다면, 제가 그것을 뽑아내 그대의 모친께 돌려드리도록 하지요, 밴시.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녀는 분명 그대를 위해 애도의 피리를 불어주겠죠.

로고스

아미야!

아미야

……

뱀파이어는 아미야에게 그저 한 순간의 기회를 주었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아미야의 손바닥이 뱀파이어의 몸에 닿았다. 끈적거리는 선혈이 그녀의 손바닥을 불태운다.

아미야

이게 당신의 피인가요?

아미야

당신의 아츠로, 재능으로 달구어낸 피.

아미야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뜨거운 피는……

아미야

……모두 맞서 싸우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미야

그 사람들의 피는, 당신의 피보다 더욱 뜨거웠어요.

칠흑의 선이 아미야의 손바닥에서 쏘아져 나가, 뱀파이어의 몸을 꿰뚫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윽.

로고스

……아미야, 물러나!

로고스

급소를 피했어!

뱀파이어 생귀나르

참으로 냉혹하시군요, 마왕.

뱀파이어 생귀나르

참으로 무정한 분이에요.

아미야

뱀파이어 생귀나르, 선혈의 왕정의 주인. 당신의 아이들은 살카즈가 있는 모든 전장을 메웠어요.

아미야

당신은 항상 그들에게 얘기했죠, 살육과 정복이야말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뱀파이어의 전통이라고.

아미야

당신은 당신의 왕정을 지금 같은 모습으로 빚어냈어요. 당신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뱀파이어를 당신처럼 왜곡된 욕망밖에 남지 않은 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미야

하지만 제가 아는 뱀파이어는 당신 뿐만이 아니에요.

아미야

그 사람들은 당신처럼 미치지 않았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들은 그저 자신의 본능을 잘 숨겨온 것에 불과합니다. 이 고향을 잃은 시대에 너무 깊게 훈육을 당한 것이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침략자의 발밑에 엎드리는 선택을 하는 이는 항상 존재하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미야

아니요, 틀렸어요.

아미야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은 당신의 왕정이 대표하는 선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살카즈의 고난은 이루 말하기가 어렵지요. 모든 살카즈들은, 그대들에게 굴복한 살카즈들일지라도 피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어두운 골목길에서, 무성한 숲속에서 공격 당하며, 때로는 목줄기가 베이고 때로는 늑골 사이로 차가운 비수가 꽂히곤 했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리하여 그의 형제자매들은 깨어났고, 굴복의 대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항했지요, 스스로 적의 피를 뒤집어쓸 때까지.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타인을 살해하거나, 타인에게 살해 당하거나. 이것이 바로 살카즈가 짊어진 피의 순환이랍니다.

아미야

'피의 순환', 이게 바로 당신이 정의하는 선혈의 의미인가요?

아미야

……

아미야

저희에게 처음으로 피가 묻는 건……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때가 아닌가요?

아미야

피는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자, 탯줄로 이어지는 전승이에요. 피는 바깥을 탐험하며 흘리게 되는 땀이자 결국엔 치유될 상처이기도 하죠.

아미야

하지만 당신은 이를 그저 고난과 죽음의 상징으로만 보는군요.

아미야

당신은 집착 때문에 피를 갈망하는 거예요.

아미야

당신, 그리고 당신의 횡포와 오만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것이야말로 살카즈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다고요.

아미야

……당신을 거부하겠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미야

당신의 행동, 당신의 언사, 당신의 왕정까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하하하하하! 제가 뭘 들은 거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 한낱 이종족이 절 거부한다고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겨우 왕관 하나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오만해진 건가요……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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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바다가 뒤집히고, 파도가 달을 가린다.


검붉은 빛이 다른 모든 색깔을 침식하고 있다.

아미야

저는 제가 뭐든, 뭐라고 불리든 상관하지 않아요.

아미야

그저, 제가 뭘 해야 할지만 알뿐.

생귀나르의 움직임이 한 순간 멈추었다.


목소리가 그의 뇌리에 울려 퍼진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대가 '마왕'의 능력으로 치는 장난이 바로 이거였나요, 카우투스?

뱀파이어 생귀나르

무슨 일반론이라도 읊으면서, 얄팍한 감정 같은 걸 사용해 절 흔드려는 겁니까?

뱀파이어 생귀나르

어디 한번 해 보시지요.

흔든다고? 아니.


이건 부정이다.

몰아치던 파도가, 아른거리는 달빛과 함께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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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야

……당신을 부정합니다.

아미야

저는 부정합니다, 당신이 '마왕', 살카즈, 그리고 카즈델을 힘과 전통으로 귀결시키는 것을.

아미야

저는 부정합니다, 당신이 미래를 과거에 맡기고, 삶을 살육에 맡기는 것을.

아미야

테레시아 씨, 마왕, 의장, 그리고 바벨의 지도자는 모든 이들에게 길 하나를 보여 준 적이 있었죠.

아미야

어쩌면 그 길은 너무 이상에 젖어 있는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녀의 약속은 살카즈가 천 년, 만 년을 이어온 증오를 감당하기에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아미야

그렇다고 해서 결코 당신의 선택이 선택될 이유는 없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

아미야

제가 나약하다고 비웃으려는 건가요? 저는 당신과 살카즈에 대해 논하기엔 걸맞지 않다고 질책하려는 건가요?

아미야

아니면 로고스 씨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깨워 낸' 피를 빌리지 않는다는 걸 비웃고 싶나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호오, '마왕'. 제가 하는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그대의 능력이었나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럼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또한 알겠군요.

아미야

알아요.

아미야

하지만 저희는, 살카즈들이 저항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 저희는, 모든 고난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아미야

오히려 그 반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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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야

시련과 고난 속에서, 증오와 심연 속에서 각성한 반항아들이……

아미야

당신보다 훨씬 강한 사람들이에요.

아미야

살카즈들이 잃어버린 고향은, 당신이 끝없이 추억하는 그 만 년 전의 역사 속에 있지 않아요.

아미야

고향은 그저 하나의 구호, 하나의 공상, 하나의 상징이어선 안 돼요.

아미야

고향은 바로 여기에, 살카즈가 온 곳에 있어요.

아미야

카즈델이라 이름지어진 도시에는 분명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당신은 그저 그들을 허무한 이념 속에 묻어버렸어요.

아미야

당신이 과거로 현재를 억측하는 한, 진정한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아요.

아미야

멈추세요,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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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야의 반지가 파열되고, 비산한다.


차가운 분노가 아미야를 불태우고, 눈앞의 적을 주시한다.


아미야는 본디 이런 분노는 강해질수록 더욱 들끓어, 바다를 불태울 수 있을 정도의 불을 피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분노 뿐만이 아닌, 그토록 강렬한…… 슬픔 또한 느꼈다.

살카즈, 고향을 잃은 자들.


살카즈들은 믿었다, 오로지 폭력과 전쟁으로만 그들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참으로 쉽다, 그저 진부한 이야기로 전락한 도덕과 공의와 윤리를 언급하면 되니까.


그러한 말들은 이미 수없이 언급되었으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증오 또한 아직도 퍼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대지는 애초에 그들을 그리 대했기 때문이다.


이 대지가 그들에게 베푼 것은 애초에 폭력과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에는 눈으로 갚아 주는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피에는 피로써 보복하는 게 무슨 죄악이겠는가?

모든 마왕이 그리 행했기에 전쟁이 멈추지 못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타파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타파해야 한단 말인가?

뱀파이어 생귀나르

테레시아조차도 실패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래, 테레시아 씨조차도 실패했다.

아미야

그래서, 테레시아 씨가 절 필요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박사님과 켈시 선생님이 절 필요로 하는 거예요.

아미야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미야

레버넌트나 당신의 말처럼, 많은 살카즈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아미야

이종족의…… 보잘것없는…… '마왕' 따위가요.

아미야

거기서 비키세요.


칠흑의 법령이 마왕의 선고로 화하여, 타오르는 피를 찌른다.


짙은 붉은빛의 색이 드디어 바래져 간다……

뱀파이어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손을 들어, 입가에 번진 선혈을 닦는다.


그의 육신은 파손되었고, 새하얀 옷 또한 드디어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미야

당신은 더는 싸울 수 없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미야

이제 전투를 끝낼 때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제게 그 허무한 꿈을 보여주지 않는 겁니까?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은 제 사고와 생각, 제 슬픔과 시련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건가요?

아미야

……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은 저를 꾸짖을 수도, 저를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왕의 권력이라고, 모든 살카즈들이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은 제가 제 왕정을 타락시켰다고 비난하지만, 과연 당신은 어떨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살카즈는 당신이 가리키는 곳을 길로 삼고, 당신이 걷는 길을 따를 겁니다. 저의 동포들은 당신을 뒤따르며, 당신이 그들의 피와 살을, 생명과 영혼을 중히 쓸 것이라 기대하겠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참으로 가소롭군요, 이토록 맹목적인 신앙이란.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마왕이 베푸는 위안을 비웃지만……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제 형제도 한때 마왕이었으니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훗, 이 얼마나 고귀한 이름이자, 드높은 지위인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는 살카즈의 리더이자, 저희의 이정표였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는 타고난 구원자이자, 저희를 고통 속에서 빼내어 줄 구원의 손길이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을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검은 왕관이 선택한 건 과연 어떤 자들이었을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처음엔 분명, 마왕은 위대했습니다. 형벌의 길을 걸었던 다이아볼릭, 무위의 재앙을 포효했던 골리앗……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그들은 항상 비겁한 이나, 이기적인 이에게 배신 당했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것이 저희에게 씌워진 저주랍니다.

아미야

“마왕이…… 마왕을 죽였다.”

아미야

이 왕관의 계승은, 언제나 죽음을 동반하고 있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승리한 건 언제나 비겁자였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결국, 왕관은 우둔함과 통찰력 없는 이들에게 오염되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중에서, 나약한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편협한 그들은 손안의 권력에 심취한 탓에 엘더즈와 에인션츠의 그 거짓된 영주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훔쳐 온 권력은 그들로 하여금 더는 스스로를 직시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저의 동포들이 믿는 대상 또한 두려움 없는 전사에서 왕궁 속에 숨어 사는 버러지가 되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들은 심지어…… 살카즈라는 이름이 짊어진 치욕조차도 잊어버렸단 말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런데 왕관은 내 형님에게 이르기까지,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선택을 했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형님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영웅일 거라고 생각했단 말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그는, 감히 내게 '살카즈들에게는 더는 전쟁을 계속할 힘이 없다, 카즈델을 복구하려면 몇 세대가 필요하다'는 망발을……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희 발밑의 이 해골조차도 압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카즈델은 결코 도시 따위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마왕'은, 모두의 앞에서 이끌어야 할 사람이라는 걸.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 같은 자가 어찌 육신 속에, 그 티카즈의 피 한 방울을 담을 수 있단 말인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그대에겐 보였나요!

아미야

보였어요…… 선혈이 잔뜩 흩뿌려진 내란이.

아미야

왕궁의 카펫마저도 전부 붉게 물들었어요.

아미야

보였어요, 한…… 뱀파이어가, 다른 뱀파이어의 품속에 쓰러져 있는 것이.

로고스

'피투성이 왕자'의 전설이군.

로고스

그는 내란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의 형제였고. 당신도 그 반란에 가담했었나?

아미야

……아니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니지요! 물론 아닙니다! '가담자'?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 하나만으로도 왕관을 부수기엔 충분합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직도 그 광경을 기억합니다, 제 손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죠. 티카즈의 맑은 피가 제 손 끝에서 춤추다가, 마지막엔 제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갔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는 저를 바라보며, 제 옷자락을 붙잡았어요…… '마왕'은 죽기 직전에, 본디 공신에게 하사했어야 할 허황된 꿈을 흉수에게 보여 주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 꿈속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저도, '평온'을 목도했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대, 카우투스가 말했듯, 선혈은 단지 죽음만을 뜻하지 않아요. 저는 산골짜기에 서서, 조용한 마을에서 의사가 웃으며 부상자의 상처를 꿰매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다친 이가 의사에게 말했지요, 요즘 사냥감들이 갈수록 흉포해지지만 그는 결국 그 사냥에서 승리를 거뒀다고요. 마당에는 신선한 짐승의 고기가 걸려 있었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리고 제가 바로 그 의사였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덕분에 분노가 더욱 치솟게 되었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 얼마나 비통하고, 허무하고, 치욕적인가요! 저의 형제는, 이런 거짓된 '평온'으로 제 눈을 가릴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거였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제가 분노에 머리가 잠식되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요, 저는 평온이 뭔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급해진 것이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강대한 티카즈를 목도하는 것!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제 형제의 피를 몸속에 받아들였고, 검은 왕관이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죠……

로고스

하지만 넌 '마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쉽지는 않습니다. 만약 왕관이 강력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오히려 진심으로 기쁠테니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이 왕관은 저를 매번 실망시키더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제 형제의 계승자는 한 떠돌이였어요. 그 다음은 나무꾼이었고요. 만약 고해신부가 가지고 돌아온 문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 뒤로 카즈델을 지배한 또 다른 마왕은 그 켈시라 불리는 괴물에게 죽임을 당해, 연합군 앞에 쓰러졌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 다음이 테레시아와 테레시스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들은 분명 뛰어났지만, 또다시 저를 초조해지게 만들었어요. 공상만을 탐닉하던 테레시아는 그녀의 강대함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치…… 저의 그 연약한 형제처럼 말이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리고 그녀의 계승자는…… 이종족인 카우투스가 될 정도로 전락했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렇다면, 왕관의 선택이 항상 이토록 터무니없고, 왕관이 존재함으로써 번번히 저의 동포들에게 치욕적인 희망밖에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그 왕관을 문명의 바깥에 묻어 버리겠습니다. 철저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도록 만들겠어요.

로고스

아직도 발버둥을 치는군.

로고스

아미야, 기회를 주지 마.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도 약해졌군요. 하긴, 왕관이 아무리 더럽혀졌을지라도 그 무게는 당신처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카우투스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보아하니 왕관을 가지고 놀기만을 기다리는 고해신부들이 또 제게 쓸데없는 말들을 주절거리겠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다시 여기를 보세요, 카우투스. 당신이 죽으면, 더 이상 '계승자'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니면, 그 왕관을 달에게라도 씌워 줄 생각인가요?

멋대로 흐르던 혈액이 다시 뱀파이어 생귀나르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백발의 살카즈가 다시금 오연히 일어난다.

아미야

어떻게……? 어떻게 계속 싸울 수 있는 거죠?!

아미야

마왕의 아츠가 몸속을 헤집어서, 다시 육체를 재생할 수 없어야 할 텐데!

로고스

……

로고스

녀석은 피로 파손된 육신을 수복하고, 피로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

로고스

이미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지.

뱀파이어 생귀나르

갈수록 마왕의 힘을 능숙히 다루는군요, 카우투스.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그대의 훈계와 경고, 심판, 선언, 그 모든 것은 그저 웃음거리일 뿐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무지한 꼬마 토끼여, 당신 머리 위의 왕관은 그 어떤 직위나 권능도 의미하지 않아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이라, 훗. 저는 당신만을 비웃는 게 아니라, 마왕의 우둔함 또한 비웃는 것입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리고, 그 왕관 자체도요.

공간을 잔뜩 채웠던 붉은색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 점의 진홍빛만이, 뱀파이어 생귀나르의 동공에서 새어나온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살카즈들이 믿고 따르는 마왕이 사라진다면, 어쩌면 그들도 비로소 이 구원만을 기다리는, 고통스럽고도 비겁한 꿈에서 깨어날 수도 있겠죠.

뱀파이어 생귀나르

심연 속에서 각성한 자가 더욱 강하다는 당신의 말은, 인정합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바로 그렇기에, 당신들은 저를 이길 수 없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살카즈의 추락한 의지가, 어찌 감히 티카즈의 피를 담은 제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뱀파이어 생귀나르

더러움은 순수함을 오염시키지 못하고, 탁함은 맑음을 물들일 수 없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티카즈가 당신들이 걸어온 길이라면, 당신들은 그저 끝없이 그 연장선을 기어오를 수 밖에 없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우리야 말로 반항자일지니!

로고스

“내가 확정하는 것이 곧 나의 교정일지니.”

로고스

“피와 불은 꺼지고, 멸망을 직시하리라.”

아미야

로고스 씨, 조심하세요!

한 줄기의 진홍빛이 허공에 나타났다.


밴시가 서 있던 공간이 선혈로 대체된다.

로고스

녀석의 피가,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고스

그 마법진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해……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래요, 당신들 덕분에 저도 여기에 피를 흘렸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곳 또한 카즈델에 속하게 되었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이 대지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직도 고향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 이곳에서도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살카즈, 스스로를 살카즈라 자칭하는 동포들이여!

뱀파이어 생귀나르

피의 행군을 따르라, 영원히 그대들을 배반하지 않을, 혈맥의 은혜를 따르라!

뱀파이어 생귀나르

내가 당신들을 데려가리라,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뱀파이어 생귀나르

그곳에는……

한 줄기의 그림자가 그의 가슴을 꿰뚫는다.


혈액으로 이루어진 실이 순간 끊어졌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뭣……

이네스

미안. 살카즈의 은혜 같은 건, 나랑 상관없거든.

W

토끼!

W

넌 *살카즈 욕설* 살카즈도 아니잖아, 움직여! 저 놈의 속박을 약화시키라고!

아미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 자의 아츠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광기로 넘쳐나요!

아미야

마음의 소리가 거의 안 들릴 지경이에요, 거기…… 거기엔, 오로지 진홍빛만이……

아미야

이제 곧…… 잡았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또 하나의 이종족이라…… 이건 예상 외로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선혈의 냄새로 보건대, 카프리니인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재미없는 흉내로군요…… 그대의 피에 목졸려 죽도록 하세요.

이네스

……윽!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런 조잡한 아츠를 가지고 살카즈 왕정의 주인을 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외드레르

당연히 안 되겠지.

육중한 칼날이 뱀파이어 생귀나르의 머리를 향했다.

외드레르

케케묵은 학살 따위를 '각성'이라 부르지 마라, 뱀파이어 생귀나르.

외드레르

아직도 증오와 파멸 속에서 떠도는 너는, 소위 말하는 '심연' 속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났던 적이 없으니.

외드레르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건 너희들이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 비열한 반역자가……

뱀파이어 생귀나르

……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

아미야

지금이에요!

아미야

그가 회복하기 전에 해골에서 떨어뜨리세요!

엘레지가 울려퍼진다.

밴시의 목소리가 애도의 선율로 빚어지고, 발밑의 파도가 이를 함께 노래한다.


달빛을 악보삼아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종의 음운과 어우러진다.

골피리가 연주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울려퍼진다.


그것의 머나먼 울음소리가, 시간을 넘어 눈앞의 검붉은 왕정에 적중한다.

로고스

내가 왕정에 즉위한 순간부터 조종은 내 운명과 이어졌지.

로고스

우리는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

로고스

하지만 엘레지가 애도하는 것은 네 육체가 아니다.

로고스

우리와 연결된 모든 것이지.

뱀파이어 생귀나르는 여전히 발버둥친다. 선혈이 그의 손끝으로부터 솟아나와, 마치 날카로운 발톱처럼 베헤모스의 창백한 뼈 위에 하나하나의 깊은 상흔을 새긴다.


그의 몸이 엘레지 속에서 붕괴되고, 또 다시 선혈로서 복구된다.


그는 선혈의 상징이다. 피가 있는 한 그는 싸울 수 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절대…… 밴시……

로고스

아미야, 나와 함께 연주해라.

로고스

엘레지의 선율을 살피고, 밴시의 기원을 찾아.

로고스

나를 봐라. 네가 한때 귀를 막고 피했던 울부짖음을 보는 거다.

로고스

지금 여기서 저 녀석을 끝내버려야 한다.

아미야

해 볼게요!

밴시의 노래가 다시금 울려퍼지고, 미증유의 종소리가 마치 실체로서 응결되어 혈액의 움직임을 위압하듯 울린다.


뱀파이어는 여전히 떠오르고 있다.


잠시 뒤,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엘레지의 화음에 합세한다.

죽음의 선언? 거부의 결론?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노랫소리에는 나약한 감정이 녹아있어, 슬픔을…… 남긴다.


혈액이 차가워지고 달빛이 바뀐다. 살카즈의 증오에는, 뱀파이어의 복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저, 그것이 결코 허락되지 않을 미래일 뿐. 불타버린 흙 위에 남은 생존자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럴리가!


그 남매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뱀파이어 생귀나르

밴시여! 잘 들어라!

뱀파이어 생귀나르

너는 결국…… 너의 혈맥을, 내 축복을 받아들였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너는 결국 스스로를 이기지 못했단 말이다!


이곳에 울려퍼지는 건, 더는 엘레지가 아니었다.


그저 탄식일 뿐.


그 탄식은 오히려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폭발의 열기와 검의 무게는 처음으로 생귀나르로 하여금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작디작은 마왕에게 눈을 돌렸다.

살카즈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열등한 종족인 카우투스에게. 무의미한 저주가 되어버린 머리 위의 검은 왕관에게.


그가 밟고 있는 역사와 환상, 혈맥과 전승, 복수와 다시 없을 힘이 모두 돌연히 사라졌다.

그는 발 아래가 빈 것을 느낀다.

흰 옷을 입은 남자가 해골에서 추락한다.

[CG: 43_i06]
뱀파이어 생귀나르

……

뱀파이어 생귀나르

참 가소롭군요…… 살카즈의 영혼들마저도 저를 비웃다니.

뱀파이어 생귀나르

밴시의 주인, 그리고…… '마왕'.

뱀파이어 생귀나르

……과거를 외면한 잡종들을 곁에 두더니, 마지막엔 심지어 직접 손을 쓰지도 못하는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아…… 역시 항상 승리하는 건, 비겁자로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것은 확실히 저희에게 씌워진 저주로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이종족의 마왕이 저를 처단한 건가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마왕은 종과 공명하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피의 연결이 얼마나 견고한지도 모른 채 감히 선고를 내렸어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지만……

뱀파이어 생귀나르

하, 당신들은 결국 마지막에, 핏속에 흐르는 힘을 사용했던 겁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엘레지를 부르는 두 사람이 저를 위해 장송곡을 바치는군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들은 결국, 당신들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피로부터 온 본능을 이기지 못한 겁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당신들이 정말 저를 죽였을까요? 아니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저는 이미 티카즈의 피를 고향에 돌려 주었습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자, 런디니움에 가보세요……

뱀파이어 생귀나르

(속삭이는 듯한 살카즈어) 제가 파멸의 장막 뒤에서 당신들을 기다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