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진홍의 군주
외드레르, 이네스와 W는 베헤모스의 해골을 조종하는 울술라를 제압한다. 뱀파이어 생귀나르는 선혈을 이용해 베헤모스의 해골을 이어 붙이고, 해골을 사역하여 문명 밖의 공간에 오게 된다.
잠시동안,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그 어떤 살카즈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박탈했으며, 또한 모든 것을 빚어내었다.
저건…… 도대체……
뱀파이어 생귀나르가 전에 살카즈에게 남긴 축복은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저건……
설마 박사 쪽에서 말한 게 바로……
베헤모스의 척추에서 피가 떠올랐다. 단 한 방울 뿐이었지만, 이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뒤얽힌 뼈 사이를 떠나, 어두운 동굴 속을 날아서 방금 흩뿌려지기 시작한 햇빛 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한 방울의 피, 단 한 방울뿐인 피였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눈부신 피.
상처받고, 버림받고, 잊혀지고, 심지어는 증오받았던 피.
만 년 동안, 대지는 이를 재앙으로 여겼으며 또한 숙적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이를 유린하고 짓밟았다, 그것이 정말로 스스로의 명예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육체를 더럽힐 때까지.
티카즈는 살카즈가 되었으며, 고향은 그때부터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 '고향을 가진 자'의 피가 역사 속에서 돌아왔다.
이 대지 위에 발 붙인 모든 이들은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핏방울이 녹아내렸고, 적막이 세상을 감쌌다.
폭음도, 진동도, 찬란한 이적도 광기의 속삭임도 없었다.
산과 지형에 가로막힌 이들까지, 모두가 런디니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부터, 더 샤드가 불러왔던 모든 폭풍이 그저 무해한 이슬비가 된 것만 같았다.
지금 그 탑 꼭대기에 모인 것은 그저 먹구름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폭풍은 이미 요람이 되었다.
……
……외드레르, W, 멍때리지 마!
지금이야!
W, 묻어 둔 폭약들 있지? 터트려, 당장!
……말 안 해도 알거든!
잡스러운 생각은 그만 해, 외드레르! 저게 뭐든, 우리는 지금 당장 상대할 수 있는 적만 상대하는 거야!
……알고 있다.
W의 폭탄이 수비병의 방어선을 찢어놨으니 돌파한다. 너무 오래 붙잡혀 있었어.
아미야와 로고스는 이미 한 발 앞서서 가고 있으니, 우리 대신 가장 성가신 그놈을 처리해 줄 거다.
나머지는…… 저들이 열어준 길을 따라, 저 다리를 통해 베헤모스의 해골로 올라간다!
망할, 이 자식들이……
놈들이 계속 지나가도록 두지 마라! 지휘관 울술라 님이 계단을 회수하고 있다!
전율하는 신경 다발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뼈로 된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베헤모스는 더 이상의 사람이 자신의 척추에 올라타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반역자들을 여기서 죽여라!
저 망할 자식들의 시체는 나흐체러르 킹의 막사로 보내져, 우리가 맞이할 승리의 제물로 만들어질 것이다!
어라?
뼈 밑에 지뢰를 심는 거, 나쁘지 않은 경험인걸.
외드레르, 이네스, 준비해…… 충격파가 올 거야!
거대한 폭발, 세 용병은 터져나오는 열기에 휘말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간신히 자세를 잡은 외드레르는 불빛에 삼켜지고 있는 동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언가를 감지한 듯한 베헤모스가 몸을 뒤튼다. 백골로 이루어진 꼬리뼈는 마치 채찍처럼, 역사의 격류를 가르며 세 용병을 향해 휘둘러진다.
W, 수류탄 세 개, 대각선 아래로.
쳇.
그거 괜찮겠는걸.
……이런 폭탄놀음에 어울려 주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
붉은 머리의 살카즈가 불티를 쌓고, 검은 머리의 카프리니가 어둠을 엮어 간다.
재를 뼈대로, 그림자를 받침으로.
화약의 냄새를 휩쓰는 무형의 계단이 빙글 돌며 나타나, 멈춰선 해골의 흉강 사이로 파고 들어간다.
용병들이 그것의 텅 빈 몸속으로 돌입한다.
이쪽으로, 이 해골의 중추는 이쪽에 있어.
우리의 목표는 울술라야. 울술라를 찾아서, 지금 우리가 탄 이 놈의 통제권을 얻어내야 해.
진짜 이 뼈다귀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들으면 무슨 카라반 약탈하러 가는 것만큼 간단한 줄 알겠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미야와 로고스의 전투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테니.
그러니까 가서 문을 열고, 운전수를 집어 던진 다음 열쇠를 뽑고선 “좋아, 이제 이 차는 우리 꺼” 같은 짓을 한다는 소리지?
……이게 일으킨 환상을 보고, 이 뼈대 사이를 걸으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드나?
충분히 유명한 일화일 텐데.
내가 알아야 하는 거야?
잊고 있었군, 넌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
수백 년 전, 살카즈들은 어느 카즈델을 하마터면 멸망시킬 뻔했던 베헤모스를 죽였다.
그 베헤모스가 죽은 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베헤모스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분해되어 여러 물품들 속에 봉인되었다는 것이지.
이제 보니, 그 이야기가 정말로 진실에 닿아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의식을 잃은 빈 껍데기는……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 누군가에 의해 조심스럽게 수집되었지.
이를 개조하기 위해서 적잖은 품을 들여야 했을 거다. 그리고 확실히 이 전쟁 속에서 군사위원회에 의해 큰 활약을 했지.
'여러 물품들'이라. 울술라에겐 회중시계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 같은 건 없었어. 흉터의 상점에서도 절대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여자였고.
하지만, 만약 울술라의 회중시계에 정말로 이 베헤모스의 의식이 숨겨져 있다면…… 높은 확률로 심각하게 부서져 있을 거야.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해골은 분명 아직 죽지 않았지만, 그저 가장 기초적인 조건 반사만 하고 있어. 울술라도 아마 기껏해 봐야 그런 조건 반사의 방향만 유도하고 있을 뿐이지.
그것들만 주의하면……
해골의 틈새로부터 화살의 비가 쏟아지고, 그 뒤로 살카즈 주술의 기이한 빛무리가 따라왔다.
엄폐해!
그렇지, 사람을 박살낼 수 있는 신경 다발과 어디서든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뼈의 창만 조심하면 별 거 없어.
이 녀석은 진작에 다 해체돼서 이 백골만 남았거든.
글쎄, 아직 너희들이 남았잖아, 울술라.
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베헤모스보다는 너희가 더 위험한 존재야.
일은 드디어 다 끝났어?
너희가 방해만 안 했다면.
이 여자가 여기의 지휘관이야? 자신의 부하라는 흰 뼈다귀한테 참 매정한걸.
화살 봐봐, 뼈에 박혔잖아.
내가 뽑는 거 도와줄까? 꽤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쿨럭쿨럭…… 이 미친 자식!
내 눈앞에서 감히 내 부하를 죽이려고 해?
외드레르, 날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데.
울술라의 손 끝에서 아츠가 맺힌다. 위험한 혼돈의 힘이 그녀의 손안에 모여든다.
하지만 아츠를 시전하려는 그 순간, 한 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그의 발목에 휘감긴다.
쳇.
울술라는 어쩔 수 없이 우측으로 발을 내딛어 그림자의 끊임없는 속박에서 벗어난다.
손안의 아츠가 제어를 잃고, 붉은 빛줄기가 발사되어 척추의 파손된 틈을 통해 새어나간다.
멀리에 있는 동굴의 암벽으로부터 묵직한 폭발음이 전해진다.
예전보다 솜씨가 무뎌졌네, 울술라.
흉터의 상점에서 지내던 나날이 꽤나 괜찮았나 봐.
……너희는 확실히 생존의 전문가야.
카즈델에 있을 때, 늙다리들이랑 늘 내기를 하곤 했어. 너희들이 참가한 임무에서 누가 끝까지 살아남아 보수를 타먹을지 말이야.
외드레르, 이네스, 그리고 거기에 미치광이 W까지 더하면 항상 돈을 딸 수 있었지.
그럼 우리 몫으로 나눠줘야 할 게 잔뜩이란 소리네.
'지금의 W'는 확실히 혀가 날카롭네. 이네스한테 좋은 거 좀 배우지 그랬어?
하지만 이번엔, 너희들이 틀렸어.
왕정의 주인 둘이 여기서 전력으로 싸우고 있어, 거기다 '마왕'까지.
……
항상 전쟁에서 도망칠 수 있는 너희들일지라도, 여기선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너는?
테레시스가 런디니움에 안배해 둔 마지막 수단, 진작에 들은 바가 있지 않나?
심지어…… 그것들이 가져올 결과가 상식을 벗어나는 종류라면? 너는 여전히 그러한 대가 위에 재건한 카즈델이, 살카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보나?
……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병사들, 아직 시간이 남았을 때 이곳에서 놈들을 처리해.
소령님, 보십시오.
이쪽의 뼈에……
선혈이 모든 뼈를 타고 기어오고 있다.
선혈은 이곳에 모여들어, 파손된 틈을 채우며 진작에 차갑게 식은 몸을 연결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생귀나르 님이야.
이미 준비되셨나 보군.
그것이…… 온기를 되찾고 있다.
골격에 다시금 힘이 쌓인다. 척추가 좌우로 흔들리며 우득거린다.
베헤모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많은 피라니.
울술라, 이 피는 어디서 온 거지?
그걸 말이라고 해? 살인에 중독된 그 뱀파이어 생귀나르가 여기서 학살이라도 했나보지.
아니, 저들의 손목에……
울술라와 그녀의 부하들 모두 손목에 아직 피가 흐르는 상처가 나 있었다.
똑, 또옥. 처음은 핏방울로 시작했으나, 이내 핏줄기, 피의 강이 되어 간다.
한 사람의 몸 속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들어 있는 것일까?
수비병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백골 위에서 뻗어나가고 있는 핏자국과 연결되었다.
“피의 왕정의 주인이시여, 제 피를 당신께 바치옵나이다.”
“당신의 사냥이 영원토록 순조롭기를 바라나이다.”
“그리고 저희는 저희의 피로서 질주하는 수레를 지어 당신께 바치겠나이다.”
울술라! 멈춰! 너 미쳤어?!
베헤모스가…… 움직이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위치면 역사의 난류에 휩쓸리게 될 거다!
저 여자가 지금 우리를 길동무로 삼을 작정이야……
난 베헤모스를 조종하고 있지 않아.
……
선혈이 베헤모스의 근육을, 인대를, 골격을 대체했지.
베헤모스를 조종하기엔 충분해.
수비병들의 겉에 드러난 피부가 눈에 띄게 창백해지고, 울술라의 안색도 갈수록 나빠졌다.
마침내, 흐름이 멈췄다.
살카즈의 군인들은 그저 피에서 그치지 않고,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메말라 쪼그라들었고, 그들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나와 마지막까지 함께해 준 훌륭한 동료들이여, 살카즈의 영혼들 사이에서 다시 만나자.
내가 말했지, 이 해골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서둘러! 일단 선실 안에 숨어!
환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몰라!
……파도를 일으켰다! 조심해!
쳇, 저 뱀파이어가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지?
외드레르?
난 여기 있다. 울술라도.
출혈이 심한 탓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봐야 알겠지만.
선실 밖에 내버려 두지 그랬어, 외드레르. 부하들이랑 같이 죽을 수 있게.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죽여왔으면서, 갑자기 착한 척을 하고 싶었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너에게는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
말했지, 이 해골은 이미 내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넌 군사위원회에 충성한다고도 했다.
만약 군사위원회가 카즈델이 '국가'로서 의존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그자는 아직도 스스로를 섭정왕이라 칭하는 것이지?
어째서 테레시아가 필요한 거지? 어째서 이 전쟁을 이기면 카즈델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거지?
테레시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
됐다. 이런 건, 베헤모스를 손에 넣은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지.
너희들…… 뭘 하려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하. '고향으로 돌아간다'라.
그것은 원래 이 해골의 마지막 임무였어.
……뭐라고?
이름도 있는 해골이야, 코드네임 '라이프 스파인'.
비록 거의 쓰이지는 않지만, 맨프레드 장군이 그 이름을 지을 때…… 내게 같은 말을 했었어.
같은 말을 했다고? 맨프레드가……
우리는 적이니 대답은 더 이상 하지 않겠어, 그저 내 죽음만을 기다릴 뿐.
게다가, 훗. 네가 오늘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답이니까.
정말 맨프레드 장군이 장님이라고 생각해? 너희의 잔재주 하나도 눈치 못챌 정도로?
……
뭐, 그것도 너희가 뱀파이어 생귀나르 님에게서 살아서 도망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간다' 따위의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생기겠지.
맞는 말이군.
그럼……
잠시 네 회중시계 좀 빌리지.
어쩌면 출혈이 너무 심했던 탓에 울술라가 반항할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외드레르는 아름다운 회중시계를 손쉽게 손에 넣었다. 차가운 금속제 외피에는 복잡한 주술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회중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생각보다 더 시끄럽군.
외드레르는 이를 악물고 정신 사나운 속삭임을 뿌리치려 한다.
그는 그 속에서 베헤모스의 잠들어 있는, 진실된 의지를 찾고 있다.
대지를 떠도는 베헤모스여,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스스로가 존재하는 방식을 바꾸었을 뿐.
당신은 아직 이 안에 있는 것이겠지?
재앙의 중심, 침묵하는 베헤모스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것이 지나간 곳에는 바스라진 허무밖에 남지 않는다.
과거가 그것을 지탱했고, 미래가 그것에 의해 나뉜다.
한 인영이 그것의 앞에 선다.
멈추시지요, 베헤모스.
당신은 카즈델, 저희의 도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당신의 방문을 원치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시지요.
그리하지 않는다면, 살카즈가 당신을 도륙할 것입니다.
이는 저희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
어쩔 수 없군요.
형님께선 저희에게 저것의 전진을 금하고, 마왕의 의지에 복종하도록 명령했지요.
선혈의 왕정이여, 너를 내게 바치거라.
강대한 주술이 뱀파이어의 손에 모여들고, 거대한 진홍빛 창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하나, 또 하나의 거대한 상처가 그것을 관통한다.
여지껏 침묵하던 베헤모스가 드디어 소리를 낸다, 마치 꿈에서 갓 깨어난 듯.
“카즈델……”
“아…… 내가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나 보군……”
“카즈델이…… 언제부터…… 도시가 된 거지?”
“너희들의…… '마왕'은, 너희들에게 있어 유일하게 선택받은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게…… 놈이 아닌 거지?”
더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이 떠다니는 베헤모스에 부딪혀 부서진다.
그것이 이토록 오랫동안 거닐었던 건 이미 수백 년 전의 일이다.
그것은 백골밖에 남지 않은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저으며, 한층 또 한층의 공간을 밀어 연다.
그것을 살해했던 흉수가 오늘날 다시 그것에게 온기를 부여한다.
해골은 멈추기에 적절한 곳을 찾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유골이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다.
동굴도, 전장도, 심지어 천천히 떠오르던 아침 해마저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보이는 건……
고요한 하늘, 고요한 바다, 그리고…… 고요한 별무리었다.
대지에서 벌어졌던 모든 잔혹함이 마치 이곳에선 없었던 일만 같다.
이는 시야의 밖이자, 문명의 바깥이다.
이는, 해골밖에 남지 않은 그것이 선혈의 주인을 위해서 찾아낸……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경계다.
검붉은의 강줄기가 암청색 신경과 연결되어, 서로 단단히 맞물린다.
가냘픈 흉수는 눈을 감고, 피해자의 장대한 움직임을 느낀다.
그는 피로 고삐를 만들어, 이 역사에서만 거닐 수 있는 생물을 몬다.
환각과도 같았던 과거와 기억에 비하면, 분명 당신은 제게…… 보다 가치 있는 풍경을 보여 주었군요.
두 분, 이런 진귀한 풍경이 앞에 펼쳐졌으니, 손에 들린 그 나약하고 가소로운 아츠를 우선 흩어버리는 게 어떨지요?
자, 주변을 둘러보세요. 시간을 들여 감상해도 괜찮습니다……
이는…… 제가 그대들을 위해 선정한 무덤이니까요.
방금까지만 해도 낮이었는데, 여긴……
어두운 밤이에요, 그리고 끝없는 바다까지.
……별이 바뀌었다.
이런 곳은, 그 어떤 서적이나 전설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충분히 아득하고도 요원한 곳이지요.
그렇네요, 과연 저희가 지금 카즈델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모든 이들에게 테라라고 불리는 이 땅은, 과연 너무 넓은 걸까요, 아니면 너무 좁은 걸까요?
아미야, 조심해.
저 녀석의 피가…… 승화하고 있다.
방금 그 아츠를 사용해서 자신의 혈맥을 깨운 거다.
마치 남의 일처럼 말씀하시네요, 밴시.
그대도 알 텐데요. 저는 순수한 자라면 항상 동등하게 대한다는 걸.
어쩌면, 무수히 많은 세월 동안 순수함을 추구해 온 선혈의 왕정에 비하면, 당신은 오리지늄에 너무 깊이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살카즈 중에서 당신은 분명 맑고 깨끗한 편이며…… 또한 강한 편에 속하니까요.
자, 사양하지 말고 저의 축복을,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을 받으시죠. 제가 불러온 힘에 의존해야만 결국 저와 맞설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종의 비명이 지금도 과연 달빛을 어둡게 만들 수 있을지, 부디 제게 들려주시죠.
진홍빛 파문이 출렁인다. 이 순간, 하늘은 더는 하늘이 아니게 되었으며, 바다는 더는 바다가 아니게 되었다.
그건 그저 피의 굴절이며, 피의 그림자였다.
뱀파이어 생귀나르가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마치 심장과도 같은 블러드 소울이 그의 손안에서 맥동한다. 마치 생명 그 자체처럼 심오한 구조 속에 밴시의 젊은 얼굴이 비친다.
……
곧바로, 블러드 소울이 부서진다.
“내가 적어내리는 것은 곧 나의 명일지니.”
“흑야는 나를 위해 죽음을 가릴지어다.”
……또 주문인가요.
또 그 천박한 주문이라니.
당신은 비범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그저 입술을 달싹이고 골필로 적는 것만으로도 범인들의 가련한 오리지늄 '아츠'를 멸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요.
허나, 어째서 전승을 이토록 거부하는 것인가요?
제게 당신을 보여주시지요. 왕정의 주인, 밴시여!
나…… 뱀파이어 생귀나르 두카렐에게, 모든 선혈의 지배자에게 당신을 보이란 말입니다!
멈추세요, 뱀파이어!
로고스 씨, 버텨 주세요……
칠흑색 아츠가 소녀의 손에서 발사되어 피의 바다를 가른다.
하지만 혈액은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포효한다.
마왕의 아츠가 분해되고 산산조각나며, 붉은 빛은 더욱 격렬히 끓어오른다.
오, '마왕'. 당신도 여기에 있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네요.
카우투스, '마왕'.
보세요, 당신은 제 은혜를 단 한 톨도 얻지 못했네요.
카우투스의 피, 지루하고 평범하지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 낱낱히 파헤쳐 봤지만 단 한 줌의 재능과 힘도 찾을 수 없더군요.
심지어 그 피가 더럽혀졌거나 난잡하다고도 말하는 것조차 망설여집니다. 그런 단어는 결국, 다시 순수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담고 있는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훗.
물론 혼돈을 지닌 핏줄은 저 또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의심할 여지 없이 '강대'했으며 또한 '아름'다웠지요.
허나 당신에겐 무엇이 있죠? 가소로운 동기? 천박한 믿음?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어요.
그저, 당신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게 바로 '마왕'인가요? 그저 타인의 기교를 훔쳐냈을 뿐, 난잡하고 무질서하군요.
저 밴시가 반항심으로 만들어 낸 장난감보다도 못해요.
……그 남매에겐 더더욱 못 미치고요.
아미야.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힘이 증폭되고 있다.
속전속결로 가지.
알겠습니다.
다시 맑은 하늘 아래로 돌아가도록 해요.
……과거.
저는 소위 '마왕'이라는 자를 하나 살해한 적이 있지요, 딱히 어렵지는 않았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최후도 똑같을 예정이에요.
당신이 칠흑의 칼날로 저를 의심하겠다면……
저는 당신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대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