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7누가 하소연하리
결전의 때가 오기 전, 외드레르, 이네스와 W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외드레르는 살카즈들이 테레시스를 부정할 수 없다며 W와 말다툼을 한다. 그 후 행방이 묘연했던 베헤모스의 해골이 모습을 드러내고, 일행은 공격을 시작한다.
울술라와의 전투를 치른 뒤로부터 그 동굴의 방비는 갈수록 삼엄해졌다. W와 W의 폭탄 덕분에 한 번은 철수할 수 있었지만, 두 번도 가능할 거란 보장은 없다.
우린 그 뒤로 다시 그곳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표류하는 해골'이 그 이후로 그곳에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것도 동시에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같은 꿈을 꾸기 전까지는.
잿빛의 도시가 화염에 삼켜졌다. 성벽은 부서지고, 불에 탄 시체가 도시 곳곳에 가득했다.
우리가 꿈에서 깨어나고 난 뒤에도, 그 도시는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길이 모든 마을을, 모든 씨족을 짓밟아 간다.
한때 카즈델이라 불렸던 곳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잔불과 폐허만이 남았을 뿐.
절망한 거인이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고대의 살카즈어) 마왕이 죽었어.
(고대의 살카즈어) 마왕이 마왕을 죽였어.
(고대의 살카즈어) 어째서, 이럴 수는 없어……
(고대의 살카즈어) 우리의 도시, 카즈델이……
(고대의 살카즈어) 이건 저주야! 왕관에 새겨진 저주가 분명해……
(고대의 살카즈어) 이는…… 모든 재앙의 시작이 될 거야……
그 베헤모스가, 돌아왔다.
내일 날이 밝으면 공격을 시작한다.
시즈와 시즈의 '파라곤 부대'가 외곽의 견제를 맡는다. 우리와 로도스 아일랜드의 꼬마 토끼, 그리고 밴시는 기착지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켈시 그 할망구는? 이렇게 위험한 작전에, 우리는 사지로 보내놓고, 자기는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겠다는 거야 뭐야?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다. 아스카론이 켈시와 박사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함께 후방에 머무를 예정이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얼마 전에 고해신부의 공격을 받았었다. 꼬마 토끼의 그 왕관을 빼앗고 싶은 모양이더군.
……
흥, 왕관 말이지.
……외드레르, 빅토리아인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잖아.
네 계획이 성공해서 우리가 카즈델에 돌아가면, 뭘 할 생각인 거야?
네 친구가 된 빅토리아인이라고 해도, '전범'과 '전쟁에 휘말린 살카즈'까지 함께 데려가는 건 받아들이지 못할 텐데.
우리에겐 '살카즈들과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맹세했으니, 부디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진 말아 줘.
설마 카즈델의 그 땅굴 속 대학에서, 전장에서 돌아온 녀석들한테 뭐, '역사에 대한 성찰' 이런 수업이라도 하나 열어 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
아니.
카즈델에 가면 국어 과외 같은 거라도 하나 개설할 순 있겠지. 그럼 W 같은 까막눈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테니 말이야.
뭐?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외드레르가 이런 진지한 주제에서도 이네스랑 어울려서 농담 따먹기를 한다고?
뭐야, 맨프레드 장군한테 비위좀 맞춰봤다고 공감 능력이 늘기라도 한 거야?
흥……
“전쟁이 끝나면, 카즈델로 돌아간다”라니. 어이가 없네, 우리가 여기서 이런 상상이나 하고 있다니.
우린 용병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어.
왜 이러실까, 우리 귀여운 카프리니, 이네스. 넌 라이타니엔으로 가서, 저 높은 탑 위를 거니는 귀족들의 개인 교사로라도 일할 수 있을 텐데?
가르치는 건…… 어디 보자, 전장에서도 꽃다운 미모를 유지하는 법은 어때?
별로야.
……
뭘 멍 때리고 있어? 곧 시작할 거야.
아니, 그냥……
이네스의 눈빛이 내 발밑을 향한다.
또 내 그림자를 보고 있다. 지금 내 그림자는 어떤 상태일까?
나도 모르겠다. 내가 작전 전에 이토록…… 평온했던 적은 드무니까.
평온함 덕에,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조금, 사소한 일들.
네가 저번에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했었지, 카즈델에서.
그건 그때 장물을 팔 곳이 없어서 했던 말인데.
……그렇군.
……
과외로 벌 첫 수업료로 밑천을 대주지, 어때?
그걸로 얼마나 벌 수 있을지 의심이 되는데.
그러지 말고, 라이타니엔 귀족의 개인 교사를 납치하면 몸값을 꽤나 벌 수 있을 거야. 적어도 용병 열 명 어치는 받을 수 있을걸.
진짜로 고향에 돌아가면 그때 다시 얘기해.
그래.
그런 정신 상태로 곧 있을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환상이나 마법진 같은 거에 시달리더니 바보가 된 건 아니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극도로 평온해지면, 모종의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사람을 불안하고 머뭇거리게 만드니까.
스스로도 의아하다고 여기는 생각 속에서, 나는 내가 초조해진 원인을 찾아냈다.
나는 그녀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내가 가진……
몇몇, 생각들에 대해.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도 없다, 시위는 이미 당겨졌으니.
항상 센티멘털한 이 멍청이는 냅두자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아. 그 뱀파이어를 조지고, 테레시스까지 조지고 나서 카즈델로 돌아가 어떻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밀지 느긋하게 토론하라고.
……테레시스.
계속 생각했던 게 있다, W. 내가 말하는 걸 네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
하, 싸우기도 전에 찬물부터 끼얹으려는 거야?
바로 그거다.
우린 테레시스를 죽이면 안 된다. 적어도 지금은, 살카즈의 손으로 놈을 죽여서는 안 돼.
……
이네스 말이 맞았네, 환상을 겪다 보니 진짜 바보가 돼 버렸잖아……
놈을 죽이면, 카즈델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지금이든, 전쟁이 끝난 뒤든, 놈은 섭정왕으로서 꽤나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놈을 칭송하기까지 하겠지.
……너 미친 거야?
이딴 걸 가지고 농담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물론 이 전쟁은 멈춰져야만 해. 전에 가졌던 관점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테레시스는 이미 스스로를 살카즈의 미래를 위한 주춧돌로 만들어 버렸지.
카즈델은 다시 분열되어선 안 된다. 이 전쟁 또한…… 살카즈의 또 다른 배반과 내전의 시작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내가 전에 말했던 계획은 기억하나? 우린 모두가 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이 전장의 살카즈들을 빅토리아로 철수시켜야만 한다.
……
살카즈의 실패가 알려지고, 테레시스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공작들은 빅토리아 내 살카즈들을 마음껏 학살하겠지. 보복은 결국 다른 핵심권 국가들에도 번질 것이다. 모든 문명에 정당한 핑곗거리가 생기겠지…… 살카즈들을 죽여 없애야 한다는.
그리고 연합군을 조직하겠지. 합리적이고 정의롭게,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테레시아와 테레시스가 남긴 모든 유산을 서로 나눠 가질 거다.
상상이 가지 않나?
솔직히 말하자면, 테레시스의 죽음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진 전혀 상관 없어. 난 그 자식이 죽기만 하면 돼.
연합군? 살카즈 학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잖아?
설마 테레시스가 죽는다고 마족 놈들의 투쟁심까지 단체로 사라질까?
쳇. 난 안 그래, 그럴 거라 믿지도 않고.
그 자식이 암살자를 보내서 테레시아를 죽이고 왕을 참칭한 거야, 그 자식이 모든 사람들을 이 진창에 끌어들인 거라고.
그 자식의 카즈델을 위해서, 우리가 그 자식한테 머리를 숙일 필요는……
자기랑 관계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W.
원래는 내가 더욱 격렬하게 질책할 줄 알았다. W라는 이…… 불쌍한 녀석을.
아직도 스스로가 그저 용병일 뿐이라고 생각하나?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지? 리유니온에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살카즈들을 모았지?
넌 지금 그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는 거다.
그딴 거 신경도 안 써!
하지만 W는 흔들렸다.
나는 W를 너무 잘 안다. 이 녀석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게 아니고, 부하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리더 또한 아니다.
적어도, 정말로 수많은 용병들이 저 미치광이를 따르고 있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신경 써야한다.
설마 예전처럼, 사람 좀 죽이고 폭탄 좀 터뜨리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나?
넌 지금 저 살카즈들의 리더다, 잘 생각해 봐. 저들의 희망에 어떻게 응답할지.
잘 생각해 봐, 저 목숨들이 네게 어떤 의미인지.
난……
……
테레시스뿐만이 아니야……
잊지 말라고, 테레시아도 있다는 걸.
그러니까, 여러 방면에서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그저 그들의 계승자이자, 그 이념의 연장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두 사람이야말로 살카즈가 단결할 수 있었던 이유니까.
……
그건 진짜 테레시아가 아니야.
그저 테레시스가 만들어 낸 가짜일 뿐이라고, 난 그딴 거에 속지 않아.
W.
너 자신과 똑바로 마주해라.
니가 뭔데 나한테……
넌 바벨의 그림자인 것에 익숙해져서, 테레시아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심지어……
닥쳐.
네 앞에서 아미야가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녀야말로 테레시아가 선택한 계승자니까, 그런 것은 '마왕'이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아미야를 또 다른 테레시아로 보고 있는 거겠지. 넌 그저, '마왕'을 뒤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닥치라고! 나 열받게 하려는 거야?!
……넌 스스로 무언가를 계승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소리,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네가 나한테 훈수 둘 깜냥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외드레르?
너도 용병인 주제에, 나보다 뭐가 잘났다고 무슨 계승자니 뭐니 지껄이는 건데?
퉷, 욕 나오려 하네! 그 토끼가? 거기다 뭐, 내가 따르고 있다고?
걘 그냥 어쩌다가 우연히……
……테레시아에게 선택되었고, 리유니온과 탈룰라를 막았으며, 지금 이 순간에는 런디니움으로 진입해오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리더다.
그럼 넌?
W, 네게 테레시아는 어떤 의미지?
그저 한때 네게 발붙일 곳을 주었던 머나먼 상징이자 혈육을 갖춘 전하일 뿐일까, 아니면…… 그녀가 상징하는 길일까?
……나는……
“이 세상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쳇.
그래서…… 그 녀석은, 가짜라고 말하는 거야.
……
……
……
……이네스, 지금까지 이 녀석을 안 죽이고 어떻게 참았어?
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진 않거든.
쳇, 집어치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외드레르.
뭘 해야 하는지는 나도 알아. 전투 전에 사기를 떨어뜨렸으니 즉결처형 감이지만, 이번만 봐줄게.
검이나 잘 닦아둬, 내일이면 싸워야 하니까.
하아…… 역시 도망치는군.
정말로, W가 그럴듯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저 많은 용병들을 끌어모은 사람이잖아.
훗, 정말 '용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W한테 그들을 고용할 돈이 있긴 하고? W가 하려는 일이 또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줄 수 있을까?
그럼, 그 사람들은 대체 왜 W를 따르는 거지?
W가 뭐라고 하든 상관 없어. 테레시아를 위한 복수든, 그때의 암살에 참여한 자를 죽이는 것이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뭐든 폭파하고 보는 거든……
어찌됐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불쌍하네, W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하지만 사실 다들 잊고 있는 부분이지만, W는 아직 젊어…… 더 발전할 여지가 있지.
부디 그렇기를.
그리고, 첫 수익은 개업 밑천으로 주겠다고 한 건 농담이 아니었다.
……나도 알아.
'파라곤 부대'는 정비가 끝났다.
런디니움 자경단의 일부 멤버들이 자진해서 우리에게 합류했어.
그래, 여기까지 오면서 수습한 공작들의 패잔병들과 전투에 참가하려는 난민들, 그리고 자경단에 있었던 민병대들을 합치면 대략 6~7개 중대 정도의 병력을 확보했다.
시즈, '파라곤 부대'의 편제를 확립하고, 장교를 임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휘 계통을……
시어러 소위, 이 부대는 진정한 '빅토리아의 군대'가 아니다.
물론, 군인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너와 델핀이 이끌던 윈더미어 공작의 잔존 부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저 싸울 의지가 있는 일반인에 불과해. 기술자, 농부, 상인. 물론, 부랑자들 또한 있겠지.
만약 우리가 그들을 강제로 특정 작전소대에 밀어넣고 무기를 쥐어준 다음 장교들의 지휘에 따르라 명령한다면, 우리가 저 공작들과 무슨 차이가 있지?
'파라곤 부대'는 물론 훌륭한 명패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순수한 희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혹은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저 공작들의 고속 군함으로는 가져다 줄 수 없었던, 실체가 없는 것이어야 해.
그러니까 내 말은……
파라곤 부대는 국검을 쥔 왕위 계승자가 이끄는 영웅 부대 같은 게 되어서 안 된다는 말이야. 난 그런 명목이 꽤나 거북하거든.
하지만, 그러면 복잡한 군사 작전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지?
군사 작전이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 부대 중 대다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훈련조차도 받지 못했어요.
라테라노에 가면 라테라노 법을 따르라.
체틀리 카운티에서 했던 것처럼, 자경단이 런디니움에서 해 왔던 것처럼 해야할 거예요.
서로에게 익숙한 사람들과, 각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저 살카즈 놈들을 죽이면 돼요.
……실례했습니다, 살카즈 여러분.
……
괜찮다. 신경 쓰지 않으니.
의식은 중지되었지만, 살카즈의 핏속에 잔류한 축복은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런디니움이 있는 방향에서…… 고대의 주술이 들끓고 있다.
우리의 숙적은 타인에게 결코 밝힐 수 없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 하지만 저들이 드러낸 급박함은 오히려 돌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더욱 주의하도록 할게요.
그럼……
일단 그 뼈를 되찾도록 하지.
계획은 성공적이야, 그 빅토리아인들의 공격 덕분에 이쪽 방면의 부대 일부가 재배치되었어.
진입했다. 여기 있는 게 확실해.
너희는, 저번의 그 살카즈? 너희들이 어째서……
빅토리아인들이랑 같이 여길 공격하는 거지?
……미안하게 됐군.
반역자들을 죽여라! 살카즈를 배반한 놈들을 죽여!
울술라가 직접 마중을 나오지는 않았군.
로고스의 예상이 맞았어, 바빠서 자리를 비우지는 못하는 모양인데.
하…… 저번에 같이 못 오게 해서 못 봤는데, 이거 장난 아니게 크잖아!
폭파해서 두 동강 내도 되려나?
안 된다, 작전대로 해.
바로 척추에 올라가서, 조종하는 사람을 제압하세요!
……
아미야.
네, 느껴져요.
녀석이 이곳에 있어요.
나는 밴시의 시선을 따라 바위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한 줄기의 피비린내가 내 후각을 자극한다.
이 해골…… 혈관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