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배회하는 액운
시즈와 델핀은 윈더미어 잔병들과 난민들을 이끌고 전장을 가로지른다. 시어러 소위는 일행에게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여 이동요새를 따라잡자고 요구하지만, 시즈에게 거절당한다. 일행 앞에 나타난 '회색 모자'는 구원을 요청하는 통신기를 남겨둔다.
가장 잔인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완전한 어둠도, 끝없는 고통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에 숨어 있는 수많은 자객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끝났다며, 모든 고통이 끝났다며 생각한 당신을 악몽 속에서 꺼내 주는 그 따스한 손길이다.
그제서야 당신은 이 구제가 단순한 장난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그 손길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갖는 잠깐의 숨 돌리기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될 테니까.
더 큰 고난은 지금 팔을 감싸며 멀지 않은 곳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이런 조롱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델핀, 너…… 우리랑 함께하는 건 어때?
윈더미어 공작의 관은 현재 지원하기 위해 온 고속 군함으로 이송되고 있어. 일부 난민들은 공작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관을 호위하는 추모식을 계획했고……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쓰러졌던 그 장소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곳의 핏자국은 이미 오래전에 지워졌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그녀를 우리 쪽으로 초대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방금 전에 한 제안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비나 씨, 혹시 나 대신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 줄 수 있을까? 난…… 조금만 더 여기에 있고 싶어.
방금 놈들이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별 거 아니야. 그저 내가 여기서 좀 '진정'하기를 바라더라고.
소드베어러들은 나중에 온 호위함대에 탑승했어. 그들은…… 두려움에 빠진 귀족들 사이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
……
단지 그 한순간의 틈 때문에…… 내가 그 병사를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뱀파이어는 내게 손을 뻗었고, 그게 명백한 함정이었든 아니든, 어머니는…… 그 탓에 상처를 입었어.
진형은 무너지고, 사람은 다치고, 소드베어러들은 공작을 지킬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목표에 더 집중했었어……
……하지만 그들이 맞선 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지.
……
델핀……
참모들은 이번 작전에 너무 많은 '사적인 감정'이 들어갔다고 했어. 참모단이 애초부터…… 이런 무모한 작전을 지지했을 리가 없어.
그들은…… 내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해.
“영웅은 약자를 위해 순장 당해선 안 된다.”
……그 사람들 말이 맞아.
……
나는 뒤늦게 온 전함들 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알레데일이 생각났다.
됐습니다, 델핀 님. 일단은 최대한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현재 약품이 부족한 상황이라, 지금은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그럼 저도 이만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참모단 쪽에서 모든 부대는 복귀해서 보고를 올려야 한다고 해서……
여기, 델핀 님의 물건들은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물건들은 원래 공작님이 델핀 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당연하지만……지금 갖고 계신 공작님의 검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전 델핀 님이 저희와 함께 '갈라바에 철 방패'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 장관들이 델핀 님에게 어떤 말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당신은 엄연한 '윈더미어 공작' 작위의 계승자니까요. 그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
생각해 볼게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조용히 혼자 있게 해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어때?
저쪽에서 일부 사람들을 데려갔는데, 여전히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도 꽤 있어.
그건 그렇고, 으음, 그 철혈의 어머니께서 정말로……
그래.
……아이러니하게도, 공작이 자신의 부하들을 정말 잘 키워낸 것 같아.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윈더미어의 참모단은 꿋꿋이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잖아.
하지만……
델핀은?
……실리를 따지는 군관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델핀을 내칠 생각인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지금 걱정되는 건…… 그 사람들이 델핀에게 무슨 짓을 할지 잘 모르겠다는 거야. 델핀은 엄연히 '계승자'인데 말이야.
계승자.
델핀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윈더미어 공작은 강경한 리더였어. 공작의 소드베어러들과 참모단은 오직 빅토리아 전체의 이익에 대해서만 생각할 거야.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딸 때문에……
존경스럽지만 너무 무모한 결정을 내렸어.
하지만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결정 덕분 아니야?
나도 공작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건 델핀이 윈더미어 공작, 그러니까 자신의 어머니가 키워 낸 힘에게 버림받게 된다는 거잖아.
아……
그럼 우린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저들은 일부 난민들을 수용했어. 근데 정말 이대로 저 사람들을 믿어도 괜찮은 거야? 앞으로는 귀족들이랑 같이 싸우게 되는 건가?
……일부 난민들만 수용했다고?
아니지, 아무리 인원 수가 많다고 해도 이 고속 전함만으로도 모두를 수용할 수 있잖아. 이젠 더 많은 고속 전함이 있는데 왜……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전함의 기관실은 이미 파괴된 거 아니었어?
창밖을 봐!
방금 우리와 막 합류했던 호위함대가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저들은 지금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델핀!
그녀는 갑판 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 곳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검을 안은 채 내가 아래층으로 향했을 때 자세 그대로.
짧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고, 그녀의 모습은 고독함으로 인해 더욱 왜소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
내가 델핀의 어깨를 붙잡자,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는 내가 생각했던 분노, 두려움, 슬픔이 아닌……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감정이 존재했다.
그것은 가장 덤덤한 실망,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평온함이었다.
……떠났네.
델핀의 말투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나도 평온하다.
하지만 아직 이 아래에는 윈더미어 공작의 관을 배웅하러 나온 평민들이 남아 있어!
저 망할 녀석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
뭐야? 대체 무슨 일이지?!
빌어먹을, 이건 명령이랑 다르잖아! 저쪽에서 명령을 잘못 해석하기라도 한 건가……
이 배에는 아직 가동 가능한 보병 전차가 몇 대 있어. 지금 당장 '갈라바에 철 방패'로 돌아가 확인해야 해!
쳇.
떠나는 고속 전함의 뒤를 이렇게 열심히 쳐다본 건 또 처음이다.
이렇게 우스울 수가.
그 핏빛 비가 우리 옷에 남긴 흔적으로 인해, 모든 이들은 몇 번이나 그 잔혹했던 싸움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가 윈더미어 공작의 기함을 떠난 지 벌써 수 시간이 흘렀다.
나쁜 소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가 전함을 타지 못한 남은 인원을 파악하는 도중……박사, 아미야와 아스카론이 그중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없는 시간을 내어 간단한 수색을 했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지금은 그들의 실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아미야의 그 야윈 어깨가 떠올랐다.
지금 이곳에서 '슬픔'과 '무력함'은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꾸물거리지 마라!
더…… 더는 못 걷겠어요!
꼭 내가 이렇게 채찍을 들게 만들어야겠나?
어서! 뛰어라, 살고 싶으면 앞에 있는 전차에 따라붙어!
저…… 조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장관님, 제가 병이 있는데……
……
꾸물거려선 안 돼. 이건 네 목숨만 달린 문제가 아니란……
이 손 놔라, 노포트 구의 건달 자식아. 난 군령에 따르는 거니까.
저 사람들은 너희처럼 군사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 다섯 시간이나 되는 급행군이면 녹초가 되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다면 그냥 여기 남아서 죽기를 기다리면 돼.
우린 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 주고 있는 거야! '갈라바에 철 방패'에 돌아가기만 하면, 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저 사람들은 캠프를 차리고 휴식을 취해야 해.
말했을 텐데……
이건 시민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기도 해. 준위, 나도 지금 너희들의 상황에 대해선 잘 알고 있어.
남겨진 병사는 많지 않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게다가 너흰 대부분 감염……
닥쳐!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넌 윈더미어 공작 소속의 군인이야. 경솔한 행동으로 그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
나는……
'감염',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저주와도 같다.
자신들을 버린 전함을 뒤쫓는 것, 솟아나온 검은 결정들을 붕대로 가리는 것.
이 모두 어설픈 눈속임에 불과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그 단어 만큼은 꺼내지 말라고, 제길!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다고!
황야에서 행군할 때는 살카즈 부대들의 시선을 끌지 않도록 조용히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장관님, 저는……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너희를 따라 뛰기만 했던 일반인들은 캠프를 차리고 휴식해야 해, 소위.
……거절한다. 원래 계획대로 행군을 계속해라.
지금 이 속도라면 아마 자정 쯤에 31호 고지에 도착할 수 있을 테지.
그곳이라면 '갈라바에 철 방패'와의 통신이 가능할 거야. 이동요새와 통신이 회복되어야만 이 부대가 정말로 안전해질 수 있을 거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살카즈 부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넌 이 부대의 임시 지휘관이자, 선의이며, 여기서 계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야.
그렇다면 너도 우리가 보행과 전차 몇 대로는 고속 전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
소위, 나도 네 판단은 존중해. 하지만 우린 그 고속 전함들이 왜 떠났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있어.
그때 그 군함들은 너희의 통신에 응답하지 않았어. 대체 무슨 근거로 그 이동요새가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나도 부대의 상황은 이미 파악했어. 지금 이 부대에서 싸울 능력이 있는 병사는 세 개 중대도 안 돼. 게다가 지금 천 명에 가까운 난민들이 부대를 따라 움직이고 있지.
네가 꿈꾸는 위대한 행군이 끝날 때 즈음이면, 남은 사람은 아마 20%도 안 될 거야.
비나라고 했던가. 내 말 잘 들어……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내가 말한 20%는 네 병사를 말한 거였어.
난민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낙오되겠지.
(작은 소리로) 장관님……
저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들을 필요조차 없다. 난 이미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직접 보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인파 속에서, 누군가는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흘렸다.
그가 흘린 기나긴 핏자국은 이미 진흙과 뒤섞여 있었다.
소위의 침묵은 그가 호흡을 두번 잇기도 전에 끝을 맞이했다.
행군 속도를 조금 늦춘다……
하지만 행군은 이대로 진행한다……
구제불능이다.
그의 얼굴에 내 주먹 자국이 붉게 남았다.
섬뜩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마 턱이 빠졌을 거다.
……으윽……
그는 재빠르게 빠진 턱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이건 군인을 도발한 거다, 건달 두목.
빅토리아의 군법에 따라, 널 처결할 수도 있어.
너……
일어서.
할 테면 해 봐. 아니면 계속하던가.
주먹, 이는 가끔 좋은 해결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다그다, 모건과 인드라 모두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앞에 서 있다.
시민들은 조용히 우리를 둘러쌌다.
덕분에 과거 거리에서 영역 싸움이나 하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다들 경거망동하지 마라! 평민들을 다치게 해선 안 돼!
……
사람들은 널 '시즈'라고 부른다지? 네 신분이 꽤나 특별하다는 소문도 있던데……
난 그냥 길거리 건달에 불과해. 다르게 말하자면, 글래스고의…… 리더다.
그래,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내 말 잘 들어라. 난 윈더미어 공작에게 충성을 바치는 군인이고……
내 사명은 바로 장관이 내게 주신 임무를 수행하는 거다!
입가에 있는 피부터 닦아.
……포기해. 그러다 네 손도 탈골될 거야.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희생하겠다.
그 다수라는 건 누굴 말하는 거지?
넌 한 번이라도 네 부대를 되돌아 본 적이 있나?!
나는……
겁에 질린 군인들, 억압에 시달리며 침묵하는 시민들, 감염자, 그리고 부상자들까지.
우릴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뿐이다.
……
이제 됐어.
노포트 구의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그 사람들은 내가 지킨다고. 아직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더 강한 주먹을 따른다. 이게 바로 길거리의 법칙이야, 소위.
……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저들은 이곳에서 캠프를 만들어 휴식을 취할 거야. 그리고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거다.
'갈라바에 철 방패'의 주력군과 완전히 떨어진 지금, 살카즈의 부대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전부 죽게 되겠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만하세요.
시어러 소위, 아직도 자신이 윈더미어 공작군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이상 어머니의 이름에 먹칠하는 짓은 그만주세요.
델핀 님께서 어떻게 그런……
델핀은 칼자루를 꽉 쥐었다.
나도 놀랐지만, 시어러 소위는 나보다 더 놀란 듯했고, 놀라움에 더해 분노하고 있었다.
돌연 나는 '갈라바에 철 방패'가 우릴 버리기 전, 그가 함내에 있는 모든 인원에게 의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군의관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델핀, 그 옷이랑 검은……
이 옷…… 역시 나한테는 너무 크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내 얘기를 들어 줬으면 좋겠어.
소위가 출발한대?
그래, 상태가 가장 괜찮은 전차를 하나 골라서 특별 소대를 꾸렸는데,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
이 소대는 가벼운 차림으로 빠르게 움직여 날이 밝기 전에 지도에 표시해 둔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야.
그 옷, 입었구나.
……이 옷이 상징하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델핀 님, 이미 병사들과 인수인계를 마쳤습니다. 제가 돌아오기 전까진 일시적으로 델핀 님께서 지휘권을 갖게 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델핀 님께 요청드립니다. 델핀 님께선 윈더미어 공작위의 제1계승자이시니, 어떤 상황에서도 저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미안하지만 전 반드시 이곳에 남아야만 해요.
이건 시민들과의 약속이에요. 그리고 시민들도 빅토리아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들은 이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서로 믿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믿어야 해요.
게다가 호위함대가 우릴 두고 떠난 게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거나, 소수의 쿠데타로 인한 것이라면, 제 부재와는 상관없이 '갈라바에 철 방패'의 문은 우리를 향해 열려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소위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델핀의 말이 확실히 '극악무도'했기 때문이다.
혹시 제 존재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것이라면, 적어도 당신은 살 수 있겠죠?
아시잖습니까! 전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이……
저들이 저를 한 번 놓아준 것은 어쩌면 제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존중이거나, 아니면…… 절 불쌍하게 여겨서일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겠죠.
……
저는 제 전우들과, 공작님에 대한 장관님들의 충성심을 믿습니다.
델핀 님, 부디 이 좌표 비콘을 받아주십시오. 반드시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너……
그 남자는 평온하게 날 바라보았고, 나는 그가 갑자기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아. 그 단단한 주먹으로, 델핀 님을 지켜다오.
걱정 마, 소위.
시즈, 노포트 난민들의 상황을 조사해 왔어.
이게 윈더미어 공작이 우리 몰래 내린 명령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기도 했고, 명령의 집행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어.
하지만 결과로만 보면, 그쪽이 승선 인원 선별을 '매우 완벽하게' 했다고 할 수밖에 없어. 지금 부대에 있는 난민들에겐 감염된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나는 소위가 멀어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다.
살카즈의 주술 속에서 작전을 진행한 병사들은…… 대다수가 급성 감염 증세를 보이고 있어.
저 군인들은 살카즈에 맞서다가 광석병에 걸렸는데, 저들의 동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들을 이렇게 버린다고?
……이건 군대의 전통이야. 빅토리아 뿐만 아니라 카시미어, 우르수스, 심지어는 과거의 가울도 이런 식이었어.
군은 감염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지휘관이라면 저들을 독립된 편제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가장 위험한 임무에 보내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군에 있어, 감염자와 감염자들의 제어 불가한 오리지늄 아츠는 매우 불안정한 요소임에 틀림없어.
……누군가는 들고일어났을 테지.
하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어. 역사적으로도 전쟁 중 군에 속한 감염자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어. 안정적인 전선을 위해서 그 정도 손실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야.
로열 가드 스쿨에서는 심지어 이 부분을 교재에 포함하기도 했어.
이건 단지……
'영광의 초석 아래 묻힌 명예로운 희생자들'이겠지.
진정해, 숙녀 분들.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 뿐이니까.
우선 한 가지만 말해 줄게. 윈더미어 공작 각하의 죽음은 내가 충성하는 일부 빅토리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리고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지, 델핀 씨. 내 신분을 떠나서 하는 말인데, 난 그녀가 사황 전쟁의 영웅들보다 더욱 빛나는 존재였다고 생각해.
그러나 지금 그녀가 떠난 방어선의 빈자리는 누가 채워야 하는 걸까? 그녀의 전략적 가치를 과연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웰링턴 공작은 싸울 줄 아는 노련한 수완가야. 하지만 그가 진심을 다하진 않을 거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
캐스터 공작님은 현재 여러 요소들을 조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윈더미어 공작의 죽음은 우리를 너무나도 곤란하게 만들었지.
정보가 너무 빨리 전달된 거 아닌가요?
……으음, 이건 우리의 일이니까. 당신도…… 동종업자라고 볼 수 있지.
여긴 대체 뭐하러 온 거죠?
이제부턴 말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 윈더미어 아가씨. 그리고 겸사겸사 식량과 탄약을 선물로 챙겨 왔지.
원하는 게 뭐지?
그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 전하.
왕의 숨결, 그 쇠막대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검은 확실히 내게 아무런 쓸모도 없어.
넌 거래를 좋아했지, 좋아.
조건은 아주 간단해……
이 검도, 네놈들의 그 빌어먹을 검의 자리도 최전선까지 가져 가. 교전이 가장 활발한 곳에, 폭풍이 가장 쓸어버릴 것 같은 곳에 말이야.
……
만약 이 검을 안전하게 후방에 두고, 왕족 귀족들이 차 마실 때 사용하는 텐트의 버팀목으로 쓸 셈이라면, 내 눈앞에서 사라져!
하지만 너희들이 정말로 이 검을 빅토리아의 전사들을 위해, 그리고 시민들과 집이 없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쓸 생각이라면……
이 검에 지켜지는 게 대장장이의 아들이든 선생님의 딸이든, 쥐고 있는 무기가 빅토리아의 보급품이든 직접 만든 무기든 상관없어. 그 누구든 검의 그늘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도 기꺼이 검을 너희에게 넘기겠어.
'검의 자리'를 가지고 날 찾아와, 회색 모자. 전선이라면 나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어. 약속하지.
……이런.
이건 내 권한을 넘어섰어. 나도 어쨌거나 대리인에 불과하거든. 최종 결정권은 캐스터 공작님에게 있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네 주인을 찾아가. 가서 내가 사랑하는 고모의 입에서 결론을 듣고 다시 날 찾아오라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알렉산드리나 전하.
그건 그렇고…… 이건 개인적인 약속인데.
지금부터 나눌 대화는 기록되지 않을 거야. '회색 모자'가 아닌 서퍽 자작, 벨링엄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전하, 때로는 새로운 의견을 가진 자가 나타난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몰라.
……
당신들은 이미 일부 감염된 전사들을 거두어들였어. 으음, 대부분은 평민이긴 하지만…… 괜찮아, 하지만 아직 부족해. 당신에게 필요한 건, '군대'야.
그들도 몸을 의탁할 수 있는 당신의 '군대' 말이지.
……너……
확실히 놀라운 발언이다. 이것도 캐스터의 계략인가……
그는 심지어 내게 리유니온을 세우라 부추기고 있다.
보아하니 정말로 녹음기를 끈 모양이네.
하하. 너무 오래 꺼 두면 동료들이 의심할 거야.
……내 할머니는 4국 전쟁 때 감염되어 처형되었지……
할머니는 문을 나서기 전, 날 보며 크게 웃었어. 싸우면서 광석병에 감염될 확률은 3%도 안 된다고 하면서. 난 내가 자작의 자리를 이어받고, 기록보관소에서 자료를 뒤져보고 나서야 깨달았어……
3%라는 확률은 10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아. 현대 전쟁에는 더 많은 오리지늄 기계와 더 복잡한 오리지늄 아츠가 쓰이는데도 이 3%라는 확률 만큼은 변하지 않았더라고.
아마 너희들도 그런 전장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보지 못했을 거야. 그건 공작들도 마찬가지지. 공작들의 시선은 너무나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지.
빅토리아 군대의 감염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말이야.
과거 '문명 국가'와의 분쟁에서는 다들 자제하는 편이었어.
자기 캠프에 살아 있는 폭탄을 두거나, 오리지늄 분진으로 더럽혀진 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대는 살카즈야.
시즈, 정말로 당신에게 그럴 뜻이 있다면, 그건 분명 당신의 명성, 앞길, 그리고…… 으음, 심지어는 우리나라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을 거야.
감염자의 일이라면 나와 내 동료가 더 잘 알아.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좋군.
참, 여기 버려진 장비들이 좀 있어. 작업 중에 남겨진 부산물 같은 거라 주인이 없으니 가져가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버려진 물건이니, 당신들에게 공짜로 줄게.
그럼 난 이만.
저 사람이 한 말 중에서 진심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믿고 싶어. 지금 이런 상황에선, 저런 사람조차 전장에 무관심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한테 뭘 남기고 간 거야? 녹음이랑 좌표?
이 소리는…… 이건……
'치직……'
“지원…… 필요…… 체틀리 카운티……”
“포위…… 폭풍돌격대……”
“지원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