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용병의 하루
외드레르, 이네스와 W는 리치 에르망가르드를 막아선다. 그러나 일행은 이내 기이한 환각에 빠져들게 되는데, 환각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은 7천 년 전 살카즈 역사의 파편이었다.
사실 난 빅토리아에 오고 난 이후부터는 책을 쓰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용병이었을 시절, 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글 쓰는 데 할애했다. 한 권을 다 쓰고 나면 또 다른 책 한 권을 썼었다. 그 시절의 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군사위원회에 들어간 이후로는 글을 썼던 노트조차 펼쳐본 적이 없었다.
나는 더 높은 지위와 권한을 얻었고, 한두 소대 지휘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든 전장의 전술판이 내 눈앞에 놓여져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떤 글을 써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과거의 난, 기록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점차 내가 작성한 이 책들 하나하나가 비슷한 풍파의 메아리이자, 같은 비극의 재현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고통들은 우리가 몸소 겪은 것들이고, 영혼으로도 느껴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고통들을 꼭 이런 공허한 문자와 결론들로 바꿔낼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충분하다.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었더라?
내 기억으로 그건 작년 9월…… 작년 여름은 꽤나 긴 여름이었다.
장군, 시장이 죽었다.
검에 아직 피가 묻어 있군.
용병 시절에 썼던 검처럼, 군사위원회의 검도 너에게 잘 맞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무기는 무기일 뿐, 큰 차이는 없다.
난 그때 날 쳐다보던 그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난 그 눈빛에 담긴 의미까지는 알지 못했다.
……알겠다.
방금 용병이 내게 알려준 정보다. 섭정왕의 암살을 계획한 14명의 의원들 모두 체포되었다는군.
다른 의원들의 태도는 어떻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난 네가 조금 더 직접적인 수단을 쓸 줄 알았는데.
군사위원회가 필요로 한다면 그 즉시 모든 의원들을 처리하도록 하지.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비행선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인내심이겠지.
부하들을 철수시켜라. 나흐체러르 킹의 군단이 도착했다.
……군단이라고?
나흐체러르의 군단이라니.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그 이름은 내가 과거에 겪었던 전쟁에서 만나봤던 수많은 '군사집단'의 이름과는 전혀 달랐다.
언제부터지? 대체 어떻게?
카즈델의 부대는 어떤 방향이든 상관없이, 빅토리아에 들어오기 위해선 반드시 이 대공의 영토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큰 규모의 부대가 은밀히 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왕께선 이미 런디니움 근교에 도착하셨다. 나흐체러르 직속 왕정군 두 부대는 이미 도시 바깥에 주둔하고 있고.
……
알겠다. 용병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
레토 중령도 이미 섭정왕 폐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부턴 레토 중령과 그의 방위군이 런디니움의 모든 행정 업무들을 이어받게 될 거다.
'주둔군의 반란'으로 인해 런디니움은 방위군이 주도하는 반군사 관리 체제에 돌입할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말이지.
그것으론 대공들을 속일 수 없다. 도시 내에 퍼져있는 대공들의 정보망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니까. 분명 수개월 안에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려 할 거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빠르면 20일 내에 런디니움 성벽 아래에서 나타나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누가 먼저 오든, 함부로 도시에 손을 댈 생각은 못할 테니까.
배짱 있게 단독으로 공격하려는 공작은 다른 모든 이들의 공공의 적이 될 거다. 2년 전 윈더미어 공작의 기습이 실패했던 그때처럼 말이지.
그녀의 고속 전함은 어이없게도 자국민에게 저지당해, 자국의 땅조차 벗어나지 못했었지.
윈더미어 공작…… 꽤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야. 섭정왕이 빅토리아에 접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의회에 경고를 했었거든.
우릴 런디니움에 초대한 건 캐번디시 한 사람 뿐만이 아니다. 공작들 모두 섭정왕 폐하께서 '군사적 부속물'이 되어 자신들의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 주길 바랐었지.
아직도 모르겠나? 그건 윈더미어 공작도 예외는 아니야. 강경한 군인도 결국은 높으신 분들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소리다.
그녀도 결국은 우릴 다시 도구함에 넣으려고 애쓰는 한사람일 뿐이야.
……들은 얘기다만, 그 유명한 빅토리아의 증기의 기사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넌 여기저기서 정보를 잘 주워듣는 편이었지, 외드레르. 군인으로서 좋은 품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장군, 난 용병이다.
섭정왕과 군사위원회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마 살카즈가 정말로 빅토리아의 수도에 발을 딛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겠지.
공작들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했고, 의회 역시 그 어리석은 두 공작의 전철을 밟아, 또 다른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이를 막기 위해 '적절'한 방위력이 필요했을 거다.
그런 그들의 눈에 내전을 막 끝낸 살카즈는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겠지. 포장을 뜯어서 바로 먹고, 다 먹고 나면 바로 버릴 생각이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공업구역을 점령했고, 의회를 점령했고, 더 샤드 빌딩도 곧 우리 지배 하에 놓이게 될 거야. 섭정왕은 정말로 런디니움을 손에 넣게 된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 도시로 옮겨올 일은 없겠지.
우리는 분명 분쟁을 일으킬 수는 있어. 하지만 그 다음은? 런디니움과 함께 다른 나라에서 온 연합군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
군사위원회의 계획은 대체 뭐지?
내 자신이 조금은 격앙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얌전히 구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살 것이다.
하지만 맨프레드는 내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는…… 한 권의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제목 없는 책을.
언제부터 용병이 그렇게 질문이 많았지, 외드레르? 그동안 내가 널 너무 편하게 대한 모양이군.
난 단지 임무 목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을 뿐이야.
내가 알고 있는 용병은 어디의 고용주가 더 통이 큰지, 어떻게 하면 산크타의 카라반을 더 잘 털 수 있을 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던데.
……개인의 성향이 다를 뿐이다.
'개인의 성향'이라.
눈앞에 있는 군사위원회의 장군은 책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단순히 그의 계급 때문만은 아니라, 그와 테레시스 사이의 관계가 꽤나 특별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는 내가 그를 상대할 때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에게 최대한의 존중과 겸손을 보이려고 했다.
눈은 좀 어떻지?
……검을 휘두를 때의 거리 감각에 약간 영향을 주긴 하지만, 금방 익숙해질 거다.
네 심문 기록은 나도 받았다. 자객은 이네스라는 여자더군. 그 여자도 용병이야.
우리도 이네스라는 살카즈가 의회에 매수당하여 섭정왕의 암살을 시도할 거라곤 예상 못했다.
이네스는 죽었다. 그리고 넌 그 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었지. 넌 군사위원회의 표창을 받게 될 거다.
표창은 필요 없다.
그렇다면 그 상은 용병의 방식대로 보수로 받겠군.
넌 이네스와 코드네임 W라는 미치광이와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용병 소대를 지휘하며 생활했었지. 흉터의 상점 살카즈 늙은이도 널 매우 좋게 평가하더군.
……
그런 그녀를 죽이다니, 결단력이 상당하군.
용병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해.
동료를 죽이는 한이 있다 해도 말인가?
동료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도 죽일 수 있다는 건가?
……
넌 방금, 군사위원회의 계획이 뭐냐고 물었지?
우리에게 주어진 계획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제부턴…… 그들의 계획이겠지만.
이곳은 원한의 중심. 머지않아 이곳도 원한에 파묻히게 될 거다.
마치 네가 적어내린 그 책들처럼, 우리가 겪은 모든 전쟁처럼.
당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글은 계속 쓰도록 해.
중요한 임무다. 너도 이 임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해.
군사위원회는 런디니움에서의 책무를 마무리했다. 이제 더 샤드 빌딩을 가동하기만 하면 그 누구도 전쟁의 폭풍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테레시스는 뭘 더 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뭘 더 할 수 있는 것일까?
다 적었어?
아니, 아무것도 안 적었다.
방금은 검을 다시 갈았을 뿐이야. 용병의 대검…… 이 녀석을 안 쓴지도 정말 오래됐으니까.
너도 참 정없다니깐.
필요하다면 너에게 선물해 주지.
검? 그런 효율 낮은 물건엔 관심 없어.
하아…… 아예 머리 손질까지 했네?
하긴, 이제부턴 런디니움 때처럼 매일매일 머리에 크림이나 바를 만큼 여유롭진 않을 테니까.
이게 더 편해서 그런 것 뿐이야.
장군한테 신임을 받는 용병 리더 역할을 하려면, 그 옷은 계속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군인은 뭐라 했더라? 복종이 천직이라 했었나?
용병의 직무는 보수를 받는 거지, 조의금을 받는 게 아니야. 자, 이제 잡담은 그만해.
이곳이 방어선에서 경계가 허술한 부분인가?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진 그런 셈이지.
지금은 뭐…… 진군을 시작하기도 했고, 공작들 사이가 아무리 나빠도 그 지경이 되면 함께 이곳을 포위하게 될 거야.
그래서 네가 말한 그 사람이 이 길로 움직이는 거 확실해? 이 위치에선 더 샤드 빌딩의 재앙 구름도 보이는데?
재앙의 낙하 지점은 웰링턴 공작과 나흐체러르 킹이 교전하던 전선이었다. 철의 공작은 아마 전선을 좁힐 생각일 테지.
윈더미어라면 아마 딸을 이동요새에 데려오기 전까진 병력을 움직일 여유는 없을 거야.
그 사람이 런디니움을 떠난다고 하면 선택할 수 있는 루트는 그리 많지 않아.
잠깐. 누가 와.
그림자의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 아무래도……
윽, 다변형의…… 실타래?
다변형의 실타래라니?
전체적인 형태가 다각형이지만 상당히 불규칙해.
오리지늄 아츠야. 아마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힘들겠지. 뭐, 그런 수단을 쓰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목표 확인. 조금 거칠게 나갈 수밖에 없겠어.
W……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몇 초 후, 귀청이 터질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하아…… 가자!
거대한 먼지가 사방을 뒤덮었지만, 우리는 주술에 사용된 도구나 기이한 비행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W는 여전히 손속에 사정을 둘 줄 모른다. 만약 정말로 리치에게 상처를 입히기라도 한 거라면……
연기 속을 헤쳐나가던 나는 문득 무언가에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실?
어지럽게 얽힌 실이 허공에서 늘어졌다, 다시 허공으로 이어졌다.
……용병?
타이밍 한번 좋네요. 따라오세요.
이상한 느낌이 바로 이 주변에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녀의 형체는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흩날리는 실 뿐이었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으나 잡을 수 있는 건 먼지 뿐이었다.
도망친 건가? 아무튼 내가 말했잖아, 폭탄으로는 리치를 죽일 수 없다니까.
아니, 아직 이 주변에 있다.
쫓아야 해.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가 아까 지나갈 때만 해도 이런 장소는 없었어.
……여기 있는 물건들엔 그림자가 없어, 환각인가?
저 산 밑에 큰 덩치들이 있는데?
……지나칠 정도로 큰 검이네. 저런 걸 대체 어떻게 휘두르는 거야?
산이라고?
여긴 평원이 아니었나?
나는 W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선명해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난 심지어 내가 전장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오래된 살카즈어) 그 회색빛 도시가 바로 이 앞에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오래된 살카즈어) 토석의 아이들이 슬픔의 땅에 성벽을 쌓아올렸어. 그곳이라면 분명 우릴 받아줄 거야.
(오래된 살카즈어) 카즈델, 음절 하나하나가 모두 고통의 여정이구나.
(오래된 살카즈어)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찾아 꿈에서 벗어나 이곳까지 왔어.
(오래된 살카즈어) 방랑의 시대도 그 끝을 맞이할지니……
뭐라는 거야?
……아주 오래된 살카즈의 방언이다.
'슬픔의 땅', '회색의 성벽'. 다른 건 잘 모르겠다, 문맥상 추측만 할 뿐.
게다가 카즈델이라는 말도 했었지? 어느 쪽 사람이지?
(오래된 살카즈어) 견벌 씨족의 다이아볼릭 발로르사차, 방랑자 영주 콜람도 우리의 길을 이어받았다.
(오래된 살카즈어) 아, 그 또한 이곳에 있었군……
(오래된 살카즈어) 굴둘, '마왕'……
……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그들에 관한 전설이라면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내가 처음 살카즈 문자로 읽었던 책 또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들의 서사시는 현재까지도 카즈델의 빈민가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 그림자들은 도시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컸던 두 번째 카즈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최초의 카즈델이 엘더즈와 에인션츠들에 의해 파괴된 이후로,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즈델은 울타리와 짚더미로 이루어진 작은 촌락에 불과했었죠.
나약하고, 쉽게 부숴지고, 식민 통치자들에게 한 번, 또 한 번 짓밟혔죠. 그렇게 살카즈는 계속해서 떠돌아다녀야만 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살카즈는 계속해서 힘을 축적했고…… 그렇게 또 하나의 진정한 도시를 세우게 된 거예요.
그들은 현재 컬럼비아로 알려진 그 황야를 떠나, 테라의 오지에서 오직 이를 위해 살고, 죽어갔어요.
그리고 나서…… 배신을 당했죠. 동쪽을 향해 또 다시 이주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분노의 불꽃은 또 한 번 배신을 마주했죠.
살카즈의 역사는 그때부터 마치 저주라도 받은 것 같았어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죠. 오늘날까지도 살카즈는 끊임없이 도시를 버리고 재건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 입에서 오르고 내린 그 이름들은 모두 그 도시에 있었던 최초의 마왕들의 이름이에요.
7천 년 전의 마왕들.
이 리치는 대체 언제부터 우리 눈앞에 나타난 거지? 어떻게 이런 능력을……
난 검을 들어 가슴 앞을 가리는 자세를 취했다.
리치가 손을 들었다.
당신들……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드러나게 한 건가요?
……
카즈델에 담긴 역사적 의미나 후세에 끼친 영향을 감안하면, 마왕의 전설들은 확실히 널리 알려진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 방랑자들? 우리조차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의 기록은…… 음, 없어요.
이건 주술이 아니에요…… 주술일 리가 없죠. 그 어떤 오리지늄 아츠도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진 못해요. 으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적어도 역사학자가 아니면 불가능해요.
저건 물리적인 수단일까요? 안개를 이용한 프로젝터 같은? 저 남매는 언제부터 저런 기술을 가지게 된 걸까요? 숨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으음…… 이것도 좀 아닌가. 이 화면은 기록용이라기엔 너무 현실 같네요. 아무리 기술을 활용했다지만 이 자료들의 출처는 대체……
그렇다면 역시 이건 일종의 아츠일 거예요……
그녀의 손은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렸고,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홀로 중얼거리며 눈앞의 색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아츠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아요…… 애초에 오리지늄 아츠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요.
이상하네요…… 베헤모스인가? 빅토리아가 베헤모스를 길들여 전쟁에 투입하려는 거라면 진즉 손을 썼을 텐데……
이 여자, 지금 뭐하는 거야?
이걸 시전한 사람이 당신들은 아닌가 보네요.
방금 당신들은 그저 제가 아끼는 큐브를 터뜨렸을 뿐이에요. 그 안에 앉아있으면 얼마나 편안한데.
리치 왕정의 전달자, 에르망가르드 부인. 이런 식으로 인사드리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리치한테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정말 그렇게 늙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렇게 예를 다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다면 이건 당신의 아츠가 아니겠군요.
저도 7천 년 전의 방랑자를 불러낼 능력은 없어요.
으음…… 아츠를 이용해서 자극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기초적이고, 크기도 작고, 자주 쓰이는 에너지로 자극을 주면……
돌연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눈앞의 풍경은 마치 조수처럼 물러가고, 왜곡된 풍경은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붉은 색의 베헤모스가 돌연 모든 이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뭐야, 이건?
이 구역은 내가 3일 전에 확인했었는데, 그땐 이런 거 없었어.
너희들…… 어이, 외드레르, W, 무슨 일이야?
이네스는 무사하다,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내 피는 끓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