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만신창이
오랜 세월을 겪은 다마즈티는 젊은 밴시의 주인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호텔에서 큰불이 나며 노포트 구의 진정한 혼란이 마침내 시작된다.
이번에는 이베리아인가.
인내심을 가져, 밴시. 난 여기서 지낸 시간을 가장 잊을 수가 없거든.
넌 여기를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베리아를 안 좋아했어. 큰소리치며 독단적으로 구는 게 진절머리가 났거든.
이베리아인은 두려움을 몰랐다.
그럼 그 재앙으로 만족스러웠나?
난 빨간 눈 늙다리처럼 사이코패스가 아니야. 재앙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지. 이 대지에 재앙이 없던 적이 있던가?
하지만 그 생물들에 빠지게 되었어.
난 소문만 들었을 뿐이지만, 솔직히 그것들은 날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와 너무 다르거든.
그럼 넌 나도 너와 다르다고 생각하나, 밴시?
어떤 모습이든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오리지늄은 모든 사람에게 반박할 수 없는 낙인을 남겼어. 그것은 너희들에게 지금의 모습으로 세상을 거닐게 했지.
하지만 오리지늄은 오직 다마즈티만을 잊었다.
오직 우리만이 최초로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네 순결함에 자부심을 느끼나?
아니, 세상이 이미 변해버렸는데 순결함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난 그저 오리지늄으로 인한 변화와 너희들을 좇아갈 수밖에 없어. 너희가 만든 모든 걸 좇아야 하지.
난 온갖 방법을 써서 이베리아에서 버려진 마을을 발견했고 거기에 들어가 살았어.
우리는 거기에 들어가서 살았지.
우리는 그 마을을 다시 돌아가게 했어. 일, 교류, 상업, 교통까지……
200명의 내가 한 마을을 이루었지.
네가 지금까지 미치지 않은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군.
하, 누가 알겠어?
아무튼 난 그곳에서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어.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매일 거기에 빠져 있었지.
그건 내게 우리가 의미 있는 나날을 보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어.
하지만 결국 지쳐버렸어. 소소한 일에 집중하는 건 재미있지만 그것들을 다 합쳐도 여전히 답은 찾을 수 없었지.
그러다 그것들을 발견했어. 누군가 그것들을 '시본'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지.
난 오랫동안 그것들을 관찰했다.
너 자신을 생각나게 했나 보군.
아니, 통일로 따지면 우리는 시본과 그것들의 위매니를 뛰어넘었어.
몇 가지 모습으로 변하든 우리는 늘 통일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시본은 위매니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거 알아? 난 그것들이 부러웠어.
그것들은 본능만 따르면 됐거든.
먹을 것과 양분을 찾고 번식하고 진화하면 돼.
어쩌면 네가 말한 '순결함'이란 단어는 그것들에게 더 어울릴지도 몰라.
난 제자리에 서서 그 모든 걸 지켜보았지. 다양한 작은 생물이 해초를 자신의 일원으로 동화시키는 모습을 말이야.
그것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해야 할 일만 했어.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본능은 뭐지? 우리는 또 뭘 해야 하지?
밴시, 우리한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지?
지금 웃는 건가?
미안하군, 다마즈티. 널 비웃는 게 아니다.
가장 오래된 왕정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다마즈티 님이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이건 중요하지. 물론 아주 중요한 것이다. 다만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방황하는 철학가일 줄은 생각도 못 했군.
맞춰봐. 우리가 빅토리아에 있는 대학교에서 몇 년 동안 철학과 교수를 했을까?
너희한테는 의미를 찾는 게 쉽겠지. 극소수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생명이 짧으니까.
본인을 위해 목표를 하나 찾아서 시간을 가득 채우는 게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우리는 안 돼.
네 제안이든 테레시스의 미래든 우리는 별 관심이 없어.
우리에게는 전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뿐이거든.
우리가 왜 곧 사라질 것들에 감정을 품어야 하지?
우리는 거의 모든 가능성과 즐거움을 파헤쳤어.
네가 불쌍해지기 시작하는군, 다마즈티.
우리는 그저 뭘 하든 재미없다고 외치는 늙은이들이라는 걸 알아차렸구나.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내 친구들이 바보 같은 게임을 알려준 적이 있는데……
아니, 그만두지.
말해봐, 밴시. 우리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흥미가 있어.
하지만 좀 기다려야겠군. 성가신 일이 찾아왔거든.
여기는 아니지만, 저쪽에 좀 집중을 해야겠어.
없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냥 없다고, 젠장!
거기에 통신기지는 없었어.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누가 이미 가져갔단 말이야!
더블린 부대예요?
그것보다 더 일찍 가져간 것 같아. 쌓인 먼지의 두께로 봤을 때, 노포트 구가 막 런디니움에서 떠날 때 누군가 거길 노린 거야.
적철 근위대 대장은 우리에게 진짜로 속지 않을 거야. 곧 예상한 통신이 나오지 않는 걸 알아차릴 거고.
하지만 적어도 또 같은 출발선으로 돌아왔군. 모두에게 보너스를 쟁탈할 기회가 다시 생긴 거야.
캐스터 공작을 위해 일하는 당신이든 더블린의 귀혼대든……
당신들은 모두 몰래 잠입하는 방식으로 이 구역에 들어왔어. 그건 당신들이 노포트 구의 표면적인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거겠지.
공작들이 주력 부대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면 우리의 계획은 실현될 수 없어.
그런 변명은 그만해, 델핀.
네 어머니인 공작은 네가 아직 여기 있다는 걸 알면 무슨 방법을 쓰든 널 구하러 올 거야. 그렇지?
……
나도 장담할 수 없어……
어머니와 사이가 좋다고 인정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 혹시 방법이 있어, 이네스?
귀찮네 정말.
- 할 수 있다는 말이군.
……난 당신의 그런 점이 정말 너무 싫어.
하지만, 좋아, 한번 해 볼게.
높은 곳을 찾아야겠어.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이네스 씨가 말한 방법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일출까지 기다려야 해.
시즈랑 시민들한테 준비하라고 해.
여러분, 무사하시길 빌겠습니다. 다음에도 선셋 스트리트 호텔을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전 여기에서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어요. 괜찮은 사람들도 만났죠.
노포트 구는 생기가 넘치는 좋은 곳입니다. 이대로 기억과 폐허로 몰락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네, 노력할게요.
음모와 분쟁은 사라질 거예요.
제가…… 정말 그리워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었어요……
언젠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편안히 꿈꿀 수 있을 거라고요.
하아, 정말이지. 호텔이 또 엉망이 되었군요.
직접 청소하지 않는 사람은 질서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니까요.
퍼시벌! 퍼시벌!
또 어딜 갔는지……
좋습니다, 잠시 이 늙은이 혼자 있도록 하죠.
연로한 호텔 매니저는 평소처럼 오래된 안락의자를 찾아와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그 아이…… 그 카우투스 여자아이가 마왕인가요?
변화를 좇아가는 게 점점 힘들군요. 나도 놀랄 정도니 말이죠.
변화라…… 변화, 내가 이런 변화에 나태해진 걸지도 모르겠군요.
변화란 전진가는 게 아니니까요.
자, 이 오랜 친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요. 솔직히…… 여기가 정말 좋았습니다만.
하아…… 콜버트는 두 달은 더 버텼어야 했는데요. 누가 알았을까요? 두 달 뒤에 살카즈 군대가 들어오고 한 마족이 청소부에서 호텔 매니저로 변할 줄은.
이런 건 항상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살카즈 노인은 몸을 일으켜 호텔 로비를 둘러보았다. 이곳의 모든 물건은 그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그 이네스라는 카프리니가, 전쟁엔 그 어떤 수식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죠.
그렇다면 우리가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도록 하죠.
수많은 귀족이 밟았을 아름다운 카펫 위로 살카즈 노인은 불이 붙은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로 불길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여기…… 이 병사들은 모두 살해당한 건가?
적인가?!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다면……
……
저들의 가족은 위로금을 받게 될 거다, 가족이 있다면 말이지.
저희도 방어를 준비해야……
그럴 필요 없어.
그 표정은…… 이미 알고 계셨나요?
당신…… 이것도 당신의 계획 중 하나군요……
이건 카즈델 군사위원회의 계획이다.
용병이 희생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네 대장이 진작 가르쳤을 줄 알았는데.
당신은 장군이고 저들은 당신의 병사예요!
그렇다, 난 장군이고 이게 내 일이지.
적이든 아니면 우리 자신이든 해야 할 일은 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입에 생명을 하나씩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뱉길 기도하는 거지.
이게 바로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
그래서 난 이 모든 걸 보러 오는 거다. 이곳에 있는 젊은이의 창백한 얼굴을 전부 봤다.
이건 내가 내린 결정이란걸, 기억해야만 한다.
이게 살카즈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는 하지 않겠다, 용병.
빅토리아 사람이 저들을 죽였지만, 저들이 빅토리아 사람에게 살해당하게 한 건 나다.
왜 그런 거죠?
불을 밝히기 위해서.
이 대지에 널리 퍼질 불길을 밝히기 위해서지.
그리고 우리…… 살카즈는 이러한 분쟁의 땅 위에서만 우리의 위치와 생존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용병, 넌 반드시 저것들이 익숙해져야 한다.
익숙해지고 증오하고 결국 받아들여라.
이게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봉쇄 구역에서 밝은 불길이 불쑥 솟구치고 오랜 건물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또…… 화재인가요?
아니, 저건 첫 번째 불씨다.
용병, 따라와라. 비행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님들이 이미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