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귀를 막고
리유니온, '회색 모자', 로도스 아일랜드와 더블린 부대가 노포트 구에 모이자 사태가 더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시즈의 아슬란 왕실 신분과 손에 든 왕의 숨결은 그녀를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만든다.
맞다, 생각났어. 그건 로도스 아일랜드의 제복이야.
가드 씨도 똑같은 게 있거든. 수지 씨도 칼라돈을 떠난 뒤에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곳으로 간 것 같아.
아마 좋은 사람들일 거야. 아니면 수지 씨를 도울 리가 없잖아?
여기서도 감염자들을 돕고 있고.
하아, 좋은 사람은 늘 운이 없다니까. 본인의 선택을 위해 너무 많은 책임을 져야 하지.
누구도 짊어질 수 없는 책임이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야.
불쌍한 로도스 아일랜드.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간 걸지도 몰라.
나인이 말한 것과 똑같아. 주사와 약은 광석병을 고치지 못하지만 신체적인 고통을 완화해 줘.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지.
반드시 우리를 보게 해야 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종기나 궤양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해야 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
너희는 나를 계속 쫓아왔지. 방금 내가 한 말에 대해 뭔가 의견이라도 있어?
리유니온.
넌 우리의 임무 목표가 아니다.
그럼 계속 각자 갈 길을 가면 되겠네?
……진짜 가버렸군.
더블린이 왔으니 나도 감염자들을 데리고 철수해야겠네.
……쳇,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그 사람을 데리러 가야겠어.
시인이라 자칭하다니……
이네스 씨,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 거야?
시인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다들 당신보다 훨씬 대단했어. 왜냐하면……
그 시인들은 비유를 남발하지 않았거든.
먼지, 사포……
이 구역과 국가 안에서, 더 나아가 이 대지에서 누가 먼지고 누가 사포지?
당신은 또 무슨 자격으로, 누가 먼지고 누가 사포인지를 결정하는 거지?
전쟁은 그 어떤 비유나 수식에도 어울리지 않아.
전쟁은 대단한 여정이나 영광을 다시 만드는 용광로가 아니야. 부흥으로 향하는 함선이 아니라고.
전쟁은 그저 흙탕물 속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 폐허 속에 부러진 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악취일 뿐이야.
단지 그것뿐이지.
……난 너무나도 잘 알아. 전쟁은 그런 것일 뿐이야.
서로의 의견을 보류하도록 하자고. 난 배테랑 용병의 관점을 존중하거든.
하지만 체스말에서 친구가 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결론이 필요해.
- 이네스.
왜.
- 델핀의 대답은 뭐지?
동의했어, 우리 모두 살아서 여기를 떠날 수만 있다면 말이야.
이미 통신기지 쪽으로 가고 있어. 곧 방송이 나올 거야.
정말 유감이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당신은 빅토리아의 초대를 거절했어.
- 아직 캐스터 공작은 빅토리아를 대표할 수 없어.
- ……
- 난 그저 아마추어 시인을 거절했을 뿐이야.
대표하게 될 거야.
이건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고.
유창한 말솜씨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이것도 당신들의 잔재주인가?
델핀? 네가 왜……
빨리 도망가! 녀석들이……
당신들은……
여기는 참 시끌벅적하군.
당신을 적철 근위대 대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더블린의 '교관'이라고 불러야 할까?
당신들이었군.
드디어 이런 생활도 끝이 보이네.
델핀와 그 박사가 통신기지를 해결할 거야, 그렇지?
모든 게 순조로울 거야. 우리는 노포트 구를 떠날 수 있다고.
앞으로 어디로 갈 거야?
……모르겠어.
노포트 구에서 패거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보육원 출신이든지 아니면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들일 거야.
우리도 다 비슷하겠지.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지. 밥은 벌어 먹고살 수는 있을 거야. 하, 어쩌면 난 전설의 '녹슨 망치'에 합류할지도 몰라.
어쨌든 난 대공작의 영지에 가서 무릎 꿇고 콧대 높은 놈에게 밥 달라고 구걸하는 난민은 되지는 않을 거야.
카도르……
됐어. 넌 아직도 내가 '살카즈를 때려눕힌다'와 같은 순진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잖아?
……
……베어드, 그동안 난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어. 조금 남은 마지막 고집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결국 날 그런 것들에 억눌리는 겁쟁이로 만들어 버린다면 차라리 지금 이 골목에서 죽어버리는 게 나아.
어쩌면…… 억눌린다고 해서 그리 비난할 일은 아니야, 카도르. 강철로 된 척추를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
낮에 비디오룸에 갔었어. 그때 보급품이 잔뜩 담긴 카트를 빼앗으러 나오지 않아서 매클래런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거든.
예전부터 의심이 많은 이상한 사람이었잖아.
너도 예전에 매클래런의 물 섞은 음료를 꽤 많이 마셨지.
그래, 매클래런이 장수하길 바란다. 녀석은 괜찮은 거야?
……아직 살아 있어?
비디오룸 바깥은 아주 처참하더라고. 여러 번 습격받은 것 같아.
이름을 불러 봤는데 대답이 없더라. 다른 곳으로 도망간 줄 알았는데…… 못이 박힌 창문 틈으로 매클래런의 두 눈을 봤어.
툭 튀어나와서 핏발이 가득한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하더라고. 두 번은 못 보겠더라.
어쩌면……
비디오룸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
우리도 다 알잖아…… 우리도 그 사람들과, 네가 말했던 그 '겁쟁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하.
우리는 아직 이 모든 걸 만회할 기회가 있어.
아주 어려울 거야. 혹시 모를 살카즈의 반격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대공작 군대의 화포도 견뎌야 하니까.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살카즈 주둔군의 동향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해……
쳇, 폐하는 언제나 시기적절하게 우리를 격려하고 해야 할 일을 알려 준다니까, 참 믿음직해.
……
카도르……
또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있지…… 넌 국왕이 뭔 거 같아?
뭐야, 나도 네 신하로 삼으려고?
아니, 계속 말했지만 난 그저 글래스고의 비나일 뿐이야.
그냥, 이 문제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이해 못 했을지도 몰라. 영예와 위엄을 찬송하는 말 이외에, 국왕이 너희에게……
아니,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아무것도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지. 난 차라리 수중에 돈이 부족할 때 나한테 할인해 주는 식당 사장님을 더 존경할래.
예전부터 빅토리아에는 국왕이 있었어.
그래? 그 녀석들은 누군데? 정말 미안하지만 난 고귀한 아슬란이나 드라코가 아니라서 한 번도 못 봤거든.
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이름들이라면 난 광고에 나오는 시라쿠사 식당의 비토 셰프가 더 친숙해.
국왕이 없어지고 이미 몇 년이 지났어. 그렇다고 우리 생활이 더 나빠졌나?
좋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이 모든 게 국왕의 존재 여부와는 별 관련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어. 너든 아니면 다른 엄청난 인물이 왕좌에 오르든 너희는 어차피 우리를 제대로 보지 않을 거잖아.
너희들의 정의로 보면, 우둔한 왕은 파티와 술에 빠지고 현명한 왕은 전쟁과 세금을 저울질하는 거겠지.
내가 보기엔 다 자기만족이고 모든 걸 통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허영심일 뿐이야.
시즈, 노포트 구 놈들은 널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며 네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
말해 봐, 그걸 즐기고 있는 거야?
녀석들을 구제하는 게 너의 그 빌어먹을 영광스러운 사명이라고 생각해?
……난 한 번도 '사명'이라고 한 적 없어, 절대로.
단지……
단지 너한테 그 시선들에 호응해야 할 어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건 같은 거라고, 이 불쌍한 폐하야.
……
너도 잘 알 거야. 그런 시선이 네게 향하는 건 네가 길거리 패거리의 일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네 그 대단한 성씨인 '빅토리아' 때문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모든 것에서, 끝도 보이지 않는 이 빌어먹을 똥통에서 모두를 구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걸 누가 할 수 있겠어? 꿈 깨.
용감하게 책임지는 건 우리가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품성이야, 시즈.
하지만 '국왕'이라는 태도로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는 마.
그리고……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누가 왔어.
쳇, 해치울까?
충돌은 안 돼. 저쪽에서 눈치 못 채게 배치만 파악하자고……
뭔가 이상해. 더 경계해야겠어.
네놈…… 들은……
오해하지 마.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던 거니까……
베어드! 눈치 못 채게 하자며?
제기랄,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이 피는…… 이 녀석, 이미 중상을 입고 이곳으로 도망친 거야.
봉쇄 구역 안에 있는 사람이 한 짓인가?
아닐 거야. 우리도 시도해 봤었잖아. 한두 명 없애는 거라면 몰라도 우리를 여기에 가둔 건 군대라고.
한 번 습격에 성공해도 그쪽에서 바로 반응해 올 거야. 다만……
이 주변이…… 평소에도 이렇게 조용했었나?
봉쇄 구역의 높은 담벼락 위, 탐조등이 평소처럼 창백한 빛을 내리쬐고 있다.
그들은 이미 노포트 구의 악취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신선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여기를 떠나자, 어서.
당장 이 구역에서 찾을 수 있는 시민을 한데 모아야 해.
하지만 이네스 씨와 박사가 아직 소식을 안 보냈는데……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어.
누군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확실해?
확실해, 아슬란이야.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아니잖아.
괜찮아, 그 사람이 직접 판단할 테니까.
제길, 문이 잠겼어.
박사, 내 뒤에 서.
여러분, 선셋 스트리트 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방문하시는 건 참 오랜만이군요.
콜버트 씨! 숨어 계시라고 했잖아요!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대접하지 않는 건 호텔 매니저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는 거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러분께 손님용 차라도 드렸을 텐데.
혹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까요?
……
……
혹시 그냥 물은 있어? 좀…… 목이 말라서.
그건 드릴 수 있습니다, 델핀 씨.
역시 웰링턴은 이곳을 놓치지 않았군.
캐스터 공작도 마찬가지다.
날 여기서 내보내 줄 건가?
너와 저쪽 파란 머리 필라인은 안 돼.
캐스터 공작과 웰링턴 공작은 살카즈와 대항하는 데 있어서 뜻이 통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각자의 목표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하고.
난 내가 받은 명령에만 따른다.
타라인은 다 너처럼 융통성이 없나?
난 내 친구 앞에서만 유머 감각을 드러낸다.
잘됐네, 난 친구 사귀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같은 빅토리아 사람끼리 날씨를 불평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요, 날씨…… 런디니움의 날씨는 언제나 나쁘죠. 갈수록 더 나빠져요.
40년 전에는 해가 뜨는 날이 더 많았답니다.
그때는 이 호텔도 상황이 훨씬 좋았어요. 정말 대단한 호텔이었죠!
지금도 막 도어맨으로 지원하러 왔을 때가 기억납니다.
듣자 하니 그때는 공작들도 여기 묵는 걸 좋아했다더군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살카즈.
정말 죄송하지만 절 손님과 같은 빅토리아 사람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다들 빅토리아 사람인데 이렇게 긴장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스스로 빅토리아 사람이라고 여기는 살카즈는 드문데.
아가씨의 상황도 저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
카즈델 밖에서 살아가는 살카즈들도 집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살카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늘 실망하고 피곤한 겁니다.
전 여기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곳의 모든 벽과 바닥이 익숙하죠. 머나먼 카즈델보다 훨씬 익숙하답니다.
그동안 게으르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모든 테이블을 먼지 하나 없이 직접 닦았을 텐데.
전 제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은 호텔의 예전 모습을 보셨어야 해요.
그 시절은…… 언제나 제게 그런 나날이 계속될 거라는 착각을 주었죠.
하아, 하지만 그 시절은 결국 끝나버렸습니다.
퍼시벌, 정말 안타까워. 자네가 입사했을 때는 호텔이 이미 몰락했으니 말일세.
……솔직히 말해서 전 별로 신경 안 써요.
지금처럼 전쟁으로 파손되고 무너진 거라면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더 나았을 게야.
내가 슬픈 건……
예전과 똑같이 오후에 테이블을 다 닦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
갑자기 곁에 있는 모든 게 낡아 보였기 때문일세.
게다가 난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도 모른 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