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생사 논의
선량한 파프리카는 혼란 속에 노포트 구의 살카즈 호텔 매니저에게 음식을 갖다준다. 로고스와 다마즈티는 문명과 생존에 관한 토론을 펼친다.
오지 마, 다가오지 말라고!
왜소한 남자가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 공중에서 휘둘렀는데 알고 보니 펜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펜의 화려한 장식이 또렷이 보였다.
로열 사이언스 아카데미의 차기 아카데미션이 될 거라고 자처하는 문장학자는 아마 그 펜으로 꽤 많은 훌륭한 고증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펜은 가엽고 매우 구차한 무기가 되어 떨리는 손에 쥐여 있다.
딸그락하는 소리가 울리며 남자의 외투에서 통조림 하나가 떨어졌다. 남자는 다급히 허리를 숙이고 주워 들더니 본인의 외투 속에 다시 감췄다.
……그건 우리가 가진 마지막 고기 통조림이야.
난……
미안해.
미안하지만 더는 못 버티겠어.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고! 봉쇄된 구역, 공중에 흩날리는 죽은 사람의 분진, 시체들의 악취, 이 모든 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나……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야! 파울비스트의 지저귐 속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원고를 썼어야 한다고……
내가 왜…… 정말 미안해. 여러분은 날 많이 도와줬는데……
용서해줘. 용서해줘. 이런 짓을 하면 안 됐어. 난 내 도덕심을 자랑으로 여겼었어. 하인에게도 잘해주고 외식할 때마다 팁도 두 배로 줬고……
하지만……
더는 못 버티겠어. 정말 지쳤다고. 이해가 안 되고 너무 혼란스러워……
그럼 손에 든 통조림을 내려놓고 여기를 떠나면 되잖아.
교환하자! 나한테 사르곤의 보석이랑 산크타의 수호총이 있으니까……
우리한텐 필요 없어.
부탁이야. 제발 부탁할게……
점점 더 심하게 몸을 떨던 남자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 남자는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애원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자세가 우스꽝스러웠다.
남자가 외투를 단단히 감싸자 고기 통조림을 숨긴 위치가 불룩 튀어나왔다. 몸에 기생하는 비통한 종양 같기도, 사랑받는 태아 같기도 했다.
……
가. 정문은 봉쇄됐고 베란다로 나가는 방법은 알잖아.
베어드!
그냥 가라고 해! 저 빌어먹을 통조림을 가지고 여기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라고!
난…… 너무 지쳤어. 더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난 정말…… 이 모든 걸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겁먹은 시민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복싱장을 경영하는 조직 무리가 이렇게 자신을 보내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비틀거리며 망설였다.
델핀이 분노하며 바라보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듬거렸다. 남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폐와 동전은 현재 노포트 구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남자는 이를 질끈 물고 장식이 화려한 펜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갔어.
베어드는 펜을 집어 본인 주머니에 넣었다.
……델핀.
우리 기대서 좀 자자.
예전처럼, 비디오룸에 있을 때처럼 말이야.
……
아가씨, 새로 이곳에 배치된 용병이라면서?
그…… 그렇습니다.
그럼 운이 좋네. 여기 임무는 쉽거든.
빅토리아 놈들이 봉쇄선을 넘지 못하게만 하면 돼. 소란 피우는 놈이 있으면 없애버리면 되고.
알겠습니다!
하! 건방진 빅토리아인들도 고생 좀 해 봐야 해! 나라면 차라리 도끼 같은 걸 나눠주고 서로 죽이게 했을 거야!
그…… 그건 규칙에 어긋나잖아요.
야, 참 답답한 녀석이네. 우리는 살카즈야. 놈들이 죽든 말든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우리끼리 재미나 보는 게 낫지.
하…… 하지만……
됐다, 난 가서 좀 더 잘 테니까 여기 잘 지키고 있어. 문제 생기면 네 머리도 같이 베어버릴 수 있으니까.
……
갔어요.
고맙습니다, 아가씨.
이번에는 물건을 많이 못 가져왔어요. 먹을 거랑 약 조금이에요……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은 살카즈니까 도와드려도 괜찮은 거겠죠?
우리랑 동족이잖아요……
할아버지, 장관님들께 가서 말하면 빅토리아 사람이랑 같이 있지 않아도 될 거예요.
아닙니다, 전 여기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런디니움에서요?
어디에나 살카즈는 있는 법이죠, 아닌가요? 당신들이 런디니움에 온 뒤로 전 호텔 매니저까지 했었는걸요……
전 카즈델에 가 본 적이 없어요. 아가씨는 그곳에서 온 건가요?
아니요, 저도 안 가 봤어요.
그럼 아가씨 집은 어디인가요?
집이요? 그게…… 저도 잘 몰라요. 컬럼비아에서 태어났는데…… 예전 대장 말로는 카즈델이야말로 우리 살카즈의 집이래요.
하지만 아가씨는 가 본 적이 없다면서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하하, 전 병사들이 떠들어대는 얘기에는 관심 없어요. 그 사람들과 함께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호텔의 큰 샹들리에를 고치는 게 더 낫죠.
샹들리에가 멀쩡할 때 모습을 아가씨가 봤어야 하는데. 그 어느 귀부인의 액세서리와도 비교가 안 된답니다!
게다가 전 젊었을 때 매일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샹들리에를 반짝이게 닦았어요!
참…… 이상한 살카즈네요.
샹들리에를 좋아하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이상한가요? 미안합니다, 전 용병을 상대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래도 아가씨처럼 마음씨 고운 사람이 물자를 가져다줘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전 여기 너무 오래 머무를 수 없거든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제 호텔을 보러 오세요.
삼, 사십 년 전 노포트 구가 번화했을 때, 선셋 스트리트 호텔은 런디니움 전체에서 가장 좋은 숙소였거든요!
그…… 그럴게요.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요?
하하, 좋습니다. 그럼 제가 우리 호텔 최고의 디저트를 몰래 대접하지요!
깨져라.
이런 주술은 우리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밴시. 그동안 충분히 시도했잖아.
이건 시간 낭비야. 넌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해.
네 지식은 모두 학습으로 얻은 거지만 경험이 너무 적어.
아니면 네 골필을 잠시 내려두는 게 어때? 우린 그저 너와 산책하고 싶을 뿐이야.
우리가 예전에 변신했던 한 자작님이 그랬어. 지금이 이 도시의 가장 좋은 계절 중 하나라고.
천천히 걸어. 중앙 구역의 가로수들은 런디니움의 자랑이거든.
다마즈티, 대체 본인을 위해 어떤 운명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지?
네게는 수많은 화신과 모습이 있다. 넌 언제나 네가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난, 모든 너를 위해 엘레지를 연주해 주마.
그렇게 사람을 겁줄 필요는 없어, 밴시. 네게 어떤 수단이 있는지는 우리도 잘 아니까.
다만 우리에게, 개체의 사망은 끝이 아니야. 거리 하나를 철거했다고 도시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한 줄의 글자가 사라졌다고 문명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문명도 쇠퇴하고 몰락한다.
그래서 우리가 갱신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거야.
우리는 네 선조를 거의 다 알아, 밴시. 다들 젊은 시절이 있었고, 너처럼 커다란 열정과 희망을 품었었지.
원래 그래야 하는 걸 수도 있어. 개혁은 원래 엘레지에서 탄생해야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어버렸어. 너희도 뒤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지.
네 경험은 여전히 널 파멸의 불길 곁으로 이끄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는 오랫동안 찾아왔어.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다른 곳에서 찾고 있고.
넌 아주 대단한 주술사야.
널 초대해서 오랜 기억을 위해 미약하나마 무대를 제공해도 될까?
우리…… 난 사르곤의 사막 속에 백 년 동안 빠져 있었어. 왕중왕이 원정을 막 끝낸 무렵이었지.
아직 완전히 전설이 되지 않은 위대한 업적은 언제나 사람을 더 그 속에 들어가고 싶게 만들어.
밴시, 허상이라고 해도 좋으니 모래바람을 일으켜 봐.
아주 조금만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내 정체를 찾아보자.
우리 함께 그 안에 빠져서 여러 곳을 다녀 보자. 그럼 네가 날 이해하거나 내가 널 인정할지도 모르지.
내게 증명해 봐.
......
우리는 결론을 낼 거다, 다마즈티.
장막.
그럼, 물론이지. 내 기억 속에 남은 모습과 차이는 좀 있지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바람은 너무 많은 흔적을 쓸어가거든.
예전에 여기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었어. 그때는 이동도시처럼 신기한 게 없었지. 돌을 쌓아서 만든 집도 결국 모래바람 속에 사라져 버렸어.
지으면 파괴되고, 지으면 또 파괴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반복 앞에서 지쳐버리겠지만, 그때 난 즐거웠어.
넌 자신을 문명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게 네가 즐긴 '갱신'인가?
아니, 난 즐기지 않았어.
그건 그저 조잡한 비유일 뿐이야. 문명은 결국 세워지고 끝나버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게 없어. 아무리 바라도 말이지.
넌 돌이 아니라 모래다.
……모래라.
맞아, 밴시. 난 모래야.
세울 수도 없고 이미 끝나버려 있지.
넌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구나.
아미르의 모습이 되어서 당시 그 왕중왕을 만난 적이 있어. 그는 스스로 '과거와 미래의 왕'이라고 부르며 세상 만물의 답이 황금 보물창고에 있다고 했지.
내가 이렇게 물었어. “폐하, 우리 곁에 있는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 겁니까?”
그는 고개를 높이 들고 내게 말했어. “내 생각이 바로 의미다.”
그렇게 거만하고 오만한 자였지. 그 사람에게 오후의 햇살이 가득 쏟아졌고, 본인이 문명의 지배자라고 믿었어.
하지만 내 눈에는 본인의 로브 한쪽을 밟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보였지.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그곳을 떠났어.
공작들의 수단이 참 인상 깊더군.
우리 소대 인원이 결코 적은 건 아닌데…… 당신들은 그야말로 제집 마당에 들어가듯 손쉽게 여기에 숨어들었어.
당신들의 빠른 견인 장치와 소형 환술 발생 유닛을 보면…… 그래서 살카즈가 엄격하게 통제하는데도 런디니움에서 당신들만의 정보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거겠지.
더 나아가 런디니움과 버려진 구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거고.
빅토리아는 이 대지에서 가장 강한 국가야. 그리고 내가 모시는 공작님은 빅토리아에서 가장 언급할 만한 분이지.
그러니 다양한 기술과 수단을 준비하는 것도 당연한 거야.
- 그런 수단을 우리에게 쓰지 않길 바란다.
캐스터 공작은 언제나 친구를 다정하게 대하신다.
비행선은 이 구역의 한 위치에 숨어 있어. 우리의 예측에 따르면 여기 지하 독이 있을 거야.
더 구체적인 정보는?
여긴 여러분에게 맡기지.
웰링턴과 나흐체러르 장군이 서로의 실력을 떠보기 전까지 여러분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어.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여러분이 내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믿어.
이건 거래라는 걸 잊지 마. 알렉산드리나 전하, 그리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