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운명을 향해
마지막 증기 기사가 무덤 깊은 곳에서 일어나, 빅토리아를 앗아가려고 했던 모든 원수를 향해 돌진한다.
시즈, 앞을 봐!
저건 설마……
……증기 갑옷.
통풍구에서 밖으로 뿜어내는 새하얀 증기는 칠흑 갑옷에 대비되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 번, 또 한 번.
마치 호흡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안개를 털어내고 역사 속에서 깨어났다.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이길 수 없다.
포기도, 배신도.
죽음조차도.
움직인다. 봐, 저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욕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쳇, 화살도 전혀 소용없네!
빨리, 유탄을 준비해!
거대한 갑옷이 잔해 속에서 일어섰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
침울한 분사음 소리.
그것은 허둥대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침울한 증기 분사음)
소용없어.
토터, 사르곤 출신인 너는 아마 모를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잠들기 전에 들은 이야기가 바로 저들에 관한 거였어.
지금 내가 아이를 재울 때 들려주는 이야기도 증기 기사에 관한 이야기고.
그런데 저걸 이기라고? 저걸 어떻게 이겨?
우리의 자랑, 우리의 영광, 한번 배신당한 영웅을 어떻게 이겨?
이길 리가 없어.
저건…… 빅토리아의 증기 기사야.
비켜, 비켜!!
이게…… 무슨 소리지?
증기 분사음이네.
설마?
증기 분사음이 확실해, 그들이 돌아왔어!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따른다니까! 비나가 비장의 카드를 여기에 숨겨놓았네!
모건, 이제 우리 팀에도 증기 기사가 생긴 거야!
런디니움에 정말로 증기 기사가 있다고? 그들이 여기에 있다고?
그들이 왕의 안식처를 지키고…… 왕의 숨결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하하, 전에 그들이 뭘 했든 알 게 뭐야.
어쨌든 지금은 비나가 그들의 왕이잖아!
우리가 증기 기사와 함께 지상에 올라가면, 살카즈 놈들은 틀림없어…… 틀림없이…… 어, 모건, 너 표정이 왜 그래?
비나가 왕의 숨결을 가지고 나오려는 이 순간.
4년이다. 꼬박 4년 동안 증기 기사는 이 어두운 이 지하에 숨어, 검의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질 않았어.
살카즈가 도시를 점령했을 때, 살카즈가 공장을 접수했을 때, 살카즈가 귀족들의 저택을 불태웠을 때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어.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과연…… 왕의 안식처에 침입한 자들의 편에 설까?
잠깐, 누구야?!
……모건, 무기를 꽉 잡아.
저들은…… 매우 강해. 저들은 계속 우리 주변에 잠복해 있었어.
헤헤, 좋잖아. 이제 좀 재밌어지겠는데?
노포트 구의 건달들이 왜 이런 곳에?
알렉산드리나 수하의 글래스고 패거리인가?
숨어서 중얼대지 말고 얼른 튀어나오지!
쯧쯧, 그렇지 않아도 불확정 요소들이 많았는데. 이제 런디니움에 증기 분사음마저 울릴 줄이야.
증기 기사가 살아있다는 걸 알면 공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불안해하실까? 아니면 영광의 갑옷을 두른 영웅들이 돌아왔다고 기뻐할까?
훗, 영광……
일단 이 건달들부터 해결해야겠다. 알레데일을 방해하지 않게.
(침울한 증기 분사음)
……증기 기사.
4년이 지났어…… 아직 살아있는 증기 기사가 있었다고?
저 상처들은…… 분명 치명상이야. 살카즈의 대못이 거의 모든 갑옷의 핵심을 파괴해서 안에 있는 사람이 살아있을 리도 없다고……
게다가, 왕실의 열쇠가 없으면 왕의 안식처에 아무도 출입할 수 없잖아.
저 기사가 4년 내내 이 어두운 지하에 갇혀있었겠네……
설령 운 좋게 살카즈를 피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
갑옷 속의 사람은……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침울한 증기 분사음)
……
……당신은…… 누구야?
아니…… 당신은…… 무엇이냐?
갑옷의 헬멧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알레데일은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불빛……
그 불길 속에서 포효했던 오래된 갑옷.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 때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구원을 맡겼던 희망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직접 목격한 파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직시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와 알레데일 앞에 서 있었다.
알레데일은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신은…… 모든 걸 청산하러 왔나?
(침울한 증기 분사음)
……
알레데일!
조심해……!
증기 기사, 나는 아슬란 왕의 후계자다. 내 이름은 알렉산드리나 비나 빅토리아다.
공격을 멈춰, 기사.
우린 적이 아니다.
……
“빅토리아.”
시즈는 머리 위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증기 기사가 말하고 있는가? 확실치 않다. 그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기계의 굉음에 더 가까웠다.
새하얀 증기가 다시 이들의 눈앞에서 뿜어져 나왔다. 전보다 더 빠르고, 더 거셌다.
칠흑 같은 기사가 시즈를 향해 거대한 무기를 들어 올렸다.
“빅토리아.”
시즈는 갑자기 눈앞의 증기 기사가 부르는 게 자신의 성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기사가 보고 있는 것은 시즈가 들고 있는 검이었다.
왕의 숨결, 빅토리아 왕권의 상징.
“빅토리아.”
그는 이 검을 빅토리아라 부르고 있다.
그가 목숨 걸고 지켰던 빅토리아.
그는 거대한 빅토리아에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상징이 된 빅토리아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제국의 마지막 기사는 빅토리아를 빼앗으려는 모든 적수에게 복수한다.
그는 왕의 후계자를 향해 돌진했다.
시즈, 빨리 피해!
증기 기사가 왜 너를 공격하지?
설마 못 알아보는 건가……
엎드려……!
으윽…… 하……
저 검은…… 화염으로 된 날이야.
절대 닿으면 안 돼!
미쳤어, 저놈은 미쳤다고! 우리는 절대 저놈을 막을 수 없어!
빨리 철수해, 여길 떠나…… 떠나야 해……
으악!
……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우리를 전부 죽이겠지.
네 부하를 데리고 얼른 도망쳐.
……
……비나 말대로 해.
그럼, 임무는 취소인가.
기사 아가씨, 아무래도 내 은퇴 계획은 미루어질 것 같네.
다그다, 너도 용병들과 함께 여길 떠나.
전하.
너는 마지막으로 저들에게 경례를 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는 저들의 이야기를 햇빛 아래에 가져가야만 해.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야, 시즈.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전해야 해.
알레데일, 네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
솔직히, 나는 너를 동경했었어. 네가 영광스러운 기사라고 생각했어. 아니, 너는 심지어 내가 상상했던 '기사의 본보기' 같은 존재였어.
솔선수범하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히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넌 영원히 고결한 컴버랜드였다고!
……
영원히 고결한 것은 없어, 다그다.
그래도,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싸웠잖아, 안 그래?
여기엔 네 이야기도 있어, 알레데일.
……만약 네가 돌아와 준다면.
……이제는 무리야.
그건 너한테 달렸잖아.
적어도…… 지금은 눈앞의 이 기사를 함께 상대해야 해.
기사들의 싸움은 공평하고 명예스럽다. 내 스승님은 이렇게 가르쳐줬어.
상대가 이토록 영광스러운 영웅이라면……
전하, 부디 함께 싸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소서.
……물론이다.
싸워? 저 기사와 싸운다고?
모두를 속인 가엾고 나태한 배신자가……
어찌 감히 운명을 거역하겠어?
비나, 이건 아주 훌륭한 우화야, 그렇지 않아?
영웅이 되고 싶었던 순진한 아이가 나쁘게 변했고, 역사에서 돌아온 영웅을 마주했을 때, 그 영웅의 칼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렇다면 그 아이의 죽음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결말일 수밖에 없어.
아이는 모든 걸 박탈당하고, 남겨진 사명조차 완수할 수 없어야 해.
비나…… 나는……
더 이상 '사명'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알레데일.
고개를 들어, 알레데일 컴버랜드. 너에게도, 나에게도 사명이란 건 없어.
일단 저 기사부터 진정시켜야 한다. 그 후에도 네가 이 검을 원한다면, 내게 도전해. 내가 받아주지.
이건 네가 말하는 빌어먹을 사명 따위가 아니다, 알레데일.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돼.
하지만 그 단어를 더 이상 입에 담진 마.
……
(침울한 증기 분사음)
온다,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