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요동치는 대지
사령탑에서 로도스 아일랜드와 자경단 연합군이 살카즈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뜻밖에도 나흐체러르 군대가 일찍 복귀한다.
이 빌어먹을 저항군들이! 수디언 구에서부터 여기까지 계속 애 먹이는군!
네놈들의 그 커다란 고철 덩어리나 얼른 내놓으시지!
자주포 말하는 거야? 살카즈, 우리 병사들이 아직 저 앞에 많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라.
자주포는 공격 범위가 너무 넓어. 철수할 시간이 없다!
그건 걔네 일이고. 우리 전사들은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 안다.
저쪽에…… 이동할 수 있는 기계 오리지늄포가 있다!
이…… 이게 다 뭐야? 평범한 포탄이 아니잖아!
설마 카즈델에 내가 들어보지 못한 고급 연구소라도 있는 건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맨프레드가 어떻게 해냈지?
- 관제실을 찾았어?
- 집중해.
관제실…… 관제실…… 큰일 났어, 박사. 저 포탄의 오리지늄 아츠가 내 드론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런디니움 시스템은 해킹하기 쉽지만, 살카즈의 주술은 어렵다고 내가 말했잖아!
박사, 우리한테 맡겨.
우와, 피스트다!
네 말대로 우린 준비를 마쳤어.
엔지니어링 소대가 드론이 방해받지 않도록 해줄 거야.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어?
클로저 씨, 이 오리지늄 자주포는 전부 우리 공장에서 조립한 거야.
너…… 설마 현장에서 저걸 다 해체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하, 클로저 씨, 우리 엔지니어링 소대가 모두 뱀파이어라면 시도해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그저 평범한 기술자들이라.
우리 두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 익숙한 것뿐이지.
어떻게 하면 약점을 노려 강력한 전우들을 위해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어.
결국 우리 엔지니어링 소대가 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란 건 이런 게 아닐까?
저 와이어는…… 너 혹시 저것 위에 올라타려고?
포구만 통제할 수 있으면 드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거지?
이론상으론 그렇지만, 너무 위험해……
이런 게 협력인 거지, 클로저 씨.
대신 가장 안전한 착지점을 찾아줘.
포화 속에서 피스트는 눈앞의 전장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더 이상 사나운 살카즈가 아니라,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산 라인의 기계였다. 대형 기계가 이동하는 소리는 그가 가장 잘 아는 리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스트는 자기 방식으로 그들의 도시를 되찾으려고 했다.
후우…… 전장 상공의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네.
커다란 기계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전장의 사람들은 빅토리아 사람이든, 살카즈든 모두 너무 작아 보였다.
녀석의 걸음은 막을 사람이 없었고, 그것의 시선은 거리를 단숨에 녹여버렸다.
마치 이 강철 정글의 주인과도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십여 개의 갈고리가 날아와 그것의 가장 약한 목덜미를 공격했다.
곧이어 수십 개의 작은 그림자가 와이어를 타고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박사, 통제했어!
- 스나이퍼, 근처의 적을 처리해!
알겠습니다!
캐스터들, 공격이다!
네!
이런 이런, 밴시, 당신은 피 한 방울도 가까이 못 하게 하는군요.
네가 조종하는 피 한 방울마다 모두 네 주술이 들어있잖아.
후훗…… 밴시의 주술인가요.
언제부터 밴시들이 당신처럼 이렇게 딱딱하고 따분해졌죠?
저는 밴시들이 어떻게 어두운 밤을 헤치며, 골피리를 불어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날카롭고 슬픈 소리로 황야를 헤매는 사람들을 애도하면서도, 시커먼 발톱으로 그 가여운 사람들의 뒤통수를 가차 없이 찔렀죠.
밴시, 그게 바로 밴시입니다.
그들은 뱀파이어가 가장 칭찬하는 사냥꾼이었죠. 우리는 전장에서 함께 싸웠고, 두려움을 무기로 나약한 적들의 목숨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밴시는 방향을 잃었군요. 당신들은 진정한 자아를 그 라이타니엔 캐스터와 비슷한 차림새에 숨겨 두고, 거드름을 피우며 허세나 부리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진짜 방향을 잃은 자는 너인 것 같은데.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은 대지를 휩쓸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시선을 낮추고 네 자신을 바라보지? 너도 너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하…… 제가 왜 이딴 몸뚱이에 신경 써야 합니까?
그 몸뚱이가 내 로브처럼 이 대지를 걷고 있는 우리의 실제 모습이니까.
고대 왕정의 뿌리는 이미 썩었다. 지금의 왕정은 수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땅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미 죽은 것들이 가뜩이나 메마른 이 땅으로부터 자양분을 빨아들여, 온갖 신생의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니.
그게 당신의 진정한 목적입니까?
뱀파이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옆에서 끓어오르던 피도 순간 조용해졌다.
땅 밑에서 은은한 진동이 전해지더니, 이내 지면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였다. 피가 행군하고 있었다.
오퍼레이터 여러분, 방어하세요!
……
아래 전장은……
맨프레드는 문득 자신이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방위군 사령탑의 약점은 레토 하나뿐이 아니다.
그와 뱀파이어의 주의가 눈앞의 '마왕'과 '지인'들에게 끌려있는 동안, 로도스 아일랜드와 자경단은 다른 루트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었다.
이게 바로 로도스 아일랜드의 계획. 그들은 사령탑에서 맨프레드와 뱀파이어를 즉시 쓰러뜨릴 확신이 없었기에,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미 늦었다.
……
맞다, 이미 늦었다. 아스카론의 공격에서 어떻게든 벗어난다 해도, 정작 그를 막고 있는 것은 이 피의 장막이었으니.
뱀파이어는 이미 격앙된 상태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전장에 갇히게 된 것이다.
……밴시.
당신은 왕정을…… 살카즈의 전통 자체를 멸망시키려는 것입니까?
천지를 뒤덮을 정도의 피의 장막이 사령탑 전체를 휘감았다.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들, 방위군 병사들, 모두가 잠식되기 일보 직전에 놓였다.
그리고 그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 붉은 장막을 갈랐다.
나는 궤멸이 아닌 자신을 구할 뿐이다.
더 이상 장황한 추억으로 너 자신을 옭아매지 마라. 과거의 오만에서 벗어나거라, 살카즈의 옛 왕이여.
살카즈는 변하고 있다. 살카즈는 변해야 한다.
골필 아래, 금빛의 주문이 자동으로 쓰여나갔다.
들끓던 피는 주인의 분노에 포효하며, 땅에서, 벽에서, 머리 위에서 덮쳐왔지만, 젊은 밴시와 그가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주술의 왕이 이미 이국의 탑 위에서 규칙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박사, 사령탑이……
- 치열한 전투다.
- 나는 아미야, 로고스, 아스카론을 믿어.
후우…… 셋이 정말로 그 무서운 놈을 막았네……
박사, 드론이 관제실에 도착했어.
지금부터 해킹을 시작한다……
- 얼마나 걸려?
-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줘.
30분…… 아니, 20분이면 돼.
박사, 아미야랑 자경단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나를 믿어, 손이 몇 개 더 있었어야 했는데!
커다란 기계가 다시 한번 으르릉댔다.
멈췄던 포구도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자주포 위에 있는 전사들이 공격받고 있어!
적이 멀리서……
으악!
……살카즈다!
……
이 살카즈들의 아츠는, 도대체 뭐야!
갑자기…… 숨이 안…… 저……
……고해신부의 주술이다. 저 살카즈들은 고해신부의 위병이다.
이런 주술에 의해 급속히 소모된 생명은 의료 아츠로도 회복이 안 돼.
피스트에게 전사들을 데리고 자주포에서 철수하라고 해.
하지만, 그러면 무기가 또 폭주하는데.
전사들의 목숨이 더 귀중하다.
폭주한 무기는…… 내가 가서 파괴할게.
후우…… 후우…… 지휘관님, 이제 괜찮아졌어요……
……
지휘관, 이게…… 너의 아츠야?
……아니.
저 빛은…… 흐르고 있잖아.
내 것보다…… 음, 더 따뜻하네.
저기 봐! 고해신부 위병 뒤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누구지?
흰 뿔, 검은색 로브, 저 사람도…… 고해신부인가?
저 고해신부가…… 다른 살카즈와 싸우고 있어!
박사, 저건…… 샤이닝이야!
네가 샤이닝을 불렀어?
- 켈시가 샤이닝이랑 연락하고 있었어.
-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자발적 의지야.
샤이닝이 대단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은 처음 보네.
뭐랄까? 아주…… 아주……
샤이닝이 왜 별로 안 싸우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
……고해신부님.
역시 전장에 오셨습니까. 당신은 또 대장님의 뜻을 저버렸군요.
만약 저의 행동이 아직도 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 제가 떠난 게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대장님이 미우십니까?
……
아니요.
저는 그를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이 미울 뿐이죠.
가면이 찢어지자 위병은 쓰러졌고, 고해신부의 칼집에는 쓰러지기 전 그의 표정이 비쳤다.
상대를 바라보는 샤이닝의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슬펐다.
또 한 번, 생명의 불이 번쩍이는 마지막 순간이…… 샤이닝의 검에 영원히 남았다.
피의 안개가 주술의 힘에 빠르게 증발했다.
주술에 의해 찢어진 틈 사이로 수많은 검은 에너지 다발이 튀어나왔다.
사령탑을 뒤덮었던 피의 장막도 마침내 어느 정도 사라졌다.
……훗.
당신의 솜씨…… 나쁘지 않군요.
생귀나르님, 빨리 끝내야 합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피의 포효에 맨프레드는 뒷걸음쳤다.
아스카론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자신을 쉽게 놓치지 않을 거란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붉은색 번개가 사령탑 위에서 번쩍였다.
저건…… 티카즈의 뿌리인가.
너도 저걸 알겠지. 마치 내가 네 무기를 알고 있는 것처럼.
……신호군. 놈에게 알렸나?
아미야, 시간이 없어.
네, 레토 중령만 데려가면……
으윽……!
방어에 집중해. 뱀파이어의 힘은 이 정도만이 아니다.
하…… 또 피를 많이 낭비하게 됐군요.
조금 전의 전투는 뱀파이어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는 옆에 숨어 있는 빅토리아 병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윽……! 당신…… 안 돼……
괜찮습니다, 레토 중령. 곧 당신의 목숨도 사라지게 될 거니까요.
중령님…… 중령님!
으아아악~!
병사들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뱀파이어 앞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척추에서는 피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그들을 대신해 명령을 따랐다.
병사들은 뱀파이어 생귀나르의 '축복'을 받은 것이었다.
……
자, 마음껏 공격하세요.
피는 생명이 끝났다고 마르지 않습니다. 피는 그저 당신의 헛된 움직임에 더 빨리 솟구칠 뿐이죠.
……
레토의 병사들은 더 이상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병사들은 전진하고 또 전진해, 옥상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갔다.
살카즈들의 전투에 의해 이 탑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살카즈들의 눈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평범한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병사들 대부분은 빅토리아 출신으로 레토와는 달랐다. 심지어 이 순간까지도 병사들은 레토가 무슨 목적으로 살카즈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모른다.
병사들은 단지 레토를 따라 여기까지 왔고, 그를 따라 절벽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후우……
그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뒤에 가만히 숨어 있으면 뱀파이어와 맨프레드도 자신을 서둘러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곧 추락할 병사들을 붙잡고 싶었다.
으윽……
검은색…… 에너지 다발…… 하……
……레토 중령.
당신의 눈에서……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자신이 가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 이미 사라진 커다란 환영을 사랑하고 있으며, 필사적으로 그걸 붙잡아 데려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살카즈가 한 약속을 정말로 믿고 있나요? 정말로…… 가울의 재건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
……
당신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중령님.
당신은 아직 희망이 있는 척 자신을 속이면서…… 전쟁을 피하고 싶은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이 모든 희생과 대가는 가울을 위한 것이라 억지로 믿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에게 속아 죽음으로 몰린 병사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네가 바로…… 저들이 말하는…… 어린 마왕인가.
……네.
나는 너의 적이다.
맞아요.
그런데 너는 지금…… 나를 잡고 있지. 내가 이대로 죽는 걸 원치 않는가.
저들은 너를 마왕이라 부르지만, 내가 본 것은……
그저 착한 아이일 뿐이군.
……
으윽……!
강렬한 괴로움이 갑자기 아미야를 덮쳤다.
눈앞의 리베리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었다. 뱀파이어나 맨프레드의 오리지늄 아츠 공격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애초에 공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미야, 아미야.
어떤 목소리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방금 햇볕에 쬐어 말린 새하얀 깃털 이불처럼 부드러웠다.
아미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머리 위의 하늘이 아미야를 향해 떨어지고, 짙은 먹구름이 덮쳐오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를 감싸 안았다.
……마치 숨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은 포옹처럼.
박사, 지휘관, 우리가 자주포를 다시 통제했어.
10분…… 10분만 더 주면 내가 전부 끝낼 수 있어.
후우…… 박사, 며칠 만에 내가 처음으로, 우리가 잘하면 정말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
……클로저 씨.
왜?
방금 그 말은 거뒀으면 좋겠는데.
왜, 내가 말하면…… 그러면…… 우와아아아, 박사, 어떻게 된 거야? 내 정찰 드론이 갑자기 일제히 미친 듯이 경보를 울리고 있어!
- ......
뭐라고 좀 해,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더 무서워지잖아!
잠깐, 저건……
(경고하듯) 크르르르……
- 켈시.
- 켈시가 왔어.
……
켈시는 우리를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게 아니었어……?
박사, 너 설마…… 나흐체러르 대군이 일찍 돌아왔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
그들은 소리 없이 행군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방벽을 통과하고 도시 절반을 넘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 발소리는 일종의 신호와도 같다. 신호는 요동치는 이 땅을 통해 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심장에 전해졌다.
눈에 보이는 거리마다 모두 살카즈 전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머리 위 구름층에서 드리운 그림자는 그들을 덮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림자 자체였고, 그들은 대지를 덮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