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튼튼하고 높은 성벽
아미야와 박사는 수성포 통제실을 폭파하는 데 성공했고, 시즈도 지하에서 왕실의 비밀통로를 가동하여 자경단과 함께 뱀파이어 생귀나르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한편, 철수 중에 아미야는 폐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 몇 명도 남지 않았다.
과거 전장이었으면, 빅토리아가 나를 상대로 적어도 증기 기사 두 명 이상은 출동해야 했었다.
하지만 너희를 보거라……
너희들은 그저 흔해 빠진 평범한 병사들일 뿐이다.
……대형 유지!
방패에 에너지가 남은 사람은 내 옆에 붙어!
저격수, 화력을 유지하며 적을 견제한다!
예, 혼 중위님!
내가 말했지…… 놈이 아무리 강해도 육체가 있는 살카즈 감염자에 불과하다. 오리지늄 아츠에는 한계가 있다!
내 아츠가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건가?
내가 힘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너희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으아악!
블레이크!
혼 중위님, 제 검을 받으십시오……
……알았어.
설마 쓰러질 때조차 너를 향한 눈빛에 희망을 품고 있을 줄이야.
그런 눈빛은 이제 런디니움에서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미약한 빛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혼 중위님!
……로벤?
하아…… 하아…… 여기서 쓰러진다 해도…… 결국…… 결국은 런디니움에 돌아온 셈입니다……
……
살카즈!!!
……한 번에 모든 탄약을 쏟아붓겠다고?
제법이군. 처음으로 내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남은 방법은 없을 터.
왜, 동료들이 한 명씩 죽어 가는 걸 보고 전의라도 상실했나, 화이트 울프?
……
리타.
네가 네 아빠에게 실망한 걸 다 이해한다.
그래, 우리 몸에는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빅토리아가 증기 열차를 발명하고 수십 년 뒤에 또 그 기술을 버렸듯이……
지금의 빅토리아는 본래 우러러봐야 마땅한 왕관을 내려놓았고, 나와 네 할머니와 같은 전사들도 더 이상 그녀를 위해 싸울 필요 또한 없어졌다.
언젠가, 화이트 울프는 자신이 따르는 사자 파디샤와 함께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흐릿한 모습이 될 것이다.
네 아빠는 이 점을 보았기에, 가족이 시대의 흐름에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발톱을 무디게 만든 거였다.
하지만 너는 달라.
너는 변화하고 있는 빅토리아에서 자랐어.
리타 스카만드로스, 너는 더 이상 아슬란 왕을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언제나 너의 집이 되어 줄 거다.
살카즈…… 너희가 우리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한, 나에게는 언제나 싸울 이유가 있다.
너를 쓰러뜨리고자 한다는 점에 있어서, 난 모든 빅토리아인과 똑같다.
네 방패는 이제 쓸모없을 텐데.
나에겐 아직 검이 있다.
검…… 훗, 그냥 평범한 검이 아닌가.
그런 검으로 나와 싸운다고?
핫…… 이 검을, 그리고 나를 얕보지 마라.
네가 걱정하던…… 증기 기사도……
빅토리아가 만들어 준 갑옷을 벗으면……
그들도 그냥……
빅토리아인이야!
우리…… 들어왔어? 벽이 언제 이렇게 부드러워졌지……
그러게. 방금까지만 해도, 나는 머리가 빅토리아 방벽 위에서 붉은 꽃을 피울 줄 알았는데.
이건 미저리 씨의 오리지늄 아츠입니다. 저희가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맞아…… 켈시도 네 머리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했어.
내 손도 싼 게 아니거든!
이번 경험으로, 다시는 너한테 어딜 데려 달라고 안 할 거야…… 네 오리지늄 아츠보다 블레이즈가 날 안고 뛰어다니는 편이 백배 천배는 더 편하다고!
그렇지, 박사?
- 손이 바쁜 걸 보니,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네.
- 블레이즈에게 들려 다니는 것도 똑같아.
- 미저리는 좀 쉬어.
맞아요. 저도 방금 봤어요…… 맨프레드의 검이 하마터면 미저리 씨에게 닿을 뻔했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격이었어.
네가 맨프레드의 화를 돋우는 데 성공했기에, 내가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 다시는 놈을 속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저도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저에게 질문했을 때 확실히 그의 분노가 느껴졌어요. 그 분노는 저를 향한 게 틀림없어요.
만일 맨프레드가 전력을 다한다면 그들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내가…… 쿨럭쿨럭……
미저리 씨, 그 빅토리아 군인을 돕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오늘처럼 대규모의 물질 변환 오리지늄 아츠를 연속으로 사용하는 건, 신체에 너무 큰 부담이 될 거예요.
……괜찮아, 아미야.
나 아직은 죽지 않아. 게다가, 켈시와 약속했거든……
당신들, 정예 오퍼레이터들이…… 켈시 선생님과 한 약속이 한두 가지인가요?
얼른 응급약을 주사하세요. 런디니움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됐어요. 미저리 씨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피를 겨우 삼키는 건 원치 않으니까요.
아미야, 적이 오고 있어.
- 아미야, 적들을 막아!
- 피스트, 집라인 여섯 개 묶어.
- 클로저, 폭탄 설치하러 가자.
네. 미저리 씨는 런디니움 방어 시스템의 약점을 찾아 주세요…… 반드시 여기 통제실을 파괴해야 합니다.
빠르군…… 화이트 울프. 이것이 너의 원래 모습인가?
이렇게 사나운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귀족의 예법에 길들어져 있었다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살카즈, 지금 너의 모습도 소위 문명이라는 것에 의해 포장된 게 아닌가?
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들어서 말이야.
네가 전력을 다해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 도시의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한……
아니, 잠깐. 화이트 울프, 설마 너도 나를 견제하기 위한 건가!
너…… 또 한 번 로도스 아일랜드와 손을 잡았군.
그들이 누군지 알고는 있나? 그들의 리더 카우투스가……
……내가 아는 건, 그들이 널 막을 수 있다는 것밖에 없다.
화이트 울프, 만에 하나 너희들의 계획이 정말로 성공한다면…… 오늘 런디니움의 거대한 방벽 한구석이 무너지는 모습을 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이게 정녕 네가 보고 싶었던 건가? 난공불락의 런디니움, 그 신화는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난공불락의 신화?
너 같은 녀석조차 여기에 서 있는 마당에…… 난공불락의 신화라는 게 오히려 더 웃기지 않아?
제길! 바깥에 있는 대공작들이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거 알아? 드디어 네 얼굴에도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어.
그건 내 결정이 옳았다는 뜻이지.
이 높은 벽의 역할이…… 그저 도시 안에 있는 빅토리아인들의 비명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틀어막는 거라면, 이 벽은 본래의 의미를 이미 잃어버린 거나 다름없어.
차라리 대공작들에게 들려주지 뭐!
우리 동포들이…… 너희의 학살 아래서 어떻게 울부짖고 있는지 말이야!
얼마나…… 얼마나 더 있어야 나갈 수 있지?
으…… 통로가 무너질 것 같은데…… 이러다가 전부 여기서 죽는 거 아니야?
발밑을 보면 안 됩니다, 뒤돌아봐도 안 되고요.
무서워서 참을 수 없다면 앞길만 보세요.
신호등이 아직 빛나고 있습니다. 이건 전사들이 우리를 위해 밝혀 준 희망의 빛입니다.
저 불빛이 서서히 밝아진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런디니움의 햇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살카즈의 화력이 너무 강해……
락락, 이래서는 열차에 접근하는 것조차 무리야.
……
포격도 계속되고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지휘관님도 소식이 없어……
난…… 내 가족을 믿어.
가족에 대한 믿음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야.
빌어먹을, 어떻게 해도 뿌리칠 수 없네!
아니…… 저 녀석의 속도를 너희도 봤지~?
저 녀석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있어. 마치…… 마치 우리가 도망치게 풀어주는 것처럼……
그건 변태 아니야?
음…… 여러분의 숨소리와 심박 소리를 들어보니, 드디어 지친 모양이군요.
이게…… 살카즈의 명예인가?
이건 전투라고도 할 수 없어.
……전투요?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여기에 '마왕'이 없는 이상, 제게 걸맞은 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축 무리와 명예를 논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들을 사냥하는 건 단지 감각적인 자극만을 위한 것일 뿐, 궁극적으로 만찬의 테이블에서 애피타이저로밖에 나타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냥감이라는 소리네?
네가 아무리 살카즈라고 해도,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 학살을 자행하는 건 너무 야만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당신들이 이해하는 문명의 척도로 저를 헤아리려 하지 마십시오. 그건 저에게 있어 가장 심한 모욕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 통로의 더러운 잔해 속에서 당신들이 완전히 다져지기 전에, 최대한 저에게 저항해 보세요.
제가 당신들의 피로 당신들 죽기 전의 생각을 기록할 겁니다…… 공포, 분함, 그리고 분노…… 자, 이 모든 감정을 제게 쏟아보십시오.
비나, 서둘러……
아니.
비나!
모건, 너도 물러나.
음……
당신, 설마 저 녀석과 맞서 싸우려고?
……그래.
당신 혼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어.
나도 알아.
설령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겨 혈육이 이 파이프 안에서 얼룩으로 남는다 해도, 당신은 도망칠 생각이 없는 건가?
너희들이…… 나보다 빨리 달릴 자신이 있다면 말이야.
어째서?
이유는……
없어. 그냥 그러고 싶을 뿐.
만약 머리 위에 있는 도시가 우릴 향해 무너진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 도시를 껴안고 싶어.
그렇게 된다면……
파이프 안의 신호등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잘못 본 걸까? 런디니움의 지하에 별빛이? 아니지…… 설령 지상일지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먹구름 뒤편의 별을 보지 못했던가?
시즈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문득 그게 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버튼이었다.
버튼을 뒤덮고 있던 먼지가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마침 그 버튼은 빛을 발하고 있고, 시즈도 그게 무슨 버튼인지 잘 알고 있다.
세 살 되던 해, 시즈는 처음으로 왕궁 지하에 내려왔었다.
그녀의 선생님은 시즈를 업고 있었고, 시즈가 버튼을 누르도록 커다란 손으로 버튼을 가리켰다.
런디니움의 지하 공간은 자신의 근골을 뻗으며, 미래의 왕을 향해 생기 넘치는 혈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십여 년 후……
그녀는 다시 그걸 보게 되었다.
모든 포인트에 폭탄을 설치했어!
박사, 철수 준비도 끝냈어!
여기다, 빨리. 저들을 막아……
앗……
아미야! 큰일이다, 적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설마 미저리가 늦게 도착해서 걔네들이 맨프레드를 견제하지 못했나?
여긴 제가 막을게요. 여러분은 먼저 가세요!
박사님, 기폭장치를 저에게 주세요……
- 안돼.
박사님, 제가 이 적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도망칠 기회가 없어요!
박사님이 무사히 떠나신 걸 확인하면 제가 바로 이 통제실을 터뜨릴 거예요……
- 안돼.
박사님, 시간이 없어요. 자경단 전사들도, 빅토리아 병사들도, 하이디 씨와 시즈 씨도……
그리고 포격을 받고 있는 빅토리아인들까지, 저희에겐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없단 말이에요!
- 아미야, 내 손을 잡아.
- 기폭장치를 눌러야 할 때 알려줘.
박사님……!
콜록콜록…… 검은 선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금입니다!
박사님, 어째서…… 절 막으신 건가요?
그냥 그러고 싶어서.
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연약한 아이가 아니에요……
다시는 박사님의 발목을 잡지 않을 거예요. 전 이제 아츠와 화염도 막을 수 있는걸요.
알고 있어.
아미야는 대단해. 아마 나보다 더 대단할걸.
내게 다시 선택할 기회를 얼마든지 준다 해도……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게 드라코의 화염이든, 폭발의 불꽃이든……
난 똑같이 했을 거다.
박사님……
후우…… 겨우 잡았다!
박사, 아까 허리에 집라인 여섯 개를 달아달라는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움직이기 좀 불편하긴 하지만…… 뭐, 됐다. 어차피 넌 평소에도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드론, 이륙!
박사, 깜짝 놀랐지? 박사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드디어 이 기능을 개발했거든…… 바로 사람을 견인하고 활공하는 기능이란 말이지!
항속 거리는 얼마 안 되겠지만, 적어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는 있어……
- 더 맹렬하게 폭파시킬 때가 왔다.
통제실……!
그들이…… 해냈구나……
으윽……
너…… 이미 힘을 다한 건가? 검을 휘두르지도 못하는 상태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상처로 벌써 열 번은 쓰러졌을 거다!
……이제야 깨달았나? 이미 늦었어.
……
장군님, 통제실의 폭발이 수성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포대에 연결된 방벽 구조물이 심각하게 손상된 탓에……
지금 떠나지 않으면 저희도 추락하고 말 겁니다!
……모두에게 전해, 철수다!
그럼 저 병사는……
……이미 이겼다. 하지만 쓰러뜨리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여긴 이제 내가 시간을 허비할 가치가 없다.
핫…… 하하……
빅토리아의 화이트 울프, 존경할 만한 상대였다.
네가 살아서 이 방벽을 내려갈 수 있다면……
다음에 만날 때 내가 직접 이 검으로…… 네 용기에 걸맞은 죽음을 선사하도록 하지.
다음……
과연 다음이 있을까?
런디니움의 성벽이 무너진다.
그녀도 끝없이 추락한다.
내가…… 내가, 해냈어.
너희들이…… 떠나기 전까지……
……쓰러지지 않았어.
대량의 출혈로 인해 그녀는 거의 모든 감각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검과 방패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강철보다도 단단하여, 부서질지언정 굽혀지지는 않는다.
빅토리아가 만들어 낸 병기는, 여전히 런디니움의 방벽 위에 남아 있다.
빅토리아가 단련한 전사 또한, 런디니움의 방벽 위를 계속 지킬 것이다.
성벽 일부가 런디니움 지면에 떨어질 때면……
그녀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벽이…… 도대체 얼마나 높을까?
그런데, 어째서……
……위를 향해 날고 있지?
움직일 수 있습니까? 제 손을 잡으십시오!
……로벤?
너…… 아직……
예, 아직 살아있습니다! 운 좋게도 떨어지면서 외벽을 잡았고, 때마침 미저리 씨가 구해줬습니다!
자, 병사, 너의 싸움은 아직 끝이 아니다.
……정말이지,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면 안 되나?
안 됩니다!
혼 중위님, 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 중위님의 병사는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로벤, 너…… 어느샌가 예전의 내 대원처럼 시끄러워졌네.
됐다……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시야는 다시 선명하게 돌아왔다.
런디니움의 방벽은 아직 그대로다. 가장 높은 곳에 작은 흠집이 생기긴 했으나, 방벽은 여전히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다.
……이 진동은?
드디어 포격 때문에 이 지하가 무너지는가?
아니, 아닌 것 같아~
이 진동은 발밑에서 울리는데……
비나, 설마 너 뭐 했어~?
……나갈 길을 찾았다.
통로가…… 위로 움직이고 있네?
설마! 우리가 오랫동안 여기 있었는데도 이런 장치가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어떤 '현지인'들은, 다른 현지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법이지.
……
저 괴물이……
쫓아올까?
……아마도.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설마 새로운 길을 찾은 겁니까?
아아…… 어쩐지. 그렇군요.
이 냄새는…… 설마 저 필라인의 냄새인가요?
아니…… 이른바 왕족이란 단지 권력을 공고하기 위한 거짓일 뿐이죠. 마치 가소로운 이 나라의 문명처럼.
설령 그녀가 그 도망치는 새끼 사자라고 해도, 피의 냄새는 다른 필라인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확연히 다른 이 냄새는 과연……
흥미롭군요.
테레시스는 이를 알고 있을까요?
네게는 확인할 기회가 없을 거다.
호오?
당신,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테레시스 곁에 있었던 그 학생이었군요. 하지만, 당신의 선생님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저를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녀석은 선생의 자격을 잃었다.
음?
이 주술의 냄새…… 당신도 오셨습니까, 꼬마 밴시? 당신은 지금쯤 저의 부하들과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어설픈 캐스터로 내 발을 묶기엔 부족하지.
흐음……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죠.
곧 무너질 것 같은 이 통로는 왕정들이 모이기 좋은 곳이 아니라서요.
저 자식, 나를 대놓고 무시하네? 왜, 내가 테레시스의 학생도 아니고, 고귀한 혈통도 아니라서?
저 수다쟁이 늙다리가, 사람을 아주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네. 폭탄 백 개로 송별회라도 열어줘야 정신 차리지. 너희들은, 의견 없지?
……상황을 보고하라.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이 통제실에서 뛰어내렸습니다만, 그 카우투스 때문에 저격에는 실패했습니다……
지하 통로의 저항군은?
어, 지하통로의 폭발은 감지했습니다만…… 생귀나르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드레르는, 어디 있지?
중상을 입고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
한 팀을 모아 즉시 도시 방위 시스템을 점검하고, 손실을 보고해. 우리는 더 많은 수성포를 가동할 준비를 수시로 해야 한다…… 여차하면 주포도 가동하고.
남은 사람들은 기차역을 포위한다. 살아있는 저항군은 반드시 그쪽으로 도망칠 거다.
저…… 정찰병의 보고입니다. 또 다른 무리가 현재 급속도로 기차역에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
맨프레드, 자책할 필요 없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
당신이 여긴 어쩐 일로……
락락, 방벽 쪽을 봐.
수성포가…… 멈췄나?
신호 보내!
오고 있어, 다들 올라오고 있어!
하지만 살카즈도……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어!
놈들을 잡아! 전부 죽여 버려!
이 살카즈들만 물리치면 열차를 가동할 수 있어!
도망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버려!
으윽……
뭐야, 저쪽에서도 저항군이 오는데?
어?
……지원군인가?
북쪽에서 온 부대가 살카즈 봉쇄를 돌파했다!
저들은…… 저들은 도대체 누가 부른 거지?
설마, 중앙구역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러 간 전달자 중에 생존자가 있었던 건가?
수디언구 친구들, 잘 해냈다!
남은 전투는 우리 전문가들이 이어받도록 하지!
저들이…… 경험이 매우 풍부한 것 같네……
저건……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
싹 다 쓸어버려!
자경단 전사들이 지하 통로에서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저격수, 살카즈 통신병들을 저격해……
예, 몬터규 님!
……몬터규?
익숙한 이름인데, 어디 신문에 나왔던 귀족 이름 아냐?
집중해!
저 사람들이 누구든 간에, 일단은 같은 편이라는 게 확실하다!
길이 뚫렸다! 빨리, 모두 열차에 탑승해!
하아…… 하이디 씨, 드디어 올라왔네요……
네, 제가 말했죠. 우리의 전사들은 실망시키지 않는다고요.
……그 여자의 동료들이네.
저희 전달자가 그 여자와 연락이 닿은 걸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쪽 로도스 아일랜드의 전달자지.
다그다! 저기 봐, 다그다야!
저 녀석……
……응.
인파 속의 다그다도 일행을 보았다.
그녀는 싸우고 있던 살카즈를 내팽개치고 주저 없이 통로 쪽 입구로 달려와,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나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아니,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어, 너는 언제 돌아와도 늦지 않아.
이 바보야, 그…… 그렇게 확 떠나 버리는 바람에 너를 팰 시간도 없었잖아!
그럼…… 지금 패도 늦지 않아.
저기, 비나, 너는 다그다가 돌아오는 거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왜 인드라를 속였는지 알겠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으면, 인드라는 귀족 용병들의 도움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적부터 처리해!
……내가 뭐 언제 놀고 있었어~!?
비나, 아직 말이 안 끝났어…… 그래도 나한테는 귀띔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하아, 덕분에 추격당하는 와중에도, 나는 다그다가 어디 이상한 구석에 가서 살카즈랑 자폭하려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고~!
미안, 모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맹세해.
시즈 팀, 전원 집합.
박사 일행이 도착하면, 함께 이곳을 떠날 수 있어.
여러분, 저희 돌아왔어요!
아미야?
왜 하늘에서……
착지한다! 다들 비켜……!
집, 집라인을 당겨! 열차에 부딪치면 안 돼. 유일한 탈출 수단이라고.
박사님은 제가 안고 있으니, 문제없어요!
착지 성공!
우…… 우리, 정말로 돌아왔네?
락락……
지휘관, 락락은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어.
당신 덕분이야, 피스트. 그리고 당신이 데려온 로도스 아일랜드 여러분의 덕분이고.
핫…… 빌 형, 봤어?
내가……
안 돼, 기절하는 척 농땡이 피우려고? 싸움은 아직 안 끝났다고!
움직일 수 있으면 빨리 동력실에 와서 도와줘!
……아직 살카즈 추격병이 있다!
저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저희가 여기서 막아낼 테니까요.
응, 맞아.
- 모두가 함께.
지휘관, 열차가 움직였어……
여러분, 다들 준비됐어?
아미야, 우리도 올라가자!
네!
출발!
……
아미야?
아미야, 열차가 출발한다.
아미야…… 뭘 보고 있어?
저는……
…………
카우투스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숨조차 멎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당신은 아미야가 매우 놀랐다는 걸 눈치챘다. 오퍼레이터들 앞에서, 그녀는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열차를 쫓던 살카즈들도 멈췄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 살카즈가 폐허에 들어갔다.
모든 연기가 그녀의 발밑에서 흩어졌고, 모든 화살 소리가 그녀 주위에서 그쳤다.
오직 바람만 세차게 불 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휘날린 흙먼지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그녀의 백발을 더럽혔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그저 조용히 잔해를, 한때 수성포의 일부였던 것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칠흑 같은 파울 비스트가 날아와 아직은 잔열이 남아있는 포구에 앉았다.
속도가 붙은 열차에 놀랐는지, 파울 비스트는 날개를 퍼덕였다.
백발의 살카즈도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열차 안의 사람이 보일 리가 없겠지만, 그녀는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인지 알아채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나 온화했고, 우수에 찬 두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 많은 슬픔은 전부 그녀의 것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의 것일지도 모른다.
아미야, 괜찮아?
카우투스 소녀는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도 그녀에게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귓가에는 파울 비스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에서 녀석들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당신들을 앞서 저 거센 바람 속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열차는 일행을 태우고 빠르게 역에서 멀어졌다.
방벽, 전장, 그리고 백발의 살카즈, 모든 것이 저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덜컹, 덜컹, 덜컹.
이건 뇌리에 남아 있는 포격의 소리일까, 아니면 열차와 레일이 부딪치는 소리일까? 또 혹은 멀지 않은 곳에 뒤덮인 먹구름 속의 천둥소리일까?
런디니움의 중심이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