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아머레스 유니온의 습격에서 구해줬는데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플라스틱의 기사 셰브치크를 상대하면서, 감염자인 '송곳니'의 기사 저스티나는 자신의 과거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회상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파투스
저스티나, 또 짚더미 위에 기어 올라갔구나.
늘 저쪽을 보던데, 또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보고 있는 거야?
알지, 물론 그랜드 나이트 영지는 알고 있지. 그 대단하신 기사 나리들이 경기하는 곳, 맞지?
네가 하도 그 얘길 해서, 벌써 외워버렸거든!
......
하아, 저스티나, 정말로 저기 가고 싶은 거야?
네가 농사일을 하지 않을 때 연습하는 거 알아. 네가 기사가 되고 싶은 것도 사람들이 다 알고. 너는 강도도 쫓아낼 수 있고, 걔네들은 네 상대가 되지도 않지. 다 알아.
하지만 저스티나, 그랜드 나이트 영지는 너무 멀어…… 가면, 다시 돌아는 올 거야?
돌아온다고? 정말? 기사가 되면?
……그럼 약속하는 거다. 네가 금의환향하길 기다릴게. 그때가 되면 이곳이 기사 저스티나의 고향이라고 다 알릴 거야!
발자국이 없습니다. 누가 지나간 흔적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가진 않았습니다.
병원 팀이 목표를 놓쳤어. 놈들이 도망친다면 분명 이 주변을 지나갈 거야.
계속 경계하고, 수시로 상황을 보고해.
네.
……
응?
으윽……
......
……가자.
곧 들킬 거야. 이 틈을 타서 같이 가자.
너한테 지시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감염자.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저 미천한 놈들을 간단히 해치우다니, 실력은 인정하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 그게 네 지시를 따른다는 건 아니니까.
……
이 일대는 모두 아머레스 유니온에게 포위됐어. 너 혼자 도망치긴 어려워.
놈들은 너를 계속 쫓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놈들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게 해주지.
……힘들걸?
넌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잖아. 지금 상태로 놈들의 감시망을 벗어나기도 어려울 거야.
흥…… 빌어먹을 아머레스 유니온.
너희들과 협력한다고 했지만, 그건 단지 우리에게 공통의 적이 있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마라. 내가 저 미천한 살인자들이 반드시 자기 행동에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다.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하자.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너희들과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을 것 같은데?
그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챔피언에게 감사하도록 해라, 계집. 그가 아니었다면 넌 갑옷을 입고 여기서 나랑 대화할 날이 오지도 않았을 거다.
……
네 말이 맞아.
나는 예전부터 피의 기사에게 아주 감사했지.
응?
……
뭐냐, 얘기는 그게 끝인가?
……경기.
너와 마리아 니어의 대결을 본 적이 있어…… '플라스틱의 기사' 셰브치크.
사실 난 네가 싫어.
그나마 아레나에 있는 네가 지금보다 나아.
네 기분이야 내가 알 바는 아니다만, 그 태도는 주의하도록. 정말 그런 거라면 너는 굳이 날 병원에서 빼내지 말았어야지.
소나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게다가 뭐. 소나가 너희 두목인가? 흥, 이름을 들으니 또 계집애 같군……
……소나는 내 동료야.
지금 바로 아지트로 돌아간다. 소나랑 다른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
……내가 잠시 손을 잡는 것에 동의했다고, 너희와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감염자 기사.
아니…… 그럴 일은 없어. 너는 확실히 우리와 다르니까.
하지만 '플라스틱의 기사' 셰브치크, 너 혼자 아머레스 유니온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
하…… 그렇지. 네 말이 맞아.
가소롭기 그지없군. 지금의 카시미어는 감염자들도 기사 행세를 하게 됐고, 아머레스 유니온 같은 어둠에 숨어서 해코지하는 놈들조차 도처에 설치고 다니니까.
참으로 가소로워……
……일단 다른 사람과 합류한다.
우리만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10일 전
너희는 주민이 아니잖아.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끝이 없네……
……
인파에 숨어 습격하려는 거였냐?!
날 얕보지 마……
기다려! 잠깐 멈춰봐!
……어머나, 내가 늦게 왔나? 벌써 난투전이 되었네.
어떡하지? 이러면 곤란한데.
뭘 꾸물거려. 이렇게 된 이상 데려가는 수밖에 없잖아.
뭐, 그럴 수밖에 없지.
너희는……
안녕, '송곳니'의 기사. 아직 기사의 칭호를 받은 걸 축하해 주지도 못했네. 이거 경사인데 말이야.
너에 관한 보도를 봤어. 인기가 대단하더라?
프리랜서 기사단 설립 선언, 끊임없는 논쟁으로 인기몰이? 흥, 결과적으론 파리떼만 불러들였잖아.
감염자 기사……
닥쳐.
윽……
됐어, 어차피 손을 댔으니 이제 약점도 잡혔잖아. 하아……
불꽃 꼬리, 그리고 회색 붓꼬리…… 너희가 여기서 왜 나와!
……이놈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거야?
잘 알고말고. 음, 여기서 계속 얘기하기는 좀 그런데…… 녀석들은 일을 더 크게 벌이고 싶어 하니 금방이라도 언론사들이 찾아올 거야. 그럼 너한테 좋을 게 없거든.
게다가, 너 다쳤지?
우리를 믿는다면 함께 가자.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설명해 줄게, 어때?
……
소나, 그 말투는 유괴하려는 것처럼 들리는데.
엥? 그래?
응.
……믿는다.
응? 뭐라고?
날 어디든지 데리고 가줘. 너희를 믿으니까.
너희랑 나는……
우리는 같잖아. 그러니까 너희를 믿어.
여기는……
어머! 빨리 나왔구나. 상처 치료는 다 된 거야?
응.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염자야?
맞아,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감염자야. 대부분은 여러 가지 사고로 감염되어, 일자리도 잃고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야.
형편이 좀 그렇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
소나, 이보나 쪽에 문제가 생겼어. 먼저 좀 가볼게.
아머레스 유니온은 분명히 다시 움직일 거야. 요즘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주고 있어.
알아. 안심해, 내가 있으니까.
……
……
……그래, 맡긴다.
……쟤는……
응? 아, 회색 붓꼬리? 가끔은 좀 딱딱하게 하긴 하지만 좋은 녀석이야.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나한텐 말을 건 적이 없어.
아하하…… 쟤는 낯을 좀 가리거든.
……
……
(하아) 그래, 뭐……
실은 그레이너티는 네가 우리랑 다르다고 생각해. 우리랑 같은 길이 아닐 거라고.
너는 이번 토너먼트의 스타 선수인데다 얼마 전에 기사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핫하잖아!
아무리 봐도 미래가 창창하단 말이지!
……그렇지도 않아.
감염자…… 감염자 기사에겐 미래란 없어.
방금 경기에서 이긴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
처음엔 기사가 될 기회가 있으니 희망도 있다고 생각했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면 어쩌면……
어쩌면 존경을 받고, 진짜 기사 취급받으면서 과거처럼 살 수 있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감염자 기사는 여전히 감염자야. 아무런 차이가 없어.
……맞아. 나도 회색이한테 그렇게 말했어.
게다가…… 기사가 되면 뭐? 그 인파 속에 숨어 너를 습격하던 놈들을 봐. 그것들은 네가 감염자 기사든 귀족 기사든 상관 안 하잖아.
그 녀석들이 네가 말한 아머레스 유니온이야?
기사 킬러라…… 듣기 거북한 이름이네.
맞아, 바로 그들.
상업연합회를 위해 일하면서 말을 안 듣는 기사들을 뒤에서 처리하거든…… 스스로 기사 처리 전문가라며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하긴, 아무리 정직한 기사라도 관중들의 환호와 후원금 앞에선 존엄이 얼마나 남아있겠어? 우리야 더 말할 것도 없고.
……
이번에 나를 습격한 것도 상업연합회가 명령한 걸까?
그럴걸. 네가 너무 튀는 것도 있겠지만, 기사단의 가입 권유도 거절하고, 거기다 그런 선언까지 했으니…… 걔네들에겐 눈엣가시나 다름없어.
네가 그들의 돈줄이 될 생각이 없다면, 너를 '불명예' 퇴장시키는 수밖에 없겠지.
……
어때? 이런 이유로 습격을 당하다니, 너무 황당하지 않아?
……두 번의 3주.
어?
난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 오는 길에 의도치 않게 감염됐어.
감염자라는 이유로 기사 등록을 거부당했고, 머물 수 있는 호텔도 없어서 주변 지역을 3주간 떠돌아다녔어.
그랬구나……
3주째가 됐을 때, 피의 기사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어.
그리고 다시 3주가 지나자 감염자를 위한 기사 등록 창구가 정식으로 개방됐더라.
그땐 남은 돈이 얼마 없었어. 그래서 암시장의 불법 경기를 뛰었고 겨우 등록금을 모았거든.
많이…… 고생했겠네.
감염자 기사의 지하 경기장도 암시장이랑 거의 다를 게 없어.
지하 경기장부터 토너먼트까지, 별 황당한 일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거에 별로 놀라지도 않아.
하하, 맞아…… 지하 경기장에는 아머레스 유니온보다 더 한심한 일이 쌔고 쌨지.
다들 많든 적든 그런 걸 경험해 왔기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이렇게 모여 있는 건지도 몰라.
……여긴 일반 감염자도 많네.
음…… 뭐랄까, 그래도 기사 스포츠는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어. 그 돈으로 이런 갈 곳 없는 사람들 사기엔 충분하지.
그러고 보니, 이런 돈도 조금은 가치가 있네, 안 그래?
……응.
헤헷, 잘됐다.
뭐가?
네 성격 말이야.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해서…… 처음에 너랑 얘기했을 땐 네가 굉장히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어.
……
어, 왜 또 말이 없어진 거야?
……모르겠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흠……
이제야 알겠네…… 너랑 회색이랑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그리고 말을 절반만 하는 그 습관도…… 점점 익숙해져. 음, 간혹 이해하기 힘든 것 말고는 아무 문제도 없어.
……어쨌든, 이번에 도와준 거 고마워.
천만에, 별거 아니니까 괜찮아.
맞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바로 복귀한다면 분명 걔네들에게 또 찍힐걸?
당장이라도 오늘 사건이 기사화될지 모르겠네. 뭐라고 쓸 것 같아?
……모르겠어. 마음대로 하라지.
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 곳이 없어진 지 오래거든.
그랬구나……
이렇게 말하면 왠지 생색내는 것 같지만…… 이거 절대로 지금 생각해낸 게 아니야. 맹세코 나 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
나랑 그레이너티, 그리고 이보나, 너도 알 거야. 그 목청이 되게 큰 녀석.
……응, 기억나.
네가 프리랜서 기사단을 설립하고 싶다고 선언했잖아…… 실은 우리도 같은 생각을 했어.
이름은 내가 지었어.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이라고. 우리 기사단이야.
……!
저스티나, 갈 곳이 없다면 기사단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하는 건 어때?
날…… 초청하는 거야?
……진심이야?
왜, 그렇게 들리지 않았어?
……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
좋아. 들어갈게.
우리…… 함께.
저스티나, 출발하는 거야?
뭐든 좋으니까 다시 한번 풀피리 불어줘. 다들 네가 부는 풀피리를 좋아하거든.
......
너무 듣기 좋아.
앞으로는 네 부는 풀피리를 들을 수도 없겠구나. 다들 그리워할 거야.
너 혼자 그렇게 멀리 가는데 어떻게 걱정 안 하겠어? 너는 외로움도 많이 타고, 말주변도 없어서 언제나 조용히 사람들 곁에 앉아있기만 하잖아.
바람이 네 목소리를 전해줄 거라고?
너라면 꼭 기사가 될 거야. 네가 대단한 기사가 될 거라고 다들 믿어. 마치,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빛의 기사처럼 말이야.
저스티나, 행운을 빌게.
가끔은 우리 보러 돌아와.
여기까지 왔으니 괜찮을 거야. 앞에 마중 나올 사람이 있어서 이제 안전해.
상처는 괜찮아?
문제없다. 작은 상처뿐이야. 그런데 설마 감염자 기사들의 아지트가 변두리나 촌구석도 아닌, 도시 안에 있었다니?
감염자가 이 도시 안에서 살도록 허락할 사람이 없을 텐데…… 너희들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수작 같은 건 없어.
돈만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훗, 돈이라…… 맞는 말이다. 돈만 있으면 어려울 게 없지.
하지만 정보가 새기라도 한다면, 너희는 모두 법 위반으로 잡힐걸.
누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기 전에, 내 화살이 먼저 그 녀석 입을 막을 거야.
누구도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을 해치게 두지 않아.
그렇다면 어서 길이나 안내해. 아머레스 유니온 쓰레기들이 멋대로 군다는 걸 생각만 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상업연합회와 맞서기로 한 이상 빨리 움직이는 게 좋아.
너 같이 실력 있는 감염자 기사가 자신의 의지를 꺾어가면서, 나를 병원에서 데려오게 한 너희 감염자 기사의 두목을 만나게 해줘.
……
……딱히 꺾은 건 아닌데.
……뭐?
플라스틱의 기사를 구출하는 임무는 소나가 시킨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한 거야.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의지를 꺾은 게 아니라고.
……뭐야? 우린 서로 호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네가 대의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할 건가?
아니.
그냥…… 너한텐 가족이 있잖아.
무슨 뜻…… 설마?!
그 버러지들이, 감히 아이에게 손을 댄 거냐?!
걱정 마, 소나가 사람을 보내서 지키고 있으니까. 아머레스 유니온 킬러들도 이미 물러갔대. 네 아들에게 아무 짓도 못 했어.
……
감사를 표하도록 하지.
모두 소나의 계획이었으니까 소나에게 말해.
네가 무슨 일이 있는 걸 원치 않는 것과, 너라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건 다른 얘기야.
나는 단지, 네 아들을 봤으니까……
네가 없으면 걔는 돌아갈 집이 없어지잖아.
기사 저스티나에겐 고향이 있어. 기다리고 있는 가족도, 친구도 있고.
하지만 감염자 저스티나에겐 그런 게 없어.
……감염자에게는 갈 곳이 없으니까.
아니, 감염자뿐만이 아니라, 이곳에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
난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만약 바람이 정말 내 목소리를 전해준다면……
……
난 입을 다물고 싶어. 풀피리의 선율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거야.
저스티나를 여전히 순수하고 평범한…… 그저 기사를 꿈꾸는 소녀로 남겨두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