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존속
시라쿠사로 파견된 라테라노 공증소의 집행자 '이그제큐터'. 수탁인 '버메일'을 찾아낸 이그제큐터는 의뢰 내용에 따라, 버메일의 치료를 위해 로도스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다.
♪들리니 이 천둥소리?
♪빗물에 가려 산이 보이지 않아
♪누가 날 이 길로 이끌었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아
♪저 멀리 붉게 물든 구름아
♪날 고향으로 데려가 주겠니
10:37 a.m. 날씨/구름 많음
재앙 발생 확률이 낮은 시라쿠사의 황야, 어느 숲 속의 작은 집
음……?
……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적의는 없으니 숨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 죽이는 것들은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하다가, 꼭 마지막에 피를 보더군.
죽이다뇨? 단어 선택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저는 라테라노 공증소의……
닥쳐! 안 속아!
걸렸구나!
안 걸렸습니다만.
뭐?!
실례하겠습니다.
목표가 창문을 넘어 도주. 반응 속도 빠름.
환경 확인. 절인 파울비스트 고기, 무두질용 선반, 손질된 짐승의 이빨과 가죽, 가공용 단도와 목제 공구.
활을 내려놓으시죠. 창문 뒤에 숨어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에게 적의는 없습니다.
……그렇겐 안 되지!
경계심이 정말 높으시군요.
이거나 먹어라!
소, 손으로 화살을 잡았어?
이게 무슨…… 대체 뭐하는 놈이야!
정말 보고받은 대로, 난폭하고 폐쇄적이어서 교류하기 힘든 수탁인이군요.
나의 유언은 여기까지일세.
다만, 사적인 부탁이 하나 있네.
시라쿠사 숲에서, 외팔이 불포 소녀를 한 명 만난 적이 있네.
과거의 복수심에 빠져 피로 물든 그 땅에 아직도 매여 있더군.
불쌍한 마음에 그 아이를 도왔어.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지는 모르나, 삶을 갈구하는 그 치열한 모습이 내겐 퍽 감명 깊었거든.
나중에서야, 잠깐의 흥미로 어설프게 내민 내 도움이 복수를 향한 그녀의 집념을 더 불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네. 그때부턴 자나 깨나 마음이 편치 않더군.
그러니 이제라도 나의 남은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고 싶네. 남은 거라곤 이 얼마 안 되는 유품뿐이지만……
……말씀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당신의 친족 중에는 불포족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찾는 건 아주 번거로운 일이 될 겁니다.
그래서 사적인 부탁이라 하지 않았나. 이건 그저 자식 하나 없는 한 라테라노 공민이 죽기 전에 공증소에 남기는 작은 부탁일 뿐일세.
……
(저 사람 몸에서 피 냄새가 나. 게다가 왠지 싫은 느낌이 들어……)
(또 우리 집을 부수러 온 놈인가. 젠장, 웃기지 마!)
걸렸다!
과연, 이것도 함정이군요. 거의 모든 방향에 발동 장치가 있는 것 같네요.
잘 들어! 넌 이미 내 함정에 빠졌다. 죽기 싫으면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움직이지 마!
그래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습니다.
넌 누구지?
라테라노 공증소의 집행자이자, 이번 유언 집행의 담당자입니다. '이그제큐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라테라노……?
'버메일' 님, 당신이 바로 수탁인입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유언자 뒤렌마트 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난 그런 사람 몰라.
사정이 있어 여러 가명을 사용하셨거든요.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기밀유지 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칫, 이거 순 거짓말쟁이잖아! 그냥 여기서 죽어버려!
나는 절대 떠나지 않아. 아빠, 엄마, 삼촌, 숙모 그리고 친구들, 우리 종족, 모두를……
제 임무는 당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헛소리하지 마!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나 있는 거야?
협상을 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쳐 있죠.
흥, 이 숲에 들어온 이상은, 그게 누구든 다 우리 사냥감일 뿐이야.
네 발밑에 깔린 뼈들은 전부 여길 찾아온 짐승이랑 악당들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 함정을 잔뜩 설치해두셨더군요.
구덩이, 올가미, 수제 지뢰, 자동 표창까지.
제가 이미 전부 해체해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너무 초보적인 함정이라 의뢰대상인 당신이 다칠까 걱정되더군요.
……
저와 같이 가시죠.
……! 저리 가!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쏴버릴 거야!
또 도망쳐버렸군요.
어이, 왜 나를 구한 거지?
나도 결국은 사냥꾼이기 때문이지.
존경할 만한 업계 동료가 한쪽 팔을 잃고 피를 철철 흘리며 짐승 옆에 쓰러져 있는데, 같은 사냥꾼으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흥…… 난 못 속여. 넌 절대 사냥꾼이 아니야. 몸에서 흙냄새가 전혀 안 나거든.
하하, 널 너무 얕본 셈이 됐군. 하지만 이토록 어린 나이에 황야를 정복한 네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정말 감동했다. 이건 진심이야.
무슨 뜻이지?
그냥 혼잣말이다.
네 머리 위의 그 동그라미랑 등 뒤의 장식은 뭐지?
호오… 라테라노인을 본 적이 없나?
응.
이건…… 내가 버린 고향이 내게 남긴 표식이지.
사람은 태어난 땅을 버릴 수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많은 일이 있었거든. 자, 한 번 일어나볼까?
이걸 팔에 차보도록 하지.
이게 뭐야……? 팔? 철로 만든 팔인 거야? 되게 이상한 물건이네.
황야의 아이에 대한 내 경의의 표시라고 해두지.
넌 물건 고치는 사람이야?
예전에 맡았던 직책 덕에 많은 걸 배웠거든.
……
……날 구해줬으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복수하려면 팔이 하나 필요했어, 고마워.
복수인가…… 네 운명을 논하지는 않겠다만……
그래도 이 팔로 활시위를 당길 때,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구나. 복수 말고,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를 말이야.
미리 생각해놓지 않으면, 결국 지금의 내 꼴이 나고 말 거야.
난……
'복수를 위해 산다'는 말은 하지 마. 너무 진부해서 시시하니까.
……그래, 시시하지……
(라테라노…… 분명 라테라노인이라고 했어……)
(설마 그 녀석, 정말로……)
윽! 아파! 또 이러네…
아무래도 뒤렌마트 님의 판단이 정확한 것 같군요.
뭐?
젠장, 어느 틈에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윽! 이거 놔!!
멈추시죠. 당신이 유언 수탁인인 이상, 저는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건 그분의 편지입니다.
……!!
왜 아직도 저항하는 겁니까?
……편지에서 그 녀석 냄새, 그것도 피 냄새가 나. 그 녀석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라테라노에서 여기까지 긴 여정을 지나쳐 왔습니다. 냄새가 남아있을 리 없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해! 안 그러면 지금 바로 죽여버릴 거야!
윽!
일단은, 힘의 차이를 보여줘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 같군요.
그리고 나서, 유언 수탁인인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여,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뒤렌마트 씨는 수술대에서 죽었습니다. 편히 죽지는 못했죠. 불치병을 앓고 있었으니까요.
너……! 이거 놔!
이건 그분의 선택입니다.
야! 너, 너 뭐 하는 거야!
오리지늄이 이미 몸을 뚫고 나왔군요. 감염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네 알 바 아니잖아!
원칙적으로는 집행 대상이 끈질기게 거부한다면, 저는 의뢰를 수행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의뢰인과 상사가 저에게 추가 조항을 하나 걸어버려서, 반드시 이행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버메일을 살아가게 해달라."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막연한 요구인지라 조금 난감합니다. 당신이 협력해주면 좋겠습니다만.
……그것도 그 녀석의 의뢰야?
그렇습니다. 그분께선 이미 모든 재산을 처분해 당신의 향후 치료 비용은 물론, 공증소 추가 비용까지, 모든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 녀석은 그냥 이 숲을 지나쳤을 뿐인데……
당신을 살게 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왜냐고 묻잖아!
당신에게는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유언을 전달했으니, 일단 저의 일은 일단락됐습니다.
뭐……! 어느 틈에 나한테 쑤셔 넣은 거야……!
이제 다음 단계를 이행하기 전에, 반드시 당신의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살아가고 싶습니까?"
……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당신은 대답만 하면 됩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난……
그렇지, 내가 자네를 어떻게 부르면 되나?
……이그제큐터. 굳이 어떤 호칭으로 저를 부르고 싶다면 이렇게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이그제큐터. 의뢰를 받아줘서 정말 고맙네.
……중정 공증소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저는 그저 직무를 다할 뿐입니다.
허허, 그렇군. 자네가 버메일을 찾는 일 말일세, 작은 부탁이 하나 더 있네만.
……구두 요청은 상황에 따라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요청은 공증소에 서면 형식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외가 없군그래. 별거 아니야, 그냥 작은 부탁일 뿐이라네.
부디 그 아이에겐 나의 과거를 알리지 말아주게. 아무 핑계나 지어대면 돼. 몸이 안 좋아져 수술대 위에서 죽었다든가 하는…
……필요성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군요. 당신의 신분과도 맞지 않고요. 당신은 수년간 공증소를 피해 다닌데다, 총으로 살해를 하기까지……
잠깐. 만약 이게 자네의 일을 덜 성가시게 만들어 준다면 어떤가?
……만약 그렇게 판단된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그 로도스 아일랜드란 곳 말이야, 정말 이런 이상한 병도 고칠 수 있는 거야?
광석병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고통은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당신이 전에 그 우르수스인들에게 한 행위를 고려한다면, 단독 행동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마침 저도 로도스 아일랜드에 가서 이행할 다른 계약이 있고요.
나랑 같이 가자 이거야?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흥, 싫어.
난 아직 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여길 떠나기 전에 종족 사람들이랑 작별 인사도 해야 되고.
이곳은 매우 위험합니다. 원한은 한쪽이 타협해서 끝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흥…… 잘 알고 있네.
어쨌든 방해하지 마. 볼일 다 끝나면 알아서 그…… 로도스 아일랜드, 거기로 갈 테니까. 그럼 됐지?
계산 중입니다.
뭐?
그 무법자들이 다시 당신을 찾아올 경우, 제 탄약이 모자라진 않을지 계산하고 있습니다.
탄약……? 아니 그럼, 황야까지 날 데리고 돌아가겠다는 소리야?!
당신의 대답에 근거하여, 당신은 공증소가 전한 유언을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아직 유언 내용이 이행되지 않았으므로, 당신이 위험에 노출되는 걸 두고 볼 순 없습니다. 이건 제 의무입니다.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어! 나는 줄곧 혼자서……
그리고 저는 당신이 의도적으로 유언을 수락했다고 생각합니다. 틈을 타 도주할 소지가 다분하죠.
쳇.
그럼 더 지체할 순 없으니, 출발하겠습니다.
야! 난 아직 대답 안 했다고! 너 같은 외부인이 그럴 필요는…… 잠깐, 어디 가는 거야? 그쪽인 줄은 어떻게 알고?!
조사한 결과입니다.
잠깐! 너 발밑에……
함정은 모두 해체해놨습니다. 따라오시죠.
아오!!! 웃기는 놈이네 진짜! 언젠가 꼭 손 봐주겠어…!
이그제큐터, 그 아이를 잘 부탁하네. 물론, 이건 자네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 될 걸세.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 짓지 말게. 곧 알게 될 테니.
그 아이를 진흙탕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게. 적어도 나처럼은 되지 않도록.
정의? 어쩌면 내가 한 모든 일은 정당한 것일지도 모르지. 만약 공증소에서 날 용서해준다면 말일세.
하지만, 여전히 칭찬받을 일은 아닐 거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게지.
허나 그 아이는 나의 유산이자,
나의 희망일세.
그 아이에게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