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ST-3마음을 찾는 길
군대를 대동하고 쉐라그로 향한 캐스터는 민중에 '독재를 꾀한 엔시오데스의 악행'을 낱낱이 선포한다. 아드소는 성산에서 엔야 일행과 만나고, 서로의 신앙을 둘러싼 언쟁을 벌인 뒤, 함께 성산으로 간다.
등장 오퍼레이터: 노시스, 데겐블레허, 아스트젠 더 라이트체이서, 실버애쉬, 스노우헌터
그러니까 네 말대로라면, 캐스터 공작이 오래전부터 쉐라그 곳곳에 특수요원을 대량으로 심어뒀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 모든 게 훗날 쉐라그를 흡수하기 위한 준비였고?
하지만 공작이 어떻게?
그건…… 제가 쉐라그에서 직접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내린 합리적 추측이에요.
그러면 쉐라그에 잠입한 수많은 빅토리아인 중에 하필이면 정의를 추구하는 너라는 기자가 껴 있었다는 건가?
그건 너무 무례한 발언이군요!
제 이름은 앨버타예요. 라타토스 씨가 빅토리아의 언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제가 신문에 실리지 못할 진실을 담은 기사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흐음……
기자 아가씨, 일단은 네 말을 믿어볼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혐의가 전부 벗겨진 건 아니야.
그 폭발 사건 이후로 내 호위대가 너희 끄나풀을 쭉 제거해 왔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를 촬영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난 네가 말한 그 특수요원들과 할 이야기가 많거든.
거절하진 않겠지?
하지만……
?!
피해!
데겐블레허가 옆에 있는 라타토스와 기자의 팔을 잡아끌고 뒤쪽 방으로 몸을 숨기자마자, 어디선가 날아든 섬광탄이 심문실 안에서 터졌다.
멀리서 미처 피하지 못한 브라운테일 호위병의 비명이 들렸다…… 날아온 칼 한 자루가 호위병의 심장에 꽂힌 후였다.
이런 젠장!
데겐블레허가 문가로 몸을 내밀자, 칼이 다시 날아왔다. 데겐블레허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고, 칼은 문틀에 박혔다.
무기를 보니 '회색 모자'인 것 같네.
우선 너희는 여기에 숨어 있어. 내가 습격한 놈들의 규모와 작전을 확인하고 올 테니까.
데겐블레허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트윈 소드브레이커스를 거칠게 뽑은 뒤, 어둠 속에서 날아온 두 자루의 단도를 정확히 튕겨내고 곧장 앞으로 돌진했다. 흙먼지가 일었고, 기자는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회색 모자'가 여기를 어떻게 안 거지?
네가 말한 거야?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게……
이상하네요. 가지고 나온 물건도 전부 확인했고, 뒤를 밟는 사람도 분명 없었어요.
조심해요!
방안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기자가 라타토스의 소매를 움켜쥐고 옆으로 몸을 피하자, 부서진 천장에서 떨어진 잔해가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쏟아졌다.
……그러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잠깐만요! 한 군데 더 있어요.
앨버타는 가슴에 걸린 카메라를 집어 들고 렌즈를 분리한 다음 셔터를 눌러 반사판을 들어 올렸다. 그 안에서 희미하게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이어서, 기자는 안에서 수상한 부품을 꺼냈다. 그것은 소형 위치 추적기였다.
여기다 숨겼을 줄이야……
그때, 폭발음이 울리고 짙은 연기가 점차 두 사람이 숨어 있는 방으로 번져왔고, 연기 속에서 데겐블레허가 나타났다. 그녀의 호흡은 다소 거칠었다.
처음에 온 건 '회색 모자' 3명이었어. 일단 처리하긴 했지만, 녀석들이 호출한 지원 부대가 벌써 오는 중이야.
라타토스, 나는 너를 보호해야 해. 여기를 떠나자.
……
만주원으로 가자. 근처에 내부 비밀통로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어.
저놈들도 만주원을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테니, 시간을 좀 벌 수 있을 거야.
잠깐만요, 저도 같이 가요.
만약 '회색 모자'가 계속 쫓아온다면, 저들이 쉐라그에서 벌인 암살 작전을 기록해 뒀다가 예전 자료들과 함께 국내에 있는 지인에게 맡길 생각이에요.
그렇게 하면 빅토리아의 만행을 모두에게 폭로할 수 있어요……
저는 절대로 끌려갈 수 없어요!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엔시오데스랑 같이 너를 심문할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너는 가기 싫어도 가야 해.
……그래, 라타토스는 안 죽었다. 셋이서 만주원 북문으로 들어갔다.
도망친 기자도 함께였다. 그 유명한 '어둠의 기사'가 보호하고 있더군.
공작님의 지시는 어쩌지?
……잠깐.
……공작님께서 직접 쉐라그로 오신다고?
카란 무역회사 본부 귀중
전 카란 무역회사 전 사장, 내 조카딸 엘리자베스의 아들 엔시오데스 실버애쉬
그리고 모든 쉐라그의 국민 여러분
이건 카란 무역회사와 엔시오데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한 공개 서신입니다.
저는 이 서신을 통해 빅토리아와 쉐라그가 본디 피할 수 있었음에도 겪어야 했던 모든 부당한 일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사장님! 마침 여기 계셨네요!
무슨 일이지? 진정하고 말해봐라.
캐, 캐스터 공작이 보낸 서한입니다. 내용은 벌써 민간에 퍼졌고요.
전부 쉐라그…… 특히 카란 무역회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공작이 뭐라고 썼지?
우리가 신의를 저버렸고, 또 엔시오데스 님은……
줘 봐.
……
이사회 전원을 즉시 본부로 집합시켜.
그리고, 침착함을 잃지 말라고 전해라……
……
엔시오데스의 첫 번째 악행이자 모든 비극의 근원, 그것은 컬럼비아로부터 뇌물을 받고, 성산을 파헤쳐 관측소를 세운 일입니다.
그 뒤로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엔시오데스는 이어서 두 번째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바로 빅토리아가 인도적 차원에서 보낸 구호물자를 협상이라는 핑계로 가로채 사리사욕을 채운 것입니다.
또한, 그 뻔뻔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무 근거 없이 빅토리아 관광객과 교민을 모함하는 등 빅토리아에 칼을 겨누었습니다. 이것이 엔시오데스의 세 번째 악행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심 농락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그의 네 번째 악행입니다. 그는 라타토스와 결탁해 브라운테일의 가주가 죽은 것처럼 꾸며 브라운테일 영지 주민들이 빅토리아를 증오하게 했습니다.
“……빅토리아는 이미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라타토스가 만주원에 숨어 있으니, 의심이 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도 좋습니다. 물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듯, 그곳에는 이미 사병이 배치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때 내가 의심할 때는 나더러 음모론자네 뭐네 같은 소리를 하더니, 이제 보니까 다 맞는 말이었네?
맞는 말이라니? 처음부터 끝까지 빅토리아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잖아.
다섯 번째 악행 못 봤냐? 엔시오데스가 라타토스에게 빅토리아 기자를 납치하고 함께 만주원에 숨으라고 지시했다잖아.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누가 지어낼 수 있겠어?
게다가 여섯 번째 악행은 만주원을 장악하려고 복종하지 않은 만주원 수도사들을 체포했다는데, 이것도 앞뒤가 딱딱 맞아.
그날 만주원에서 분명 기도 의식에 참여하러 오라고 했는데, 데겐블레허가 우리를 막아섰잖아.
그럼 일곱 번째는? 이건 누가 봐도 빅토리아가 더 많은 이익을 노리다가 카란 무역회사에 거절당한 거잖아.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냐? 그게 바로 엔시오데스가 쉐라그를 팔아넘겼다는 증거잖아!
결국 빅토리아가 카란 무역회사에게 신의가 없다고 말하며 비난하는 거에도 다 근거가 있다는 거지! 엔시오데스의 감정적인 행동 때문에 지금 우리 모두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라고!
그럼 네 말은 빅토리아 놈들의 조건을 전부 들어줘야 한다는 거야? 저놈들은 카란 무역회사에 기존에 합의한 광산 협력 계획을 승인하라고 압박하면서 엔시오데스의 죄까지 심판하려 하고 있다고!
정확히는 만주원에 재판을 열자고 요구한 건데, 그건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잖아. 엔시오데스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추방 정도로는 가벼워.
그 죄 덕분에 네가 새로 지어진 술집에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불댈 수 있는 거야!
그래서 공은 전부 엔시오데스의 덕이고, 죄는 전부 남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냐?
……잘은 모르겠지만, 가장 고통받는 게 언제나 우리라는 것만큼은 알겠어.
형님, 엔시오데스 님을 믿어 보자. 그분은 예전에 나를 도와주셨어……
무슨 일이지?
바, 밖에……
……오는 내내 선동적인 말만 들리더군.
설마 이런 때에 눈 구경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묻지 말았어야 했나.
이 지경이 된 게 다 네 계산 안에 있었던 건가?
……그렇다고 말하면, 믿겠나?
믿는다.
우리가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얼마 전 성장의 기회에 카란 무역회사가……
이번엔 오히려 네가 더 낙관적인 쪽인 것 같군, 노시스.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대비를 철저히 해도 예상 밖의 변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삼대 가문에서 시작해 만주원, 그리고 이제는 모든 쉐라그인들에게까지…… 빅토리아의 수작이 뻔히 보이더군.
언제나 모든 걸 걸고 판에 뛰어드는 도박꾼답게, 너는 단 한 번도 리스크를 두려워한 적 없었다.
그래, 지금 이 모든 결과는 내가 자초한 거다.
먹구름이 드리운 흐린 하늘 아래, 빅토리아의 강철 베헤모스가 새하얀 빙원을 짓밟고 있었다.
저게 바로 캐스터 공작의 함대인가……
런디니움 전장에서 카즈델 출신 마족들을 빅토리아에서 몰아낸 게 저 함대라고 하더군.
캐스터 공작은 전쟁이 끝난 뒤, 함대의 기함을 직접 복구했다. 본인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서.
이 땅에서 저 힘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직접 이 험난한 길을 선택했으니, 이제 그 끝을 마주할 때가 된 거다.
……
하아……
너희 쉐라그 산은 왜 이렇게 험한 거야……
조금만 참으세요, 엘레나 씨. 만주원을 우회하려면 이 길뿐이에요.
그때,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엘레나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조안나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며 들뜬 소리를 냈다.
하하, 리프트가 널 놀리는 것 같네.
그러든가 말든가…… 요 며칠간 했던 운동은, 내가 20년 동안 했던 운동량을 다 합친 거랑 맞먹는다고……
엔야는 잔뜩 지친 엘레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고는 산길의 모퉁이를 돌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허름한 야영지를 발견했다.
꽤 많은 만주원 수도사들이 그곳에서 몸을 녹이며 쉬고 있었다. 엔야는 그 무리 속에서 낯익은 사람 하나를 단숨에 알아봤다.
성녀님, 왜 멈췄어?
……저건, 아드소 장로님?
그게 누군데?
설마……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곳은 자네가 올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네, 성녀님.
장로, 성녀님께 그런 식으로 말하……
알고 있다네. 그리고 성녀님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제가 쉐라간드를 찾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면요?
다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그분을 찾지.
성녀님,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장로님께서 제가 '순례'를 떠나게끔 유도하셨던 건, 쉐라그인을 대신해 그분에게 속죄하기 위함이었어요. 제가 바라는 것 역시 그분을 찾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고요.
그때의 난, 자네가 만주원을 떠나게 하고 싶었다네.
……그래야만 제가 만주원에 '제약'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원래는, 자네가 '순례'로 나가 있는 동안, 캐스터 공작을 움직여 엔시오데스를 공격하게 만들고, 둘 다 피폐해졌을 때쯤 성녀님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했다네.
그렇게 되면, 만주원은 성녀님의 귀환을 계기로 기적을 선포하고 정세를 장악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자네 오라비가 만주원에 전쟁의 불씨를 너무 일찍 붙였다네. 나 또한 캐스터 공작이나 엔시오데스의 손에 붙잡혀 포로나 꼭두각시 신세가 될 수는 없었지.
지금 여기 계신 걸 보니, 옛날 만주원의 수도사들처럼 전설 속 성산의 피난처로 도망간 후, 상대가 '피폐'해질 때를 기다릴 생각인가 보군요.
그러니, 성녀님도 무의미한 방황은 멈추고 우리와 함께 산 위로 피신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머지않아 쉐라그인들이 자네와 우리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원할 순간이 올 거라네.
그의 뒤에서 침묵하던 만주원의 장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녀의 앞을 에워쌌다.
조안나가 불안한 눈빛으로 엔야를 흘끗 보고는 본능적으로 석궁에 손을 올렸지만, 엔야가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멈출 수 없어요. 다음 재앙이 곧 닥칠 거예요.
뭐라고……?
장로, 성녀의 말은 사실이야. 요즘 날씨가 이상하다는 거, 당신도 눈치챘겠지.
우리가 '카란의 심장'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어. 이제 쉐라그에서 재앙이 일어난 원인을 밝혀낼 수 있게 됐지.
거기에…… 쉐라간드의 진실까지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일세.
아니, 장로……
쉐라간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
……뭐라고?!
제가 만주원을 떠나던 날, 장로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지요.
'쉐라간드'는 풀과 나무, 산과 바위, 말과 행동 속에 존재할 수는 있지만, 실체가 되어 이 땅에 나타날 일만큼은 절대 없다네.
그분은 실재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잠깐! 아무리 장로라도 신을 모독하는 건 안 돼!
……젊은 시절, 그분을 향한 내 믿음 역시 자네와 비슷했다네. 내 아버지와 숙부께서는 어린 내게 암암리에 브라운테일을 보조하라는 사명을 억지로 지워 나를 만주원에 보냈지만, 나는 그저 진심으로 그분을 섬길 마음뿐이었지.
대장로님께서 내게 서재를 맡기셨을 때, 나는 기뻐 날아가는 줄 알았다. 그분과 관련된 모든 글귀라면 단 한 줄짜리 기록이든, 황당무계한 잡문이든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반복해 읽었지.
하지만 읽을수록 알게 되었다. 《쉐라간드》는 누군가 짜깁기해 만든 '경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일세.
성녀님, 자네라면 부정할 수 있겠나? 자네 역시 최초의 원본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는가, 그곳에 적힌 건 단어 몇 개가 다였지, 지금 같은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네.
성녀님, 저건 사실이 아니야……
……
저잣거리의 뜬소문부터 실제 기록, 심지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이국의 전설까지…… 그걸 눈보라와 산의 이야기로 바꾸기만 하면, 곧 쉐라간드의 '기적'이 된다네.
나는 그분이 '특별한' 분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증거를 찾았다네. 하지만 내가 찾은 건 더 많은 바탕이 되는 이야기뿐이었지.
심지어 몇몇 서적의 쪽머리에는 당시 만주원의 장로들이 직접 수정한 흔적까지 남아 있었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으셨죠?
이것을 말하라는 건가?
성녀님, 자네에게 쉐라그는 무엇이지?
그건 쉐라그의 한 개인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쉐라그는 스스로 답을 내렸지…… 이곳은 신앙의 나라라네.
엔시오데스는 쉐라그를 뒤엎으려 했고, 캐스터 공작은 쉐라그를 삼키려 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들조차 쉐라간드의 신앙을 거스르지는 못했지.
하지만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쉐라그를 세운 거지?
……우리는 그분의 살과 뼈 위에 나라를 세운 게 아닐세, 우리의 살과 뼈 위에 그분의 나라를 세운 거지.
쉐라그의 조상들은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설산에서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좁은 터전을 일궈냈다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네, 왜 운명이 자신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을 주면서, 다른 이들은 호의호식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아무 희망도 없는 땅에 버려진 사람들은, 결국 다른 어딘가에서 삶을 이어갈 위안을 찾기 마련이라네.
쉐라그인들은 대대로 위대한 지도자에게 환호했고, 숭고함과 도덕성을 갈망했지. 그 결과 '쉐라간드'가 탄생했다네……
그리고 '쉐라간드'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쉐라간드는 쉐라그의 본질이었다네…… 신앙이 필요했기에 모든 세대가 그 거짓말을 되풀이해야 했지.
쉐라그에는 도덕과 법, 예술과 아름다움, 가정과 관습이 필요했다네. 그때마다 그분은 '절묘하게' 우리 곁에 나타나 의미심장한 격언 한두 마디를 남기고는 했지.
그렇게 수천 년 동안 흔들리지 않는 질서가 생겨났다네.
장로님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거짓을 지켜야만 쉐라그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군요.
물론이라네……
이 모든 세상에는 거짓말이 존재한다네, 쉐라그의 거짓말은 '쉐라간드'지.
……저는 장로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 잠깐의 안녕을 줄 수 있을진 몰라도, 삶의 법칙이 될 순 없어요.
장로님은 그게 모종의 질서를 유지한다고 믿고, 진실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을 무시한 채 감정을 조종의 도구로 삼아왔어요.
하지만 그 갈망이 장로님의 장막을 뚫는 순간, 만주원과 만주원이 붙들고 있는 신앙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산산이 부서질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장로님은 본인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엔시오데스의 가장 큰 맹우나 다름없어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물어보지, 자네는 정말 쉐라간드의 존재를 믿나?
저는…… 그래도……
엔야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 시녀장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하지만 이미 잊힌 후였다. 예전의 그 얼굴도, 목소리도, 흐릿한 감정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런 흔적도, 자신을 위해 나서줄 증인도, 격려의 말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엔야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믿고 있어요.
대장로님께서 이 모든 걸 거짓이라고 말한다면, 그 거짓에 대비되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경전이 가르치는 열정과 선함을 믿어요, 그리고 쉐라간드가 쉐라그에 존재한다고 믿어요.
그리고 저는 이미 신의 길을 찾았어요.
장로님께서 계속 부정하시겠다면, 저와 함께 직접 확인하러 가시죠.
……
성녀님, 자네의 '믿음'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네. 더 큰 재앙이 쉐라그를 기다리고 있어.
엔시오데스의 성급함이 쉐라그의 신앙을 위태롭게 만들었지. 이게 우리가 쉐라그를 구할 마지막 기회라네.
……장로님은 '순례'가 시작된 이후부터 저를 음모의 일부로 보셨죠.
우리 모두 신앙에 일생을 건 사람들이지 않은가, 나의 충심을 자네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제게 바라고 계신 게 뭐죠?
적당한 시기를 골라 나와 함께 만주원으로 돌아가 정세를 장악하는 것일세.
캐스터 공작과의 협상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엔시오데스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해.
……
물론, 자네는 심성이 착해 오라비에게 손을 쓰진 못하겠지. 그건 이해할 수 있다네.
하지만 최소한 엔시오데스를 쉐라그에서 추방해야 한다네.
결국 제게 강요하고 계실 뿐이네요.
보답으로, 자네들이 찾고 있는 곳으로 직접 안내하겠네.
소싯적에 성산의 곳곳을 다 둘러봤거든. 진실을 마주하겠다고 했으니, 이게 가장 빠른 길일 걸세.
……따르겠습니다.
엔야?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만약 쉐라간드의 존재를 목격한다면, 엔시오데스를 상대로 꾸민 모든 음모를 포기하세요.
……그렇게 하겠네.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 맹세하였습니다. '쉐라간드' 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