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설산 강림 1101

OS-9칼집을 떠난 칼

사이드 스토리작전 전2026-04-14

빅토리아 대군이 국경을 넘고, 캐스터는 협상을 위해 엔시오데스를 '글로리아나'호에 초대한다. 유적지에 도착한 엔야 일행은 쉐라간드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등장 오퍼레이터: 노시스, 아스트젠 더 라이트체이서, 스노우헌터


멀리서 시끄러운 굉음이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송이들을 흩뜨렸다. 고요해야 할 거리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빅토리아 군대가 성산 기슭에서 만주원으로 이어지는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고, 캐터필러가 땅을 짓이기며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

전차 위 확성기에서 또렷한 쉐라그어가 흘러나왔다……

“쉐라그 주민 여러분, 당황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현 상황에 따른 대책이며, 빅토리아는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할 것입니다.”

“이번 작전이 주민들의 일상에 지장을 주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가능한 한 집에 머무르실 것을 권고합니다.”

“빅토리아인을 납치한 무법자와 관련자들에게 경고한다. 인질을 즉시 석방하지 않으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겠다!”

쉐라그 노인

저기 선생님, 저쪽으로 건너갈 수는 없을까요?

쉐라그 노인

집에 돌아가 불을 지펴야 해서요. 식사 시간이라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병사

이곳은 봉쇄됐다. 돌아서 가거나, 여기서 기다려라.

쉐라그 노인

하지만…… 이 길만 건너면 되는데요.

쉐라그 노인

혹시 안전이 염려돼서 그러는 거라면, 제 몸을 수색해 보세요. 음식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빅토리아 병사

만주원 소속인가?

쉐라그 노인

저는 만주원 소속이 아닙니다. 그냥 대장장이입니다.

빅토리아 병사

그렇다면 돌아서 가거나, 여기서 기다려라.

쉐라그 노인

수십 년 동안 이 길을 지나다녔는데……

걱정하는 행인

어르신, 일 키워봤자 좋을 거 없어요!

체념한 행인

그 사람 말 들어요! 빨리 거기서 비키세요!

빅토리아 병사

더는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라.

쉐라그 노인

……

노인은 비틀거리며 행렬에서 벗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주방 창문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손짓하며 들어가라는 의미를 보냈다.

쉐라그 노인

쉐라간드 신이시여……당신의 노여움을 기꺼이 듣겠나이다……

[CG: 67_i06]
분을 삭이지 못한 행인

감히 우리 땅을 침범하다니! 썩 꺼지지 못해!? 안 들려? 당장 꺼져!

걱정하는 행인

빅토리아인, 빅토리아인…… 요즘은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니까.

걱정하는 행인

……하필 이런 때에 빅토리아인을 납치한 사람이 있다니.

체념한 행인

보면 몰라? 딱 봐도 저열한 핑계인 게 불 보듯 뻔한데. 빅토리아인이 쳐들어왔으니, 이제 쉐라그의 운명도 바뀌겠구나……

분을 삭이지 못한 행인

*쉐라그 비속어* 두손놓고 그런 재수 없는 소리나 늘어놓다니. 며칠 굶고 맥 빠진 버든비스트가 너보다 낫겠어. 내가 직접 가서 본때를 보여주지!

걱정하는 행인

소란 피울 거면 좀 떨어져요! 괜히 한패로 오해받기 싫으니까!

체념한 행인

맞다, 그래! 당신은 카란 무역회사로 가봐. 거긴 경비원이 있다면서?

분을 삭이지 못한 행인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체념한 행인

한심하다고? 너는 용기도 있고, 모든 걸 버릴 각오도 돼 있겠지. 그런데 가족은 있나?

체념한 행인

이게 협상의 결과라면, 삼대 가문, 만주원, 카란 무역회사…… 그들조차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체념한 행인

쉐라간드 신이시여…… 부디 저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용서하소서……

분노, 두려움, 불안…… 무기 하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감정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맞은편의 완전무장한 군대를 건드릴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목소리는 엔진이 내는 굉음에 묻혔다.


'글로리아나'호 갑판

캐스터 친위대 대장

공작님, 함대가 쉐라그 설산 입구를 포위했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쉐라그에 있는 선발대도 만주원을 단단히 포위했습니다. 쉐라그의 무장 세력이 저항할 순 없을 겁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현재 쉐라그 성녀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입니다만, 성녀가 나타나는 즉시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겠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현 상황은 아직 저희의 통제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공작님께서 직접 전장에 나오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캐스터 공작

……조바심 내지 말게, 필리파.

캐스터 공작

그리고 언행에 조심하게. 난 분명 쉐라그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소중한 파트너라고 정정해 줬던 것 같은데.

캐스터 친위대 대장

하지만 카란 무역회사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협상 요청에 정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캐스터 공작

허허…… 내 머릿속엔 그려진다네.

캐스터 공작

엔시오데스는 오만한 친구일세…… 그 친구가 이 정도의 패배를 정리하는 건 무엇보다 힘든 일이겠지.

캐스터 공작

필리파, 자네도 엔시오데스의 이야기를 들어 봤겠지. 자세히 따지면 자네의 혈족이기도 한데 말일세.

캐스터 친위대 대장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소문처럼 뛰어난 인재라면, 왜 공작님 곁에 머물 기회를 포기하고 이 깊은 산속에 있으려는 걸까요?

캐스터 공작

말했잖나, 엔시오데스는 오만한 친구라고.

캐스터 공작

그 친구에게 6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지.

캐스터 공작

근데 쉐라그 쪽에서 우리와의 계약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유감스러운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캐스터 친위대 대장

알겠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그런데 공작님, 신경 쓸 만한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일 하나가 있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인 브라운테일의 가주가 활동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캐스터 친위대 대장

어둠의 기사의 보호를 받으며 만주원에 숨어 있습니다.

캐스터 공작

흠…… 엔시오데스라면 지금 같은 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을 숨기려고 공을 들이지는 않을 걸세.

캐스터 공작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나는 변수를 좋아하진 않아.

캐스터 공작

가서 찾게. 그 여자가 숨긴 걸 찾아와.

캐스터 친위대 대장

예, 공작님.


'회색 모자'

알겠습니다. 파견 임무를 수행하고 추가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회색 모자'

모두 주목. 1팀은 정면을 지키고, 2팀은 북문을 봉쇄한다. 3팀과 4팀은 고지에서 만주원 내부를 주시한다.

'회색 모자'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기한다. 한 사람이라도 새어나가면 공작님을 뵙게 될 줄 알아라.


카란 무역회사 직원

대사님, 제가 빅토리아인의 출입 허가 명령을 받지 못해서요.

빅토리아 대사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기에서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카란 무역회사 직원

사장님께서 어떤 제안도 수락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셨습니다. 만약에……

빅토리아 대사

괜찮습니다. 여기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쉐라그인처럼요.

빅토리아 대사

그런데 쉐라그인들은 올겨울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정말 궁금하군요.

노시스

그걸 직접 체험할 기회는 없을 거다.

빅토리아 대사

개인적으로 온 것도 아니니 제 체험도 딱히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노시스 씨.

빅토리아 대사

표현할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줘야 하는 법이죠.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노시스

……또 무슨 목적이지?

빅토리아 대사

염려하지 마세요. 카란 무역회사의 현임 사장, 노시스 씨.

빅토리아 대사

이번에는 아주 간단한 임무로 왔습니다. 공작께서 엔시오데스 님에게 협상을 제안하셨습니다.

빅토리아 대사

양국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간단한 평화 협상일 뿐입니다.

노시스

너희는 공공연하게 군대를 보내 쉐라그를 포위했고, 포구를 민간인에게 겨누는 걸로도 모자라 병사들을 시켜 거리를 봉쇄했다.

노시스

이게 빅토리아가 말하는 평화 협상인가?

빅토리아 대사

노시스 씨……

빅토리아 대사

공작님은 그저 쉐라그의 진정한 주인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질주하는 함선은 갑판 위의 사람들이 어디로 뛰어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니까요. 가장 좋은 선택지는 손잡이를 잡는 것뿐입니다.

빅토리아 대사

이것을 깨닫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미 들어 알고 계신 '명령'에 달린 일이지요.

노시스

그건 단도직입적인 표현이 아니다, 빅토리아인. 네가 해야 할 말을 굳이 내가 알려줄 필요까진 없을 텐데.

빅토리아 대사

저는 '요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노시스 씨. 지금 시점에서 빅토리아가 요청을 한다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빅토리아 대사

우리는 엔시오데스 님이 공작님과 함께 쉐라그의 미래에 대해 열렬히 논의할 수 있는 자리에 참석하시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대사

회의의 순조로운 진행은 보장하겠습니다. 공작님께서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라고 지시해 두셨습니다.

노시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입장을 얘기해야겠군…… 빅토리아는 지금 즉시 무력적인 침입을 멈춰라.

빅토리아 대사

안타깝지만, 그건 엔시오데스 님과 공작님의 회담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제가 공작님 대신 당신과 약속할 자격은 없어서 말이죠.

빅토리아 대사

지금은 이번 겨울을 아주 따뜻한 곳에서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곳이 쉐라그였으면 좋겠군요.

노시스

……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마주해야 할까.

저는 수없이 제게 질문했습니다만, 결국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저는 눈보라 속에서 방황하며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카란의 심장은 현학적인 미사여구에 불과합니다.

꿈속의 그림 한 폭, 절벽 가운데의 진흙탕,

만주원은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저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건 모닥불 근처에 있는 어머니, 커튼 밑의 아내,

제가 누려야 했을 삶이 전부였습니다.

당신은 신앙 없는 신도가 스스로 쓴 비문을 다 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부디, 비석 위에 덮인 서리와 눈을 털어주기를 빌겠습니다.

무덤 하나가 길가에 외로이 서 있었다. 엔야와 아드소는 이 고독한 무덤 앞에 멈춰 섰다.

아드소

내가 묻어준 유일한 사람이라네.

아드소

죽기 전에 겨우 자기 비문을 새겼더군.

엔야

그렇다면, 길에서 본 유골은 전부……

아드소

사람일세.

아드소

가치, 의미 같은 것으로 자기기만을 일삼는 건 인간뿐일세…… 성산에 오르기 위해, 그분의 곁에 이르기 위해,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지.

성녀는 오른손으로 훼손된 나무 비석을 쓸어 무덤 주인의 원을 이루어 줬다.

찬바람이 뭔가를 붙잡으라는 듯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눈 덮인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귓가에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흘러들었다……

엔야

장로님, 들으셨……

하지만 엔야는 질문을 삼켰다. 웃음소리는 산등성이 사이를 메아리치며 점점 희미해졌고, 결국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아드소

아무것도 못 들었다네.

아드소

성녀님, 계속 가지.

엔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눈 덮인 산꼭대기를 향해 계속 걸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성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눈썹에 달라붙은 눈송이는 꼭 지나쳐 온 앙상한 나무에 걸려 있던 눈 같았다.


조안나

힘 좀 내. 내가 이렇게 끌고 가는 것만으로는 엔야를 따라잡을 수 없어……

엘레나

후, 후…… 겨우 몇 걸음 차인데, 뭘 그렇게 바짝 따라가려고……

엘레나

……참.

엘레나

방금 저 둘, 여기에서 뭔가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

조안나

응…… 나도 본 것 같아.

엘레나

눈이랑 바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휴, 신경 끄자.

엘레나가 어렵사리 몇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가 밟고 지나간 눈밭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번져 나왔다.

그녀는 은연중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지만, 옆에 있는 건 이를 악문 채 그녀의 팔을 붙든 조안나뿐이었다.

머리가 무감각해질 정도로 바람을 맞았으니, 분명 착각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스쳤을 때, 엘레나의 귀에 탄식 소리가 들렸다.


아드소

……반드시 패배하게 될 싸움에 제 발로 뛰어들었군.

아드소

성녀님.

엔야

여기가……

아드소

그렇다네.

아드소

산속…… '카란의 심장'이 있는 곳이라네.

조안나

엔야, 시킨 대로 엘레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어!

조안나

(작은 목소리로) 도착했어, 정신 차려.

엘레나

아……

엘레나

……잠깐만, 이게 아닌데. 절대 이럴 리가 없어!

엘레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뺨을 툭툭 두드리고는 크고 작은 기계들을 들고 동굴 벽을 이리저리 살폈다.

쉐라그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동굴이었다. 성산 정상 가까이에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엔야는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엔야의 호흡이 약간 가빠졌다.

가장 깊은 곳에서 동굴 입구까지는 100m 남짓에, 넓이는 6명 정도가 겨우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였다. 이끼와 지의류가 바위를 얇게 덮고 있었으며, 공기에는 곰팡이와 흙 내음이 뒤섞여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아드소

그분을 찾으려는 사람은 자네들이 처음이 아닐세. 물론 나도 아니었다네……

아드소

내 젊은 시절 소원은 그분의 진짜 모습을 보고, 그분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는 것이었다네. 나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서재의 책을 전부 뒤졌고, 모든 시 구절을 읽으며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를 찾아 헤맸지.

아드소

수많은 선조가 각종 기록과 분석을 남겼다네, 그리고 누군가가 이곳이 성산의 유일한 동굴이라고 했지.

아드소

나는 길고도 험한 산길을 지나 마침내 여기에 도착했다네……

엔야

기록에 따르면, 성산 깊숙이 피난을 간 만주원 수도사가 있다고 해요.

아드소

맞다네.

아드소

쉐라간드를 깨웠다는 그 성녀의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엔야

……쉐라간드께서 천벌을 내리자, 만주원이 산에 올라가 기도할 소녀 100명을 선발해 차례로 보냈고, 마지막 소녀가 그분의 분노를 잠재웠다는 내용이었죠.

엔야

하지만 진실은 달랐어요. 마지막 소녀가 어느 가주의 딸이었던 탓에 각 가문이 연합해 만주원을 공격했죠.

아드소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수도사들은 이곳으로 도망쳤다네.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른바 '기적'이 강림해 쉐라그는 평화를 되찾았지.

엔야

그러면 그 '기적'은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아드소

지금의 쉐라그를 보게, 답은 뻔하지 않은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끝나버리는 전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아드소

소녀들을 살해한 일조차 숭고한 '기적'으로 변모하는 판이니, 정치적 타협 또한 종교적 전설로 각색될 수 있을 걸세.

엔야

살해…… 장로님은 만주원의 당시 조치를 그렇게 보셨군요……

아드소

그렇다네, 살인으로 위안을 얻고 우매함이 마음을 지배하도록 방치했지. 그게 만주원이 쉐라간드를 위해 짊어진 피의 채무였다네.

아드소

영원을 보장해 줄 신은 없다네. 우리의 모든 걸음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지.

아드소

성녀님, 나는 자네에게 쉐라간드의 진실을 확인시켜 줬다네……

아드소

이제…… 자네가 얼마나 발버둥 치든, 나는 기다릴 수 있다네.

엘레나

엔야! 얼른 이리 와 봐!

엘레나

여기에 있는 돌무더기, 자연적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만들어진 문 같아.

아드소

……예전의 수도사들이 만든 피난처일세. 뭐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엔야

그러니까…… 이 '문' 뒤가 당시 만주원 수도사의 은신처이자 쉐라그의 수많은 비밀이 숨겨진 곳이라는 말씀이죠……

아드소

자네가 이 문을 열어봤자 아무것도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네.

엔야

그러면 한번 보죠, 장로님.

아드소

……

성녀는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역사를 되풀이해서 늘어놓는 노인을 지나 동굴의 끝으로 다가갔다.

이어서 엔야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몸을 동굴 벽에 밀착시켰다. 꼭 오래간만의 포옹처럼 느껴졌다.

두 손과 뺨에 흙이 묻었고, 머리카락 끝에 이끼 자국이 생겼다. 꼭 대지 위에서 잠자고 있는 듯했다……

엔야

……느껴졌어요.

엘레나

엔야, 탐사기에 이 얇은 암벽 뒤에 거대한 동굴이 있다고 나와.

엘레나

하지만 여기에 다른 입구는 없는데…… 필요하다면 이걸 폭파해 볼게.

조안나

기다려. 어떻게 감히 성지에……

엔야

하세요.

조안나

아니…… 엔야?!

엘레나

쉐라간드 신이시여……

엘레나

진실을 위한 일입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