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5눈 내리는 밤의 독행
엘레나는 서재에서 돌아온 엔야를 마주치게 되고, 대화 후 쉐라그에 재앙이 발생한 원인을 함께 찾아 나선다. 시우루스는 언니의 유언을 발견하고, 라타토스와 엔시오데스가 비밀리에 협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스트젠 더 라이트체이서, 스노우헌터
……
자물쇠를 또 건드렸네. 포기 못 하겠다는 건가?
수색대의 경로는 이미 확인했어. 안타깝게도 오늘 수색대의 활동 범위는 여기서 최소 5km 정도 떨어져 있더라고. 그러니 수색대가 당신의 구조 신호를 들어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도록 해.
흥……
뭐라도 좀 먹어.
회복하는 동안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부러진 뼈가 회복되는 시간이 20%가량 지연되고, 후유증이 남을 확률이 35% 증가해.
나는 당신을 다치게 할 생각도 없었고, 당신처럼 훌륭한 전사가 불구가 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
위선자!
지금 당장 날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런 선택지가 있긴 한데……
근데 말했잖아, 나는 쉐라그에 피해를 주는 일을 할 생각도 없고, 무고한 쉐라그인을 살해할 이유도 없다고.
하물며 그 눈사태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인 이 상황에……
당신들 말로 '쉐라간드의 가호', 맞지?
독실한 신자라면, 이런 때야말로 자기 목숨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빅토리아의 스파이가 쉐라그의 군사 정보를 훔치는 게 쉐라그에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면 뭔데?
이건 정말 억울한데……
당신은 쉐라그인이면서 왜 쉐라그의 가장 중요한 기밀이 겨우 보잘것없는 고속 전함 몇 척에 있다는 정보를 믿는 건데?
입으로는 신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당신들이 말하는 '신'이 무엇인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쉐라간드는 쉐라간드야. 그분을 의심할 사람은 없어……
역시 말이 안 통하네…… 하아, 할 일 없이 여기 갇혀 있으니 당신이랑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 거겠지.
됐다, 그만하자.
……나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넌 빅토리아의 스파이면서 어떻게 라인 랩에서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었지?
대체 어떻게 해야 라인 랩에서 이렇게 오래 일한 나를 빅토리아의 스파이라고 확신하는 거야?
하…… 당신이 원한다면, 이야기 하나를 해 줄게……
빅토리아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이 대지의 모든 규칙에 호기심이 많았지. 아이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그런 현상 뒤에 숨겨진 비밀을 연구할 생각이었어.
십여 년을 열심히 공부해서, 로열 사이언스 아카데미의 명예 학자로 연구 교류차 컬럼비아로 떠날 준비를 하던 그때……
빅토리아의 학술 재단이 아닌 정보기관이 그녀를 찾아왔어.
그때부터 그 아이의 호기심이 허락되는 문제는 컬럼비아 정부의 비밀문서로만 제한됐지.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을 무슨 수로 제한할 수 있겠어? 그 아이는 컬럼비아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던 중, 우연히 자신의 호기심을 한껏 충족시킬 기회를 발견하게 돼……
……
하지만 결국…… 컬럼비아도, 빅토리아도 다르지 않았어.
사람들은 언제나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피를 흘리며 다퉜고, 힘들게 구축한 질서는 생사를 건 무의미한 전쟁 속에서 겨우 유지되는 수준이었지……
과연 하늘이나…… 아는 사람이 사실 거의 없는 이 대지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나는 그 모든 게 지루했을 뿐이야.
아침, 만주원 서재
휴, 창문이 높지 않아서 다행이야.
수도사들도 아침 기도를 하러 갔고…… 지금은 관측소가 풍랑의 한가운데에 있으니, 좀 피해야겠어.
지도, 지리지 등등,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좀 볼까……
창문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얼룩진 책 위에 얇게 깔렸다.
엘레나는 눈앞에 있는 모든 책의 먼지를 털어냈는데도 반듯한 수도사의 글씨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쉐라그어 사전을 하나 더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책들은 대체 어떻게 분류된 거지…… 이건…… 격…… 격언집?
“쉐라간드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길……”
“나의 성전을 구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구하라.”
으악……!
깜짝 놀란 엘레나가 손을 놓았고, 두꺼운 책이 나무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엘레나는 책장 건너편에 있는 후드를 쓴 사람의 깜짝 놀란 얼굴과 자신을 겨냥한 화살을 보았다.
엔야…… 손동작을 보니 항복한 모양인데, 어떻게 할까?
누가 항복했다는 거야?!
아, 아니지. 엔야…… 엔야 실버애쉬?
……
당…… 당신이 성녀?
쉿……
엘레나는 상대의 의사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소리 내지 말고, 우리 사이좋게 말로 할 수 있을까요?
엘레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안나, 화살 거둬요. 이분을 놀라게 하지 말죠.
하지만 몰래 만주원에 숨어든 사람이야. 좋은 사람 같지 않아.
하지만 우리도 몰래 들어온 거잖아요……
당신은 라인 랩의 사람인 것 같군요.
맞아! 나는 에너지과의 연구원 엘레나야.
미안해, 나는 쉐라그의 지도를 찾고 있었을 뿐이야. 쉐라그 산맥과 오리지늄 광맥의 위치가 상세히 표시된 지도면 좋겠는데……
거기에 있는 특수한 광맥만 찾으면, 가능할 것 같아……
……뭐가요?
엘레나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이 소녀를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이 소녀는 명명백백한 이 나라의 지도자였다.
엘레나는 순간 자신이 할 말이 엄청난 실례가 될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의 눈에 담긴 건, 순수한 호기심뿐이었다……
어쩌면…… 쉐라그에 재앙이 발생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당신 말은…… 쉐라그에 천 년 동안 재앙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가 산맥에 숨겨진 오리지늄 광맥 때문이라는 건가요?
맞아! 쉐라그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에 숨겨진 미확인 오리지늄 광맥이 특정한 오리지늄 에너지장을 형성해 재앙의 발생을 막은 거야.
……
말도 안 돼! 쉐라그는 쉐라간드께서 보호하고 계신 곳이야!
그러면 쉐라간드를 본 사람은 있고?
그건……
쉐라간드께서 베풀어 주신 기적을 직접 본 사람은 아주 많다고!
미안한데, 내가 당신들의 문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해.
설명할 수 없는 몇 가지 현상을 봤다고 해서, 그 현상 뒤에 반드시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어.
그러면 너는 어떻게 그 뭔지 모를 광맥을 증명할 셈이지?
……쉽게 말하자면, 오리지늄은 서로 아주 복잡하게 상호작용을 해. 지금까지 우리가 본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라인 랩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실험을 했어.
오리지늄 원석으로 구성된 에너지장은 특정 환경에서 대기 속에 있는 오리지늄 먼지의 움직임을 응집시키는 것보다는 분산시켰어. 근데, 재앙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오리지늄 먼지야.
실험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지금으로서는 안정적으로 재현할 수 없지만……
나는 쉐라그에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오리지늄 광맥이 있다면 재앙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믿어.
그것과 관련해서 내가 상세하게 계산을 해봤는데……
미안한데, 이 지도 좀 빌려도 될까……
엘레나는 노트를 꺼내 맞은편의 두 사람에게 펼쳐 보이고는 선을 그으며 공식을 설명했다. 단 둘뿐인 청중이 자신의 논리를 제대로 따라올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엘레나는 지도 위 어느 산기슭이 있는 위치에 자신만만하게 다음 원을 그렸다.
……그래서 내 결론은 재앙이 발생하지 않는 쉐라그의 특수한 지리적 환경에 대한 건, 오리지늄 광맥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는 거야.
나는 내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해. 우리가 카란 성산이 있는 곳에 오리지늄 광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모든 게 설명될 거야!
조안나는 순간 아찔했다. 그녀는 성녀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해 주길 바라며 성녀 엔야를 슬쩍 곁눈질했다.
하지만 성녀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문 채 침묵할 뿐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쓴 건지 모르겠어. 얼른 호통이라도 쳐 줘.
……
그렇다면…… 최근에 발생한 재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그거를 설명하려면,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말해야 해. 우리는 재앙 전날 별깍지 밖에서 온 무언가가 카란 성산에 떨어졌다고 의심하고 있어.
봐! 관측소에서 재앙 전날에 확보한 관측 데이터야. 이게 바로 그 '천체 물질'이 추락하면서 생긴 초저주파음이지.
엘레나가 가지고 있던 단말기를 켜자, 화면에 눈에 확 들어오는 꺾은선 그래프가 나타났다.
그 '천체 물질'은 분명 부피와 질량이 엄청났을 거야. 그게 광맥 중심부에 떨어지면서 에너지장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재앙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결국, 이 일련의 이상 징후가 일어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거야! 이건 신기한 전설 같은 게 아니야!
엔야는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지며 어떤 미묘한 연결이 끊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키야르”.
익숙한 목소리다. 이건, 친구? 기적? 아니면…… 환각일까?
아니, 엔야는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두 팔의 떨림을 억누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엔야, 무슨 말이라도……
저는…… 엘레나 씨의 생각을 이해해요.
?!
그런데 《쉐라간드》의 문구가 떠올라서요……
“그분의 심장은 카란의 심장, 산속 깊은 곳의 거소이니라. 그분의 심장이 뛰면 쉐라그의 뼈가 자라고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게 쉐라그의 기원에 관한 경전 속 서술이에요.
우리는 당연히 카란의 심장이 은심호를 가리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쉐라간드의 조각상도 은심호에 세웠죠.
하지만 근래의 연구는 고서 속 '카란의 심장'이 얼어붙는 현상을 일종의 이상 현상으로 간주했어요. 은심호는 매년 어는 호수인데 말이죠……
그냥 수사적 표현인 것 같은데……
야! 성녀님이 생각하는데, 방해하지 마.
어쩌면 '카란의 심장'은 사실 다른 곳을 가리키는 걸지도 몰라요……
아드소 대장로는 제가 '라드손'을 떠올릴 수 있게끔 하려고 했지만, 사실 모든 것의 키는 '카란의 심장'이었어요……
저…… 엘레나 씨, 방금 '특수 광맥'의 중심부라고 말씀하셨죠?
맞아, 내가 쉐라그 산맥의 모형을 만들어봤는데, 계산해 보니 천체 물질이 떨어진 곳은 대충……
이쯤일 거야.
여긴…… 쉐라그와 카시미어의 연합 광산인데요?
광산? 그렇지! 역시 설명이 되네!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잠깐! 외부인! 우리는 쉐라그의 영토를 함부로 돌아다녀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너는 계속 쉐라간드께 불경스러운 말을 하고 있잖아……
괜찮아요, 조안나.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강요하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은 우리도 눈앞에 닥친 재앙의 진상을 풀 필요가 있잖아요…… 이분과 동행하죠.
엘레나 씨……
음?
엘레나는 엔야와 조안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틈에 책장 정리를 모두 마치고 창턱에 앉아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
사실 서재 정문 쪽에는 대부분 아무도 없어요.
먹구름 틈새로 새어 나온 차가운 달빛이 진열품 위를 비췄다. 라타토스의 방은 고요했다.
시우루스는 라타토스의 유품을 보는 것조차도 두려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슬퍼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그녀는 며칠 전 각 가문과의 협상에서 자신이 단지 라타토스의 흉내를 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타토스를 모방할수록 라타토스의 모습은 마치 떠나지 않은 사람처럼 더욱 생생해지기만 했다.
시우루스의 눈에 비친 창밖의 브라운테일 영지에는 눈이 한바탕 더 내린 것 같았다.
“시우루스, 봐. 눈덩이를 이렇게 하면 더 멀리 던질 수 있어. 한번 해봐.”
“안 가르쳐 줘도 알거든……”
“나는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언니가 싫어. 나한테 시키는 것도 다 싫어.”
기억 속의 메아리가 산맥이 무너질 때 났던 거대한 소리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브라운테일의 번영이 오랜 세월 이어져 왔음을 증명하듯, 상자 안에 쌓인 계약서와 편지에는 먼지가 수북이 덮여 있었다.
시우루스는 라타토스가 남긴 흔적을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그리고 그제야 발견했다. 가문의 사업 문서들의 말단, 브라운테일의 가주 이름이 쓰여야 하는 위치에 있던 이름은……
'시우루스'였다.
“시우루스, 기억해.”
“나는 네 언니고, 장차 브라운테일의 가주가 될 거야.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이건 당연한 일이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내게 증명해. 네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리더로서 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그 때가 되면……”
“시우루스, 나는 네가 브라운테일의 미래를 짊어졌으면 좋겠어.”
한 장, 또 한 장…… 시우루스의 동작이 빨라졌다.
넘겼고, 또 넘겼다. 하지만 모든 서류에 서명되어 있던 건, 자신의 이름이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이 유품 상자의 밑바닥에 있는 기억 속 작은 상자에 닿았다.
둘만의 '비밀'에.
“잊지 마. 나중에 내가 어른들한테 들키지 않고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다면, 전부 여기에 둘 거야.”
“이건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비밀은 영원히 두 사람, 나랑 너만 아는 거야.”
이건……
통신기?
시우루스는 손에 들린 장비를 훑어봤다. 통신기에 망설이는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마지막 통신 기록은……
카란 무역회사가 제공한 의심 인물의 정보를 입수했어요. 오전 내내 주시했는데, 철수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이 목소리는…… 묀히?!
잘했어. 그 여자를 잘 지켜봐. 빠져나가게 해서도 안 되고, 그 여자가 갖고 있는 자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해서도 안 돼.
네…… 방금 카란 무역회사 쪽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생포해.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엔시오데스한테 연락해서 카란 무역회사의 지원 인력을 보내라고 할게.
네, 최선을 다하죠.
조심하고, 깔끔하게 처리해.
마지막은 카란 무역회사에서 온 부재중 통신 알림이었다.
……
통신 시간이 왜…… 어제지?
……카란 무역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