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2죽어버린 낭만
도시로 돌아온 고상한 붉은 용,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탐욕스러운 붉은 용을 처단했지만, 동시에 그녀를 애도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리드 더 플레임 섀도우, 네크라스
방금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사윈의 전날 밤, 아직 해가 저물기 전.
사윈의 밤은 생명과 죽음을 연결하는 날이지. 이건 미신이 아니야. 혹은, 이미 미신의 범주를 초월했을지도 몰라.
타라의 전설 속에서, 수많은 위업과 참극이 모두 이날 밤에 일어나. 그리고 이런 전설은 보통 날짜를 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지.
적어도 수많은 전설이 이날에 겹치고, 타라인들이 아직 이날에 풍년을 축하하고 불을 피워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한, 그건 결코 지루한 시절이 아니야.
그 자체가 신화를 뒷받침해 주는 최고의 주석이지.
……아, 그리고 내가 네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을 지었는데, 괜찮겠지?
태양은 이미 기울었네.
이 마지막 만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진 못했지?
로흐시니, 왜 또 식사 시간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
혹시 아빠 화났어?
아직, 하지만 시간문제야.
내가 가서……
책상 위에 그건 뭐야?
별거 아냐!
어린 붉은 용은 언니가 못 보게 온몸으로 가리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종이상자에는 정성스레 깔린 솜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숨이 끊어졌지만, 아직 미약하게 온기가 남아 있는 작은 파울비스트가 누워 있었다.
파울비스트의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아마 숨이 붙어있을 때 부러졌던 것일 것이다. 옆에는 골판지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깁스와 보리 몇 알이 흩어져 있었다.
매일 아침 내 창가에 와서 노래하던 파울비스트야.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살리고 싶었는데……
……
부탁이야 언니, 아빠한테는 몸이 좀 안 좋다고 해줘. 내일은 식사 시간에 맞춰서 나갈게…… 오늘 밤에 뒷마당에 묻어줄 거야.
그냥 포기하려고?
얘는 이미 죽었어, 언니.
그래?
보랏빛 불꽃이 깃털 사이를 통해 싸늘해진 파울비스트의 시신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울비스트는 천천히 일어섰다. 부러진 다리는 단단하게 붙었고, 솜 위에서 굳은 몸을 지탱했다.
됐다. 이제 날게 해줄까? 아니면 노래라도 하나 들려줘?
아냐, 아냐…… 이러면 안 돼, 안 돼!
……
이러고 싶지 않았다면, 왜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네 불을 안 썼어?
네 파울비스트는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었어. 네가 보통 사람들의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는 건 잘 알고 있잖아.
아냐, 엄마는 불꽃을 꼭꼭 숨겨두라고 했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
누가 본다고 그래?
어린 용이 언니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솜 위에 뻣뻣하게 서 있는 파울비스트와 눈이 마주쳤다.
파울비스트의 눈동자엔 보랏빛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인 그 모습은 언니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것 같았다.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언니, 몸에 피가…… 어디 다쳤어?!
내 피보다 대공작이 보낸 첩자의 피가 많이 묻었어.
붕대 감아줄게……
워릭 백작은?
볼일 보러…… 갔어.
그래, 백작은 늘 우리에게 볼일이 있다고 했고, 넌 그 말만으로도 만족했지.
심지어 자신이 '볼일'을 보러 간 사이, 그 첩자가 너와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조차 내버려뒀어.
난 내가 우리의 출신에 관한 이야기나 백작의 뜻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누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백작 저택의 모든 사람은 네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워릭 백작이 확인하려던 건 애초에 그게 아니야.
……
맞아, 네가 그 첩자를 놓아주었다 해도 워릭 백작은 어떻게든 어둠 속에서 그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냈을 거야. 그리고 우리의 목을 옥죄는 사슬이 또 하나 늘어나겠지.
미안해, 난……
사과하지 마, 사과는 아무 소용 없으니까.
손님들로 늘 북적이던 응접실은 텅 비어 있었고, 붕대를 떼는 찍찍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요새 네가 좋아하는 그 셰이머스 윌리엄스의 시 말이야, 기억나는 구절이 있으면 조금만 들려줘.
고상한 붉은 용은 언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만한 시를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타라나 전사에 관한 시, 또는 오래된 전설에 관한 시……
하지만 결국 동생이 떠올린 건 세상사와 무관한 평화로운 시였다.
“대지는 낯선 전설일 뿐, 결말은 불행한 우연 속에서 잃어버렸다.”
“나는 음유시인, 숲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익숙할 뿐이다……”
언니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핀 동생은, 언니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용기를 내서 끝까지 시를 읊었다.
시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읊고 붕대까지 정성껏 묶고 난 뒤에야, 언니가 시를 들으며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은……?
언니.
아, 로흐시니. 한참 기다렸어.
네가 새로 사귄 친구들은? 무리를 떠난 영혼수호자랑 활발한 유목민 아가씨 말이야.
네가 여기 있는 이상, 너희를 가로막던 모든 장애물은 이미 다 사라졌을 거야.
그들은 이미 도시에 도착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이서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잖아.
그렇지.
여긴 쌀쌀하니까 복도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언니, 라브리타흐가 묻힌 곳이 바로 나 시어셔를 재현한 공간이었어…… 정말 그런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는 데 집착할 거야?
타라라는 이름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네.
하지만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겉모습만으로 우리 둘을 구별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입을 여는 순간, 우리 자매를 구분해 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에블라나는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바꿨고, 로흐시니는 항상 예의를 갖췄다.
그녀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기 위해 끝까지 파고드는……
말 끊지 마. 지금 이야기 속 인물에 대해 말하는 중이잖아.
에블라나, 미안해.
아냐, 난 기뻐. 결국 나와 한 약속을 지키러 와줬으니까.
춤을 얘기하는 거야?
그래 맞아, 춤.
언니와 함께 춤을 출 수는 있어. 하지만……
언니, 그 전에 먼저 대답해 줘. 저번에 했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어?
언니는 가만히 미소를 지은 채 회랑 끝에 서 있었고, 동생은 벽에 있는 등 아래의 그림자 속에서 두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엾은 아이. 사실 그녀는 이 작별을 더 빠르게 끝낼 수도 있었다.
많이…… 약해졌네.
죽음의 불꽃을 흩뿌릴수록 언니도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어. 예전에 라브리타흐가 그랬던 것처럼…… 맞지?
아무래도 그 망령의 불꽃은 나와 닮은 것 같지만, 성격은 너랑 더 닮은 것 같네. 너를 많이 도와줬구나?
그 사람은 타라 전체가 완전히 불에 타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아니, 그냥 버티고 있을 뿐이야……
언니처럼 말이지.
고상한 붉은 용은 마침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고, 곧 쓰러질 듯한 언니의 몸을 부축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
넌 결국 네가 어렸던 그 시절처럼, 네 불꽃과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처럼 똑같이 나를 보호하려 하는구나.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네, 로흐시니.
아직 그 일이 기억나. 이웃집 머피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말이야. 언니는 머피 아줌마를 싫어했지만, 관 속에 놓인 예쁜 꽃다발은 무척 마음에 들어 했지……
결국 불꽃으로 머피 아줌마의 자세를 바꿔 눕혔고.
꽃잎에 그을린 흔적을 발견한 나는, 언니가 혼날까 봐 내가 했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어. 심지어 관을 열고 다시 닫는 과정까지 꾸며내면서 말이야……
결국 부모님한테 크게 혼났지.
불쌍한 부모님은 집안의 불꽃을 숨기기에 바빴어. 꽃다발에 난 작은 그을음 자국 따위를 자세히 볼 겨를은 없었지.
……맞아.
그래서 계속 뒤로 물러서 있었던 거야?
언니는 이 긴 삶 속에서 내린 모든 결정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몇 번의 불행한 경험 때문이라는 탓을 하고 싶은 거야?
……하하.
이제 말해줘, 언니. 모든 것을 말하기엔 아직 늦지 않았어.
사람들이 불꽃을 언니에게 되돌려 줄 수 있도록, 내가 함께 요새 아래 광장으로 갈게.
언니와 함께 타라의 들판을 걸으면서, 여태까지 아츠를 사용해 깨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안식을 줄게.
언니가 약해지면 옆에서 시를 읽어줄게. 언니가 잠들었다 깨어날 때까지 말이야.
아직 늦지 않았어, 그렇지?
난 네가 했던 말들을 지킬 거라고 믿어. 어떤 상황에서도 네 고상한 품성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 로흐시니.
하지만 방금 네가 말한 것들로 과연 네가 진짜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건 단지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날, 눈 내리던 그날 밤을 겪지 못한 로흐시니 더블린을 위한…… 아름다운 환상일까?
……
로흐시니, 시도 사랑도 꿈도 다 좋아. 하지만 이젠 꿈에서 깨어나야 해.
날 죽여, 그게 바로 지금의 혼돈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야. 네가 정말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면 말이야.
그리고 이 왕관을 써. 그렇게 하면 나는 네가, 너는 내가 될 테니까.
그것만큼은 할 수 없어.
그럼, 내가 죽고 난 후에 천천히 생각해 봐.
더 이상 망설이지 마, 로흐시니.
네가 다시 나를 찾아온 이상,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언니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자, 춤추자. 로흐시니.
이게 언니가…… 그토록 바랐던 춤이야?
안될 것도 없잖아?
동생은 두 눈을 감은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언니를 향해 두 손으로 창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창이 붉은 용의 몸을 꿰뚫었지만, 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이어서 동생이 언니의 허리를 감싸는 순간, 언니는 쓰러졌다……
……마치 엔딩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맞아, 나도 알고 있어.
진작 알았어야 했던 거야, 언니.
하지만 왜, 왜 하필 지금이어야만 해?
……지금이 아니면?
설마 화창한 어느 날 오후, 누가 맞고 틀렸는지 논쟁이라도 하고 나서 내 심장을 찌를 생각이었어?
넌 돌아왔고, 우린 함께 춤을 추었잖아. 그걸로 충분해.
난 단지 제대로 된 불에 넣기만 한다면, 슬픔과 증오조차 삶을 이어갈 연료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슬픔과 증오…… 결국 인정했구나, 로흐시니.
……
하지만 네 고상한 성격이 결국 널 망가뜨렸지. 로흐시니, 네 불꽃은?
언니의 불꽃이 이렇게 사라지게 둘 순 없어.
하하, 주민들…… 때문에?
언니는 죽겠지만, 언니의 불꽃은 언니의 장례식, 환화 의식에서 꺼져야만 해.
로흐시니, 넌 진작 네 뜨거운 불꽃으로 죽음을 몰아냈어야 했어. 이렇게 죽은 자의 손을 붙잡고, 네 안의 갈등과 후회를 쏟아내는 데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됐어……
그건 결국 모든 것을 구하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만들 뿐이니까…… 마치 지금처럼 말이야.
고상한 붉은 용은 놀라며 언니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심장이 찔리기 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던 그녀의 언니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꿰뚫린 상처에서 포효하듯 솟구쳐 나온 건 피가 아니라 보랏빛 불꽃이었다. 불꽃은 순식간에 긴 회랑을 가득 메웠고, 요새 전역으로 흘러 나갔다……
고상한 붉은 용은 발코니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보랏빛 죽음의 불꽃이 훨씬 빨랐다.
그녀의 불꽃이 반짝이기도 전에, 보랏빛 불꽃은 나 시어셔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난번, 고상한 붉은 용이 이곳에 서서 내려다보았을 때만 해도 도시의 불빛은 드문드문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시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앞에 있었던 건, 이미 도시 전체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운 보랏빛 불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 시어셔는 맹렬한 불길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봤던 편히 잠들지 못한 모든 죽은 자들과 똑같은 모습으로.